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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그분
게시물ID : humordata_17576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흙향기
추천 : 1
조회수 : 120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23 07: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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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한참 후에 다시 그곳 갑사계곡에서 깨어난 영랑. 그가 한참 북쪽으로 말을 달리니 장깃대 나루가 나왔다. 그는 말과 함께 배를 타고 금강을 건너 북서쪽으로 한참을 간 영랑은 십승지지라고 알려진 유마계곡 앞에 도착했다. 산과 물이 오묘하게 둘러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십승지지 유마계곡은 전란과 굶주림과 전염병을 피할 수 있다는 전설이 깃든 별천지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과 전염병은 커다란 공포의 대상이었다. 십승지지처럼 상당히 외딴 곳을 제외하고 뭍의 길로 혹은 물의 길로 왕래를 할 수 있게 된 대부분의 지역에선 그것들을 도저히 피할 수는 없었다.

 

영랑이 유마계곡의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자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사람 팔처럼 움직였고, 나뭇잎이 손처럼 가볍게 흔들리며 그를 반겼다. 그러면서 빽빽이 우거진 나무들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넓은 길이 생겼다. 말을 타고 숲에서 빠져나오자 다시 나무들이 길을 막아 흔적을 없애버렸다. 앞으로 나아가자 고풍스런 절이 하나 나타났다. 온산 가득 붉은 단풍 빛이 감도는 늦가을 황혼 무렵 은은한 종소리가 안개에 덮인 절을 헤치고 흐르고 있다. 절 주변을 휘감고 흐르는 계곡물은 태극 모양으로 두 물줄기는 천왕문 앞에서 만난다.

 

영랑이 계곡에 들어서니 먼발치서 머리를 짧게 깎은 젊은 스님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기다란 눈가에 동글동글한 안경을 쓴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하지만 그가 계곡물에 세수를 하려고 안경을 벗으니 강렬한 눈빛과 우뚝 선 코, 큼직한 광대뼈가 강건한 인상을 풍겨주었다. 영랑이 말을 내려 나무에 매어놓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그 스님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누구요?” 그 말에 영랑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신라의 영랑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스님이 생각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신라의 사선. 벌써 신선이 되어서 속세에 미련이 없을 텐데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소?”

이곳 경치가 빼어나고 사람들을 살리는 곳이라고 하여 멋진 그림을 그리러 왔습니다.”

그림? 정말 한가하고 낭만적입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소.”

지금 이미 그렇게 지내시고 있지 않습니까?”

속 모르는 말씀. 나는 지금 여기서 숨어살고 있소.”

숨어사시다니요? 결코 남에게 해를 끼치실 것 같지 않게 생기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군요.”

당신은 관상이라도 볼 줄 아나 봅니다. 하긴 나도 예전에 부정이 판치는 과거를 포기하고 관상공부를 하였소.”

! 그러셨나요?”

관상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는 것인데 그 공부를 하면서 나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소.”

 

보시니 어떻습니까?”

책에 나오는 대로 보면 볼수록 내 얼굴은 어디를 뜯어봐도 좋아 보이지 않았소. 나는 호랑이 ()이어서 힘은 세지만 끊임없이 움직이어야만 먹을 것이 생기는 고단한 팔자 같소.”

그래도 동글동글한 안경을 쓰시니 너무 귀여워 보이셔요.”

좋게 봐 주어서 고맙소. 나도 이 우락부락한 얼굴을 부드럽게 보이려고 이런 안경까지 쓰면서 재롱을 떨고 있는 것 같소.”

그런데 진짜로 관상이 안 좋게 나오셨나요?”

글쎄 내가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벼슬을 할 것 같지도 않아. 지금까지 이렇게 고생을 많이 하는 것을 보니 그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하고 한숨만 크게 내쉬었다.

무슨 고생을 그렇게 많이 하셨죠?”

그럼 내 얘기 한번 들어보소.”

 

승려 김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18958월 을미사변으로 민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되자 나라 안팎이 몹시 뒤숭숭하였다. 울분에 찬 조선의 백성들이 전국 각지에서 일본군인과 일본인들을 살해하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했다. 김구선생도 큰 충격을 받아 언젠가 국모의 원수를 찾아 없애버리려고 단단히 별렀다.

어느 날 그는 안악군 치하포 나루근처 여관에 묵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으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조선옷을 입은 일본인이 먼저 밥을 먹으려고 하였다. 순간 그의 옷깃 속으로 차고 있던 환도가 슬며시 보였다. 일본인이 조선옷을 입고 변장하고 다니며 칼까지 차고 있는 것은 분명 국모를 시해한 일당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든 김구는 문가에 서 있던 일본장교를 순식간에 바로 차서 쓰러뜨리고 목을 힘껏 밟았다.

 

사람들이 몰려나오자 김구는 눈에서 살기를 번뜩이면서 외쳤다. “누구든 이 왜놈을 위해 내게 달려드는 자는 모두 죽일 것이다.”하자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김구의 발에 밟혀있던 일본인이 몸을 뒤틀어 일어나 잽싸게 칼을 뽑아 들었다.

! ! !” 그는 김구를 베기 위하여 어지럽게 칼을 휘둘렀으나 김구는 칼날을 요리조리 피하며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일본장교가 벌렁 넘어지자 김구가 그의 칼 잡은 손목을 힘껏 밟아 칼을 떨어트리게 한 후 칼을 주워 그를 찔렀다. “아악!” 그는 분수처럼 뿜어 나오는 선혈을 움켜 마시다가 얼굴에 칠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벌벌 떨고 있는 40여 명의 투숙객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 “나 김구 오늘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인을 죽였소.”

 

사람들이 일제히 웅성거렸다. 김구는 여관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놈의 소지품을 가져오시오.” 여관 주인이 일본군 장교의 소지품을 가져다주어 살펴보니 일본군 육군 중위 스치다였다. 그의 지갑을 뒤지니 안에서 돈 800냥이 나왔다. “주인장.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걸 나누어 주도록 하게.” “, 어르신.” “안악 군수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게나.” 말을 마친 김구는 고향 해주 텃골로 유유히 돌아갔고 며칠 후 해주감옥에 투옥되었다.

 

인천감옥으로 이송된 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김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독서를 통해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였다. 사형집행 당일 궁궐의 고종황제에게 법무대신이 사형집행의 결재를 올렸다. 고종은 아무 생각 없이 문서에 서명을 하고 대신이 나가버리자 한참 후 엄비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황제폐하. 방금 서명하신 사형수가 누구인줄 아시옵니까?” 그러자 고종이 깜짝 놀라 물었다. “누구이기에 이렇게 부산을 떠는 것이오?” 그 말에 엄 귀비가 다급하게 말했다. “작년에 왕비마마를 시해한 원수를 갚는다고 일본인을 죽인 김구라고 합니다.” 그러자 고종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런가? 어서 법무대신을 다시 부르게나.” 하지만 그 관리는 궁궐을 나가 벌써 인천으로 파발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때에 마침 궁궐에 전화가 가설이 되었다. 고종은 인천형무소로 전화를 하여 사형의 집행을 정지시켰다.

 

무기수로서 기약도 없이 감옥살이를 하게 된 김구. ‘내가 감옥에서 시간을 썩히다가 죽는 것은 오직 일본인들이 바랄 뿐. 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내가 여기서 죽을 순 없다.’하고 결심한 그는 감옥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탈옥을 하게 된다. 탈옥 후 오갈 데 없는 김구는 호남을 두루 떠돌다 공주에 사는 지인의 조언으로 마곡사에 기거하게 된 것이다.

 

주지스님 하은당은 백범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제자로 삼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백범에게 나를 잘 따르기만 하면 너는 장차 큰 스님이 될 것이야.”하고 잘 구슬렀다. 백범이 막상 제자가 되고 법명을 원종이라고 받게 되자 하은당은 백범을 막 대하기 시작했다. 머슴을 대하듯이 , 원종아!”하고 함부로 부르며 장작을 패게 하거나 물을 길어오게 하였다. 그러다가 백범이 사소한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심하게 꾸지람을 했다. 뿐만 아니라 백범을 앞에 대놓고 생긴 것이 미련해 보여서 높은 승려는 못 되겠다. 어쩜 얼굴이 저렇게 밉상일까?”하고 놀려대는 것 아닌가.

 

여기까지 사연을 말한 김구는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여 당장 절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 “그런데 왜 아직까지 여기에 머물고 계신 거죠?”

아직 뚜렷한 목표와 계획이 서지 않아서 그래.”

김구가 말을 계속했다. “주변에선 꾹 참고 있다가 노스님이 세상을 떠나면 엄청난 재산이 나 원종의 차지가 된다고들 했어. 매년 소작인들로부터 백미 200여석에 수십만 냥의 시줏돈과 수많은 물품이 절에 바쳐지고 있지.”

! 정말 대단한 재물이 이 절에 들어오고 있었네요.”

 

김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을 했다. “맞아. 마곡사는 고려 때부터 충청도를 대표할 만한 큰 절로 항상 살림이 넉넉했어. 나 혼자만 생각한다면 꾹 참고 여기에 눌러앉아 편하게 지내고 싶지. 하지만 조국과 민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어.”

역시 선생님은 대단한 애국자이시군요. 헌데 이곳이 지내시기에 풍족해서 여기를 피신처로 선택하신 것인가요?”

그 말에 김구 선생이 희미하게 웃었다. “마곡사 살림이 넉넉해서 여기에 숨어든 것은 아니고 만약 일본군들이 여기까지 나를 잡으러 오면 나는 유마계곡의 십승지지 속에 숨어들어갈 것이야. 허면 결코 나를 찾지 못하겠지.”

! 유마계곡?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지나간 무성한 숲이 있던 그곳인가 보네요.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깊고 깊은 산속이죠.”

그럴 거야. 옛날 연산군 때도 홍길동이 무성산과 여기를 무대로 오랫동안 안 잡히고 숨바꼭질을 하며 종횡무진 활약을 하였어. 공주에 관리로 온 허균이 그것을 자료로 해서 홍길동전을 지었고.”

 

하지만 산속에만 계시면 너무나 심심할 뿐만 아니라 어여쁜 여자들과 사랑도 못 나누고 외롭지 않아요?”

하하하! 너와 같이 귀여운 처사나 동자승만 있으면 좋아. 그냥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니까. 그리고 험상궂게 생긴 나를 어떤 예쁜 여자가 좋아하겠어?”

그건 그렇지 않아요. 돈만 있으면 처녀불알도 구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이 절에 묻혀 있는데 어떻게 자유롭게 여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건 요령이에요. 가끔씩 당길 때마다 밖에 나가 마음껏 즐길 수 있잖아요. 절에 들어오는 돈도 많겠다, 소작료로 받는 쌀도 많겠다, 무얼 못 하겠어요?”

에끼 이놈! 다시는 그런 음탕한 말 하지 마라. 내 마음 자꾸 흔들린다. 꼭 초란이 같이 생긴 녀석이.”

 

그러자 영랑이 발끈하며 말했다. “잘 모르시면 말씀 마세요. 요새는 저 같은 꽃미남이 인기랍니다.”

너를 보면 자꾸 속세가 생각나 당장 지금이라도 하산을 하고 싶어져.”

제가 스님의 도 닦는 것을 방해하였나 봐요. 죄송해요.”

하하하! 농담이야. 원래 나는 여자에 별 관심이 없어. 하지만 나도 이 갑갑한 곳에서 고상한 학문을 닦으며 오래 있을 성질이 아니거든.”

그러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냥 절이 싫어 나간다고 하면 주지스님이 서운해 하시니 금강산에 가서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야겠어.”

실제는 어디로 가실 거죠?”

우선 내 고향 해주 텃골로 돌아갈 생각이야. 네가 신라의 신선 영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걸 보니 공기 좋고 물 맑은 여기에서 쉬며 정신 차려야 할 것 같아.”

난 절대 미치지 않았어요.”

, 내가 막상 떠나려니 주지스님한테 미안해서 그래. 내 대신 절의 허드렛일 하는 상좌 역할을 해주면 안 되겠어?”

, 싫어요.”하면서 영랑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김구 선생이 빙긋이 웃으며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잡으려고 다가왔다. “부탁해. 그래야 내가 마음 편히 절을 떠날 수 있어. 여기서 푹 쉬어 정신병을 치료하는 것이 너에게도 좋을 거고.”

, 안돼요. 난 절의 심부름꾼 노릇하는 것이 따분해서 정말 싫단 말이에요.” 하지만 김구 선생은 날쌘 호랑이처럼 잠깐 사이에 뛰어와 영랑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이래봬도 나는 걸음이 빨라 남들이 나를 백범이라고 하지.”

 

영랑은 몸을 휙 돌려 숲 쪽으로 마구 뛰었다. 한참을 뛰다보니 나무들이 너무 빽빽이 늘어서 있어 하늘도 안 보이는 깊숙한 산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뭇가지가 살랑살랑 움직이면서 사람 팔처럼 보였고, 나뭇잎이 손처럼 가볍게 흔들리며 그를 반겼다. 그러면서 빽빽이 우거진 나무들이 양쪽으로 쫙 갈라지면서 넓은 길이 나왔다. 그 길을 한참을 걸어 숲에서 빠져나오자 다시 나무들이 길을 막아 길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아차! 말을 이상한 세상에 놓고 나왔군. 영영 잃어버린 거야. 말을 다시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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