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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연재소설] - 박살! #35
게시물ID : sewol_574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21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10 09: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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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일곱시간-


두희야.

네가 암살의 진상을 밝히지 않았듯이

나도 사건의 진상을 하나도 밝히지 못했다.

처음에는

모두들 도와준다고 힘을 썼지.

남의 일이 아니라고. 조금만 있으면 다 잘될 거라고.


하지만

세월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무리 정의로운 일을 돕더라도

모두에게는 생활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각자 지켜야만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은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세월은 그렇게 무서웠다. 같은 봉변을 당한 이들도

이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들 평안한 얼굴을 가장하며 하루를 힘겹게 보내고들 있지.


10년이 지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건의 진상도 잊혀져 갔다.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훌훌 털고 이제 일어나야지...


예전에는

그렇게 열심히 도와주었던, 힘있는 정치인들도

세월이 흘러가자 점점 만나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제가 요새 좀 바빠서

-말씀은 잘 알겠고요. 다음에 같이 밥이나 한끼...

그 때 난 몰랐다.

정치인들에게 진실이란 자신들이 필요한 때에만 찾아서 쓰는

저축예금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진실의 추구가 

그들이 개인적으로 필요로 하는 

정치적 인지도와 권력을 높일 뿐, 

내 원한을 풀어주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였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흘러갔는데

내 시간은 그 때의 7시간에서 멈춰있었다.


죽어가는

내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나와 그들의 부모에게 보낸 동영상과 메시지와 사진들.

그 혼란한 지옥의 그림들을 곱씹으며

아이가 죽기 전에 남겨준 수신음을 지금도 듣고 있다.

그 때 한창 유행하던 남자아이돌 그룹의 노래다.


그 노래는 이렇게 말했지.

-현재를 즐겨.

-밝은 미래가 너희를 기다려.

-움추리지말고 원하는대로 신나게 살아봐!



무슨 가사인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시끄러운 애들 노래라고

그 때는 생각했다.

-무슨 이런 노래를 들어. 가사도 잘 안들리고. 시끄러워 죽겠네.

-에이. 아빤 요새 유행도 모르면서.


그게 마지막이었다.

뾰루퉁한 아이의 목소리.

늙어가는 부모의 뒤떨어짐을 못마땅해 하는

어린 내 아이의 꾸짖음이 그립다.


두희야.

때때로

아이의 마지막 목소리와 아이돌의 목소리가 겹쳐서는

갑자기 비명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가라앉는

배 속에서 절규하는 목소리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죽어갔을까.


아이의 문자.

-아빠. 배가 가라앉고 있어

엄마 나 무서워. 살려줘.


배가 가라앉는 그 일곱시간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두희야.

그동안 놈은 그 일곱시간 동안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잠들은 채로 마약주사라도 맞고 있었을까?

-조금이라도 젊어지기 위한 불법제대혈조사?

-평소에 좋아하는 굿판이라도 벌렸을까?

-숨겨 놓은 미성년 애인과 애정행각을?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 일곱시간동안 무슨 짓을 하고 있었길래

절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걸까.

죽을 때까지도 입을 열을 수 없는 비밀이란게 대체 뭘까?

해명을 바라는 목소리에도 놈은 스스로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하인을 통해 이렇게 말했지.

-개인적인 일이므로 말 할 의무가 없습니다.


두희야.

어째 네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말하지 않은 진실과 많이 닮아있지 않냐?

수백명의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졌는데

책임을 져야 할 놈은 이런 말만 반복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해야겠다?

놈은 자신이 최종책임을 져야하는 일을

남의 일처럼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번역을 하면 이랬다.

-내가 귀찮아지는 일이 아예 없도록 너희들이 죽도록 노력해!


놈은 하인들을 혼낸 것 뿐이었다.

스스로 노력하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모든 것이 또 남의 탓이 되고 말았다.

놈은 언제나 그랬다.


하기야 놈이 죽는 것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탓이 되겠지.

맞다.

이게 다 내 탓이다.

난 조만간 있을 놈의 죽음이 내 탓임을 당당하게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놈을 왜 처단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겠다.

두희

네가 그냥,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처럼.



어떤 사람은

한맺힌 부모의 복수라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어느 미친사람이 벌린 황당한 해프닝이라고 할거야.


여하튼

난 놈이 내 아이가 죽어가는 그 일곱시간 동안

설령 나라를 말아먹을 궁리를 하고 있었더라도

결코 죄없음을, 최선을 다 했음을 주장했기에

나도 복수했노라 결코 말하지 않겠다.

그저 죽였다는 사실만을 인정하고

끝까지 왜 죽이기로 했는지는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놈이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나도 똑같이 갚아줄 생각이다.


-내가 지난 십년동안 무얼 했는지는 개인적인 일이라 밝힐 수가 없다.

다만 난 놈을 박살낸 사실만을 인정한다.

당당히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니 누구도 개입할 여지도 없다.

어차피 개인적인 일이니 당신들이 알 필요도 없지 않나.

다 끝난 일로 대체 왜 이러나.

놈이 평소에 해온 변명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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