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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
게시물ID : humordata_17506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흙향기
추천 : 1
조회수 : 123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5/06 20: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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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다음날 신라의 월성. 연분홍 반지를 비벼 혜량을 부르는 지소. “부르셨습니까?”

대사. 어떻게 하면 백제에 있는 연모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을 수 있나요?”

어린 아이에게 이렇게 부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난생 처음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혜량이 언짢은 표정으로 지소에게 물었다. “어린아이가 그렇게 사랑스럽습니까?”

아직 어려서 그렇지 크면 대단한 미남일 겁니다. 그것이 신라를 위한 치명적인 매력이 될 수도 있지요.”

신라를 위한 매력이라니요?”

꽃미남은 어디가든지 환영받아요. 우리가 백제 최고의 꽃미남을 확보해 놓으면 신라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그 아이의 관심을 끌 수 있죠?”

 

그 말에 혜량이 치솟는 질투심을 힘겹게 억누르며 입을 연다. “아미타불. 역시 깊은 생각이 계셨군요. 하지만 소승이 방법을 가르쳐드릴 수는 있으나 조금 기괴해서요. 허허허!”

뭐라도 좋으니 어서 말씀해 주세요.”

우선 태후의 머리털을 잘라 머루주로 적셔 말린 후 인형을 만들어야 합니다.”

! 이 아름다운 머리털을? 다른 방법 없나요?”

오직 태후의 머리털을 쓰셔야 합니다.”

. 연모를 얻기 위해선 아까워도 할 수 없지.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보름달이 떴을 때 태후께서 인형을 단단히 껴안은 다음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주무시면 됩니다.”

어마나. 그러면요?”

그렇게 하시면 언젠가는 연모가 태후의 품에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더 좋은 방법 없을까요?”

궁궐에도 중국에서 가져온 약초가 있을 것입니다. 그걸 연모에게 보내시죠. 적하수오라고 하는데 사내가 먹게 되면 여인이 아무리 못생겼어도 빠져들게 되어 있습니다.”

대사. 말씀 삼가세요. 내가 그렇게 못생겼나요?”

허허허. 송구하옵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죠.”

 

그로부터 열흘 후 월성 별궁의 창밖엔 보름달이 훤하다. 날마다 잠을 뒤척이며 오늘밤을 손꼽아 기다렸던 태후. 머리맡엔 자신의 머리털을 잘라 만든 인형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녀는 인형에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힌 후 귀여운 연모의 모습을 떠올렸다. “연모. 당신을 사랑해. 때가 되면 연모와 나의 사랑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잠시 후 지소는 허리를 구부려 연모의 얼굴이 그려진 인형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조금 답답하겠지만.” 인형을 가슴에 꼭 껴안는 그녀. 창밖의 달을 보며 중얼거린다. “연모도 오늘 밤 이달을 보고 있을까.” 혜량이 일러준 대로 침실 경대 위에 소중히 보관한다. 그녀는 가끔씩 잠이 안 올 때마다 일어나 인형을 자신의 가슴에 꼭 안았다. 그때마다 무릉동 연모의 꿈속에 나타나는 태후.

 

무릉동 연모의 침실. 웅장한 솟을대문 너머 안채에서 잠든 연모. 꿈속에 자신이 어엿한 신랑이 되어 혼례를 치르고 있다. 가리개로 얼굴을 가린 신부와 혼례상을 마주보고 맞절을 했다. 수줍어하는 신부의 손을 잡고 첫날밤을 보내게 된 연모. 황홀한 마음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가리개를 젖히고 신부의 얼굴에 입맞춤을 하는 순간, 낯익은 그리운 모습. “! 태후마마.” 신부가 그윽한 눈길로 연모를 바라보면서 활짝 미소 짓는다. “보고 싶었어. 연모.” “아니. 태후마마. 여긴 어떻게?” “서로 사랑하면 통한다잖아요?” “사랑해요. 마마. 이젠 헤어지지 말아요.”하면서 그녀를 꼭 껴안는 연모.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가 점점 멀어져간다. “마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일어나 쫓아가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가지 마. 나를 떠나지 마.” 땅에 넘어져 힘껏 소리 지르는 연모.

그때 하늘에서 우락부락한 괴물이 내려와 쓰러져 몸부림치는 연모를 노려보며 다가온다. “이제 그만. 어서 일어나.” “안 돼. 그럴 순 없어. 으앙!” 울음을 터뜨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흔든다. “연모. 어서 일어나. 어머! 울고 있어. 악몽을 꾸었나 봐.” 꿈속의 괴물이 바로 잠을 깨우던 엄마였던 것이다. “엄마. 저리 가. 괴물은 싫단 말이야.” 화를 버럭 내며 발버둥치는 연모. “얘가 어디 아픈가? 연모야. 벌써 아침 해가 높이 떴어. 웅진성에 놀러가야지.” 결코 깨고 싶지 않은 안타까운 잠을 깨고 보니 연모 자신은 베개를 힘껏 껴안고 있다. 잔뜩 짜증 난 연모가 버럭 소리 질렀다. “싫어. 오늘은 안 갈 테야.”

 

날씨가 흐려 칠흑같이 어두운 웅진성의 밤. 잠을 설치고 이제나 저제나 여신을 기다리던 성왕. “후왕! 후왕!” 부르는 소리에 성왕이 후다닥 뛰어나가 임류각에 가보니 아무도 안 보인다. “여신이 나를 속였군. 이 중요한 순간에 장난을 치다니.” 혹시나 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는다.

에이! 이런 싸가지!” 가까스로 튀어나오는 욕을 힘들게 참고 있으려니 바로 그때 후왕! 후왕!” 멀리 성왕 자신의 침소에서 여신의 고운 목소리가 음률처럼 흘러나온다. “아차! 반지를 경대 위에 놓고 나왔구나.”

성왕이 다시 침소에 가 반지를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재빨리 임류각에 달려가니 벌써 여신이 역시 오색구름을 타고 나와 있다. “후왕, 오늘 조금 늦으셨군요.”

헉헉! 그만 반지를 놓고 와서.”

빨리 오시느라 이마에 땀이 흥건하군요. 호호호!”

오늘 뛰느라 십년감수하였소. 후유~”

 

손등으로 땀을 씻으며 시원한 밤바람을 쏘이는 성왕. 그런데 오늘 그녀의 손엔 노란주전자가 하나 들려 있다.

여신, 이게 뭡니까?”

그 유명한 정안의 밤 막걸리입니다.”

크하아~ 그 맛있는 밤 막걸리? 설마 여신께서 한잔 하시려는 것은 아니죠? 하하하!”

호호호! 후왕께서는 농담도 잘 하시는군요.”

그러면 왜 가져오신 겁니까? 저에게 한잔 주시려는 건 아니고요?”

이건 무령대왕의 부탁이기도 하고 하늘의 비밀이라 지금 일러드릴 수 없습니다.”

답답해라. 천상의 존재들에겐 하늘의 비밀이 정말 많군요.”

후왕,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자연 아실 겁니다.”

 

다시 구름을 타고 순식간에 무릉동에 온 후왕과 여신. 여신이 가져온 막걸리를 동굴입구 쪽에 흥건히 뿌리자 달콤한 밤 막걸리의 냄새가 주변을 진동한다. 갑자기 쉬익 하고 음산한 소리가 나더니 시퍼런 구렁이가 새빨간 혀를 날름거리며 입구 쪽으로 기어 나온다.

이무기가 이미 여의주를 얻어 때만 되면 바로 용이 되어버리므로 지금 실패하면 기회가 없어집니다.” 잔뜩 긴장한 여신은 동굴 앞에서 쑥을 태워 연기를 피운 뒤 두 팔을 크게 벌린 후 주문을 외웠다. “아함 크롬 호르 아함 크롬 호르 옴 마니 옴! 수리수리 사바! 천지신명의 뜻을 받들어 나의 이름으로 바라노니 그대는 이것을 마시고 이곳에서 영원히 잠들지어다.” 그러자 맛있게 밤 막걸리를 마신 뱀은 그대로 조용히 잠들어 버린다. 뱀이 눈을 감자마자 그의 몸이 점점 노랗게 변해갔다.

 

놀란 성왕이 여신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여신, 갑자기 시퍼런 이무기의 몸이 노랗게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가져온 노란 밤 막걸리로 이무기의 몸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겁니다.”

아니, 여신. 왜 일부러 뱀의 몸 색깔을 변하게 하시는 겁니까?”

무령대왕께서 황룡이 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무기 본래 색깔대로 청룡은 안 되는 건가요?”

예로부터 황색은 중앙에 위치하는 임금의 색입니다.”

, 그래서 선왕께서 황룡이 되셔 용들을 거느리고자 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후왕과 백제를 위한 선왕의 깊은 뜻입니다.”

잠을 자느라 몸을 들썩이던 시퍼런 빛깔의 이무기는 완전히 노란 뱀이 되었다. 그러자 바로 이무기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성왕이 여신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여신, 이무기가 결국 숨을 거두었군요.”

여신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흑흑! 흑흑! 흑흑!”

성왕이 너무나 안쓰러워 뒤에서 여신의 어깨를 감싸면서 조용히 물었다. “여신, 아바마마께서 원하시는 대로 되어 가는데 무엇이 그렇게 슬프신가요?”

흑흑! 흑흑! 흑흑!”

죽은 구렁이가 불쌍하신가 보군요.”

용이 되려고 이천년을 기다리던 구렁이의 뼈저린 한을 저버리는 것은 천상의 존재들이 차마 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선왕과 나라를 위한 일이니 죽은 구렁이도 저승에서 이해할 것입니다.”

아니에요. 이무기의 사무치는 한 때문에 분명 저의 운명에도 앞으로 무서운 저주가 내릴 것입니다. 흑흑!”

설마 완전무결한 여신께서 변고를 당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후왕. 후왕께서 곰의 모습을 진흙으로 빚을 때 허벅다리의 피를 많이 썼으면 이무기의 끔찍한 복수를 피할 수 있을 텐데요.”

! 정말 후회가 되는군요. 그때 너무나 아파서 제대로 뽑지 못하고 그만두었죠.”

 

눈물을 훔친 여신이 붉게 충혈이 된 눈으로 성왕을 돌아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것도 다 운명이죠. 이제 며칠 후 역시 아주 흐린 날에 후왕께서 혼자 다시 오셔야 합니다.”

그러자 성왕은 여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여신께서 같이 가 주실 수 없습니까?”

이제 저는 같이 갈 수 없습니다.”

같이 갈 수 없다고요?”

우선 구름에 오르시죠.”

금방 구름은 임류각 아래의 뜰에 도착한다. 구름에서 내릴 생각도 않고 성왕은 애처롭게 하소연한다. “나 혼자 어떻게 합니까?”

이게 다 부자의 인연이죠. 핏줄은 서로 부른다지 않습니까? 그 때문에 후왕 혼자의 힘으로 선왕을 도와드려야 합니다.”하더니 그녀는 구름과 함께 성왕이 쥐고 있던 반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진다. “여신! 여신!” 하지만 연보라반지만 덩그러니 성왕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을 뿐.

 

다음날 사비성 인근 관북마을. 산수무늬 벽돌로 촘촘히 쌓인 사씨 가문의 거대한 재실. 웅진성의 궁에서 친정을 찾아온 왕비 사씨 앞에 가문출신 신하들이 밝고 희망찬 얼굴로 대청에 모여 있다. 왕비가 좌우를 둘러보다가 사연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즐겁게 입을 연다.

은솔!”

, 왕비마마.”

그동안 수고가 많았소. 덕분에 이곳 사비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소신보다는 마마의 은덕인가 합니다. 이번에 사비로 옮기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판을 치던 연씨들의 기세가 한풀 꺾일 것입니다.“

물론 그래야지요. 내 가슴에 못을 박던 자들을 우리 사씨가 눌러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동안 설움을 받던 왕비마마의 한을 우리가 풀어드려야죠.”

고맙소. 정말 고맙소.”

 

눈시울이 뜨거워진 왕비가 옆에 앉아있던 왕자 창을 바라보며 나직이 입을 연다. “왕자.”

. 어마마마.”

앞으로 임금이 되면 여기 있는 어미의 가문어른들을 잘 아껴주세요.” 왕비의 말에 어린 왕자가 의젓하게 대답한다. “물론입니다. 사씨는 반드시 백제 제일의 가문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호호호! 정말 마음이 들어요. 어떻습니까? 우리 왕자가 든든해 보이지 않아요?” 왕비가 은근한 눈빛을 던져오자 사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 왕비마마. 마마를 닮아 왕자께서 기골이 장대하고 담대해 보입니다.”

아직 어려도 벌써 무술과 글을 익히고 있지요.”

마마. 분명 나중에 삼국 최고의 명군이 되실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호호호!”

왕비보다는 나를 많이 닮았군. 어쩌면 내 아들일지도 몰라. 왕자를 지그시 바라보는 사연의 눈빛엔 서글픔과 대견함이 한껏 교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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