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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27).
게시물ID : love_411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가입:2011-09-21 방문:2587)
추천 : 30
조회수 : 1420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8/02/16 12:47:27
싱글벙글한 D와 달리, 나는 죽을상 울상 시무룩상 밥상 술상 우거지상을 하고 있었다.

...해마다 11월 마지막 주에 가는 회사 야유회...젠장...더럽게 가기 싫어...



"..."
"왜?"
"오빠 짐...이게 전부???"
"어."

칫솔, 치약은 누군가 가져온 사람거 빌린다.
수건 1장.
양말 1켤레.
끝.
뭐 어때 1박 2일인데.

"이 츄리닝으로 켠김에 왕까지...너 어디 피난가???"
반면 D는 우리 오마니가 두고 간 커리어가 꽉 차게 집어넣었다.
내가 어디 1주일 출장가도 이렇게는 안 싼다.

"...무슨 기대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가서 등산하다가 중간에 징징거리면 정상 안찍고 내려오고, 그때부터 고기굽고 술먹고 친한척 셀카찍고 술먹고 고기굽고 자다가 아침에 족구 한판 뛰고, 점심에 싱겁기 그지없는 막국수 먹고 올거여."
"..."
"왜?"
"...그래두 오빠랑 처음 가는 여행인데..."
아뿔싸...여기에 그런 의미를 부여하다니...
미안미안. 오빠가 이렇게 무던해. 거기까지는 생각못했어. 
시무룩하던 D의 얼굴이 환해진다.
D의 기분에 맞춰주기 위해, 옷 한벌. 더 챙겨가기로 했다. 
진짜 엄청 양보했다.




긴장한 인턴들과 신입사원들을 제외하고 다들 가기 싫다 오오라를 내뿜으며 집결지에 모이고 있었다.
"김과장."
"넵. 부장님."
"고기 구울 준비는 다 됐고???"
"군대였음 상병 어디쯤이예요. 슬슬 일병급인 대리들에게 고기집게와 가위. 넘기고 싶습니다."
"난 괜찮은데, 사장님이 김과장이 굽는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시네."
"...겉은 바삭. 속은 촉촉. 부장님의 가르침을 양손으로 펼쳐보입지요."
"ㅇㅇ. 김과장만 믿어."
"...야. 웃어? 니네가 잘 못구우니까 내가 지금도 가위랑 집게 잡잖아."
"오늘 과장님 너무 날카로우세요."
"찔러주갔어...하...가기 싫다..."
"이번에...사업운영부에서 주관하잖아...레크레이션 싹 빼버렸대."
"오오오. 그거 괜찮다. 장기자랑 그딴것도 없겠네?"
"ㅇㅇ. 그것만 빼도..."
"사장님이 상품권 꽤 들고 오셨다던데요?"
"지난 수년간 그 중에 하나는 내꺼였어. 고든 램지 상이라고 알아? 내가 맨날 고기 굽고 서 있으니까, 하나는 항상 내꺼였지."

이렇게 만담들을 주고 받고 있는데, 저기서 여사원들 무리에 장대리랑 팔짱 꼭 끼고 꺄르르륵 웃으며 서있는 D가 보인다.
여직원들이랑 잘 지내고 있는걸 보니, 아빠 미소가 나온다.
"...과장님."
"왜?"
"...장대리 임자 있는거 알죠?"
"...그게 왜?"
"어우...아무리 키퍼있다고 골 안먹힌다지만...장대리한테 그렇게 뜨거운 눈빛을..."
야. 아이스박스 열어. 물은 답을 알고 있어. 이 쉐키한테 얼다만 물 맛 좀 보여야겠어.
아니...나는 D를 보고 있는데 장대리라니...뭐 그 놈도 설마 장대리지, D겠어. 하고 그런거겠지만...



"휴게소 들어가면 깨워라. 통감자는 먹어야겠다."
옆에 앉은 최대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그냥 잤다.
상무님의 훈화말씀이 있으시지만, 그냥 잠. 

"...?"
차는 멈춘것 같고, 차내는 조용하다.
눈을 억지로 뜨고 창 밖을 보니, 휴게소.
최대리 이 쉐키...통감자 먹을거라니까...라고 몸을 복도 쪽으로 트니,
"어?"
"일어났어?"
D가 눈 앞에 있고, 손에는 통감자랑 콜라가 들려있다.
"어우야...회사에서는 조심하자니까...들키면 난 매장당해...미성년자약취유인이런걸로-_-"
"애기아니라니까."
"그거 나 줄거야???...일단 나가자."

휴게소 벤치에는 벌써 한잔씩 말고있는 인원들도 있고,
흡연구역에서 한대 빨고 있는 인원들도 있고,
버스로 어슬렁어슬렁 가는 인원들도 있었다.

"최대리 이 놈은 어디갔어...그리고 넌 내가 통감자 살거라는걸 어찌 알았는고???"
"오빠 입만 열면 휴게소 통감자 통감자 그러잖아."
"...고마워."
"아...아냐..."
애가 뭐 이런걸로 다 부끄러워하고 그래. 

언제출발한대?
음...15분 뒤에 출발할거야.
30분 뒤에 출발하겠네. 저기 상무님 전무님 술까고 있지??? 절대 그 시간에 출발 못해. 

우리는 휴게소 뒤편의 벤치에 마주보고 앉았다.
불의의 습격(?)에 대비해서.
"역시 휴게소 통감자야...왜?"
"오빠 너무 맛있게 먹으니까 보기 좋아서^^"
"...애가 또 별거 아닌걸로 사람 두근거리게 만들고 그려. 너도 한입해."
"아~"
"어째 안하나 했다-_-...옛다. 아~"
툴툴거리면서 나왔어도, 여행은 여행. 우리 둘은 남들 눈을 피해서 통감자에 콜라 한캔 나눠마시고, 몰래 뽀뽀 한번 하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버스에 올라탔다.

"아!!! 과장님!!! 통감자 사오겠습니다."
"쥐뢀엠병하느라 애쓰십니다. 최대리님. 그냥 앉아주세요. 이미 처묵고 왔습니다."
"예?"
"이 배신자놈. 항상 나를 엿맥이려고 애쓰는게 오늘 결실을 맺네. 검은머리 짐슴은 거두는게 아니라더니만."
최대리랑 또 만담을 주고 받으며, 저 뒤에 앉은 장대리랑 D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어디갔다왔어?"
"네??? 화장실이요."
"화장실에 안보이던데?"
"네???"
"...내가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나..."
"그러셨나봐요. 저도 속이 좀 안 좋아서..."
"멀미해? 멀미하는구나? 앞자리로 갈까?"
"아뇨아뇨. 괜찮아요. 장대리님이랑 있을래요."
"아우~우리 D~...불라불라불라..."

저리도 D가 좋을까...



"어떤 쉐키가 1천고지로 잡아놨어..."
"목표는 100고지에서 하산...지금부터 징징거리기 시작해라..."
등산좋아하시는 임원님들 잘보일라고 저기서 또 쓸떼없이 높은 산을 잡아놓았다.
산이 저기 있으니 올라간다는 닥치고 등산파와, 산이 저기 있으니 보기나 할란다.의 귀차니즘파.

나는 오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라며, 간을 보다가 갈림길에서 살짝 한발 물러 후퇴하려 했다.
"엌ㅋㅋㅋㅋ"
"가자."
"뭐?"
D였다.
"...오빠 고관절 도가니, 소백산맥에다가 다 꼴아박고 온 사람이야. 몸이 산을 거부해."
"가고 싶어. 응?"
"...아 왜 고생을 사서 해?"
"가자가자가자가자가자아~응?"
"...일단 여기...딱 여기까지 가보고 다시 생각하자."
"응^^"

선두는 저만큼 앞서가고, 나와 뜻을 같이 하던 동지들은 하나둘씩 뒤쳐지며, 중간에 우리만 남게되어 진짜로 둘이 여행 온 것 처럼 손잡고 다니고 그러다보니까...

"어? 저기 김과장이랑 D씨 옵니다."
"어이쿠. 김과장이 여기까지 다 올라오고..."
"헉헉헉...사...살려주세요..."

역시나 아무도 안 올라오는군. 하고 쉬고 계시던 임원분들이랑 부장님들은 뒤늦게 정상까지 올라온 우리를 보고 반색을 하신다.
사장님은 즉석에서 D에게 오늘 상품으로 주려고 했던 상품권을 하사하시었다. 
나는 즉석에서 사진기사로 임명되어 단체사진을 찍어야했다. 

인턴이 여기까지 따라온건 처음이라, (나빼고) 모두와 찍은 단체사진을 사장님은 한동안 핸드폰배경화면으로 저장해놓으셨다.

물론 우리 둘은 올라오는동안 여러장 찍고 온지라...



"얼마나 출세할려고, 맨날 도가니타령하시는 분이 거기까지 따라올라가셨어?"
"닥쳐 좀. 지금 고관절이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까."
동기들의 질시를 한 몸에 받으며 방바닥과 물아일체의 경지에 빠져있자니, 고기꾸워임마.하고 가위와 집게가 눈 앞에 놓여진다.
아!!! 고관절 도가니 아프다고오오오!!!라니까, 닥쳐. 고기를 손으로 굽지 무릎으로 굽냐.며 질질 끌려나왔다.

뷔페식당에 고기굽는 양반들은 돈이라도 받지...아!!! 줄 좀 서라고!!! 접시 먼저 들이밀지 말고!!!라며 고기를 신나게 굽고 나니...
고기 냄새에 질려서 먹고 싶지도 않더라...

처져서 좀 떨어진데 앉아 소맥한잔 쭈욱 마시고 있는데...뭔가 입 앞으로 다가온다.
"어?"
"빈속에 마시지 말구."
D가 고기를 한점 싸서 내 입에 들이민다.
"...고마운데...냄새에 질려서 못 먹겄다...위장이 안먹고 폐가 다 먹었네."
"한입만 먹어. 빈속에 먹지마."
"하아...아~"
"^^ 아~하세요."
"...맛있네...야. 누가 보는거 아니겠지?"
"안봐안봐. 다들 취해있어."
"오늘은 다행히 내가 안취하네...나 취하면 재밌어. 옷벗고 뛰어다녀."
내 팔을 꽉 잡는다.
"그러지마."
"농담이지. 제일 마지막에 뒷처리하는 사람들 있는데, 그 중에 한명이 나야."
D는 내 옆에 앉는다.
"오빠랑 놀러오니까 좋다."
"...쉬고 싶었는데...ㅠ.ㅠ"
"그만 좀 징징거려. 좋다...나 강원도 처음 와봐."
"여기도 소백산맥 그 쯤인가...도가니가 비명을 지르네...아구구..."
D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아!!! 봤어???"
"뭘?"
"별똥별!!!"
"졸라 많이 봤지."
"또 안 떨어지나? 어디서 봤는데???"
"군대. 야간경계설때. 야투경으로 보면 장관이여. 지금 보이는 별에 수배는 더 많이 찍혀서 보이거든."
"소원 빌어야지."
"그거 별똥별 다 떨어지기 전에 빌어야 돼. 저거 생각보다 졸라 빨러. 딱 한번 성공한적 있는데, 그게 전역 5일 전. 마지막 근무때였어ㅠ.ㅠ"
옆에서 흥깨는 소리하고 있는데, D는 눈 꼭 감고 진짜 소원을 빌고 있었다.
"...지금 안떨어지고 있는데???"
엌ㅋㅋㅋㅋ. 옆구리에 그 주먹이 날아들었다.



족구대회는 항상 꼴지권이던 우리 팀이 고관절과 도가니부상이 도진 나의 불참으로 인해 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부상으로 심판석에 앉은 나의 편파판정이 우승에 큰 도움이 되었음을 우리팀만 빼고 모두가 인정했다.



집결지에서 좀 떨어진 버스정거장에서 다시 만나, 집으로 가는 도중에도 이 지치지도 않는 에너자이저같은 D의 재잘거림은 멈추지않았다.
날이 늦어서 단풍도 많이 지고 을씨년스러웠는데도 너무 즐거워하더라.




다음에 같이 또 여행가자. 너가 돈걱정만 안하면 싸고 여유롭게 갈만한데는 있으니까.
모처럼 D가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연말보너스 나오면 아끼고 아껴서 가자. 알았지?"
"응...오빠랑 둘이..."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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