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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46).
게시물ID : love_429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9
조회수 : 207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8/06/08 20:04:36
나는 휴가를 남들 다 가는 바캉스시즌에 안가고, 9월이나 10월에 간다.

사회초년생때는 좋은 날 다 밀려서 9월 중순에 가게 되었는데...
웬걸. 다들 휴가가서 밀려드는 업무전화에 쉬지도 못했다고 졸라 투덜거리고,
나는 그 동안 내 윗 분들 휴가가서 업무가 안되네요...이러고만 있었다.
뭐 막내가 뭐 알겠냐고 알았다. 그러고 말더라.

그리고 그렇게 밀리고 밀려 휴가를 가보니, 업무아는 분들이 다 앉아있으니 굳이 나 찾지도 않고
6,7,8월 손놈왔냐? 왔음 얼른 퍼먹고 돈내고 나가.라던 여행지 상인들이,
아이고오!!!! 오셨습니까 손님!!!!하며 북적이지도 않고 저렴하게 놀다온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내 휴가는 9~10월달이 되었다.



"김과장님. 사장님이 올라오시래요."

비서양의 전화.

"아.뭐.왜? 나 잘못한거 하나도 없는데???"
"임원분들이랑 부장님들 회의중이신데, 과장님 찾으세요....3초 드릴께요."

좀 친한 직원들한테 비서양이 날리는 멘트인데,
10초 5초 3초 1초로 나뉘는 이 암호는 사태의 급박함을 알리는 신호다.
지금 파스트페이스임. 튀어올라가야함.



"충성!!! 마케팅부 과장 김...아...ㅆㅂ 군대꿈..."
"...사장님. 마케팅부 김XX과장입니다."
"들어오라고 해요."

졸라...아...왜...품의서 니들이 다 도장찍어서 추진한거잖아...또 뭐...죽을 상과 미안 상을 동시에 안면에 띄우고 들어가니, 다들 흠칫한다.
아이쿠...못생김에 못생김을 더해버렸군. 시선폭행 죄송염.

"아. 앉게."
"아. 네." 
"...휴가를 냈네?"
"...?????"

때는 6월. 다음 주 월화수목금 통째로 휴가를 내었다.
거래처에 미리 다 양해구해놓았고, 그 1주일 있어도 잘 돌아가지만 없으면 더 잘 돌아가는 일. 혹여나 뒷말 나올까봐 더 잘 돌아가게 인수인계도 해놓고 가는거고, 과장나부랭이는 팀장 부장으로 결재 끝인데...뭐 대단한 일 났다고 경영회의중에 나를 부르신거여???

"...네. 좀 갈데가 있어서..."
"최부장."
"네. 사장님."
"김과장 연봉협상에 뭐 문제있었어요?"
"아뇨. 감봉안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서류 뺏아다가 싸인하던데요???"
"박팀장. 김과장 최근 근태에 무슨 문제있었나요?"
"...본인 앞에서 말하긴 뭐하지만...쟤는 좀 인사위원회에 올려야...농담입니다. 사장님. 뭐 특별한 이상은 없었습니다."
"자네. 이렇게 길게 휴가 낸적 없었잖아?"

그렇게 아닌때 휴가냈더니 경영회의에 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관심사원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D는 7월에 독일로 떠나게 되었다.
대학은 사실상 가서 형식적인 인터뷰만 보면 들어가는걸로 되어있었고, 그 중국 회장님 회사의 독일 지사 여직원과 같은 집을 쓰게 되었다.
사진보니까 집 좋더라. 집주인 아줌마도 인상이 퍽 좋아보였다. 그 여직원도 영국에서 태어난 화교출신 직원이라 D에게 많은 도움이 될 듯 했다. 
어학원도 그 회사 직원들이 독일파견가면 주로 이용하는 어학원으로 정해졌고, 은행계좌 보험 뭐 이런것도 그 쪽 독일지사에서 회장님 특명으로 와서 서명만 하면 좔좔좔 처리되게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외국나갈 연습 한번 하자."
"어?"
"너 가면 뭔가 하나 저질러서 국제미아 될 것 같애. 나랑 외국 한번 나가자."
내가 뭐 하자고만 하면 기승전돈돈돈.인 D는 당연히 펄쩍 뛰었다.
나도 돈 없음 안하지. 상반기 성과급 결산 나온거 보고 간다 그런거다. 
"일본 가자."

후훗. 그동안 고독한 미식가 시즌별로 보여주면서 고로고로이노가시라~에 흠뻑 빠지게 길들여놓았다. 



근데, 여행지는 도쿄가 아닌 오사카 나라 고베 교토임ㅋ



커플신발이란걸 사보았다. 어째 이건 군말안하고 받더라.
1주일 전에 미리 사서 열라 배드민턴치며 길을 팍팍 들여놓았다. 은근 많이 걸을건데 가서 신발 발에 안맞아서 뒤꿈치 까지고 그러면 난리남.
내가 옛날에 그래봐서 암. 3박 4일 여행이 지옥이 됨.

출발 3일 전, 백화점에 갔다. 
대개 쇼핑가면 여자가 신나고 남자가 질려서 안달복달 하는 편인데,
그동안 D는 백화점 이런데 가면 얘가 남자인가 싶을정도로 못나가서 안달이었다.
그런 D가 어느 매장 하얀색 하늘하늘한 원피스에서 눈을 떼지를 못했다.
"...맘에 들어?"
"어? 아...아냐."
"여기 이거 입어봐도 되죠?"
입어보는건 공짜여. 라니까 우물쭈물하고 피팅룸에 들어갔다 나온 D는 한번 입어보고 말기에는 너무나 어울렸다.
매장직원이 판매용멘트를 잊고, 개인적인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였다. 
그런데 D는 입어볼때 가격표를 봤는지 얼굴이 그 원피스만큼이나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리고 내 그럴줄 알고 벌써 계산해서 저기 쇼핑백에 새걸로 담아놓았다니까, 옆구리에 강펀치를 날려주었다. 엌ㅋㅋㅋㅋㅋ

너 독일갈때 또 그때 집나올때처럼 담요에다가 싸갈거냐? 큼지막한걸로 하나 사. 지퍼말고 자물쇠로 잠그는거. 도동놈들이 볼펜으로 포옥 찔러서 다 털어간다고...좀 여자애답게 알록달록한걸로 골라라 좀-_- 가만 보면 취향이 우리 엄마보다도 한참 고풍스러우셔. 야. 그 말아진 주먹펴라. 아프다 진짜.

옷이며 속옷이며 이것저것. 너 독일가면 필요하다고. 그 날 역대급으로 카드 긁어버리긴 했다. 
다음에 성공해서 그때 갚어. 이자는 3부 복리. 나 너 귀국하면 진짜 놀거야. 원래 꿈같은거 없어. 놀고먹는게 꿈인 사람이여ㅋㅋㅋ하고 팍팍 질러주었다.



"집으로 안가?"
집으로 안가?라고 말하고, 또 돈쓰러 마트로 가냐ㅠ.ㅠ라고 이해하면 되는 D의...이제는 울음까지 섞인 목소리.
"냉장고 비었어. 좀 채워놔야돼. 햄이랑 소세지랑 참치랑 고기랑 살거야. 야채는...산나물 캐먹으면 돼. 먹다가 안면근육 일그러지면 담부턴 그거 안먹으면 돼."
"마트는 내가 살거야. 진짜. 지갑 내놔. 핸드폰도 내놔."
"너 가서 쓸 돈 쟁여놓으라니까?"
"안돼. 글쎄. 얼른 내놔."
쳇.



평소에도 다 먹지도 못할거면서 뭐 이렇게 사냐는 D의 잔소리가 끊이질 않았는데, 막상 지가 산다고 하니까 막 쓸어담더라.
마트 들어가기 전에 진짜 몸수색이란걸 당했다.
어머 언니. 거긴 아냐. 짤랑거리게 생겼지만 재화의 가치는 없는거라고.



"우와...내가 살다살다 우리 D가 10만원 넘게 돈 쓰는걸 다 보네."
"오빠 오늘 너무 많이 썻어."
"카드랑 지갑 줘. 이따 갈때 기름 넣어야 돼."
"기름값도 내가 낼께!"
"아따. 오냐오냐하니까 까부시는게 지나치십니다. 캐쉬백으로 돌려받는 카드라고. 주시라고."
할인혜택이런거 엄청 꼼꼼하게 챙기지만서도, 운전면허도 없지만 자동차라는건 아예 소유할 수 없는 거라 생각해서 관심 1도 없어서 내가 주유할때 긁는 카드에 그런 혜택이 있다는걸 이 아가씨는 그 날에서야 처음 알았다더라...에휴...있어. 그런게...

"아. D. 너 이거 써봐라."
바캉스시즌이 다가오니까 마트 안에 옷파는 가판에 밀짚모자가 퍽 이쁘길래, 한번 써보라고 했다.
"???"
"ㅋㅋㅋㅋㅋ 거울 봐바."
"웃기구나?"
"아니. 넘나 예뻐서 너도 한번 봐보시라고."
거울을 보니, D도 퍽 마음에 드나보다. 가격도 쌋다. 3천원이더라. 
리본도 달려있는데 싸네? 
오빠도 써봐.
나 밀짚모자쓰면 남들이 괭이랑 삽 낫 이런거 쥐어주고 그래. 나에게 허용범위의 모자는 양키야구모자여.
D는 그 싸게 산 밀짚모자가 맘에 드는지 품에 꼭 안고 갔다.

야...박스 하나는 들어줘 임마.



그리고 3일 후. 우리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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