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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역사 판타지)
게시물ID : humordata_17464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흙향기
추천 : 1
조회수 : 145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06 20: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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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진달래와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새해의 시작 봄에는 저승의 문이 활짝 열려 죽은 자와 산자가 서로 섞여 어우러진다. 즉 시간과 공간이 순간에 사라져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무당들은 이때에 굿을 하면서 초혼을 하고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 신하들의 반대와 이목이 마음에 걸린 성왕은 비밀리에 악공과 제사장만 데리고 곰 사당에 갔다.

 

귀신이 많이 출현하는 캄캄한 축시에 사당에 간 성왕. 사당은 을씨년스럽게도 도깨비가 무리지어 살고 있음직해 보이는 낡은 기와집이다. 기왓장 위에는 여기저기 푸른 이끼가 두껍게 덮여 있어 흘러온 기나긴 세월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담도 따로 없어 사당을 빽빽이 둘러싼 향나무들만이 그 고즈넉함을 더해 주고 있다.

그는 제사장을 시켜 제물을 차리게 한 후 향불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간절히 기도하였다.

~~~~~~ ~~~~~~ ~~~~~~” 악공이 연주하는 구슬프면서도 장중한 비파의 선율이 가슴을 울린다. 가슴을 쥐어뜯는 애절한 음률이 악공의 애틋한 외침과 함께 서서히 공중을 울리며 사당의 적막과 어둠을 지극한 슬픔으로 적셔 나갔다.

 

사실 때 백성들 눈물 닦아 따사로운 행복 안겨주시고

돌아가셔 백성들 마음에 영원히 살아 계신 대왕마마

우리들 상처 눈물에 묻혀 그리움으로 띄워 보냅니다.

석양에 지는 해도 슬피 울어 넘어갈 수 없는 저 수평선

서러운 눈물이 넘치고 넘쳐 아득히 아련히 묻힙니다.

 

흑흑! 흑흑!” 눈을 감고 무릎을 꿇은 채로 명상에 잠긴 성왕. 선왕 앞에 구슬픈 참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 시작한다. 옆에선 사제가 무릎 꿇고 앉아 초혼의 주문을 외우고 있다. “아함 크롬 마니 옴! 아함 크롬 마니 옴! 수리수리 사바! 해와 달, 북두의 뜻을 받들어 간절히 바라옵니다. 부디 강림하시어 이 정성어린 제물을 드시옵소서.”

그러자 갑자기 봄밤의 친구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뻐국! 뻐국! 뻐국!”

성왕이 제사장을 돌아보며 나직이 말한다. “혹시 선왕께서 뻐꾸기로 오신 것 아닌가.”

아직 모르옵니다. 대왕.”

 

! ! 덩기덕! 덩덕!” 악공이 치는 북과 장구소리가 적막한 사당의 밤공기를 울린다. 다시 제사장과 성왕 두 사람은 제물을 차린 상 앞에서 공손히 꿇어앉은 다음 열심히 기원하였다. 그래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성왕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바마마! 여신이여! 같이 나타나주소서.” 하지만 역시 봄밤의 적막 속에 인근 연미산과 취리산에서 뻐꾹새 울음소리만 처량히 들려온다.

 

딸랑! 딸랑! 딸랑!” 죽은 자의 영혼을 부르는 제사장의 방울소리. 애가 타는 마음으로 성왕은 더욱 간절하게 애원하면서 두 영령을 불렀다. 드디어 눈부신 오색무지개가 사당 지붕 위에 사뿐히 걸쳤다. 동시에 사당 주변 언덕에서 뿌연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파밧!” 잠시 후 곰 사당 안으로 시커먼 물체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후왕,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소.”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가까이 다가오는 귀신. “으악!” 그것을 본 제사장과 악공이 그 자리에 기절한다. 홀로 남은 성왕. “! , 아바마마.” 소름이 돋아 얼른 뒷걸음질 치고 있다.

후왕. 왜 또 나를 피하는 것이오?”

, 아바마마. , 무서워 다리가 떨립니다.”

사내대장부가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되겠소?”하면서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성왕의 어깨를 감싸 쥐고 힘껏 안았다. “으악!”

 

성왕이 비명을 지른 바로 그 순간 향기로운 냄새가 방안 가득히 퍼져나가며 또 다른 시커먼 물체가 사뿐히 날아든다. “슈슈!”

혜량. 어서 너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라.”

흐흐흐! 여신. 또 나타나 훼방을 놓는군.”

! 받아라.” 여신의 손에서 연보라의 강렬한 빛이 뿜어 나온다.

! 누구 마음대로.” 그것을 피해 사당의 지붕 위로 날아오른 혜량. 이번에는 그가 여신을 향해 두 손을 힘차게 내리뻗자 거센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

!” 여신이 회오리바람에 휩쓸리는 순간. “!” 어디서 뿜어 나온 아주 환한 빛이 소용돌이를 비추며 바람을 잠재운다. 그러자 혜량이 두 팔을 치켜 올리면서 다시 장풍을 일으킨다. “~~~!” “으악!” 하지만 오히려 혜량이 바람에 휩쓸려 비명과 함께 어디론지 날아가 버린다.

 

잠시 후 또 다른 검은 형체가 날아든다. “여신, 우리들 별자리는 잘 있겠죠.”

. 대왕. 하지만 우리가 별에서 내려오니 하늘에 있던 우리의 별자리 별들이 빛을 잃었습니다.”

그래요. 여신. 별자리를 지키는 것이 하늘이 우리에게 준 사명인 것이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꿈같은 현실에 놀란 성왕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조금 전에 아바마마라고 하면서 피 흘리던 귀신은 누구입니까?”

그것은 신라를 돕는 고구려의 법사 혜량이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어요.”

? 무슨 큰일을?”

 

여신이 옆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자가 후왕의 몸에 접신을 하려고 하였답니다. 방금 우리가 물리치고 후왕의 주변에 보호막을 단단히 쳤으니 앞으론 걱정할 건 없어요.”

무령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다. “자신의 분신으로 접신한 다음 심약해진 후왕의 정신과 육체를 마음대로 조종하여 백제를 신라에 송두리째 바치려는 흉계였소.”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무령왕을 바라보는 성왕. “휴우~ 그렇게 무서운 접신이었다니.”

 

고개를 끄덕이던 여신이 무령왕을 돌아보며 말을 잇는다. “먼저 번에도 임류각에서 대왕의 귀신이라며 후왕을 속이고 접신하려는 것을 제가 퇴마의 광선으로 내리쳐 막아주었답니다.”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성왕. “아바마마. 허면 그때 귀신이 말한 대로 독살되신 것 아니신가요?”

독살된 것은 사실이지만 혜량이 나로 둔갑한 귀신과는 다르게 난 여전히 사비천도를 반대하고 있어요. 후왕도 언젠가는 나를 살해한 어미와 다른 길을 걸어야 할 겁니다.”

 

! 그러셨군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성왕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아바마마와 여신께서는 어떻게 하늘의 명을 거스르시고 이렇게 내려오실 수 있었나요?”

매우 궁금해 하는 아들의 물음에 무령왕이 자상하게 말해준다. “밤에 날이 맑아 별이 뜨면 우리는 자리를 떠날 수 없다오.”

그건 왜 그러합니까?”

그러자 옆에서 여신이 대신 조용히 대답한다. “우주 공간 별의 세상에도 이목이 있어요. 다른 별들이 지켜보기 때문이죠.”

성왕은 계속되는 충격적인 사실에 너무나 어리둥절하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그러면 오늘 어떻게 오실 수 있었나요?”

그 말에 무령왕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방금 후왕이 향불을 많이 피워 하늘의 별빛을 가렸기 때문에 우리가 그 틈에 올 수 있었던 것이오.”

, 그래서 전번에 꿈속에서 신신당부하신 거로군요.”

게다가 그 전에 우리가 풍우를 부르는 신에게 부탁을 하여 놓아 금방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려고 하지 않소.”

무령왕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번엔 여신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이제 우리가 같이 후왕과 백제국을 도와야 합니다. 여신,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대왕, 우리는 영혼일 따름입니다. 세상에서 큰일을 도모하려면 우선 육신을 빌어야죠.”

그러면 어떻게? 당장 사람의 모습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인가요?”

혼령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려면 먼저 짐승의 몸을 빌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신은 전생이 곰이었으니까 곰으로 환생하면 좋겠습니다.”

호호호! 그러면 대왕께서는 다시 무령왕으로 환생하시나요?”

, 아닙니다. 다시 왕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한바탕 웃은 무령왕이 굳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웅진 경내 무릉동에 가면 긴 동굴이 있습니다. 그 굴은 무릉동에서 금강으로 이어져 있어요.”

그 말에 여신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대왕을 바라본다. “그래서요?”

그 안에 커다란 이무기가 살고 있는데 나도 그것의 몸을 빌려 용으로 승천할까 하오.”하면서 무령왕은 성왕을 힐끗 돌아보다가 여신에게 부탁한다. “이번 일은 백제국을 위하여 상당히 중요한 일이므로 여신께서 도와주시오.”

저야 도와드리겠지만 일의 성사는 이승에 계신 후왕의 선택과 운명에 달려있습니다.”

 

성왕은 꿈을 꾸는 듯 신기한 표정으로 시커먼 형체의 선왕에게 묻는다. “하오면 먼저 어떻게 하여야 되옵니까?”

우선 여신이 이승에서 육신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신의 도움을 받아 내가 용이 될 수 있는 거지요.”

그럼 소자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옵니까?”

그 말에 여신이 상냥하게 대답한다. “선왕의 말씀대로 저는 전생인 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후왕께서 도와주세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저는 마법을 할 줄 모릅니다.”

호호호! 마법을 하시는 것이라면 후왕께 부탁을 드리지도 않아요.”

그러면 무슨 일이죠?”

먼저 진흙으로 곰의 모습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말에 놀란 성왕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쉽지 않다니요? 아니 진흙으로 곰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 뭐가 어렵습니까?”

놀라지 마세요. 공동묘지에서 파온 흙에다 부근 화장터에서 긁어온 잿더미에 후왕의 허벅다리 피와 석회를 섞어 반죽하여 만드는 것입니다.”

여신. 섬뜩한 것은 그렇다 쳐도 왜 나의 허벅다리 피가 필요한 것입니까?”

호호호! 놀라셨군요. 앞으로 그 성스런 피로 인하여 후왕의 어여쁜 딸이 태어날 것입니다. 완전무결한 운명을 지닌 여인이.”


예쁜 딸이 태어난다고 하니 아픔을 감수해야겠네요. 하지만 으! 정말 끔찍합니다. 내가 내손에 내피를 묻혀가며 직접 만들어야 합니까?”

재료는 사람들을 시켜 구해와도 좋지만 만드는 것은 후왕의 손으로 직접 하셔야 합니다. 또한 반드시 흙속에 짐승의 심장을 넣어야 하고요.”

, 짐승의 심장을 말입니까?”

그래요.”

어떤 짐승의 심장을 넣을까요?”

그건 후왕이 잘 알아서 하십시오. 인연이 닿는 대로.”

그러면 언제쯤 어디에서 살아서 오시게 됩니까?”

삼일 후 새벽녘 강 건너 곰 굴에서 오게 됩니다.”

하필이면 새벽에?”

새벽은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 있어요. 우리 영혼들은 그 경계의 시간에 모습을 바꾸어 움직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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