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천도와 천장
게시물ID : humordata_17480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흙향기
추천 : 0
조회수 : 177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19 04:42:31
옵션
  • 창작글

선왕 죽음의 어두운 비밀을 알게 된 계기로 여신의 마법에 깊숙이 빠져든 성왕. 그는 점차 본인 스스로 아주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어 갔다. “불교를 널리 펴서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왜국에도 전파시키는 일이 나라를 살리는 일이다.” 성왕은 항상 그렇게 생각하여 왔다. 이미 불교는 백제사회에 들어와 있었다.

 

먼저 성왕은 526년 승려 겸익을 인도로 보내 율종을 수입하고, 528년 겸익이 백제에 돌아오자 불교를 국교로 채택한다. 그런 와중에 임금은 조금이라도 한가할 때면 자주 왕비와 함께 갑사와 대통사에 들러 불공을 드리곤 했다. 잔잔히 미소 짓는 부처의 모습은 임금이 처한 치열한 현실에서 아득히 멀어지게 해주면서 포근한 평안함을 되찾게 하였다. 그는 부처께 기원을 드린 뿌듯한 마음으로 밖에 나와 절에서 들리는 은은한 풍경소리와 종소리와 함께 번뇌를 떨쳐버리고 희망을 찾아나갔다.

 

성왕 15(537) 겨울. “! ! ! !” 목탁소리가 서릿발 눈부신 겨울아침에 새하얀 설국의 사찰 풍경에 매달린 고드름을 지나 얼어붙은 계곡을 울리며 은은히 울려 퍼진다. 인적이 소멸한 산등성이에선 눈보라가 천지를 가리고 있다. 용이 새겨진 황색깃발이 나부끼는 절의 문 앞에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는 수많은 군사들이 보인다. 추위에 떨며 손을 비벼가면서 절 주위는 물론 대웅전 앞까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눈 덮인 갑사에 임금이 왕비와 함께 행차하였던 것.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불상 앞에 단정히 무릎 꿇고 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는 주지스님. 그 뒤에 역시 무릎 꿇고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성왕과 왕비.

잠시 후 주지가 앞에 나가 꺼져가는 향로에 향을 불사른다.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 앉아 꿇어앉은 스님. “! ! ! !”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주지가 불경을 외우고 있는 동안 거듭 부처에게 절을 올리는 성왕. 절을 마친 왕이 다시 합장을 하고 발원한다. “부처님. 하늘이 변고를 보여주니 민심이 동요하고 나라 안팎이 불안합니다. 백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춰주시기를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대웅전에서 불공을 드리고 두 사람이 밖에 나오니 예전에 보았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살며시 흔들리는 풍경에서 맑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궁에서 누려보지 못한 한가로움에 왕비 보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반짝이면서 문득 그리운 사람이 생각났다. 잊을 수 없는 첫사랑 사연. 또다시 이런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어느 때나 그와 함께 만끽할 수 있을까.

 

갑사에 갔다 궁에 돌아온 성왕과 왕비가 정전에 나란히 앉아있다. “왕비. 이렇게 내가 불교만 믿고 있으면 무엇을 합니까? 왕권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연씨들이 날뛰고 있는데요.”

대왕. 다른 나라에 불교를 활용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일본에 불교를 보내 백제의 든든한 우방을 다지는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과 소원하였습니다.”

그렇소.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은 이후로 신라와 사이가 안 좋은 일본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은 사실이오.”

그걸 다시 복원시키고 가야까지 끌어들여야 합니다. 저희 사씨 가문이 앞장서겠습니다.”

그것 때문에 신라와 등지게 되면 어떡합니까?”

그게 염려가 되시면 당장 일본과 가까이 할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유대감을 튼튼히 하면 됩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바로 술법을 잘 하는 승려 도장과 함께 불상과 경전을 보내면 일본국이 부처의 마력에 흠뻑 빠질 것입니다.”

그거 좋은 방법이오. 당장 이번 겨울이 지나면 그렇게 하리다.”

 

잠시 후 왕비가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것을 임금에게 물었다. “대왕. 사비천도 건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대비와 연씨가문의 성화가 대단하여 더 이상 버틸 수 없소. 그렇지 않아도 하늘에 변고가 생긴 뒤로는 더욱 나를 들볶고 있어요. 헌데 변고 후 일년이 지난 재작년 여름에 고구려에서 큰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많이 떠내려가 죽고전염병이 크게 유행한다고 하오.”

소첩도 그 소식은 들었습니다. 게다가 작년 봄과 여름에는 가뭄이 심한데다가 가을에 메뚜기가 크게 번져 곡식을 전혀 거두지 못해 굶주리다 못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비와 연씨들이 하는 말이 백제도 분명 무슨 변고가 올 것이니 얼른 사비로 도읍을 옮기라고 야단들입니다.”

대왕. 그동안 계속 연씨 가문에서 사비천도를 강력히 주장하여 왔으므로 이제는 부담 없이 결행하시면 됩니다.”

왕비. 이럴 것이 아니라 선왕의 무덤을 옮기는 것이 낫지 않겠소?”

하오나 신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하여튼 그래도 신하들과 상의해보도록 하겠소.”

 

다음날 성왕이 조회 때 신하들을 모두 불러놓고 무겁게 입을 연다. “그동안 국풍(궁궐의 풍수쟁이)를 보내 선왕의 묘를 살펴보게 하였더니 자리가 썩 좋지는 않다고 하오.”

대왕. 그 자리는 이전 국풍을 시켜 오랫동안 검토한 자리입니다. 방향도 괜찮아 안산에 해당하는 봉황산자락에서 물이 흘러오는 것이 보여 재물, 즉 나라살림에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반궁수라 하지 않소. 왕릉의 뒤를 반궁수가 치고 들어와서 크게 흉해요.”

대왕. 그건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사옵니다. 뒤보다는 앞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좌평. 그것도 문제지만 더 큰일은 내룡이 끊겨 자손이 상할 수 있소. 보통 백성이 쓰더라도 좋지 않지만 한 나라 왕실의 묘소로선 더욱 적합하지 않아요.”

그 묘소는 무령대왕이 곰 여신의 근처에 계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저희로선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자식이 된 도리로 차마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소. 이에 과인은 좋은 날을 골라 묘소를 옮기고 싶소.”

전하의 사무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오나 천장은 사사로이 하실 수 없사옵니다.”

이런 고얀! 그 무슨 가당치 않은 소리요?”

성왕은 주먹을 불끈 쥐고 바짝 엎드린 신하들 사이를 발을 구르며 오가면서 수풀에서 뛰쳐나온 야수처럼 울부짖었다.

 

좌평 연식은 성미가 마른 장작에 붙은 불과 같다. 평소 조금이라도 비위에 뒤틀리면 숨김없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으면 누구한테도 웃음을 지으며 살갑게 대해주는 기분파이기도 하다. 그러한 연식도 오늘 따라 너무나 살벌한 분위기여서 조심스럽게 말한다. “대왕. ()을 막고자 나무를 심고 큰 비석을 세워 비보하는 것은 어떨지 모르오나 천장까지 하심은 동원되는 재물과 인력이 만만치 않사옵니다.”

 

연식이 작지만 제법 소신이 있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하자 성왕은 그를 힐끗 쳐다보며 자신 앞에 엎드려 있는 화공 사연에게 물었다. “사연도 그렇게 생각하오?” 사연이 아무 대답이 없자 임금은 잠시 입을 다물더니 말을 이었다. “좌평, 그건 절대로 걱정 말고 얼른 추진하시오. 재물만 충분히 준비되면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오. 과인이 내두좌평에 말할 터이니 거기서 얼마든지 가져다 쓰시오.”

그러자 연식이 참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왕. 차라리 천장이 아닌 천도를 하시옵소서.”

뭣이라? 천도를 하면 선왕 묘소의 불길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오?”

한 나라의 도읍도 역시 풍수가 작용합니다. 여기가 꺼림칙하시면 어서 천도를 하소서.”

결국 백제의 실권을 쥐고 있는 연씨 가문은 무령왕의 묘소를 좋은 곳으로 옮기자는 임금의 의견은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해에 합당한 사비천도만을 주장하는 것이다.

 

며칠 후 한밤중에 성왕의 침실 옆 경대에 놓여있던 반지에 붉은 이슬이 방울방울 맺혔다. 너무나 이상하여 성왕이 반지를 세 번 비비니 여신이 구슬피 울면서 나타난다.

여신, 오늘 어인 일로 이렇게 슬피 울고 있나요?”

흑흑! 후왕께선 지금 불교를 열렬히 숭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거 다 여신이 주신 반지의 마력 덕택입니다. 그런데 여신께서는 왜 우시는 거죠?”

불교를 믿음에는 불상이 정말 중요합니다. 흑흑! , 그런데 불상을 일본으로 보내시다니요?”

일본으로 불상을 보내서 든든한 이웃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입니까?”

 

그러자 여신이 울먹이면서 간신히 말을 잇는다. “흑흑! 모든 게 다 저의 불찰이군요.”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까지 후왕께서 불교를 숭상하심에 관련된 모든 것에 제가 마법을 걸어 놓았습니다.”

, 마법을?”

, 흑흑. 그 때문에 후왕의 내치가 안정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상을 일본에까지 보내 백제국의 영광을 더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불상에 서린 마력이 백제를 떠나면 후왕과 백제국의 운명도 바뀌게 됩니다.”

우리 백제국의 운명이 바뀐다고?”

. 더구나 도장스님은 바람과 비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도력이 뛰어납니다.”

여신. 술사 한 명 보낸다고 해서 나라가 크게 달라지겠습니까?”

모든 것을 잘 생각해 보세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흑흑!” 말을 마친 여신은 피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반지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진다.

여신을 믿고 의지하던 성왕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지금까지 불교로써 나라를 잘 다스려왔고 이것을 일본에까지 전파하려 함이다. 그게 바로 전륜성왕의 역할이지 않는가. “내가 뭐 항상 여신의 노예처럼 살아야하나.” 그렇다고 해서 성왕이 불교에 열정을 쏟게 하는 반지의 마법에서 벗어난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그 실천방법이 여신의 생각과는 크게 달랐던 것이다.

성왕은 자신과 왕비의 의지대로 승려 도장을 보내 불상과 경전을 일본에 전해 주고 혜총과 도림을 더 보내 일본불교의 기반을 착실히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해 마침내 사비성으로의 천도를 결정한다. 자신이 웅진에 가만히 있기에는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웅진을 벗어나려는 연씨 가문의 발호가.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