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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21).
게시물ID : love_410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29
조회수 : 1589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8/02/10 17:37:51
"어디 갔다왔어?"
"야. 움직이지마. 내가 편도염 검빨띠여."

곤히 자고 있길래, 뭘 맥여야지. 내가 다른건 다 잘 쒀도 먹는 죽은 잘 못 쑤니 사와야지. 자본주의 만세.하고 죽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참이었다.
"자. 죽먹고 약먹자. 젊긴 젊네. 난 편도염 한 번 걸리면 한 일주일은 드러누워야 되는데. 옷 하나 더 껴입고 앉아있어. 세팅해줄께."

나는 태연한 척, 주절주절대며 죽을 대령했다.
정신이 좀 드는지 어제처럼 먹여달라고는 안한다. 

"오빤?"
"어? 아. 집에서 싸온거 전 먹었어. 괜찮아."
"나도 전 먹고 싶어."
"니꺼 남겨놨어. 기름진거 먹으면 부대껴. 안그래도 속이 속이 아닐건데."
"편도염 유경험자답네."
"그렇지 뭐."

D는 다행히 죽을 완식했다. 어제는 절반넘게 남기더니.

나같은 경우, 편도염 걸리기 전을 분석해보면 부실하게 먹고 일 무리해서 하고 그러고 또 술먹고 다니다가 면역력이 떨어진건지 훅 들어오는데...
예전에는 정말 말랐던 애가 나랑 잘 먹고 다니면서 피부도 뽀얗게 되고 보기 안쓰럽지는 않게 살도 붙은 줄 알았는데, 편도염이 걸려놔서 퍽 속상했다.

이 편도염이란 병이 정말 쥐뢀같은 병이라...



"침대에 좀 누워있어."
"나도 TV보고 싶어."
"어. 그려. 이불 가져다 줄께."
나는 앉아서 D는 이불에 들어가 누워 나란히 마지막 추석특집방송들을 보다가...재미없네. 하고 무도 재방송을 봤다.

어느새 D는 내 무릎읇 베고 곤히 잠들어있었다.
나 없는 3일동안 잘 지냈어? 밥은 안거르고 먹은거야? 라고 묻지도 못했네.
며칠 안감아서 기름기 좔좔 흐르는 D의 긴 생머리를 쓰담쓰담해주고, 그 틈에 드러난 귀를 살짝 만진다.
우웅...
화들짝 놀래서 손을 뗐는데, 다행히 그냥 자면서 낸 소리인가 보다. 
그러면서 D는 내 허벅지를 안다시피 더욱 머리를 내 쪽으로 파묻으며 잔다.

너는 가족 만나러 안가? 
왜 이 좋은 날에 혼자 이러고 있어?
나는 너를 잘 모르네. 

나는 테레비를 끄고, 벽에 등을 기댄채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야!!! 아직도 병원이냐??? 나와라!!! 막판스퍼트해야지!!!라는 친구들 까똟에,
닥쳐. 내일 출근안할거냐? 미친거여? 나는 그동안 밀린 일 처리할거 생각하면 잠도 안 온다...라고 보내놓고 잠들었다.




화장실 가고 싶은데...몸은 무겁고...D도 아직 자고 있는것 같ㄱ...어? 허벅지가 가벼워?
소피가 급해 갈까말까하며 얼핏 잠이 깼는데, D가 베고 자던 허벅지가 가벼운 느낌이라 눈을 떴다.
내 눈 앞에 D가 있었다.
"어...어...야...혹시 나 코골고 침흘리디?"
도리도리.
"어...잠깐만...나 측간 좀..."

우리 국군은 6.25때 기습공격을 당하고, 휴전선 155일 마일에 걸쳐 (노크하면 뚫리지만)철벽방어진을 쳐놓고, 다시는 기습을 허용하지 않을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만,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다시 닿은 D의 입술.
뭐 설왕설래하고 그러진 않았다. 
우리는 그저 쫌 오래 입만 맞추고 있었다.

"...뭐야. 아메리칸스타일이야?"
아니. 지가 해놓고 지가 귀까지 빨개져 있으면 어쩌란거야.
"어흠...일단 난 화장실 좀..."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도 시뻘개져있었다.
내가 나보다 11살이나 더 어린애랑 뽀뽀했다고 이렇게까지 얼굴이 빨개지다니. 나이는 뻘로 먹었네. 
색즉시공색즉시공오이떼구닥사이...아. 비트땜에 분신사바랑 착각함.



평소에 둘이 거실에 앉아있으면 서로 장난질이나 치고 그랬는데, 거실엔 남녀사이에 뜨거운 기류는 1도 없이 어색함만이 넘쳐 흘렀다.

"과일깍아줄께 먹을래?"
끄덕끄덕.

그려. 어색할땐 뭘 먹어야지.
나는 사과를 두어개 가져다가 깍기 시작했다.
"...오빠 이리줘."
"어? 왜?"
"껍질을 깍으라니까 왜 과실을 파헤치고 그래."
"이 정도는 괜찮지않아?"
D는 내 손에서 과일칼을 뺐더니, 사과를 깍기 시작한다.
절반은 내가 절반은 D가 깍았는데, 내가 깍은 쪽은 운석으로 폭격이라도 맞은것 같이 울퉁불퉁했고, D가 깍은 쪽은 원래 이 사과모양이 이랬던것처럼 깔끔하게 깍여있었다. 해달라고 하면 토끼모양으로도 해줄것 같더라.

"흠...뭐...잘 깍네."
"오빤 너무 못 깍구."
"업체 단가 깍는건 잘하는데;;;"
어색했는데, 농담같지도 않은 말에 D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넌 이렇게 웃을때가 제일 예뻐.

"...어? 왜 이래. 나 아직 사지멀쩡해."
"먹어. 자. 아."
안받아주면 쇠꼬챙이로 주둥이 벌려서 우겨넣을 기세라, 얌전히 받아먹었다.

"고마워."
"뭬가?"
"병원에 데려다주고, 간호해주고..."
"측은지심. 맹자의 성선설에 있어. 사람이면 그 정도는 하지."
"...처음이었어."
"어? 뭐가?"
"아냐. 다 먹었어? 자. 아~"
"야야. 아까 먹은거 아직 식도 끄트머리에 있다.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
"오빠는 식도에서부터 소화액 나오는 사람이잖아."
"쉿. 알려지면 FBI에서 인체실험용으로 잡아갈라고 멀더랑 스컬리 보낸단 말이다."
"푸훗...아. 그리고 병원비랑 죽값..."
"또또또. 기승전돈. 너 졸업하고 제대로 취직하면 3부 복리로 받을라니까, 일단을 질러. 대출은 그런거여."




그 두번의 입맞춤 후, D는 아프다는 핑계로 자꾸 나에게 앵겨왔다.
설거지하고 있는데 춥다면서 빽허그를 하고 있고, 
TV보는데 춥다고 내 나이보다 더 나온 내 허리를 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고 있고,
30넘은 노총각아재는 그저 몸둘바를 모를 뿐이었다.
아프다는 서론만 안 붙였으면 진짜 밀어냈을건데, 아파. 추워. 이러는데...




"D."
"응?"
"많이 즐겼냐?"
"뭘?"
"내 체온."
"...뭐래;;;"
"뭐 충분히 즐긴 모양이군. 오늘 밤엔 안돼. 알았지?"
"...응."
"옳지옳지. 유아굿그얼. 전기장판 보일러 풀가동해서 자고. 내일 수업가야지."
"응."
"고분고분한게 좋네. 평소같음 말 한마디했으면 두세마디는 더 받았을 애가."
까불지마셔.하고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푹 친다.
움찔. 좋아. 그 악력은 돌아왔어. 졸라 아픈거 보니까.

"잘 자."
"오빠도 잘 자."
"침대에 누워. 불꺼줄께."
"고마워."
"별 말씀을. 잘 자요. 공주님."
"뭐래;;;; 공주님이라니;;;"
"농담도 못하냐."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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