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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
게시물ID : humordata_17492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흙향기
추천 : 1
조회수 : 97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27 17: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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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여기는 푸른 용이 그려진 깃발이 펄럭이는 신라 서라벌 월성의 왕궁. 웅장한 궁궐 속엔 모란덩굴이 우아하게 뻗어있는 모습이 새겨진 벽돌의 별궁이 오월의 꽃동산처럼 화사하게 느껴진다. 그 안에 화려한 무늬의 진보라 저고리를 입은 삼맥종(훗날 진흥왕)의 모후 지소가 의자에 앉아 시녀들과 웃으며 농담을 하고 있다. 별궁 앞에 바람처럼 나타난 혜량. 그를 발견한 시녀 하나가 코를 단단히 쥐어 막으며 안으로 들어와 아뢴다. “마마. 혜량법사께서 오셨습니다.”
. 그래. 안으로 드시라 해라.”
안으로 드시랍니다.” 안에서 나와 안내하는 시녀가 머리에 쓴 수건(手巾)을 매만지더니 자기 앞에서 다시 코를 틀어막는 모습에 기분이 팍 상했다.
 
오랜 홀아비 생활에 제대로 세탁을 못해 때가 절은 승복을 걸친 혜량. 게다가 목욕은 언제 했는지 그의 곁에 가기만 해도 지독한 악취가 진동했다. 그가 안으로 들어와 엎드려 공손히 절한 다음 인사를 올린다. “마마.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대사께서도 무고하셨지요?”
. 소승, 마마 덕분에 아무 탈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요즈음 백제 땅에 계시다면서요?”
. 그렇지 않아도 그일 때문에 뵈러 온 것입니다. 사람들을 모두 물리쳐 주십시오.”
 
그 말에 시녀들을 물린 지소가 눈을 반짝이며 입술을 연다. “어서 이쪽으로 가까이 오셔서 말씀해보시죠.”
혜량이 앉은 채 그대로 지소의 곁에 다가오자 이내 코를 막는 그녀.
소승은 웅진성에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도술로 일월성신께 기원을 드려 나라의 명운을 바꾸는 일을 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백제 땅에 별이 무수히 떨어지게 하였고 형혹(화성)이 남두성 별자리를 침범하게 하였습니다.”
대사. 신라를 위하여 더욱 큰 이변이 백제와 고구려의 하늘에 나타나게 하시지 그러나요?”
소승이 아무리 도술에 능해도 하늘의 일은 평생 딱 한 번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 덕분에 백제가 하늘의 변고를 두려워하여 사비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고요.”
 
마침내 혜량의 몸에서 몽실몽실 풍기는 악취를 참지 못한 지소가 코를 벌름거리며 말한다. “킁킁! 정말 고생 많았어요.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오시게 되었습니까?”
위기를 느낀 백제 선왕의 혼령이 이무기를 통해 용이 되려고 하는 것이 포착되었습니다.”
킁킁! 그러면 우리 신라로서는 작전상 큰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 그래서 그것을 막으려 하는데 사람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킁킁! 대사. 백제에 그렇게 사람이 없으면 신라에서 골라 보내드릴까요?”
, 아닙니다. 아무나 그런 큰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혜량의 몸에서 풍겨오는 악취에 참다못한 지소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묻는다. “그러면 누가 할 수 있나요?”
반드시 백제 땅의 영특한 소년만이 할 수 있습니다.”
누구 점찍은 아이 있소?”
연씨 가문의 수재 연모라고 합니다.”
다시 혜량 쪽으로 고개를 돌린 지소가 말했다. “킁킁! 우리 왕실은 이전부터 연씨와 돈독한 관계를 가져오고 있었소. 요번 친선사절에 그 아이를 포함시켜 달라고 하겠으니 얼른 물러가세요.”성은이 망극합니다.”하며 돌아선 혜량의 뒤통수에 대고 부르는 지소.
잠깐. 대사.”
무엇이옵니까? 마마.”
앞으론 어렵게 직접 오시지 말고 저번에 주신 반지 표면에서만 말씀해주셔요. 킁킁!”
악취를 참느라고 정말 힘들었던 태후. 아무리 신라를 위하여 중요한 일이라 하지만 다시는 눈앞에서 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실컷 이용해 먹을 때는 언제고 이렇게 마구 박대를 할 수 있나. 혜량은 울컥 속이 뒤집혔으나 눈물을 머금고 꾹 참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 알았습니다.”
 
한 달 후 서라벌 월성의 왕궁. 늦가을 향긋한 국화에 서리 내린 모습이 환상처럼 새겨진 벽돌의 건물. 그곳에 도착한 연씨 가문의 사절이 막 짐을 푸는데 별궁에서 시녀 한 사람이 다가왔다. “별궁의 시녀입니다. 삼맥종 모후께서 이번 연씨 가문의 사절단 중에 연모라는 아이를 부르십니다.”
그러자 연모가 목소리를 높인다. “건방지도다. 우리 사절단이 아직 짐도 풀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 오라 가라 하다니.” 그 말에 시녀가 고개를 쳐들고 거만하게 말한다. “너야말로 정말 건방지구나. 신라 최고의 어른께서 친히 부르시는데 무슨 잔말이 많으냐?”
이년. 무엄하게도 백제국의 대표사절 연씨의 사람들을 욕보이다니. 얼른 썩 물러가라,”
어머! 별꼴. 이 사실 당장 마마께 일러바칠 테야.” 얼굴을 붉히며 별궁으로 도망하는 시녀.
하하하!” “허허허!” 그 모습이 우스워 연씨의 사절이 배를 잡고 웃는다. 하지만 잠시 후 지소마마 납시오.”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지소가 시녀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허리에 찬 환도를 쩔렁거리며 성큼성큼 숙소에 들어온다. 그녀 앞에 공손히 고개를 수그리는 백제의 사절들.
지소가 거만하게 그들을 내려다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먼 길을 오시느라고 수고했소.” 그러자 대표인 연 좌평이 얼른 양나라로부터 들여온 오색비단을 펼쳐놓고 지소에게 말했다. “저의 가문에서 지소마마를 위하여 특별히 준비한 선물입니다.” 영롱한 빛을 내뿜는 비단을 펼쳐놓으니 덩달아 궁궐이 온통 환하게 빛난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하나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물었다. “이 중에 연모라는 아이가 누구요?”
마마. 바로 접니다.” 유일하게 고개를 수그리지 않은 아이가 야리야리한 몸매를 자랑하며 당당하게 앞으로 나온다. 어느 미녀 못지않은 꽃다운 용모와 총명함이 가득 넘치는 절세의 미소년 연모. 지소는 연모를 보자 잔뜩 화가나 작심하고 찾아온 마음이 금방 풀어진다. “호호호! 그대가 연모라 하였나?”
. 마마.”
연모. 나를 따라오라.”
“......”
 
별궁에 온 연모에게 자리를 권하는 지소. 남편 입종 갈문왕을 일찍 여의고 어린 아들 삼맥종을 당당히 키워 온 아직 이십대 후반의 꽃다운 그녀. 그녀와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있던 소년 연모가 갑자기 일어나 큰절을 한다.
연모. 갑자기 무슨 일이오?”
태후마마. 제가 몰라 뵈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가 관상을 보니 마마께서는 태후의 상을 가지고 계십니다.”
!” “시녀들은 자리를 비켜라.”
. 마마.”
시녀들이 물러간 뒤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연모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는 지소. 꽃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숨결이 느껴지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연모. “호호호! 그렇지 않아도 일관이 나의 사주팔자를 보다가 내가 관복이 아주 좋다 하였소.”
! 관복이 좋으시다면 무리 중의 최고 우두머리가 되실 복을 타고 나셨다는 겁니다.”
그래요. 연모. 나의 이번 5년 대운에 제일 좋은 관운이 와서 어떤 큰 경사가 있을 거라고 했소.”그래서 그런지 지금 태후의 얼굴에도 매우 상서로운 찰색(얼굴색)이 비치고 있습니다.”
 
호호호!” 만족스러운 웃음을 참지 못한 지소가 조용히 말을 잇는다. “연모. 아직 어린데도 사람의 운명에 조예가 깊군요. 이건 비밀이지만 내 아들 삼맥종이 부왕 법흥 대왕으로부터 이미 태자로 내정 받았소.”
! 그래서 그 좋은 기운이 태후의 얼굴색에 환하게 나타나고 있는 거군요.”
! 연모. 정말 대단해요.” 눈을 가늘게 뜬 지소가 연모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입을 연다. “연모. 내가 좋은 선물 하나 줄까?”
 
아무리 어리지만 농염한 여인의 손길에 숨이 컥 막히는 연모. “! 마마. 영광입니다.”바로 이것이야.” 지소가 내미는 것은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 하나. “놀리는 건 아니지만 연모도 아직은 구슬치기 할 나이 아닌가? 호호호!”
나를 어린애 취급하다니. 받을 수 없다.’ 속으로 결심한 연모가 다급하게 손사래를 친다. “태후마마의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그러자 지소가 히죽거리며 연모의 귓가에 다정히 속삭인다. “연모. 화났나본데. 나 연모 사랑해. 첫눈에 빠져들었어.”
 
그녀의 갑작스런 사랑의 고백에 화들짝 놀라는 연모. 태후가 나 가지고 장난하는 건가. 아냐 혹시 정말일지도 몰라. 갈팡질팡하면서 연모가 ? 저는 아직 어린데요?”하면서 방긋 웃자 지소는 물기가 비치는 눈을 희미하게 뜨면서 부드럽게 속삭인다. “아냐. 연모. 그대는 겉으론 어린 것 같지만 결코 어린 것 같지 않은 영특한 꽃이야. 그 웃음마저 매혹적인 향기가 풍겨와.”
태후의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여기 구슬 가져요. 내 사랑의 정표. 고이 간직하기를.”하면서 연모의 손안에 살짝 쥐어준다.
“......”
왠지 태후가 싫지는 않은 연모. 아름다운 소년의 가슴에도 그림처럼 황홀한 사랑의 씨앗이 곱게 싹 트는 것이다. 백제 최고가문의 제일 뛰어난 인재 연모와 신라 최고의 실권자 지소태후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이 두 사람의 극적인 만남은 과연 백제의 웅진성에 무슨 파란을 몰고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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