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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6월10일> 고등학교 동창모임에 참석한 학생운동 리더
게시물ID : panic_987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4
조회수 : 8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30 10: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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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33.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하는 학생운동 리더
 

서대문경찰서 강당에 경찰 제복 차림의 최성식이 연단 위에 늠름하게 서 있다. 경찰서장으로부터 특별 포상을 받고 있는 중이다. 사회자가 최성식이 수상하는 상장 내용을 읽고 있다.
표창장, 경위 최성식, 위의 사람은 평소 시위진압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우리 사회 안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기에 이 상을 수여함.”
경찰서장이 상장을 최성식에게 전달하고 악수를 한다. 참석한 경찰들이 손뼉을 쳐준다. 이들 중에 김용수도 있는데 손뼉을 치면서 옆에 있는 사복 체포조 동료에게 말한다.
우리 소대장 상복도 좋아, 버스가 고장 나서 신사역 사거리에 퍼질러지는 바람에 데모하러 온 애들 체포한 거잖아. 완전히 소가 뒷걸음질 쳐서 쥐 잡은 꼴이야.
며칠 후, 잠실 허름한 술집에 이정훈과 김영철이 마주보고 앉아있다.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한 침묵이 오래동안 흐른다. 그러다가 김영철이 조심스레 묻는다
정훈이 형! 왜 저를 모임에서 빼는거죠?”
이정훈은 답변 없이 소주를 들이킨다. 김영철이 빈 잔에 소주를 따라주려는데 이정훈이 손동작으로 거절한다. 김영철이 이게 무엇인지를 알아챈다.
얼마 전에 저한테 내부 프락치가 있는 거 같다고 말했는데, 그게 저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정훈이 긍정도 부정도 안 하고 있다. 김영철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이정훈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술집을 나간다. 이정훈이 남은 소주를 마저 따라 마신다.
이날 저녁, 서대문 경찰서 근처 삼겹살집에 최성식과 김용수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있다. 시간에 조금 늦어서 식당 안으로 이정훈이 들어온다. 김용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정훈이 왔다.”
이정훈의 출연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몰려나온다. 이정훈이 친구들의 손 하나하나를 잡아주며 반갑게 인사나눈다.
우리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이지?”
그리고는 전칠성을 알아본다. 전칠성은 가리봉 오거리 시위에서 구류처분을 받았던 노동자다.
칠성이, 하나도 안 변했네?”
전칠성은 이정훈이 자기를 알아봐 주자 감격스런 표정을 짓는다
고맙다, 정훈아.”
뭐가 고마워?”
날 기억해줘서.”
, 친구끼리 고맙고 자시고가 어딨어? , 다들 자리에 앉자.”
이정훈을 중심으로 친구들이 자리에 앉는다. 최성식이 이정훈 옆에 친한 척 앉아있다.
, 다들 건배!”
최성식의 건배 선창에 동창들이 소주잔을 높이 들어 건배를 따라 외치고 술을 마신다. 이번 추석 때 동창들끼리 단체로 버스를 빌려서 고향 여수에 내려가자는 의견도 나누고 이 얘기, 저 얘기 하고 있을 때, 이정훈이 구석에 조용히 앉아 친구들 얘기만 듣고 있는 전칠성에게 다가간다.
칠성이는 뭐하니?”
, 공장에서 일해. 구로에서.”
그 전칠성이 맞다. 815일 노학연대 시위 때 구류를 산 노동자 전칠성이다. 둘 사이 대화에 김용수가 끼어든다.
칠성이 새끼, 운동권이야
운동권이라니?”
이정훈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척했다.
광복절날, 가리봉에서 데모가 있었는데, 내가 잡고 보니 칠성인 거 있지? , 세상 좁다, 좁아. 칠성아! 대학생 데모하는 거 막는 것도 죽을 지경인데, 니네 공돌이들까지 데모하면 우린 집에도 못 들어간다.”
김용수의 푸념에 이정훈이 따끔하게 말한다.
용수야! 공돌이가 뭐냐? 칠성이는 성실히 일하는 노동자야, 그렇게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정훈의 충고에 김용수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냐, 괜찮아, 공돌이면 어떻고 노동자면 어때? 오랜만에 정훈이랑 친구들도 만났는데 자, 건배!”
전칠성의 건배 제안에 다들 즐겁게 잔을 드는데 최성식은 그렇지 않다. 전경 소대장인 최성식이 봤을 때, 노동자 전칠성이 하찮게 보이는 거다. 그런 최성식을 김용수가 약간 비아냥거린다.
소대장님, 오늘은 경찰인 거 잊고 건배하시죠?”
마지못해 최성식이 소주잔을 친구들과 부딪힌다. 그리고 이정훈에게 묻는다.
요즘도 취미로 그림 그리니?”
아니, 공부하느라 그럴 틈이 없어.”
정훈아, 고등학교 미술반 시절에 너는 밀레 같은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어. 고단한 민중들의 삶을 표현하겠다고.”
내가 그런 말을 했어? 기억이 안나네
나는 미술 점수 잘 받아 대학 가는 데 도움 되려고 미술반에 들어갔는데, 너는 그렇지 않더라고.”
최성식이 미술반 이야기를 하는데 식당 문이 거칠게 열리며 서울에서 여수의 고등학교로 전학 왔던 3명이 함께 나타난다. 이정훈이 등장했을 때와는 달리 아무도 반갑게 일어나지 않는다, 단 한 사람 최성식만 그들에게 달려나간다.
여기야 여기! 진짜 반갑다
! 주차장도 없는 식당을 잡으면 어떡해?”
전학생들이 손에 들고있는 자동차 키를 보란 듯이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최성식 너는 요즘 같은 세상에 짭새 하느라 뺑이 친다.”
뺑이는 뭘…….”
우리 외삼촌이 치안본부 대공과 3과장인데, 얘기 잘해놓을게.
친구야 정말 고맙다.”
거만한 전학생들 앞에서 알랑거리고 있는 최성식을 다른 동창들이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전학생 하나가 이정훈을 발견한다.
오우, 이정훈!”
이정훈은 전학생들에게도 반갑게 손을 내민다.
오랜만이다.”
얘들아, 오늘은 여기 내가 다 계산할 테니까, 나중에 정훈이 판사 되면 찐하게 술 한잔 나한테 사라 알겠지?”
호탕하게 말하는 전학생에게 이정훈이 안부를 묻는다.
미국 유학 간다고 들었는데 언제 가?”
비자 나오면 바로 갈 거야.”
최성식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건배 제안으로 나선다.
! 다들 모였으니 거국적으로 건배하자. 건배!”
모두가 술기운이 돌고 있을 때 식당에 있는 TV에서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1번지가 나온다.
재미있는 거 한다. 아주머니 테레비 소리 좀 키워 봐요.”
전학생 말에 동창들이 술 마시는 걸 잠시 중단하고 TV에 시선을 집중한다. 개그맨 김형곤이 등장해서 전두환, 이순자 흉내를 내는 회장님코너가 나오지 않자, 이정훈이 보고 묻는다.
김형곤 나오는 회장님 코너는 안 하네?”
~ 우리 정훈이가 공부하느라 테레비를 못 봐서 모르는구먼. 회장님 코너 없어졌어.”
?”
그 이유를 김용수가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김형곤이가 자꾸 대머리 흉내를 내니깐 누구를 생각나게 하잖아. 그리고 잘 될 턱이 있나?’ 하면서 영부인 이순자 턱을 더듬으니깐 그 코너가 없어진 거 같아.
그러면서 김용수가 잘 될 턱이 있나하면서 이순자의 주걱턱을 연상하게 만든다. 동창들이 그걸 보고 재미있다고 깔깔깔 웃는데 최성식만 버럭 화를 낸다.
! 친구들 만나는 순수한 자리에서 정치 얘기하지 마.”
최성식의 호통에 김용수가 계급이 깡패라서 참는다. 썰렁한 분위기에서 전학생이 노래 하나 하겠다고 일어선다. 전학생이 비틀즈의 노래 ‘Yesterday'를 부르는데 발음이 엉망이다. 최성식은 박수로 박자까지 맞춰주고 있다. 전학생이 박자 따로 영어가사 따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이정훈이 전칠성에게 다시 다가간다.
칠성아, 너한테 연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공장으로 하면 되는데.”
공장 이름이 뭐야?”
태흥 전자.”
태흥전자는 지난번 815일 노학연대 시위를 주도했던 노동자가 다니던 공장이다.
퇴근 시간에 맞춰서 내가 한번 놀러 갈게.”
바쁜데, 뭘 나한테 오고 그래.”
그냥, 너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서.”
이정훈과 전칠성이 대화하는 동안 전학생의 노래가 끝났다. 아무도 앵콜을 요청하지 않는다. 전학생이 스스로 노래 한곡을 더 할까봐, 김용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회자처럼 말한다.
, 오늘 우리 모임 2차는 최성식 소대장이 경찰서장 상, 탄 기념으로 한번 쏘겠습니다
이에 최성식이
오늘 회비 걷어서 먹기로 했잖아
하면서 김용수를 째려본다.
, 짠돌이, 그 포상은 거저먹은 데모진압 상인데…….”
했기에 거저먹은 거야?”
전학생이 궁금해서 김용수에게 묻는다.
지난 주에 시위진압 훈련 마치고 본서로 돌아가는데 버스가 고장이 난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멈춰 서 있는데, 대학생들이 몰려오는 거야, 어럽쇼? 강남은 절대 데모할 만한 데가 아닌데 학생들이 왜 여기에 모이는 거지? 한마디로 낚싯대에 지렁이 떡밥 미끼도 없는데 학생들이 우리한테 저절로 잡혀준 거지, 자동 빵으로 다 잡아버렸지.”
김용수가 전하는 거저먹은 사연에 이정훈의 눈이 번쩍 뜨인다.
용수야! 거기가 강남 어디야?”
신사역 사거리.”
신사역 사거리에 전경버스가 고장 나서 주차해 있는 것을 이정훈은 시위 오더가 샜다고 판단한 거였다. 이정훈은 술이 확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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