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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침공했다 12화 (외계공포소설)
게시물ID : panic_988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폭풍처럼쓰자
추천 : 6
조회수 : 52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7/09 22: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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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자신이 실례하는 건 아닌지 이 상황에서도 예의를 차리는 목소리였다. 평소 같았으면 전혀 경계심 없이 문을 열어 줄 수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거실에 있던 어머니는 현민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옆집 애엄마야.”

현민은 어머니에게 조용히 하란 의미로 손가락을 세워 입가에 가져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식량 나눠달라고 하는 걸 거야.”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 옆집 사는 사람인데요.... 좀 부탁 좀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여자의 목소리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떨림이 있었다. 그 목소리에 어머니는 두 손을 모아 입에 갔다대고 어쩔 줄 몰라하며 현민을 올려다봤다.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 식량 좀... 조금만 주시면 안 될까요? 제 아이들이 계속 굶고 있어서....”

 

현민은 속으로 옆집남자 욕을 했다. 망할 자식. 분명히 이 여자는 아까 옆집남자가 소리 지른 걸 듣고 문을 두드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식량 나눠달란 소리가 염치없는 부탁인 건 알지만 제가 간절히 부탁드릴게요. 식량 좀 나눠주시면 정말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현민은 생각했다. 오히려 더 까다로운 상대가 나타났다고. 현민은 식량을 나눠줄 맘이 전혀 없었지만 어머니는 동요하고 있었다. 현민은 어머니가 옆집여자와 교류하면서 친하게 지냈던 걸 알고 있었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옆집여자가 소리쳤다.

 

“아주머니! 혹시 아주머니 계세요?”

어머니가 놀라서 자기 입을 막았다.

“아주머니 거기 계시죠? 아주머니, 식량 좀 나눠주세요. 아주머니 좋은 분이란 거 알아요. 가끔 반찬 같은 거 많다고 나눠주시기도 하고 그랬잖아요. 너무 죄송한데 한번만 더 부탁드릴게요. 아이들이 너무 배고파해요. 제가 평소에 아주머니 짐도 들어 드리고 했잖아요......”

어머니는 마치 그 여자가 바로 앞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시선을 내리깔며 피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현민을 보고 작게 말했다.

“현민아, 저 집은 좀 나눠줘야 돼. 옆집 아이들이 아직 어려.”

“안 돼, 엄마, 한 번 주고 끝날 수가 없어. 한 번 주면 계속 줘야 돼.”

“이번 한번 밖에 못 준다고 못 박아 놓으면......”

“아니, 절대 그렇게 안 돼. 절대 한 번 주고 끝 안 나.”

“그러다가 저 아이들 죽을 수도 있어.”

“그래도 안 돼. 이건 비윤리적인 게 아니야, 엄마. 어쩔 수 없다고.”

 

옆집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주머니, 한번만 부탁드릴게요. 제발요.”

그 목소리에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굴렀다. 여자의 목소리는 어머니의 맘에 죄책감과 불편함을 사정없이 투하했다. 현민은 어머니의 어깨를 잡고 방안으로 떠밀어 보냈다.

“엄마, 나오지 말고 있어.”

그리고 방문을 닫았다. 그 와중에 계속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 제발요!”

현민도 애절한 모성을 듣고 있기가 괴로웠다. 현민은 핸드폰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재생해 볼륨을 최대한 높였다. 힙합래퍼의 거칠고 빠른 랩이 옆집여자의 목소리를 덮었다. 간간이 옆집여자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부탁드릴게요. 굶고 있어요. 살려주세요.

노래를 6곡 듣고 나자 밖은 조용해져 있었다.

 

그날 밤 현민은 제대로 잠들 수가 없었다. 세상이 이렇게 된 이후 제대로 잠을 자는 날은 별로 없었지만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자다가도 의식이 깨서 잠시 선잠을 자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밖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났을 때는 선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침입한 건가? 현민은 놀라서 창을 들고 서둘러 밖을 나가봤다. 소리가 난 쪽은 부엌 쪽이었다.

 

현민이 나가보니 어머니가 식탁 앞에 서 있었다. 식탁 위에는 투명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네다섯 끼 분량의 쌀과 참치 통조림 2개 그리고 국수 한 다발이 있었다. 참치 통조림 하나가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걸 보니 방금 소리는 참치 통조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인 듯 했다. 어머니는 현민을 보고 도둑질 하다 들킨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현민은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자기도 모르게 무서운 표정이 되었다.

“엄마? 뭐해?”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현민이 다시 말했다.

“그거.... 옆집 갖다 주려고?”

“현민아, 이것만 좀 주자. 응?”

“안된다니까! 우리 식량이라고.”

“조금만 주자. 엄마가 맘이 불편해서 안 되겠어.”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우리가 굶기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조금만 줄 수가 없다니까. 한번 나눠주면 계속 나눠줘야 돼. 한번 나눠줘서 한 이틀 버틴다고 쳐. 이틀 버티고 나면 또 식량을 달라고 할 거야. 저 여자는 아이들을 위해서니까 염치없어도 또 부탁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면 엄마는 그때도 또 주자고 할 거고.”

“이번 한 번만 줄게. 우리는 그래도 아직은 많이 있잖아.”

“많이 없는 거야. 이 사태 오래 가. 한 달은 기본일거고 반년, 일 년이 걸릴지도 몰라. 식량이 많이 필요해.”

“현민아,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엄마야말로 물러터진 소리 하지 마! 엄마처럼 다 양보하고 살면 사람들이 호구로 보고 이용해먹어. 그게 사람이야. 더군다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머니는 그 말에 한숨을 쉬었다.

현민은 울컥해서 어머니한테 소리친 게 미안했지만 지금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었다.

“너도 그 아이들 보면 식량을 줄 수밖에 없을 거야. 애들이 인사도 잘하고 얼마나 착하고 귀여운데. 니가 그 애들을 한 번도 못 봐서 그래.”

 

현민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머니에게서 몇 번 들었다. 옆집여자는 아이 둘을 둔 미혼모였다.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자식을 키운 경험 때문에 동질감이 들어 더 안타깝게 느끼는 것이었다.

“이 사태가 그렇게 오래 간다면 우리가 가진 식량으로도 어차피 부족해. 어차피 절망적인 상황이라면 아이들 조금만 먹을 거 나눠주자. 아이들은 몸이 약해서 오래 굶으면 안 돼.”

현민은 한숨을 쉬었다. 눈을 감고 찡그린 채 미간을 만지작거렸다. 어머니도 쉽게 물러날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무작정 반대하기만 하면 어머니가 또 이렇게 몰래 나가지 않으리란 법도 없었다.

“엄마, 그러면 이렇게 하자. 다시 여자가 찾아온다면 그때 나눠주자. 그땐 이걸 줘도 뭐라고 하지 않을게.”

“다시 안 올 거야. 지금 줘야 돼.”

“아냐, 다시 부탁하러 올 거야. 아이들이 굶고 있잖아.”

현민은 아이들이 굶고 있잖아, 라고 말하며 모순된 감정을 느꼈다. 모성이 간절하게 부탁한 걸 매몰차게 거절해놓고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그 모성을 어머니를 설득할 근거로 대고 있다니. 그리고 속으로는 다시 여자가 식량을 부탁하러 오지 않기를 바라다니. 자신이 정말 천하의 나쁜 새끼가 된 것 같았다. 자신은 그냥 살자고 하는 건데. 어머니와 자신의 생존확률을 높이자고 하는 건데.

 

몇 번의 설전이 오간 후에 결국 현민이 이겼다. 현민은 여기까지밖에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버텼다. 그리고 다음날 여자는 찾아오지 않았다. 괜히 옆집남자만 한 번 더 찾아와서 현민의 속을 긁어놨다.

 

 

그 후 3일 동안 어머니는 옆집여자가 찾아오길 계속 기다렸다. 그러나 여자는 찾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옆집여자가 밖으로 나가 식량을 찾는 상상을 했다. 상상 속에서 옆집여자는 식량을 찾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약탈자들과 맞닥뜨려 몹쓸 짓을 당했다.

꿈 속에서 어머니는 옆집여자가 굶어 죽은 아이들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모습을 봤다. 저러다 죽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음소리가 처절했다. 잠에서 깨고도 어머니는 옆집여자의 울음소리가 잊히지 않았다.

 

늦은 밤, 잠을 이룰 수 없던 어머니는 안방에서 조심히 나와 현민이 자는 기척을 확인한 다음 부엌으로 가서 식량을 비닐봉투에 넣었다. 현민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조심 담았다. 저번처럼 참치통조림을 떨어뜨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냉장고가 무용지물이 되었으므로 현민과 어머니는 하루 먹을 양만 밥을 지어서 그날 다 먹어치웠다. 한여름 더운 날씨에 하루만 지나면 밥은 쉬어 버렸다. 그래서 늦은 밤인 지금 남아있는 밥은 없었다. 어머니는 쌀 세 공기를 퍼서 용기에 담고 국수 한 다발도 챙겼다. 그러면서도 밥을 해먹을, 국수를 끓일 물과 연료가 옆집에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음식을 다 담고 나서 어머니는 비닐장갑을 두 겹이나 끼고 방수가 되는 긴팔 재킷과 바지를 입어 피부가 노출되는 걸 막았다. 마스크도 하고 고글도 끼고 재킷의 후드를 뒤집어써서 머리까지 감쌌다. 그러고 나서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옆집여자에게 식량을 주고 오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그 와중에 옆집남자가 갑자기 나오거나 하면 곤란했다. 식량을 옆집남자에게 다 뺏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도 분풀이의 대상으로 해코지를 당할 수 있으리라. 남자의 폭력성은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옆집여자에게 식량을 주는 모습을 보면 ‘씨발, 그 집에는 주고 나한테는 안 줘? 아줌마, 사람 차별하는 거야?’ 이런 식의 말을 내뱉을 지도 모른다.

 

다행히 옆집남자 집 쪽에서 뭔가 기척은 없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집에서 나와 문을 닫고 열쇠로 잠갔다. 모든 동작이 작은 소리라도 날까봐 조심스러웠다.

 

어머니는 복도를 따라 살금살금 걸어가 옆집여자의 집 현관에 섰다. 그리고 문을 살짝 두드렸다.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을 자고 있어 못 듣나 싶어 어머니는 좀 더 문을 세게 두드렸다. 또 반응이 없었다. 어떡하나 생각을 하다가 이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현민의 성화에 이 음식을 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맘이 조급해졌다. 문 앞에 음식을 두고 갈까 생각했는데 옆집여자가 발견을 못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옆집남자가 먼저 발견해서 음식을 가로채버릴까 염려가 되었다.

 

어머니는 목소리를 조금 높이고 문을 두드렸다.

“새댁? 있어요?”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어머니는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문고리를 잡고 돌려보았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문을 조심히 열었다.

“새댁?”

안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답도 없었다. 어머니는 발을 신중하게 디디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려 있으니 음식만 내려놓고 갈 생각이었다. 신발들이 있는 타일바닥에 내려놓는 건 좀 그래서 거실장판이 시작되는 지점에 음식을 내려놓고 갈 참이었다. 보이지 않아도 집구조는 자기 집과 같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몇 초가 지나 어머니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아주 어슴푸레하게 실내가 보였다. 거실 한가운데 뭔가 보였다. 누군가가 서 있는 것 같은 실루엣이었다. 옆집여자였다. 어머니는 곧 옆집여자의 발끝이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옆집여자의 얼굴위로 전등갓에 연결되어 있는 줄이 보였다.

옆집여자는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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