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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너무 내 아들을 힘들게 해."
게시물ID : love_409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태태요정
추천 : 17
조회수 : 3193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8/02/03 20:45:28


쓸까말까 며칠을 고민했는데 누구한테 속 시원히 털어놓지도 못했고 이렇게 있다간 제가 정말 죽기라도 할 것 같아서 길고 지루한 얘기를 써봅니다. 그냥 제가 어딘가에 이걸 털어놨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것 같아요. 그 누구한테도 말 못할 얘기니까요.

그 사람과 알고 지낸지는 거의 5년, 연애한지는 2년 다되어갔었습니다.
결론부터 적자면 헤어졌는데, 사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헤어진건지 뭔지 감도 잘 안오고 하루종일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서 일부러라도 좀 바빠져보려 하는 중이예요. 가만히 있으면 화도 나고 우울하기도 하고 찾아가서 길길이 날뛰고 싶다가도 그냥 죽고싶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 마음 누가 알아줄까 모르겠네요.

저와 그 사람은 경제적으로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그 쪽은 전혀 풍족하지 못했고 하루하루를 최저 시급을 받으면서 본인의 단어 선택에 의하면 '개처럼 일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고, 저는 반대로 부족함 없이 자라 어려움을 크게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사실 벌이가 시원찮은 부분도 물론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하루살이같이 산다는 점이었어요. 저는 남들이 사서 걱정이다 싶을 정도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 편이었고 그 사람은 그 날 그 날을 '버텨낸다'는 식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배워서 내 집 마련에 대한 생각을 하고, 저축하고, 적금을 관리하고, 주택청약이나 주식같은 걸 해왔고 그 사람은 미래에 대한 계획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끔 저한테 네가 허락만 한다면 너랑 결혼하고 싶다, 너랑 살면 좋겠다는 말을 했지만 계획은 없었고 단지 입버릇처럼 하는 말들이었어요.

그런 부분이 답답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잔소리도 많이 했습니다. 이 나이쯤 먹었으면 네 월급, 네 적금 정도는 직접 관리해야지. 못하겠으면 나랑 같이 해보자. 집은 생각해보고 있니?
그러면 그 사람은 "그렇긴 한데 부모님이 관리하시는거라..." 같은 반응으로 일관했어요.

그 사람이 딱히 부모님께 큰 애착이 있었던 것도 아니예요. 자기를 너무 구속하려 든다, 너랑 있을 때만 숨통이 트인다, 집 나가고 싶다고 항상 말했어요. 제가 집 떠나고 싶다면서 노숙할 수는 없으니 그럼 단칸방이라도 집 마련해볼 구체적인 계획이 있냐고 물으면 또 얼버무리고, 그렇게 또 하루를 의미없이 보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그 사람은 대단한 마마보이였어요. 마마보이라고 하면 굉장히 발끈했지만,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었어요. 저와 나눈 카톡 대화까지 부모님이 확인하셨거든요. 물론 자의로 보여준 게 아니라 강제였다고는 하지만 (이 부분은 이야기가 깁니다. 그 사람의 차에서 저랑 사용한 콘돔 포장지가 부모님께 발견됐고, 어디서 누굴 만나고 다니냐는 추궁 끝에 그렇게 된 거예요.) 사적인 대화 내용이 낱낱이 보여진 제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마마보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제 변명이예요.

헤어지게 된 계기가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아버지는 저와의 카톡 대화를 보자마자 저에게 연락을 취하셨어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핸드폰을 압수해서, 마치 그 사람인척 저에게 카톡을 하신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모른채 그 사람과의 약속인 줄 알고 그 날 있던 일정들을 급하게 끝마치고 약속장소에 나갔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그 아버지셨던 거죠.

처음엔 제가 너무 일찍 나와서 그 사람이 아직 오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야 사실을 알게 되고 당혹스러워하는 제게 그 사람의 아버지는 냉랭하게 말씀하셨어요. "넌 너무 내 아들을 힘들게 해. 이만 관계를 끊어줬으면 좋겠다." 라고요. 어처구니 없죠. 드라마도 이렇진 않을거예요.

저는 웃기게도 해명했습니다. 단지 그 사람의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생활패턴과, 어린애같이 부모님께만 맡겨둔 미래를 바꿔주고 싶었다고요. 그러자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건 부모인 우리가 손 대야할 부분이지,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맞는 말이었어요. 순간 친구로 지냈던 3년과 연인으로 지냈던 2년이 모래처럼 흩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슬픈 감정과는 조금 달랐는데, 저는 그만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어요. 주제넘게도 내가 사람을 바꿔놓으려고 했구나.

그렇게 그 사람은 핸드폰 번호를 바꿨고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 이젠 모르겠습니다만) 당사자와의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 사람네 아버지의 형식적인 인사를 끝으로 연락이 없습니다.

끝난 것 알아요.

하지만 바쁘게 지내다가도 잠깐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그 날의 그 상황이 자꾸만 떠오르고, 그 사람 혹시 나한테 연락하고 싶은데 내 번호를 잊어버려서 못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부모님이 감시해서 못 하고 있는 걸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면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어요.

항상 사랑한다고, 내가 자신의 미래라고, 나만이 숨 쉴 구멍이라고 말해줬던 게 거짓말이었고, 사실은 제가 하는 충고들과 잔소리에 숨이 막혀서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한 거였을까? 가장 유력한 가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파요. 가슴이 먹먹하고, 배신감도 들고, 그리고... 모르겠어요.

딱히 댓글을 바라고 쓴 글은 아니고... 그냥 대나무숲이라 생각하고 외쳐봤습니다. 길고 지루한 넋두리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연게 여러분들께는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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