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소설6월10일>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은 김영철
게시물ID : panic_987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3
조회수 : 112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7/02 09:46:22
옵션
  • 창작글
34. 군 입대 신체검사를 받은 김영철
 

고등학교 동창들과 모임을 끝내고 잠실 비밀 아지트로 돌아온 이정훈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장 신뢰한다던 후배 김영철을 프락치로 의심한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워 못 견딜 지경이다. 아침 일찍, 이정훈이 슈퍼마켓의 공중전화로 김영철 고향 집에 전화한다. 김영철의 어머니가 받는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철이 학교 선배 되는 사람인데요, 영철이 좀 바꿔주세요. 네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고요. 그러면 이정훈이라는 선배한테 전화 왔다고 전해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이정훈이 전화통화를 마치고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간다. 슈퍼마켓주인 손녀딸의 얼굴이 밝지 않다.
우리 꼬맹이 표정이 왜 그래?”
이게 없어졌어!”
손녀딸이 개그맨 김형곤의 유행어 동작인 잘 될 턱이 있나를 해 보인다. 슈퍼마켓 주인 아저씨가 손녀의 말을 거든다.
지난 주부터 그 코너를 안 하는 거야. ~ 정치적이라고 하면서 , 그냥 웃자고 하는 건데, 전두환이 코미디도 못하게 하네!”
슈퍼주인 아저씨가 말을 해놓고 자기 말이 과한 게 아닌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이정훈이 비밀 아지트 연립 주택 쪽으로 걸어간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외박을 했는지 연립주택 위층에 사는 호스티스가 출입문 앞에 서 있다. 이정훈이 호스티스와 얼굴 안 마주치려고 뒤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러자 호스티스가 뒤돌아 궁금함을 꼬부라진 혀로 묻는다..
아저씨는 왜 3층 살면서 꼭 4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가요?”
그런 적이 있나요? 그건 제가 술에 취해서…….”
이정훈이 변명을 하는데 호스티스가 말을 끊는다.
아저씨, 술 취한 건 한 번도 못 봤어요
이정훈이 호스티스의 정확한 관찰력에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다음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고 이정훈이 앞서 걸어 올라간다.
경상북도에 있는 김영철의 집, 허름한 농촌 주택이다. 김영철이 군입대 신체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김영철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자 어머니가 농협 달력 찢어 만든 메모지를 아들에게 건네준다.
영철아, 학교 선배라면서 너한테 전화 왔다.”
누군데요?”
거기에 이름 적어 놨다.”
김영철이 어머니가 삐뚤빼뚤 적어놓은 이정훈이라는 이름을 발견한다. 어머니가 식탁에 반찬을 꺼내놓는다.
영철아, 밥 무라.”
김영철이 어머니와 같이 밥을 먹는다. 맛있게 밥을 먹는 아들을 어머니가 자애로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영철아, 내는 니가 데모 때문에 감옥도 한번 갔다 왔는데 또 데모할까 봐 늘 걱정이었다. 그런데 니가 이렇게 군대에 간다니 마음이 놓인다. 니 아버지 너 중학생 때 죽으면서 이 애미 손을 잡고 뭐랬는지 아니? 우리 똑똑한 영철이 꼭 대학교 보내야 한다, 애미가 피를 팔든 머리카락을 잘라 팔든, 꼭 대학생 만들어야 한다.”
말하는 어머니는 눈에 눈물이 고인다. 평생 농사일에 찌든 얼굴이다. 그런 어머니 모습에 김영철이 빙긋이 웃어준다.
엄마~ 걱정마세요 자, 밥먹어요.
영철아, 미가 살아가는 이유는 너 때문이다. 너 그냥 몸 건강히 대학교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면 애미는 그것으로 죽어서 니 아버지 볼 낯이 생긴다.”
, 알겠어요, 제가 엄마 서울 구경도 시켜드리고 호강시켜드릴게요.”
고맙다, 내 새끼 고맙데~”
가리봉 오거리에 있는 태흥 전자 공장 마당에서 전칠성이 대형 지게차로 물건이 들어있는 박스를 나르고 있다. 익숙한 솜씨로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차곡차곡 박스를 대형 트럭에 쌓아 올리고 있다. 전칠성이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데 길 건너편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고 있다. 이정훈이다.
어어? 정훈아 진짜로 왔네.”
그래 진짜 왔다. 칠성이 너 지게차 모는 거 밖에서 봤는데 아주 능수능란하게 잘하더라
그거야 매일 하는 거니까 그렇지
저녁 안 먹었지?
이정훈과 전칠성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공장 뒤쪽 한적한 둑방길을 걸어간다. 벌써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며 더위가 한풀 꺾인 날씨다. 걷다가 이정훈이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전칠성을 쳐다본다.
칠성아 내가 사실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
부탁? 뭐든지 말해, 다 들어줄게.”
지난번 815일 가리봉 시위 때 구속된 김진철 씨가 우리 라인이야.
이정훈이 방금 말한 우리 라인이 뭔지 아는 전칠성이 일순 긴장한다.
구로에서 노학연대 투쟁이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운동의 미래는 밝지 못해, 칠성이가 우리 라인이 되어 줬으면 한다.”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입도 못열고 있던 전칠성이 어렵사리 입을 연다.
정훈아, 내가 너한테 못한 말이 있는데 지금 해도 되겠니?”
무슨 말인데?”
우리 고1 때 니가 서울 전학생들 때려서 경찰서 갔다 오고 학교에 다시 왔을 때, 내가 꼭 너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야.”
전칠성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간다..
정훈아, 고맙다. 그리고 지금은 니가 학생 운동을 한다는 게 진짜 진짜 고맙다. 내가 또 니 도움을 받는구나.
아니야, 서로 도와서 노동자 학생 연대투쟁을 이뤄내는 거야.”
전칠성의 눈에는 눈물마저 글썽인다. 걸어가면서 이정훈이 이번 시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그러자 전칠성이 묻는다.
그러면 디데이(D-day)를 다음 주 토요일로 하는 거지?”
, 지금 파업 중인 한미전자 파업 지지 시위를 해내지 못하면 한미 전자는 깨진다고 봐야지. 그러면 다시 이 지역에서 불붙기가 힘들어. 칠성아, 연결 가능한 공장들 작업 좀 해줘.”
내가 최선을 다해 알아볼게.”
가리봉 공장 지역 거리에 가로등도 별로 없어 어둡지만, 둘의 눈에는 밝은 내일이 분명히 찾아올 것만 같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