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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34).
게시물ID : love_414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가입:2011-09-21 방문:2587)
추천 : 27
조회수 : 1365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8/03/03 00:31:05
"...이승만 박사가 그랬어...서울은 안전하다고...휴전선도 못 뚫어 걔네. 너 어디 피난가냐?"

나는 어디 여행가거나 출장을 가도, 짐을 많이 안가지고 가는 편이다.
가령 중국에 1주일정도 출장을 가도, 양말 5켤레, 속옷 3벌, 칫솔, 면도기, 멀티콘센트, 셔츠 1~2벌, 츄리닝, 청바지 1, 면티 2벌에 추우면 파카 한벌, 덜 추우면 바람막이 정도 넣고 이걸 더 줄일 방법 없나..이러는 편이다. 
그래서 가서 찍은 사진들 보면 다 그 옷이 그 옷이고, 갔는데 날씨가 험했다? 그 1주일 안에 걸어서 고비사막 종주하고 온 듯한 비쥬얼로 돌아온다.
다른 지방을 가든, 외국을 가든 가급적 그 동네 밥 먹고, 정 먹던게 먹고 싶으면 피눈물을 흘리고 비싼돈 주고 한식당가거나, 그냥 동네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는 맥날을 가고 말지, 마른반찬이네 뭐네 이런것도 안가져간다. 

그리고, 하나 더 방심한건 D의 놀라울 정도의 성실함이었다.

일부러 짐 못싸게 하려고 밤늦게 여행계획을 발표했건만, 새벽일찍 출발하는 일정에도 D는 정말 어디 피난가듯이 짐을 쌋더라.
"...반찬 왜?"
"..."
"빼. 사먹을거여."
"식비..."
"빼...통영 날씨 좋음. 넌 거적대기 걸쳐도 본판이 예뻐서 다 괜찮으니까, 오늘 입을거 내일 입을거 이 정도로 해...어디 연예인 코디냐?"
"...아. 1박 2일이지?"
"1.4후퇴여 뭐여...이건 또 뭐야? 식기는 왜 챙겨? 거기 콘도 아냐;;;;; 어휴...너 잠은 잤냐?"
"ㅇㅇ. 잤어."
"눈은 토끼눈을 해가지고 뭐래는거야. 실망이야 D. 나를 속이다니."
"아냐. 진짜루 잤어."
"...너 이 가방. 내 백팩인데, 딱 이만큼 들어가게만 싸. 보기 싫게 튀어나오면 또 다 끄집어낼거여. 연비에 안 좋아."
"그치만..."
"제발요. D양. 여행이란건 갈때는 가볍게 올때는 무겁게 오는거야."
"...알았어..."
"짐 좀 빼라는데 왜 글케 처량한 표정을 짓구 그래;;;;;;;"

우리 엄마같애;;;
가서 밥해먹으면 돈이 얼마가 굳냐고.
그 반찬 장만하는 비용이 어지간한 밥값만큼 나오겄더만.



"...D."
"응?"
"좀 자라."
"아냐아냐. 괜찮아. 오빠 운전하는데 내가 자면 어떡해."
"ㄴㄴ. 너 지금 안자면 가서 잔다."
"오빠가 더 피곤해. 괜찮아 정말."

출발하기 전에는 그렇게 또 투닥거렸지만, 막상 서울요금소를 빠져나가자 D의 표정은 딱 보일 정도로 상기되었다.
막상 어제밤과 아까까지는 그렇게도 티를 안냇지만, D의 그 상기된 표정은 잠깐 차 세워놓고 그 부드러운 볼을 마구 만지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귀여웠다. 데리고 나오길 잘했군.
거기다가 평소에는 나 운전할때 방해된다고, 차에서는 굉장히 얌전떨던 애가 오늘은 또 굉장히 말이 많았다.

통영 가봤어?
어. 몇번. 
누구랑?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아참. 숙소...
회사로 해서 예약하면 싼 데 있어. 멀어서 많이들 이용못하지만.
이거 여행비용 줄께.
또또또 기승전돈이야기. 내가 가고 싶은데 혼자 가면 청승맞고 너 혼자 두고가면 또 무슨 궁상떨지 몰라 데려가는거니까, 이따가 휴게소에서 통감자나 한번 사. 아니다. 올때도 사. 
그래도...
통감자. 두 번 이야기 안한다.
ㅇㅇ. 그건 꼭 사줄께.
좋아. 너가 사주는 통감자 두 번 먹어보자. 그러니 좀 자라. 너 이러다 진짜 가서 금방 지쳐서 잔다 그런다.
내가 애냐? 이 정도로 가서 곯아떨어지게?
그럼 니가 애지 어른이냐?

운전 중이라 차마 때리지 못하는 D의 주먹이 부들거리고 두 볼은 또 불룩해진다. ㅋㅋㅋ 아이 귀여워.



그러나 경부를 지나,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고 내려 가는 동안에도 D는 창 밖을 보거나, 나랑 대화하며 한숨을 안 잤다.

"통행료는..."
"우와. 통행료 비싸."
...다행히 기름값은 이야기 안하는군.
고속도로에서는 내내 쌩쌩 달리느라 창문을 못 열다가, 속도가 좀 줄어드니까 D는 창문을 내렸다.
"바다냄새..."
"...아직 멀었는데?"
속도가 주니까 주먹이 날아든다. 안 아픈게 이럴땐 입 좀 다물어.라며 주의 줄 겸 쳤나보다.

그리고 점점 바다에 다가갈수록 D의 표정은 점점 차분해져갔다.
지금까지 D를 보면 예쁘다. 귀엽다.라는 느낌만 들었다면, 이 날 처음으로 그 옆모습을 보고...여자 얼굴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느꼈다.

"어디로 가는거야?"
"밥. 배고파."
"아는데 있어?"
"술안먹었음 가는 밥집. 거기 멍게비빔밥 맛있어."
"멍게비빔밥?"

나야 뭐 사람먹는것 치고 민트쵸코빼고는 다 먹는 사람이라 잘 먹지만, 먹는거 하나는 나에 뒤지지 않는 D 역시 잘 먹어주었다.

안비려?
ㅇㅇ 너무 맛있어.

멍게 비빔밥이 멍게향때문에 못 먹는 사람들은 잘 못먹던데, 우리는 그런거 없이 잘만 먹었다. 




"한 그릇 더 먹을수도 있겟던데. 너무 맛있었어."
"안돼안돼. 다른것도 먹어야지."



낯선 여행지에서의 먹방.
꿀빵에 뭐에...D는 참으로 잘 먹었다. 
단걸 그다지 안 좋아하는 나와 달리, 맛있어~라며 D는 한입 가득 베어물고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입 주위 좀 닦아봐."
"왜?"
"너무 귀여워서 뽀뽀 한번 해주게."
"그냥 해주면 되지."
"다 큰 처녀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맨날 애 취급하더니, 이럴땐 또 다 큰 처녀래. 자. 으으음~"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남들이랑 같이 줄서서 기다리는건데
(세상 어느 맛집이래도 줄 서서 먹을 바엔 그냥 안 먹고 마는 사람임.)
D랑 한번 타보겠다고 그 긴 줄 서서 기다렸다고 탔다.

바람이 좀 많이 불었을뿐, 구름이랑 해무도 그 바람 덕에 다 걷혀서 언제봐도 기가막힌 한려수도가 좌악 내려다보였다.
재잘재잘. 역대급으로 D는 그 날 참 말이 많았다.
글쎄, 내는 사진 찍는거 안 좋아한다니까;;;;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가요. 
싫어~오빠랑 같이 찍을래.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사진도 찍는 수치플레이도 당하고 참...



그렇게 내려와서 숙소에 차 대놓고 다시 나와서 늦은 점심으로 우짜도 먹고(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D의 먹방도 보고)
동피랑마을 갔다가 중앙시장내려와서 시장구경 좀 하다보니 저녁먹을 시간이 되었다.
"오빠."
"응?"
"지금 오빠 무슨 생각하는지 맞춰볼까?"
"내 생각?"
"오빠는 지금 회떠다가 소주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거야."
"너 조만간 나한테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하며 머리에 마구니가 가득찼다고 할거지?"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하며 D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렇다. D는 국사공부를 교과서 위주로 하였고, 나의 국사선생님은 최수종이었던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D가 좋아하는 광어랑 잡어 좀 섞고, 
예쁜 아가씨가 왔으니 서비스 좀 줄께.라며 원래는 사려고 했던 멍게랑 소라를 서비스로 받아서 내가 아는 초장집으로 갔다.

"하이고오~ 총각. 오랜마..."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보고 반기던 사장님은 나를 따라들어오는 사람이 머스마들 여럿이 아닌, 한눈에 봐도 앳되보이는 아가씨 딱 한 명이랑 들어서자, 예전에 바 사장님이 그랬던것처럼 뜨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술값 매출 많이 못 올려드리겠는데...아하...여기도 이러시네...거 불경읊지마요-_-"
"내...내가...잘못 본거 아니제?"
"맞게 보셨어요-_- 일단 소주 한병 주세요."
"아...알았다...;;;; 뭔일이고 이게. 총각이 여자랑 다 오고."
"...왜구가 몰려오거나 오랑캐가 쳐들어올 예정이니 지리산 청학동 같은데로 피난가시던가요."

"맛있다."
"넌 맛없는게 없잖아."
"날 먹보로 보는거지?"
"내가 항상 말하는데, 넌 뭐 먹을때 너무 잘 먹어주니까 내가 맛있는거 막 맥이려 드는거야. 많이 드셔."
"흠흠. 차 두고왔으니까 2병까지 허락할께."
"나 여기 멍게 한접시로 2병 마시는 사람인데?"
"안돼. 나랑 더 놀아줘야지."
"내가 봤을때 너 숙소가면 씻지도 않고 바로 기절할거야. 코~하고 낮잠 잘 시간에 안잤잖아. 이따 얼마나 칭얼댈까."
"오빠 조용하게 하는덴 이게 즉효지. 자. 한잔 받으세요."
"주는 술 사양하지 않겠다."



그 날, 나랑 D는 술을 좀 많이 마셨다. 
이럴줄 알았음 실비집 갈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한병넘으면 표정이 안 좋아지던 D가 그 날은 술 좀 잘 받더라. 
장대리가 이 모습을 봐야했는데;;;

우리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며 잘도 마셨다. 
"아. 그러고 보니까아~"
"왜?"
"나 오빠 손만 잡아봤지, 손금 본 적은 없네?"
"손금? 너 주역 공부하냐?"
"주역에 손금 그런거 없어~"
"...주역을 보긴 했구나;;;; 어디 한번 봐보시던지."
"에헤헤...어디 좀 볼까요?..."
"...답안나오지? 나도 알어. 내 손금 보면 팔자 더럽게 기구한거."
"...오래 살아야돼?"
"ㅋㅋㅋ 생명선 짧지?"
"아냐. 손금 이런건 믿을게 안돼."
"그치. 내 손금보면 나 결혼 3번 한다더라."
"진짜? 어디어디?"
"볼 줄 모르네ㅋㅋㅋㅋㅋ"



그렇게 잘 먹고 나와서, D가 걷고 싶대서 커피 하나씩 들고 통영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녔다.

안 힘들어?
ㅇㅇ. 난 괜찮아. 오빠랑 다르게 팔팔한 20대인걸?
퍽이나. 난 편도염땜에 응급실 실려간 적은 없는디?
아이참. 그때 이야기 좀 고만 써먹어.
아픈게 뭐 챙피한 일이야? 그래도 예전보다 얼굴살이 뽀얗고 예쁘게 올라와서 뭘 맥이는 보람이 있어. 
살찌는거 싫은데;;;
그건 찐게 아니고 붙었다고 하는거야. 삐쩍말라서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을때에 비하면 요즘은 너무 예쁘게 변했어. 진짜야.
아저씨가 농담도 잘하시네요.
D는 콩하고 몸으로 내 어깨에 부딫혀온다. 
엌ㅋㅋㅋㅋ 작용반작용 뉴턴의 3법칙ㅋㅋㅋㅋ 하며 일부러 휘청거려주니 거봐~나 살쪘다니까~하며 울상을 짓는다.

처음에 정색하는 표정, 긴장하는 표정 밖에 없던 애가, 알게 된지 1년 만에 정말 다양한 표정을 내게 드러낸다.
이렇게 웃는게 예쁘고 뾰루퉁한 표정이 너무 귀여운...말 그대로 여자아이가 그동안 어떡게 감정을 숨기고 살았는지...
내가 살짝 쓴 웃음을 지으니까, 어? 왜? 내가 너무 아프게 부딫혔어?하고 또 금세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야. 경찰 불러. 나 이대로는 못 넘어가ㅋㅋㅋㅋ"
"하나도 안아프시구만? 입은 살아계시는거 보니까?"
"엠뷸런스도 불러. 오늘 삐뽀삐뽀 싸이렌 소리 다 들어보자. 아. 여기 항구잖아? 해경도 불렄ㅋㅋㅋㅋㅋ"



차로 가도 한참인 거리를 우리는 걸어서 숙소로 들어갔다.

"피곤하구만...너 여기 큰 방 써. 난 여기 거실 쓸께."
"어??? 가...같이 자는거...아니었어???"
"...어머 언니. 나 그렇게 쉬운 남자 아니라니까?"
"싫어~ 같이 자~"
"...너...내가 얼마나 변태인지 모르는구나? 너 진짜 큰일난다."
"몰라. 그런거. 같이 자. 같이 잘꺼야. 여기까지 왔는데 나 혼자 자?"
"그럼 혼자 자지, 떼로 자? 여기가 군대 내무반이여?"
"싫어~ 오빠랑 같이 잘거야~ 그럼 나도 거실에서 잘거야,"
"아우~또 떼쓴다. 얼른 가서 씻어."
"...오빠 앞에서 옷 갈아입을거야."
"흥. 하나도 안 부끄럽다. 해보시던가."

그러고 냉큼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가 D가 포기하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소리듣고, 
어디...여기 호텔 침대상태는 어떤가...하고 잠깐 누웠다가...새벽부터 운전, 하루종일 돌아다닌 피로가 한순간에 몰려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소매물도 갈려고 새벽 4시에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깨었을때, 내 옆에서 D는 곤히 자고 있었다.

양말만 벗겨져서 저기 곱게 개어져있는걸 보건데, 양말 벗긴건 D이고, 나머지 옷은 그대로인걸 보니까 별일 없었나보다.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고, 뱃시간 맞출려면 지금부터 씻고 부산떨어야하는데, 천사같이 자는 D를 깨우고 싶지않아 그냥 D의 그 탄력넘치는 볼만 만지작 거렸다.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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