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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의 전설
게시물ID : humordata_17469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박준준준
추천 : 10
조회수 : 334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4/10 13: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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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스티브잡스가 아직 살아 숨 쉬고, 한국에 막 아이폰이 들어오기 시작하던 시절.
경상북도 어느 시골 파란 하늘 아래 한 젊은이가 길가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젊은이, 거 무슨 고민 있나?”
 
지나던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은 채 측은한 눈빛으로 묻자 청년은 젖은 눈을 들어 답한다.
  
“여기는 도서산간지역이라 아이폰이 오늘 못 온대요...”
 
“저런..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힘내게 젊은이”
 
“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이룬 것도 없던 청년은 가진 전 재산을 털어 아이폰을 구매했다. 
그런 신문물을 손에 넣는다면, 뭔가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내 아가씨들이 신기해하며 말이라도 걸어줄까...
  
 
어느덧 어스름이 깔린 화물터미널 앞.
청년은 하나 둘씩 떠오르는 별들 아래, 쭈그리고 앉은 몸을 앞뒤로 까닥까닥 흔들며 추위를 잊으려 애쓴다.
 
“온다던 봄은 우리 이폰이처럼 소식이 없고... 하아...”
 
기다림과 추위에 지친 노곤한 몸이 잠에 빠져들기 직전,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더니 뭔가로 주저 없이 청년의 머리를 내리치고는 온몸을 뒤지기 시작한다.
 
“뭐야 그지새끼, 돈 좀 갖고 다녀라 시벌...”
 
동전 한 닢 찾지 못한 검은 범죄자는 욕지거리를 지껄이며 다른 사냥감을 찾아 떠나고, 땅바닥에 납작하게 쓰러진 청년은 발소리가 멀어지자 실눈을 뜨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뭔가 뜨끈한 게 솟아 볼을 타고 흐른다.
손을 대 만져보니 빨간 피가 범벅이다.
급하게 양쪽 양말을 벗어 하나로 묶은 후 상처부위에 대고 빙 두르려 애쓰지만 머리가 너무 커 서로 닿질 않는다.
슬픈 표정으로 애쓰던 청년은 결국 잘 접은 양말을 머리 상처와 터미널 벽 사이에 끼우고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겨울밤의 스산한 바람소리가 청년의 입에서 가늘게 새어나오던 입김을 휘어잡아 저 밤하늘로 날려 보낸다.
 
 
아침 일찍 출근한 터미널 직원들이 벽에 머리를 박은 채 움직이지 않는 남루한 차림의 청년을 발견하고는 부축해 안아들자 청년의 무릎이 힘없이 꺾여 덜렁거린다.
 
“어이! 정신 좀 차려봐!”
 
피범벅 얼굴을 보고 이미 다들 혀를 차는 순간 끓어오르는 가냘픈 소리가 청년에게서 흘러나왔다.
  
“아이... 폰은.. 왔어..요?...”
 
청주 날씨는 어때요?라고 묻는 영화 속 짐캐리처럼 굳은 혀로 간신히 내뱉는 청년의 말을 알아듣는 이는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부산하게 터미널 사무실 난로 옆에 의자를 이어 붙이고 더러운 담요로 청년을 둘둘 말은 후, 얼굴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물수건으로 닦아내자 그제야 볼에 빨갛게 핏기가 돌기 시작한다.
 
순간 멀리서 묵직한 트럭소리가 들려오자 다 죽어가던 청년이 벌떡 일어나더니 벽을 짚은 채 비틀비틀 대며 걸어 나간다.
직원들이 말려보지만 청년의 의지는 굳건했다. 
몇 번을 쉬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던 청년은 화물차에서 쏟아져 내리는 택배들을 보자마자 어디 그런 힘이 남아있었는지 내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혼잡한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상자들을 집어 주소지를 확인하고 내려놓길 십여 분 째. 
겨우 제일 밑바닥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찾아낸 청년은 그 자리에서 박스를 찢어발기더니 흰색의 아이폰을 꺼내 쥔 손을 번쩍 들어 신에게라도 자랑하려는 듯 까치발로 굳게 섰다. 
 
“저 치 뭐하는 겨?”
 
“리모콘인가?”
 
신의 권능을 대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아이폰을 알 리 없는 시골 촌로들을 뒤로 한 채 달리는 청년의 발걸음은 날듯이 가볍다.
 
 
한참을 내달리던 청년은 숨을 고르며 논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인터넷에 올리기 위해 설명서대로 전원을 켠다.
 
“어... 왜 안 되지?...”
 
광활한 논바닥 한가운데 선 청년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며 하늘을 향해 아이폰을 치켜든 채 이리저리 신호를 잡기 위해 헤맨다.
 
“왜.. 안되지?.. 왜?... 왜...”
 
불안에 가득찬 청년의 눈이 크게 흔들리더니 급기야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엄마.. 하느님... 왜 안 되죠?...  왜?...”
 
“앞으로 착하게 살게요 진짜에요 제발...”
 
 
 
‘풍덩’
 

갑작스레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청년이 당황해 하며 온 몸을 허우적대던 그 때, 갑자기 눈부시게 환한 하늘이 한가득 시야에 들어온다. 
동시에 기적과도 같이 인터넷이 연결되었고, 신이 난 청년은 논두렁 줄을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인터넷 게시판마다 아이폰 샀다는 자랑 글을 올려대기 시작했다. 
 
“난 승리자다! 이 새끼들아! 우리 읍 최초의 아이폰이라구!
  
  하하하하 하하하하”
 
 
 
 
한 달 후
 
논두렁 옆 시동을 건 경찰차와 구급차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다.
 
  
“아 할아버지 거름 구덩이를 이렇게 깊게 파놨으면 경고 표지판이라도 세웠어야죠!”
 
“아니 그러니까 이게 얼음 얼고 위에 짚새들 날려 와서 잘 안보인 게지...”
 
“아이고 저거 딱해서 우째...”
 
 
코를 막아 선 사람들이 우르르 비켜나자 검게 변색된 청년의 시신이 들것에 실려 나온다.
 
 
“근데 왜 이런데서 리모콘을 쥐고 빠져죽었대?”
 
“그러게나 말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파랗게 정지한 시골의 하늘 아래 
시린 겨울날씨로 인해 썩지도 않은 청년의 몸이 앰뷸런스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린다.
 
따듯한 차 안에 녹기 시작한 손 사이로, 꼭 쥐고 있던 아이폰이 미끄러지더니 ‘딱’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다.
잠시 후 화면의 흰색 사과마크와 함께 전원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앰뷸런스가 읍내 초입에 들어서자 ‘서비스 안 됨’이라고 표시되던 아이폰 상단에 안테나가 꽉 차게 생겨났고
 
 
  
 

그제야 청년의 검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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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과거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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