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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연재소설] - 박살! #31
게시물ID : sewol_574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20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05 10: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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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버지-


두희야.

너도 가끔가다 아버지 생각이 날 때가 있겠지?

이것저것 왜놈들 잔심부름이나 하다가 곁다리로 배운 일본말 하나로

일제치하에서 눈 부시게 성공한 친일파 아버지가 생각나?


네가 아버지덕을 빛나게 보고 있을 때

너의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겠지.

하라는 공부는 하지도 않고 아버지한테 거짓말로 용돈까지 타서

어린 나이에 기생을 끼고 사는게 얼마나 신났을까.


놈도 너와 같아.

아버지 덕으로 평생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잘먹고 잘 살았지.

그렇게

평생을 살다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버릇이 된거야.

음식 하나도 누군가 떠 먹여줘야 됐고,

옷 한가지 제대로 입지 못해서 누군가가 옆에서 입혀 줘야 됐어.

머리 하나 제대로 못 빗어서 꼭 사람을 불러야만 밖에 나갈 수 있었지.


음식의 취향도 유별났지.

고양이 똥에 들은 아주 귀하다는 커피를 즐겨 마셨고

몇 그램에 수 십만원씩 한다는 버섯도 즐겨 먹었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데

생활은 항상 최고급이었다.


물론

놈의 하인들도 만만치 않았다.

주인못지 않게 아무것도 하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놈의 하인들은 머리를 썼지.

놈에게 충성하는 척하면서

뒷구멍으로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일하는 하인들을 밑에 잔뜩 뒀어.


그러니까

놈들은 위고 아래고 할 것 없이

정말 맹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거야.

그럴 수 밖에.


주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거져먹으며 살아왔으니

하인들이 보고 배운게 그것밖에 없을 수 밖에.

여하튼

놈과 놈의 하인과, 놈의 하인의 하인들은

어떻게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의 돈을 뺏어 먹을까만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검토하고

또 실행에 옮겼다.


부지기수로 사람이 죽어나가도 관심이 없었고,

나라가 망해가도 관심이 없었지.

사람이 죽어나가도 자기 돈 나가는 것도 아니고

빼 먹을 만큼 빼 먹은 다음에는 어딘가 해외로 튀면 그만있었다.

그러다가 잠잠해지면 또 슬슬 기어들어오고를 반복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놈들은 더더욱 약아졌다.

여차하면 언제라도 이 나라를 뜰 수 있도록

해외 여기저기에 자산을 분산시켜 놓았지.

그런데 한가지 함정이 있었다.


놈들에게 이 나라는 아무리 퍼도 돈이 나오는 보물단지였어.

가끔씩 해외에 놀러가는 일은 있어도

돈줄인 이 나라가 너무 소중해서 죽어도 떠날 수가 없었던 거야.

놈이 항상 입에 달고다니는

나라사랑은 결국 그런거였어.


하기야

가만히 있어도 떼돈이 들어오는 현금덩어리,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이 나라를 제발로 차버릴 수는 없었던 거지.

그뿐인가.

외국에 도망이라도 가면 시원찮은 삼류국 출신 망명자 취급이나 받겠지.

자존심이 센 놈은 죽어도 그게 싫었어.


왜냐면

여기에 남아 있는 동안은 아무리 썪었더라도

여전히 이 나라의 명사로, 재력가로 권력자로

사람들 위에 영원히 군림을 할 수 있으니까.

두희야.

난 놈과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놈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난 거지에 천민이지.

그것도 아니면 천민거지던가.


난 날때부터 아버지,어머니가 누군지 모른다.

친형제자매도 없었다.

그리고 평생 가난했다.

난 놈이 그 잘난 아버지를 추모하며 눈물을 찍어댈 때

솔직히 마음 한켠에 부러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난 그냥 부모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자주했지.

그리고 어찌어찌 여자를 만났고 딸아이가 태어났지.


-이 아이만은 내가 한 고생을 시키지 않겠다!

굳게 맹세는 했지만 현실은 밤에 꾸는 꿈보다 멀었다.

그로부터 17년...

난 여전히 먹고 살기 바빠서

딸내미가 수학여행을 가는지 졸업을 하는지

졸업해서는 앞으로 뭐 할지조차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 몇푼 안 되는 수학여행도 내 생각보다 비쌌다.

아이는 티는 안냈지만

그래도 은근히 좋다는 눈치였다.


어디 한번 부모와 같이 제대로 여행이라도 가본 적이 있었어야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죽으러가는거였는데...

뭐가 좋다고 그렇게 신바람이 난건지.

그 나이 되도록 비행기는커녕

고속버스도 제대로 못 태워준 내가 아이에게 무슨 염치가 있겠어.


두희야.

그래서

난 내 아이를 제대로 추억하지도 못한다.

아니.

추억하기가 두렵다.


-아빠.왜그랬어.

나를 왜 그런 죽을 자리로 보낸거야.

나처럼 못난 아빠는

여지껏 죽지도 못하고 살아있을 수도 없는 채로

그냥 꾸역꾸역 살아있을 뿐.

아이가 죽은 날 이후로,

내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매일밤 꿈에 나와서 울기만 한다.



시간이 흐르면

귀신도 울지않는 걸까.

처음에는

온통 물에 젖은채로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더니

십년이 훌쩍지난 요새는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무표정하게.

십년이 지나도록

내 꿈에 나온 내 딸과 친구아이들은

언제나 텅빈 눈빛을 하고있어.


두희야.

난 너나 놈처럼 나쁜 짓을 하고도 가슴 쫙 펴고 살 수 없는

불쌍한 보통사람으로 태어난 걸까?

난 그렇다고치자. 내 자식은 무슨 잘못이지?

고등학생이 다 되었어도 비행기 한번 못 태워준

아버지를 둔게 내 아이의 죄일까?


이런게 결국 평생 가난했던 나와 내 자식과 마누라의 운명이었나!

정말 그게 내 운명이라도 좋다!

이제 나 같은 운명이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게 하면 되니까!

두희, 예전에 너를 박살낸 어떤 사람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이의 아버지로써!

아이들이 죽어가는데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놈같은 쓰레기가 두 번 다시 세상의 빛을 못 보도록

내가 제일 앞에서 총대를 매고 앞장서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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