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있잖아요 그날 엄마랑 나랑 해먹었잖아요 두부를 으깨서 채소를 넣고 동그랗게 빚어서 튀겨 먹었잖아요 막 웃음 나는 두부고로케
그곳에서는 한 번도 두부에 관해 생걱해볼 시간이 없었는데
씻을 때는 랩을 해야 했으니까 과학적인 교복을 입어야 했으니까 운동장을 누벼야 했으니까 두 발은 저절로 달려야 했으니까 형한테 맛있는 걸 만들어줘야 했으니까 엄마 옆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비밀이어야 했으니까 파란색을 보면 마음이 펼쳐져서 다리가 길어졌으니까 그냥 웃기에도 바쁜 나이였으니까
그런데 엄마 나도 나이를 먹긴 먹나 봐요 (이런 말 엄마 앞에서 해서 미안)
안개를 앞세우고 달려나가는 것도 좋지만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안개 속의 풍경을 보는 일도 가슴에 들어와요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엄마가 매일 새벽 기도를 나가서 형 대신에 나를 위해 기도하면 어떡하지
엄마는 야근하고 와서도 슬픔의 걸레질을 멈추지 않고 국자마다 눈물을 떨어트릴 텐데 거기에 밥을 말아 놓고 식어버릴 텐데
잘 먹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아들의 말이 적힌 종이가 식탁 위에 없을 때 엄마는 어떻게 엄마답지 않은 표정을 지을까
야야 투레를 보고도 야야 투레를 못 보는 엄마에게 저 선수가 야야 투레야 라고 말해줄 사람은 있을까 (형, 형이 나 대신 엄마에게 잘 말해줘. 형은 언어 천재니까!)
형은 내가 좋아하던 옷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이곳으로 모두 보내준 걸까 그 작은 옷을 그 큰 옷을 그 웃는 옷을 그 소란스러운 옷들을
형은 지금도 기숙사에서 공부하는 사람일까 조용한 형은 약한 사람들의 역사를 생각하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겠지 형에게도 어린 형이던 시절이 있었고 형은 동생이랑 보드게임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아빠는 지금도 나한테 잘해준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까 내가 아빠 마음 먹고 날다람쥐처럼 산을 잘 탔던 것도 모르고 (아빠, 엄마 옆에서는 매일 잘해준 게 많은 아빠로 있어 줘)
아빠 나는 아빠 등이 나랑 가까워서 넓은 힘이 났는데 내 등도 아빠에게 가까웠을까
엄마, 봐봐 나 이렇게나 생각이 많아요 어른 되나 봐 엄마, 두부 좋지요? 두부를 가만히 본 적 있지요? 내 생각하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희고 물렁물렁하고 약하고 따뜻하고 살아 있는거
나 같고 엄마 같고 아빠 같고 형 같고 친구들 같은 거
한 입 먹으면 슬픔이 없어지고 한 모를 다 먹으면 새사람이 되어버리는 거
엄마, 두부를 먹으면 새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 형, 친구들어 두부를 먹을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는 아무래도 미래를 가진 종족들인가 봐
나? 나는 나에게도 미래가 있어요 엄마, 나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너는 어쩌면 이렇데 예쁘냐고 하겠죠 봐요, 나 미래 알아요
그러니까 엄마 두부를 먹을 때는 나를 생각해주세요
우리 아들 같다 너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엄마의 두손에 엄마의 두부에 엄마의 된장찌개에 엄마의 시금치무침에 엄마의 불고기에 있으니까 엄마 곁에 아빠 곁에 형들 곁에 친구들 곁에 미래처럼 있으니까 두부고로케처럼 있으니까
엄마, 나 지금 걸어가요 그곳으로 다 모인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혼자 가지 않아요 내 옆에 작고 파란 강아지 이름은 한슬이에요 엄마가 예쁘다고 했잖아요, 그 이름 그곳에서 버려진 강아지라는데 병들어서 이곳에 온 강아지라는데 나는 좋아 나도 처음에는 약한 아이였으니까 한슬이가 다 크면 나도 엄마랑 아빠랑 같은 크기의 마음을 갖게 되면 좋겠어요 그게 내 첫 번째 생일 소원
그리고 엄마 언제 와용? 더는 못 해줘서 미안해 아빠 같이 수암봉 못 가게 돼서 미안해 형 라면에 계란 넣고 끓여주지 못해 미안 친구들아 이 형이 랩 못 들려줘서 미안
나 앞으로는 미안하다는 말 안 들려줄래 마지막으로 모두 미안 자, 그럼 이제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기 미안한 눈빛은 속눈썹 뒤로 숨기기 내 두 번째 소원
엄마, 엄마라고 부르면 왠지 두부라고 대답할 것 같은 엄마
여기서 거기까지 안개가 길어요 생일 초에 불을 붙여주면 내가 그 빛 보고 갈까요 가서 얼른 후 불어 끌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