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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연재소설] - 박살! #27
게시물ID : sewol_573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2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3/31 1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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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2-


두희야.

너도 자식이 있으니 내 마음을 잘 알거다.

누구라도 그러하듯 자기 아이가 태어난 날은 평생 잊지 못한다.

지 어미의 양수에서 퉁퉁불어서 나왔는데 눈을 꼭 감고 있었지.


딸이었다.

솔직히 그때는 이 녀석이 나를 닮았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더라.


손을 끊임없이 꼬무락거리면서 한참을 울다가 푸른똥을 싸더군.

그 모습이 얼마나 이쁘던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와 내 목숨을 맞바꿔도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달랐지.

자식을 먹이고 키우는 일은 허리가 부러질 일이다.

죽도록 일을 해도 내 삶은 예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아진게 아니라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지.

그렇게 아이하나 키우는데만 평생을 바쳤고 그 아이만 보고 살았다.


너는 어땠나.

살인의 댓가로 받은 군납사업은 승승장구했지.

네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풍성한 일거리들이 줄지어 너를 기다렸다.


네가 군납품에 썩은 달걀을 왕창 끼워넣건

상한 김치를 적당히 섞건

죄없는 병사들은 군복무 내내 네가 군대에 던져준

썩은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야만 했지.

그 덕분에

썩어빠진 일부 군인들도 다른 배를 불릴 수가 있었지.

놈도 너처럼 그렇게 부정에 점점 중독됐다.

나중에는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서는 범죄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

부정을 크게 할수록 돈도 많아지기에

살인도 돈으로 깔아뭉갤 수 있는 악의 시대가 제대로 열었지.

두희야.너는 그때 인생이 아주 쉽다고 느꼈을거야.


하기야 돈벌이가 땅짚고 헤엄치기라는 걸 몸으로 실천한게 너가 아니냐.

많은 아이들이 남자,여자 할 것없이 내의 하나 제대로 없어서

날만 풀리면 팬티 바람으로 돌아다니던 그 시절에도 너는 수상보트를 굴렸다.

그게 너는 너무 자랑스러웠겠지.

승용차도 거의 없던 시절에 무려 모터보트를 타며 수상스키까지 즐겼으니.


네 아이들은 풍족했다.

그것도 모자라

넌 더 잘되라고,더 잘살라고 돈까지 듬뿍 쥐어주며

자식들 모두 이민을 보내버렸어.

너야말로 훌륭한 기러기 아빠의 원조격일거야.


난 어땠을까.

-아빠 나도 저런 집에 살고싶어.

-새집도 아닌데? 우리집... 빌라하고 비슷하잖아.

-그냥...공부방이 하나 있으면 좋겠어...

-...


두희야.

그 때 난 말이다.

내 집은커녕 방 두칸짜리 반지하 월세방에서 벗어나

딸아이에게 공부방 한칸 마련해 준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꿨다.

그저 아이를 학교 보내는 것만으로도 골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일손은 항상 부족하지, 언제나 일하는 날은 들쭉날쭉

쉬는 날을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마저도 언제 짤릴지도 몰라서 항상 불안했다.


너처럼

사,나흘씩 시간을 내서 어디 먼 곳으로 널널하게 가족여행을 떠나는 건

꿈나라, 달세계의 이야기인 것처럼 들렸다.

당연히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꿨다.

하지만 국내로 가는 수학여행일망정

내 아이에게만은 꼭 한번 비행기를 태워주고 싶었다.


그마저도 배편으로 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될 줄 알았으면

수학여행 스케줄이라도

한번 확인했어야 하는데...


-어. 배타고 가?

한마디 하고 말았다.

아이에게는 그마저도 엄청난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아마 내 아이가 살아있었더라도

영원히 부모의 덕은 못 봤을거야.

결국은

몇 년이고 아끼고 아껴서 알바로 벌은 돈을 탈탈 털어서

난생처음 해외여행이라고 다녀오면 주머니에 땡전 한푼 안남는

미래없는 가난뱅이 젊은이가 됐겠지.


취직도 안되고, 짝을 찾을 수도, 결혼을 할 수도 없는...

내 집 한 채 없이 세 살이로 평생을 전전해야하는 그런 고달픈 삶.

부모세대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부모세대보다도 더 못한 삶을 강요받는 가난한 젊은이들.


그래.

그때도 난 막연하나마 내 자식의 미래를 느끼고는 있었다.

나의 현재가 아이의 미래를 발목잡고 있다는 걸.

이대로는 내 아이에게도 별로 희망이 없다는 걸.


그래서

아이와 따로 시간을 내서 수학여행에 관한 대화를 하기가 두려웠다.

자식에게 무엇하나 제대로 갖춰서 해 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

두희야.

네가 이런 내 마음을 알까.

알 리가 없지.

네 자식에게는 나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비극은커녕

남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풍요로운 한국에서의 삶도

슬슬 지긋지긋 해졌겠지.

자식들을 외국으로 보내면서 공항에서 어떤 말을 했을까.


-내 아이들아.

이젠 꿈의 나라 미국에서,

아버지의 죄 따위는 알지도 못하는 미국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

미국인으로 편하게 살아라.

너는 아마 이런 마음으로 자식들을 이민 보내지 않았을까?


근데

내 아이는?

내 아이에게 대체 무슨 죄가 있길래.

자기가 왜 죽어야만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바닷속으로 가라앉아야만 했던거지?

내 아이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며 죽어가고 있을 때

모든 책임을 지고 총지휘해야 할 의무가 있던 놈은

어떻게 지금도 하인들의 갖은 시중을 다 받으며

오늘도 편하게 두 발을 주욱 뻗고 잠들 수 있는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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