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세월호 연재소설] - 박살! #36
게시물ID : sewol_574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20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11 09:03:40

두희야.

예전에 놈의 변호인들이 한 말을 곱씹어 본다.

-피고는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놈의 애비가 죽었을 때 놈은 이미 스무살도 넘었었다.

전형적인 눈물작전이었다.

광신자들의 동정표를 유도하려는 뻔한 수작이었지.

놈은 그 때 어리지도 않았지만,

진짜 어려서 일찍 부모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심정...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난 그런 추억조차 없다.

내겐 모실 수 있는 부모조차 없었으니까.

난 날때부터 세상에 그냥 던져진 사람이었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단지 내 가족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서

남들마냥 죽도록 일만 했다.


하지만

난 단 한번도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여긴 적은 없다.

나를 낳아준 부모가 없었던게 내 탓은 아니니까.

다만 가끔씩이라도 부모가 있었으면,

사무치게 그리운 적이 없었다고 하면 이 또한 거짓말이 되겠지.


그래. 난 부모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부모가 없다는 걸 방패삼아 누구에게 손 벌린 적도 없다.


그대신

난 내가 성인이 돼서 뼈를 깍는 노력끝에 이룬 가족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내 아이는

내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고 품을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놈은 달랐다.

놈의 애비의 최후는 무수한 악행에 대한 인과응보였고

나라를 망친 당연한 댓가였지.

그렇지만,

놈은 그마저도 끝끝내 부정했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지 애비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억울하게 죽은 것이며

그 때문에 자신은 한순간에 고아가 되고 만 것이라며

동정표팔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희야.

나같은 천애고아도 부모가 없는 것을 빌미로

동정표를 구걸하러 다니지는 않았다.

그건 정말 거지나 하는 짓이지.

하지만 놈은 나와는 확실히 달랐다.

언제나 자신이 참혹하게 죽은 희생자의 유가족인 것처럼 적극 홍보했다.


두희야.

난 어렸을 적에 연필하나가 없어서...

연필을 사 줄 부모도 없어서 남의 것이라도 하나 훔치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

진심으로.

놈은

코흘리개 시절에조차 원하기만 하면 연필이 아니라,

연필공장과 필기구 회사를 공짜로 헌납을 받거나

아예 사주가 될 수도 있는 절대권력을 지니고 있었지.


그런데도

-억울하다. 억울하다.

지금도 떠들고 다니지.


-아예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지 못해서 억울했나?

두희야.

불쌍하다는 것은

네가 친일파 애비의 덕을 보다가 몰락을 했고

아비의 친일이력이 두려워 남쪽으로 도망친 그런게 아니다.


그 몰락한, 빈곤한 삶이 싫어서

평생 밑천삼아 암살까지 저질럿기에 불쌍한게 아니다.

두희.

네가 놈처럼 진심으로 불쌍한 것은

네가 평생 남들과 비교도 안되는 안락한 삶을 살면서


-나도 힘들다.

-나도 괴롭다.

-나도 불쌍하다.

이런

고장난 CD같은 말을 무한반복하는게 정말 불쌍한거야.


두희야.

내가 보기에

너와 놈은 쌍둥이같다.

모든 것이 음모로 뒤덮혀 있고

변명과 누명씌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아왔던 놈이

정작 자신의 죄가 조금씩 들통나니까

난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니 말이다.


두희야.

진짜 불쌍한 사람은 말이다.

나같이 부모없이 자란 사람도 아니고

놈이 동정팔이를 하듯 부모를 잃은 사람도 아니다.


진짜 불쌍한 사람은 말이다.

이 얼마 안되는 인생에서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죽어가면서도

정작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고통의 비명 속에서 물에 빠져 죽어간 아이들이란다.


나중에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깨닿고

다시 자식에게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물려줄 수 있는 나이였다면

또 모르겠다.

아이들은 기껏해야 열 여섯, 열 일곱이었다!


아이들의 평생이라고 해봐야

기껏 열 여섯, 열 일곱었다고!

넉넉지 않은 생활과 부모들의 팍팍한 삶 때문에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못 가보고

해 보고 싶은 것도 못 해보고

살아온 딸랑 17년 남짓한 세월이라고!

배를타고 가는 변변찮은 수학여행 하나에도

꿈에 부풀어 있을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바닷속에 빠져 죽어가는데도


놈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십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제대로 밝혀 낼 수 없는 이 나라가 진짜 불쌍한거라고!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