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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스포] 버닝 (2018)
게시물ID : movie_746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유적
추천 : 1
조회수 : 10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04 21: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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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 감상문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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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에서 영화관을 나가고 싶었다.

어색하고 작위적이고 유치한 대사와 상황 들. 종수와 해미 둘이서 술을 마실 때 해미의 말 (이상하게 해미 역 배우의 연기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후에는 별로 그렇지 않은데). 여행에서 돌아와 종수 해미 벤 셋이서 술을 마실 때 벤의 대사 ('나는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어요'). 벤의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실 때 해미의 말들과 춤 (이 부분은 내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모두 내 역치를 가뿐히 상회했다. 차마 화면을 쳐다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내 자리가 극장의 한가운데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나갔을 것이다.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도 그런 대사나 장면들은 종종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는 원래 이 영화가 그런 것이려니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이런 영화에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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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알바 중이다. 작가를 지망하지만 아직 뭘 써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알바 중 우연히 어렸을 적 친구인 해미와 마주친다. 오랜만의 재회였지만 둘은 금세 가까워지고, 연인에 가까운 사이까지 발전한다.

종수는 해미로부터 부탁을 받는다. 해미는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다 올 예정인데 그동안 자신의 방에 있는 고양이에게 밥을 좀 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종수는 수락했다.

해미가 귀국하는 날 공항으로 마중 나간 종수 앞에, 해미는 벤이라는 남자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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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친절하지 않다. 우리에게 그 무엇도 말해주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독백하지 않는다.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대사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은 물론이고 영화 속 이야기의 진실까지도 추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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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전말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벤은 사이코패스 성향의 연쇄살인범이다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것은 살인을 한다는 것의 비유이다). 해미를 비롯한 벤의 여자친구는 벤의 레이더에 걸린 사냥감들이다. 해미가 연락을 받지 않던 시점에 해미는 벤에게 이미 죽었고, 벤은 전리품으로 해미의 손목시계와 고양이를 취했다. 종수 또한 벤을 미행하고 벤과 대화하면서 그 결말에 다다랐다. 그래서 마지막에 해미의 복수를 했다.

내 추정이 틀리진 않았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영화를 본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나와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세세한 디테일은 알아내기 힘들다. 중간중간 나사가 빠지고 톱니바퀴가 떨어져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동작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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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결말을 매듭 짓기는 아리송한 부분이 있다. 종수가 벤을 죽인 건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왜 죽였는지가 불분명하다. 추정은 복수다. 하지만 복수하는 사람이라면 의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정말로 벤이 해미를 죽였는지 벤에게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원한의 말을 쏟아내는 것도 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표정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칼로 여러 번 찌르기는 하지만 난도질하는 것도 아니고, 죽을 만큼만 찌른 뒤 벤의 차에 시체와 자신의 옷가지들을 한데 모아 태워버린다.

복수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냉정한 계획 살인자의 모습이다.

정말 복수를 한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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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유아인이 출연한 다른 작품을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종수 같은 어눌하고 구부정한 캐릭터를 맡은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캐릭터를 굉장히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반면 스티븐연은, 일부러 교포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가 필요해 그를 섭외한 것인지, 아니면 그를 섭외하면서 캐릭터가 그렇게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자라면 잘 고른 것 같고 후자라면 잘못된 캐스팅이었다고 본다. 한국말은 현지인 수준은 아니다 보니, 말투나 억양이 조금 거슬렸다. 다른 우리나라 배우였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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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던 중,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는 굉장히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감상문을 적기 위해 머릿속에서 내용을 정리하면서 보니, 또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상징들을 떠올리고 그 상징들을 조합하고 의미를 추론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일견 짜임새 없는 난잡한 영화로 보이다가도, 굉장히 잘 설계된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내가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상징들이 꽤 있고, 존재 자체도 알아차리지 못한 상징들이 꽤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건 다른 영화 고수들의 리뷰를 보며 메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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