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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data_17468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흙향기
추천 : 0
조회수 : 10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10 10: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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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곰사당에서 나와 궁에 돌아온 성왕은 꿈에서 깨어난 듯, 귀신에 홀린 듯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아직도 부왕과 여신이 자신 옆에서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곰 사당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몰래 할 수 있다지만 진흙으로 만든 곰의 가슴에 어떤 짐승의 심장을 넣지. 정말 고민이야.’

그렇다.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혼자서 지내야 한다. 조용한 곳에서 성찰을 하면서 바깥세상을 널리 돌아보고 스스로 판단하여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성왕은 변복을 하고 몰래 홀로 말을 타고 궁을 빠져나왔다. 정지산 주위를 돌고 있을 때 저쪽 풀숲에서 호랑이들의 거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으르렁! 으르렁! ~!”

히이~~!” 놀란 말이 앞발을 번쩍 치켜들고 멈춰 섰다. 왕이 옆을 돌아보니 황소만한 호랑이 네 마리가 천천히 다가온다. 그 안에는 정말 신비하게도 오색찬란한 수정으로 된 관을 쓴 완전히 하얀 사슴 한 마리가 맹수들의 호위를 받고 있다. 사슴이 무리들 앞에 나와 눈짓을 하니 호랑이들은 조용히 풀숲으로 사라진다. 사슴은 무서워하지도 않고 왕에게 다가와 말을 했다. “대왕, 저를 믿으시면 말에서 내려 저를 쓰다듬어 주세요.”

 

성왕은 귀신에 홀린 것 같다. “무슨 짐승이 저렇게 사람 말을 하나.” 해서 어이없어 웃다가 문득 정신이 번쩍 났다. “저거 분명히 귀신이 사슴으로 둔갑한 거야. 나를 호랑이밥으로 만들려고 말에서 내리라고 하는 것 아닌가.” 성왕이 망설이고 있자 사슴이 왕의 발아래로 바짝 다가와 똑바로 응시하며 또렷이 말한다. “대왕, 믿는 만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어서!”

마침 풀숲에서 호랑이들이 포효하는 우렁찬 소리가 들린다. “~~! ~~!”

 

그 소리에 성왕은 속으로 비웃었다. “요새는 짐승도 사기를 치나. 말에서 내렸을 때 호랑이가 달려들면 어떡해. 내가 달리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귀여운 사슴이 간절한 눈빛으로 자꾸 재촉한다. “대왕, 한번 믿어보시죠.”

. 이 맹랑한 사슴 녀석! 내게 자기 고기를 줄 것도 아닌데 뭘.”

대왕. 말에서 내리시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아직 호랑이를 두려워하시는군요. 아직도 저를 믿지 못하십니까?”

. . 네 말을 못 믿었으면 그냥 가고 말았겠지. 나 여태까지 여기 남아 있잖아.”

 

성왕이 계속 말 위에 앉아 있자 사슴이 그대로 말 위로 뛰어올라 왕의 품에 안긴다. 왕이 기특하여 머리를 쓰다듬으니 사슴은 그대로 포근히 잠들었다. 사슴의 심장박동이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것이 멈추는 것이다. 왕이 돌아보니 사슴이 편안한 얼굴로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왕의 가슴에 느꺼움이 사무친다. 죽음으로 믿음에 보답한 짐승.

 

이제는 사슴의 말을 확실히 믿을 수 있으니 호랑이 걱정 말고 죽어간 사슴을 나무 아래 편안히 눕혀 놓을까.’ 그는 말 아래로 내려왔다. 사슴을 나무 아래 내려놓고 말을 타고 궁으로 돌아가려다 불현듯 이 사슴은 하늘이 보낸 선물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소중한 인연. 사슴을 궁으로 데리고 가자.”

사슴을 말 등에 태우자마자 바로 그때 카르르르!” 거대한 고양이 한 마리가 맹렬한 기세로 달려든다.

 

! 큰일 났다. 죽어서까지 나를 속이다니 나쁜 사슴.” 하도 다급해 말에 오르지 못하고 사슴을 안은 채 뛰는 성왕. 그러자 성왕의 가슴에 안긴 사슴에게서 다시 맥박이 느껴지더니 잠에서 깨어나듯 사슴이 동그랗게 눈을 뜬다. 사슴이 사뿐히 땅에 내려오자 고양이가 이번에는 사슴에게 덤벼들었다. “크르릉!” 사슴이 갑자기 거대한 곰으로 변하더니 고양이를 앞발로 후려 팼다. “!” 호되게 얻어맞은 고양이는 쓰러졌다가 일어나 꼬리를 내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곰은 다시 사슴으로 돌아오더니 성왕의 품에 안겼다. 다시 잠들어 맥박이 멈춘 사슴을 말에 싣고 궁에 간 성왕. 그는 제사장에게 일러 그 심장을 꺼낸 다음 궁궐 정원의 후박나무 아래에 고이 묻어 주라고 명한다.

 

그날 밤 황금과 진주, 비취와 호박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성왕의 침소 앞. 용트림하는 힘찬 모습의 기묘한 수석(樹石)이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내의 튼실하고 허연 허벅다리가 새하얀 은장도와 함께 어둠 속에 환히 빛난다. 옆에는 피를 받으려고 준비한 비취빛 수정으로 만든 그릇이 하나 있다. “어떻게 하지. 내가 다리를 찔러 내 피를 받아야 하나? 아냐. 그럴 순 없어.”

 

칼을 올렸다 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성왕. 굳게 결심하고 스스로 칼을 치켜들어 살짝 내리찍으니 피가 주르륵 흐른다. “아얏!” 그것을 수정그릇에 받고선 곰곰이 생각하였다. “너무 아파. 꼭 이래야 되나.” 자기도 모르게 상처를 손가락으로 한참 누르고 있으니 피가 멈추었다. “도저히 안 되겠군. 그냥 다른 피를 섞어 써야겠어. 그래도 괜찮을까?” 알 수 없는 불안에 고민하다가 고통마저 잊은 채 마침내 잠이 들어버린다.

 

다음날 장인들이 구해온 음침한 재료들을 반죽하게 된 성왕. 우선 화장터에서 긁어온 잿더미를 공동묘지에서 파온 흙 위에 뿌리는데 마구 손이 떨린다. 간신히 휘저은 후 수정그릇에 담겨있던 자신의 피가 조금 섞인 검은고양이의 피와 석회를 부우려니 구토가 났다. “!” 하지만 꾹 참고 정성껏 반죽하여 나갔다. 요상한 재료로 반죽해 놓은 덩어리를 주물러 곰의 모습을 정성껏 빚고 사슴의 심장을 진흙 곰의 가슴에 넣는다. 다 만들자 제사장에게 일러 강 건너 곰의 굴에 갖다 놓으라고 명했다.

 

그로부터 삼일 후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 자욱한 안개가 흘러 태고의 어둠속 신비로 가득 휩싸인 금강. 이름 모를 새들은 금강 변에 산책을 나온 성왕을 반기는 듯 아름답게 노래 부른다. 굽이치는 금빛 물결도 진달래가 어우러져 그림자 진 강변을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갑자기 강 건너 취리산에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황홀히 걸친다. “하아~ 눈부시게 아름답구나.”

 

!” 무지개가 뜨는 동시에 그 영롱한 빛이 곰 굴 주변에 빽빽이 우거진 나무 사이로 비쳤다. 그것은 앞에 금강물 위에서 반짝이기도 하고 그늘진 숲 사이로 스며들어 감추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한 마리 거대한 곰의 모습으로 서서히 나타났다. 어떻게 보면 금방 굴에서 튀어나온 듯해 보이는 우람한 곰 한 마리가 맹렬히 강가로 달려든다. “풍덩!” 그와 함께 갑자기 매혹적인 향기가 사방으로 잔잔히 번져나가면서 은은하고 잔잔한 울림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너무나 놀랍게도 물에 닿기가 무섭게 곰의 몸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 여인은 미끄러지듯 빠르게 강물을 헤엄치어 건너오고 있다.

성왕은 황홀한 그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린다. “저 여인은 부, 분명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다. 어찌 이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또 있을까.”

 

강변에 닿자마자 여인의 몸에는 어느새 화사한 색동옷이 걸쳐지고 그 자태는 한 폭의 미인도가 되었다. 가냘프면서도 한껏 부풀어 오른 몸매와 복숭아꽃처럼 곱게 물든 얼굴에 반짝이는 샛별 같은 두 눈의 그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한 송이 백합꽃 같다. 게다가 여인이 지날 때마다 길에는 여러 꽃이 무더기로 피어났다.

저 여인은 분명히 곰 여신이 환생한 것이다. 사슴의 심장을 넣었더니 다시 살아나다니. . 그러고 보니 그 사슴이 바로 여신이었나 보군.”

 

성왕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린다. 성왕은 그녀에게 살며시 다가가 고백한다. “나는 이 나라의 임금입니다. 여신, 사랑합니다. 당신의 순수를여신의 옥구슬 구르는 매혹적인 목소리, 하지만 차디찬 얼음. “말씀은 고마우시나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러시나요?”

궁궐에 왕비가 계실 것 아닙니까? 어찌 그녀를 버리고?”

여신.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신 외에는 그 어느 여인도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누구도 마음대로 사랑할 수는 없는 법. 임금의 본분을 지켜 주세요.”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하면서 성왕이 울먹인다. 그러나 여신은 나는 것처럼 재빠르게 저만치 사당 쪽으로 멀어져간다. 임금이 여신의 뒤를 계속 따라가니 잠시 후 금강물이 갈라지고 으리으리한 수정궁이 나타났다. 황홀하도록 눈부신 그곳에 들어간 여신의 모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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