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꿈-

두희야.

불길한 꿈을 꿨다.

내가 계획한 박살이 드디어 성공을 했다.

성공을 한 건 너무 기쁜데 그 다음이 큰일이였다.

당연히 재판을 받아야했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내 편이 되어주는 거야.

-당신 정말 죽이길 잘했어!

-속이 다 후련해!

-진정한 민족의 영웅!

-강렬한 새 지도자의 탄생예감.

내가 진정한 민족의 영웅?

사람을 죽이면 두희, 너처럼 진정한 민족의 영웅이 되는건가?

두희야. 악몽은 계속된다.

여태껏 내가 누군지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인터뷰를 하자고 졸라댄다.

단체도 마찬가지야.무슨 단체가 그리도 많은지

-나를 당장에 찢어 죽여버리겠다는 단체

-진정한 애국열사이니 바로 석방하라는 단체

-공짜로 변호해 주겠다는 단체

-우리를 믿고 신의 구원을 받으라는 단체

아무리 꿈이라고 하지만...

참 가지가지 하더라.

내 아이가 죽었을 때도 그랬는데.

여하튼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다시 검찰로 넘겨졌는데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도무지 취조도 받을 수가 없을지경이다.

-석방하라! (그러면 저놈을 죽이겠다!)

-석방하라! (의인이다. 풀어줘라!)

그것도 부족한지

매일같이 방송사, 신문사 헬리콥터가 취조실 위를 빙빙 돌아.

근데 취조받는 동안에 부장검사가 들어와서는 나에게 이러네?

-뭐.

어차피 죽은 건 죽은거고 이렇게 합시다.

일단 정치인 OO이 사주해서 죽인 걸로 가고...

우리가 시키는데로 하면 형량도 화끈하게 줄여주고 선처도 해 주지.

어때? 당신, 이 정도면 엄청나게 혜택보는거라고!

마침 제거해야 할 반대파의 실력자라도 있었나봐.

-엿이나 먹어. 너도 개놈들의 하수인이냐?

그랬더니 금새 태도를 바꾸더군.

- 이 새꺄. 넌 인제 끝났어. 평생 감옥에서 살다 뒈져.

평생 깜빵에 쳐 박혀서 개밥이나 쳐 먹으라고.

병신같은 새끼가! 말귀를 그렇게 못알아먹어!

이 새끼, 당장 쳐넣어!

예전에도 그랬지.

내가 조만간 죽일 놈에게 협력하던 하인놈이 하나 있ᄋᅠᆻ어.

평소에 주인의 위세를 업고 마치 자신이 주인인양 떠들다가

검찰이 주변을 캐기 시작하니 당장 꼬리를 내리고 이런 말을했지.

-나도 법조인 출신인데...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아무리 꿈이라지만 기분이 더러워.

똑같은 인생을 여러번 사는 느낌이랄까.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취조과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하루종일 좁은 방에 가둬놓고 뭐라 소리치며 떠드는데

도무지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잠을 재우지 않는 것도 엄청난 고통이고.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꿈속에서는 세월이 아주 빨리 지나가버려.

한 5년쯤 지났을까.

여전히 감옥 안이야.

내가 암이라면서

현실 속에서 얼마살지 못한다고 선언한 의사는 나이롱 의사였나?

여하튼

구형을 선고받고 건강상의 이유로 간호병동에 누워있다가

어느날 문득 TV를 봤어.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던 그 부장검사가,

내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무슨무슨 민주항쟁의 영웅으로 둔갑해 있더라고.

나를 위협하면서 찢어죽이겠다고까지 한 그 부장판사라는 자가 말이야!

한술 더 떠서 그 부장판사라는 자가 나를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라고 하더군.

-진정한 의인이시지요. 저도 몇 번 뵌적이 있습니다.

두희.

아무리 꿈이라도 이건 너무하잖아!

너무 화가나서

두 주먹을 부르르 쥐고 벌ᄄᅠᆨ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깨어난 곳은 현실 속의 내 방이었다.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밤새 한 숨도 못잤다.

거사를 준비하면서부터는 술도, 담배도 다 끊었는데.

그 날 새벽에 편의점에서 소주 한병을 사서는 그 자리에서 다 마셔버렸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있을 수가 없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