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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12).
게시물ID : love_408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33
조회수 : 2047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8/01/31 00:33:06
"...음??? 예. 오마니. 큰놈입니다."

고향 어머니의 전화.

"너 어디 아퍼?"
"놉. 물려주신 몸뚱아리 어디 아파야 쓰겠습니까."
"핸드폰 요금 안냈냐?"
"카드로 자동이체요."
"어디 외국나갔다 왔냐?"
"그럼 집에다가 선물 하나 보냈죠."
"그런데 요즘 왜 전화 안해?"

나랑 동생이나 무소식의 희소식이라고 연락 잘 안한다지만, 고향집에다가 그랬다간 혼나는데,
요즘 바쁘고해서 연락이 뜸했었다.

"...바빴습니다. 아시잖아요. 월급쟁이들 이러고 사는거."
"난 너 어디 드러누운지 알았지. 내일 올라간다."
"...예?"
"내일 서울 올라간다고. 할머니 모시고."
"할머니???....아!!!! 병원????"
"응. 왜 놀래?"
"어우. 내가 놀래긴 뭘 놀래요...곤란한데."
"뭐가?"
"아니...저기 뭐시냐...나 지금 집에 후배 하나 데리고 살아서...;;;;;;;;;;;;;;;;
아!!!! NN이!!!! NN이 집에 가서 계세요."
"여자애 혼자 사는 집에 원룸인데 거기서 어떡게 할머니 자고 가라 그래."
"어...어...엄마!!! 나 사장님이 찾으신대. 금방 전화드릴께요!!!!"

중국출장가신 사장님이 나를 찾는다고 오마니께 거짓말을 하여 지옥행티켓 한 장 더 끊어놓고, 냉큼 D한테 전화를 했다.
안받아;;;;;;;;;;;;;;;;;

알바? 학교? 
집 알바 학교 알바 집.
패턴이 대충 이 정도인걸로나 알지, 정확히 뭘 하고 있는지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아놔서 
이 긴급사태에 속만 타 들어갔다.

정말, 그렇게 하루종일 전화가 안되었다.



"어. 혹시 모르니까 너 집 좀 치워놔. 내일 버스시간맞춰서 반차내서 모시러 갈거여. 어. 야 YY는 신혼인데, 거기다가 모시면 퍽도 편히 계시겄다.
아. 사줄께사줄께. 어, 그려. 오빠가 이 은혜는 이따 굿나잇똥하면서 잊을께. 오냐."

급히 내가 임시숙소로 권고한 사촌동생한테 전화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집 좀 치워놓으라고 했다.

동생들이 대부분 원룸에 사는지라, 그나마 방 한칸 더 있는데 사는 내 집이 고향에서 부모님 할머니 삼촌네 오면 베이스캠프가 되곤했는데,
할머니 검진 받으러 오는걸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받지않는 D의 전화 덕에 내 속도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일도 손에 안잡히고 심난해서 앉아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있다. 핸드폰번호는 아니었다.
"보험안합니다."
"오빠. 저예요. D."
"어어어어어어!!!! 잠깐만!!!!!"
나는 급히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왜 전화를 안받아? 어디야? 밥은 먹고 다니니?"
"밥은 먹었구, 지금 아르바이트하는 가게 근처 공중전화예요."
"공중전화?"
"네. 핸드폰이 고장나서..."
"아, 어, 그랬구나;;;; 어? 내 번호는???"
"그때 지갑에 사회인 명함 하나정도는 넣고 가라고 주셨잖아요. 그거보구요."
"휴...다행이다..."

여하튼 비상사태가 라운드하우스에서 파스트페이스. 데프콘3에서 데프콘2로 격상된 상황이라, 나는 급히 상황전파를 했다.

12시간내로 할머니 오마니 상경예정.
상황을 전파받은 D는 급히 치장물자...아니아니...모든 짐을 꾸려, 내 방에 다 때려박던지 하고 어딘가 임시숙소를 정할것. 
거실 테레비장 우측 서랍 꺼내서 저 안 쪽에 보면, 도둑놈 엿먹일려고 숨겨놓은 30만원 든 봉투가 접착테이프로 붙어있으니, 그 돈을 활용할것. 
현 상황은 훈련상황이 아닌, 실제상황임. 

D는 네.알았어요. 이따 얼른 집에 들를께요. 저 잔돈 없어요. 라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겨우 한숨을 돌렸다.
어디 친구집에나 있겠지. 그 친구 폰으로 연락줄거야. 

하지만 안될라니까 상황은 더럽게 꼬이기 시작했다.




"어...ㅆㅂ...이거 왜 이래???"
워낙에 폰을 험하게 쓰고 다녀 여기저기 잘도 떨구는 주제에 케이스도 안하는데,
아까 창고들어갔다가 돌바닥에 핸드폰 떨어뜨리고 다시 주머니에 넣고 전화 좀 하려는데, 
전원이 안들어온다;;;;;

급하게 AS센터로 들어갔는데, 예약안하고 갔더니 휴일날 놀이동산 줄마냥 끝도 없이 서 있다. 망했음.

"메인보드랑 액정이 동시에 나가셨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바꾼지 1년도 안됐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수리비 견적서입니다."
"이게 뭐얔ㅋㅋㅋㅋ 잠깐만요."

나는 업무폰을 꺼내서 더듬더듬 번호를 기억해내서 폰팔이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어 나. 좋은 말씀 좀 전하려고. 핸드폰 좀 급히 하나 하자. 너한테 맡기느니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데, 지금은 좀 맡겨야겄어. 24개월 약정으로. 어. 옛날거 말고 신형. 임마. 보조금 막 때려넣어서 싸게 해줘봐. 너 내 주민번호 알잖아. 위약금 얼마있냐? 그래? 그럼 그거 니가 내줘야지. 안돼? 야이씨. 지금 개통해주잖아. 얼마까지 알아보셨냐고??? 너는 얼마까지 해먹으려고 알아보고 있는데??? 니 대가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까지 들린다. 단전수련으로 뇌호흡 안하고, 내가 뚜껑따줘서 다이렉트로 뇌호흡 하기 전에, 적당히 해먹을 가격으로 하나해라...아!!! 한 대 더 개통할수도 있으니까 졸라게 싸게 맞춰. 무제한 쓰면 뭐하냐. 집에 와이파이 터지고 회사도 와이파이 터지는데. 아씨 뭐가 그렇게 복잡해. 너 내꺼 신분증 복사한거 있잖아. 일단 내 번호 개통해서...아니아니 기변. 뭘 졸라게 잘 알긴. 너같은 놈들한테 눈탱이 안당할라믄 이 정도는 알고 있어여지. 어. 빨리 하나해서 우리 회사로 퀵 보내. 냉큼 당장 롸잇나우 허리업 하야쿠하야쿠 무브무브무브 너 이 손보인다????"

이 핸드폰 덕분에 그 날 도망안치고 D랑 인연이 이어졌는데...그는 훌륭한 핸드폰이었습니다.

귀찮아서 외장메모리도 안끼워놨다가 데이터랑 사진도 다 날아갔는데, 
다행히 친구가 내 구글아이디를 연동해서 연락처 다 살려서 보내왔다.
아니 잠깐 이 쉐키가 내 지메일 비번을 어떡게 알지???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니, 
마치 이 집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D의 흔적이 싹 사라져있었다.

D가 쓰던 그릇들은 말끔히 설거지되서 찬장으로 올라갔고, 
D가 쓰던 칫솔 샴푸같은것도 다 없어져있었다. 
내일 오마니랑 할머니가 쓰실...그동안 D가 쓰던 큰 방은, D가 오기 전처럼 정리되어있었다.

가슴이 휄~해지는 느낌이었지만, 잠시 후, 파스트페이스가 카크트피스톨로 격상될 상황이라, 나는 혹시 모를 어머니의 잔소리에 대비해 청소를 시작했다. 
사실 D가 워낙에 깨끗하게 치워놔서 큰방 거실 화장실 부엌 베란다는 그닥 치울게 없었는데, D가 손대도 답 안나오는 내 방이 문제였다.

나는 얼른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그 문제의 쓰레기들을 치우고, 방바닥을 대충 닦고, 간만에 이불도 털고 하며 부산한 밤을 보냈다.



오마니랑 할머니는 딱 1박 2일 머물다 가셨다.
귀농하신 아버지 농사일때문에 오마니도 금방 가신다고 하셨고, 할머니 서울가자 할머니랑 같이 자는 24살 28살 차이나는 사촌동생들이 할머니 어디갔냐고 밤새 전화해서 울고불고해대서 할머니는 손녀들 재우러(...)얼른 내려가셨다. 



도착하셔서 버스타고 간다하지말고 택시 타세요. 꼭!!! 
다음에 올땐 좀 빈손으로 와. 혼자서 다 못어. 꼭 빈손으로 오시라고요 꼭!!!
뭘 애들 나눠줘. 내는 뭔 택배기사요.추석때나 내려갈게요. 여름휴가??? 내가 언제 여름에 휴가쓰는거 봤어요. 가을에 가지. 
술 많이 안먹어. 적당히 먹을께. 

아오...기차문 닫히니까 전화까지 거셔서 독거노인...아니아니 총각아들한테 미우나고우나 잔소리하시는 오마니 바래다드리고, 
얼른 회사들어가서 일처리하고, 마침 목요일이라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D도 갑작스런 상황에 훌륭하게 대처해줬기에 저녁 맛있는거 사줘야지.하고 주둔지로 귀환하라고 알려주기로 했다.
"지금 저희 고객 전화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 아!!!!!!!!! D도 전화기 고장났댔지...뭐 내 명함가지고 있으니까..."




텔레비전다이의 우측서랍을 꺼내야 보이는 30만원 든 봉투는 그대로 들어있었다.
같이 지낸지 반년 가까이, 무간섭 사생활상호존중의 원칙에 따라 친한 친구가 누군지도 묻지않았고...
생각해보니까 D가 다니는 학교가 어딘지도 몰랐다.

학교랑 병행하다보니 알바도 장기적으로는 못했고,
방학을 맞아 새로 알바구했다고 했는데, 어디서 하는지도 안 물어봤는데;;;;




그날은 비가 오려고 상당히 습한 날이었는데 
내 등에서는 덥고 습해서 흐르는 땀이 아닌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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