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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26).
게시물ID : love_411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33
조회수 : 162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2/15 21:25:14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여긴 또 어디인가.

나에게 파스타란 물건은 지난 몇년간, 피자배달시킬때 얼마 더 추가하면 은박에 덮혀져서 나오는 시큼한 밀가루면을 호로록 먹는 그런 음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세 명의 여대생들과 그 파스타란걸 먹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여긴 또 어디인가.



"장대리 너는 근처공장 번개통신 때려서 지게차 빌려줄 수 있는데서 한대 더 빌려와. 어떡게 몰긴. 내가 가서 끌고 와야지. 
 최대리 니는 가서 5톤 끌고 바로 다 때려박고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해. 차키를 내가 들고 다니냐 공장장님!!!!!
 나머지 분들은 재고 체크하고 지게차들한테 바로바로 여깄다고 알려줘. 지게차들은 지금부터 그대로 싣고 5톤에 때려넣고.
 나도 할건데 지게차들은 빠레트 고만 해먹고 신중하고 빠르게 옮겨. 꿀밤때릴거여. 떼찌떼찌하고.
 5톤 3대. 지게차 3대로 오늘 싹 들고 날려야되니까. 장난 똥때릴 생각말고."

공장장님이 햐...김과장은 현장에 있어야돼. 사무실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라고 감탄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다른 팀이 싼 똥 치우러 우리는 경기도 공장으로 다들 날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팀은 불금이라고 정시에 퇴근했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 상무님께 불려가 개박살이 났지.)

그렇게 오랫만에 지게차 좀 몰고 빠레트 들고 치우고, 업체랑 통화하며 싸우고 난리를 치다가...
"헉!!!! 야!!!! 나 약속있어!!!! 뒷정리 좀 하고가!!!!"
라며, 화장실 가서 손 한 번 못씻고, 그대로 다시 서울로 달려왔다.


"아!!! 형님!!!"
"얌마. 전화벨 세번 울리기 전에 받으랬지???"
"ㅋㅋㅋㅋㅋ 어쩐 일이세요? 술먹게요?"
"뭔 내가 너한테 전화할 이유가 그거 밖에 없을까."
"...없잖아요,"
"그러게. 야. 요즘 대학생들 데려가면 좋아할만한 식당. 얼른."
"...곱창집?"
"너 좋아하는거 말고 임마."
"남자애들 좋아해요. 잘 먹어."
"아차. 아니아니. 여대생. 3명. 나포함 4명."
"...형님. 많이 피곤하신가봐요. 좀 주무세요."
"...뒤질래?"
"갑자기...여대생...3명...뭐 좋아하는데라니...제가 무슨 대답을..."
"술 사줄께."
"생각하시는 가격대랑 장소 말씀해주시면 예약까지 해놓을께요."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아는 동생놈에게 여대생들과 갈만한 식당을 잡아놓으라고 시켰다.
이놈이 공대쪽에서 강사로 있는건 둘째치고 (대학수업이라기보단 군대 정훈교육 하는 느낌이라고ㅋ)
그나마 대학생들과 가까이 지내는 놈이라 냉큼 부탁했고, 
나에게 엄청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애라(이 형은 술 잘 사줘♡♡), 냉큼 몇 군데를 알아봐 주었고 그 중에 한 군데를 골라서 D에게 통보했다.

-거기 비싼데야.
-아. 좀 친구들한테 좋은데서 사주려는 오빠의 마음 좀 이해해주고 그러면 안되냐??? 운전중이다. 통신끝.

보나마나 가본 적도 없겠지.



출발도 늦었는데, 주차할데도 없어서 빙빙 돌다가 깔끔하게 더 늦어버렸다.
나는 까르보나라. 너네 알아서들 시켜서 먼저 먹고 있어라. 라고 알리고, 들어간 시간은 약속시간에서 정확히 30분이 지나있었다.

나는 아직도 D의 친구들...A양과 B양이라 부를 이 친구들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나이차 많이 난다더니, 진짜 아저씨가 왔어.
머리 부시시하고 먼지 뒤집어쓰고 온거 봐.
이거 D랑 너무 안 어울리는데???라고 말하지 않아도 다 들리게 말하고 있었다.

그 공격적인 눈빛들을 보건데, 이 애들 진짜로 D를 아끼는 친구들임에 틀림없군.하고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겨우 그 애들의 눈빛이 풀린건, 나만큼이나 파스타라는것에 익숙하지 않은 D의 포크질이 서툴자,
"줘봐. 잘 봐. 이렇게 하는거야."라고 면을 돌돌 말아서,
평소처럼 오빠 아~...넌 손이 읎어 발만 있어 왜 니 손으로 안묵을라그래.하고 면박을 주지 않고,
자. 이렇게 나름 이쁘게 돌돌 말았으니 스스로 자셔봐.하며 둘이 오순도순 소꿉놀이를 하고 난 후 였다.

나에 대한 시선이 곱지않아, 저 쪽은 포기하고 D한테만 집중한게 오히려 플러스가 되어있었다.



D가 화장실에 간 사이, 둘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몇살 차이시랬죠?"
"11살."
"우와...진짜 나이 차이 많이 나."
나도 알아.
"D 울리면 우리가 가만 안 있을거예요,"
내가 안 울려, 지가 지 풀에 울지. 오히려 내가 울고 싶다. 
뭐 이런 날선 질문들이 날라왔고, 나는 "중립국." "군번 04-XXXXXXXX. 병장 김XX." "중립국." "제네바협정을 준수해 달라."라고만 대답하고 싶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여긴 또 어디인가.

"D 꽈에서 인기 되게 많아요. 아시죠?"
"잘 몰라요. 내가 워낙에 남의 사생활에 간섭안하기도 하고, D도 학교이야기는 잘 안하는 편이고."
"관심 좀 가지세요."
"...노력할께요...학교 이야기래봤자, 두 친구들 이야기가 거의 전부라."
우리 이야기만 한대. 꺄꺄~
"수업시간에만 보이고 다른 학교행사도 거의 참여안하는 애라, 여자친구들이라고는 사실 우리들 뿐이예요."
"남자애들이랑 선배들이 자꾸 우리한테 D 도대체 어딨냐고 자꾸 물어봐대서..."
"아. 그래요?"
"D 1학년때는 진짜 조용하고 항상 어디론가 사라지고 해서 신비주의냐고 다른 여자애들한테 따돌림까지 당했거든요."
"잘 좀 챙겨주세요."
너네 D가 집에서 나한테 아~하고 먹여줘, 늦게 자지말고 일찍 자. 그럼 방까지 업어줘. D. 오빠 출근한다. 와서 모닝키스해주고 가. 이러는거 아냐? 내가 안 챙겨? 맥여주고 이동시켜주고 잠까지 깨워주는데? 라는 말이 울컥 나왔지만, 무피클을 오도독오도독 씹으며 주워삼켰다.



"언제부턴가 D가 어떤 아저씨 이야기를 가끔 하더라구요."
아니, 화장실에 빠졌나. 왜 이렇게 안와?라고 할때쯤 친구 B양이 그런다.
"아저씨? 나?"
"네. 진짜 우연히 알게 된 사이세요?"
ㅇㅇ. 그때 내가 어버버했으면 너네 사식넣으러 갔을지도 몰라.
"D가 그러는데..."
"아아!!!! 안돼안돼!!! 말하지마!!!"
등 뒤에서 후다닥 D가 달려오더니, 친구 B양의 입을 틀어막는다.
꺄르르륵. 지지배. 지가 말해놓고는 뭐가 부끄럽대. 오빠한테도 들려주게.라며 그러는데 
애네들 정말 친하구나. 학교 땡.하면 아르바이트하러 다니던 애라, 아싸 그런거면 어쩌나했는데 학교에서 이렇게 마음편히 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게 퍽 다행이다.라고...안심이 되었다.



"계산이요."
"오빠오빠. 이거 내가 낼께."
"까분다. 너 담주에 방세내는날인거 알지?"
"아냐. 이건 내가 낼 수 있어."
"너 친구들한테 밥 한번 못 살것 같애? 이따가 집에 갈때 아이스크림 사줘."
"...안 추워?"
"맛있는거 먹는데 덥고 추운게 어딨냐."

잘먹었습니다~
뭘요. 나도 오랜만에 까르보나라 먹어서 좋네그냥. 역시 소스가 찐득찐득해야돼.
D 오랜만에 저녁에 시간되는데, 더 놀다가자.
어? 안돼. 나 내일 출근해야돼.
내일 마케팅부 오전에 출근 안해. 오후에 상근인원만 나오니까 너도 오후에 출근해.
네? 아뇨. 저 원래 오전부터...
우리 부 근태담당이 난데 뭔 상관이야. 놀다와.
...응. 일찍 들어갈께...아. 지갑 꺼내지마. 나 돈있어.
...(눈치는 졸라 빨라요.)...카드 넣을라고 꺼냈다-_- 나도 내일 오후에 출근할거니까 친구들이랑 천천히 놀다와.
이따 10시까지 들어갈께.
고등학생도 그 시간에 안들어와. 애가 뭐라는거야. 넌 머리에서 바람 좀 빼야돼. 아까 들어보니까 A씨. 여기 어디서 자취한다며. 자고 오고 그래. 
그렇게까지는 늦게 까지 안 있을께. 먼저 들어가.
어. 그래.
나 오빠 차에까지 데려다 주고 올께.
안녕히 가세요~
네. 들어가요.

주차장 쪽으로 둘이 타박타박 걸어가다가, 어두운 주차장으로 들어서자마자 폴짝!!!하고 D가 내 등에 뛰어올라 엎힌다.
"엌ㅋㅋㅋㅋ"
"잘먹었어."
D는 엎힌 채로 손으로 내 양 볼을 쓰담쓰담한다.
"잘 먹긴했나보네. 평소보다 묵직해ㅋㅋㅋㅋ"
"ㅋㅋㅋㅋㅋ 꼬집을거야."
"그건 안됔ㅋㅋㅋㅋㅋ"
"A랑 B가...오빠 한번 꼭 보고 검증해야겠다고 그래서..."
"그려? 나도 D친구들도 보고 괜찮았어."
"친구들이 오빠 사람 디게 좋은것 같대."
"그 말은 썩 잘생긴건 아니라는 소리야. 착하다. 사람좋다. 이런 말은 진짜 우리 엄마가 공부해라. 하는 소리만큼 들었는데ㅋㅋㅋㅋ"
"아냐. 우리 오빠가 어때서."
"그건 너 눈에 콩깍지가 껴서고. 으차!!! 다 왔다."
D는 폴짝 뛰어 착지한다.
"에고고...허리야...오도독 소리까지 나네. 그냥"
눈 앞에 D가 나타났다? 싶더니, 여지없이 D의 입술이 와닿는다.
"아. 또 당했어."
"좋으면서 빼기는."
"어째 공수가 바뀌었어."
"오빠 그런 반응 좋아. 마음에 들어."

오늘 D의 반응들이 좋다. 
마음 편한 친구들한테 나를 소개해주고는 많이 신난 모양이다.
"...왜?"
"뽀뽀 한번 더."
"아서라. 저기 니 친구들 와서 기다린다."
"어? 어디어디?"
"저기 큰 기둥 뒤에. 얼른 가."
"...미안."
"뭐가?"
"뽀뽀 더 안해줘서."
"ㅋㅋㅋㅋㅋ 얼른 가보세요."



차를 몰고 나가는데 D가 알아보고 살짝 손을 흔들어준다. 

맘편히 좀 놀다온나...하고, 나도 좀 놀게.라며 
집으로 가서 근처사는 친구 불러서 회에다가 소주 한잔 하고 들어갔다가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돌아온 D한테 그세 나가서 술먹고 왔다고 혼났다.

나론 부족했던 거야? 응? 
나랑 친구들이랑 놀고 들어간걸로는 부족했던거야? 
그럴려구 내 마지막 뽀뽀도 거부하고 그렇게 급히 나갔던거야?라며 혼났음.

그래서, 사온다는 아이스크림은??? 라며 반격을 시도해보았으나,
...오빠 보고 싶어서 급하게 오다보니까 깜빡했어...라며 D가 미안해...라니까 이 사랑스런 아이에게 내가 큰 잘못을 했구나 싶었다.

나의 완패.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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