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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침공했다 15화 (외계공포소설)
게시물ID : panic_988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폭풍처럼쓰자
추천 : 6
조회수 : 72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7/14 00: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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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는 내내 불안에 떨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러나 곧 쿠구구궁! 하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에 금방 잠을 깼다. 여태껏 간헐적으로 계속 들려오던 그 굉음이었는데 이번에는 소리가 너무 크고 가까웠다. 진동도 더욱 크게 느껴졌다.

쿠구구궁!

뭔가 거대한 것이 연속해서 무너지는 것처럼 콰광, 쿠구구궁 소리가 연달아서 들렸다. 마치 산이라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현주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커튼 틈 사이로 밖을 내다봤다. 아파트단지. 통제구역와 자신의 빌라 사이에 우뚝 서서 통제구역을 가리고 있던 아파트 단지가 없어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무너져 있었다. 붕괴할 때 발생한 먼지와 연기로 주변시야가 뿌예서 정확하진 않았지만 약 20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던 고층아파트들이 거의 무너져 있었다. 아파트단지는 무너진 건물잔해가 더미를 이루어 하나의 언덕처럼 변해있었다.

 

‘뭐야, 아파트에서 폭탄이 터졌나?’

그러는 와중에 아파트단지 끄트머리에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던 두 개의 아파트 건물도 기우뚱하더니 밑에서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와르르르 거대한 건물이 사방에 뿌연 연기를 일으키며 몇 초 만에 주저앉아 건물더미에 잔해를 보탰다. 현주는 자신이 서 있는 원룸바닥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한참 후 모든 연기와 먼지가 완전히 가라앉자 아파트가 가리고 있던 그 뒤쪽의 군 통제구역이 드러났다. 3km 정도 떨어진 곳이라 아주 작게 보였다.

 

현주는 망원경을 꺼내서 군 통제구역을 내다봤다. 그런데 통제구역에는 군대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통제구역 땅 전체가 파란 흙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보였다. 맨 처음에 군대가 검은 구를 폭파해 제거하고 그 밑에 파란색 흙이 드러났을 때보다 훨씬 더 파란색 땅이 넓어졌다는 뜻이었다. 그 광활한 파란구역 가운데는 흙 색깔과 비슷한 파랑 이파리를 가진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있었다. 파란 숲은 꽤 커서 축구장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만했다.

 

파란색 이파리를 가진 나무라니? 현주는 파란색 이파리를 가진 식물이 지구상에 있나 생각해봤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물론 인간의 문명이 닿지 않는 곳에 자신이 모르는 식물 종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런 축구장만한 숲이 한 달도 안 되어 형성되었다는 점과 지금까지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었다.

저건 지구의 식물이 아니다. 외계의 식물이다.

 

현주는 무서워져서 창가에서 떨어져 침대에 앉았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되가는 건지 알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군대는 다 어디로 간 거고? 군대도 이미 다 패배했나? 전염병에 죽어 나가고 외계생명체에 잡아먹혀서?’

 

현주는 가만히 있다가는 미치겠다 싶어서 노트북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배터리 아까운 걸 생각하지 않고 계속 들었다. 신나는 댄스곡들, 발랄한 아이돌 노래들, 자신이 즐겁게 봤던 드라마OST를 계속해서 들었다. 경쾌한 멜로디와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를 계속해서 듣고 들었다. 세 시간을 듣자 노트북 배터리는 나가버렸다. 귓가에서 멜로디가 물러가고 잠시 후 또다시 쿠구궁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밖을 보니 이번에는 무너졌던 아파트 단지의 앞쪽의 땅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현주는 깨달았다. 여태까지 군대가 폭약을 터뜨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지면이 붕괴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번뜩 백팩을 멘 남자를 습격한 두 남자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대피하느라고 식량과 물을 싸들고 나오는 여자들이 많을 거라고. 그 말을 미루어 생각해보면 최근에 골목길을 자주 지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붕괴지역 근처에 살던 사람들로, 자신들이 사는 지역도 곧 붕괴되리라는 걸 깨닫고 피신을 하는 것이었다. 그 두 놈은 그 대피하는 사람들을 노려서 식량을 강탈하는 놈들이었고.

현주는 외계벌레의 영상을 인터넷에서 봤었다. 벌레가 돌멩이를 씹어서 파란색 흙으로 바꾸는 영상을. 파란색 땅이 전보다 넓어졌다는 것은 그 벌레들이 활발하게 영역을 더 넓혔단 얘기였다. 아마도 지반이 계속 붕괴된 것은 벌레들이 지하에서 돌이나 단단한 지면을 씹어서 부드럽게 바꾼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부드러워진 지반이 건물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리라.

 

유추해보면 계속해서 파란색 지대는 확장할 것이고 멀쩡한 지면의 붕괴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통제구역과 비교적 가까이 있던 현주의 빌라도 얼마 안 가 무너질 가능성이 컸다. 그 말인 즉슨 그나마 최선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론이 거기까지 도달하자 현주의 등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 후로도 붕괴음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반나절에 한 번 꼴로 들려왔다. 현주는 붕괴음이 들릴 때마다 붕괴된 면적이 자신의 집 쪽으로 얼마나 더 뻗어왔나 확인했다. 붕괴음과 별개로 어디선가 비명소리도 간간히 들렸다. 여자의 비명소리도, 남자의 비명소리도 들려왔다. 그때 봤던 일당들이 대피하는 사람들을 습격하는 소리일 것이다. 며칠 동안 현주는 점점 더 가까워지는 붕괴음과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피 말리는 나날들을 겪었다.

 

4일이 지났다. 이제 붕괴된 지역이 현주의 동네까지 뻗어왔다. 창밖의 익숙했던 풍경들은 계속해서 무너져 갔고 폭격을 맞은 전쟁터 같았다. 현주는 천장을 쳐다보며 이 빌라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현주는 몇 개월 전 형광등을 교체할 때 형광등 덮개를 고정시키느라 낑낑댔던 기억이 났다. 그때 유리로 된 덮개가 자신이 잘 때 떨어지면 심하게 다치겠구나 싶어 꼼꼼하게 고정을 시켰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런 사소한 걱정과 차원이 달랐다. 저 천장이, 몇십 톤에 달하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무너져 자신의 몸을 깔아버린다면 온 몸의 뼈는 깨져 부서지고 살은 뭉개지리라. 토마토처럼 으깨진 몸에서 피가 촥 퍼져나와 방바닥을 뒤덮겠지.

 

아니, 모양새는 끔찍했지만 차라리 그렇게 즉사하는 것이 나을 수 있었다. 금방 죽지 않고 건물잔해에 깔려 옴짝달싹 못하고 언제 추가로 무너질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계속 생존해야 한다면? 그 답답함과 두려움을 견딜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무거워지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 지반은 붕괴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밖에는 바이러스와 약탈자들이 있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고, 나간다 해도 어디로 가겠는가. 밖은 무법천지에 여자 혼자서 지금 밖을 나간다는 것은 굶주린 맹수들의 먹잇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량과 물 문제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집에 있는 식량과 물을 다 가지고 가지도 못한다. 몸에 지닐 수 있는 정도의 양은 하루면 다 먹어치울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폭도들을 만나 도망치게 된다면 식량과 물은 다 버리고 도망쳐야 한다. 현주는 생각할수록 답이 없는 이 상황에 미칠 것 같았다.

 

다음날 또 다시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에 깨어났다. 훨씬 더 가까운 곳까지 붕괴가 되었다. 이 정도라면 며칠 안에 현주의 집도 안심할 수 없었다.

나가야 돼. 안 그러면 깔려 죽어. 현주는 붕괴지점을 보며 생각했다. 그러나 나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영도 못하는 자신이 불구덩이를 피해 어쩔 수 없이 깊은 호수에 몸을 던지는 기분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현주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손톱을 뜯으며 거실을 왔다갔다했다.

‘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뭘 잘못했어? 남한테 피해 안 주며 살려고 성실하게 노력했어. 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남 배려하면서 착하게 살았어.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근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 갇혀서 불안에 떨어야 돼? 왜? 왜? 왜! 왜! 왜!’

“아악!!!”

현주는 갑자기 소리를 마구 질렀다. 자신을 이렇게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상황에 분노가 치밀었다. 여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킬까봐 조용조용 소리도 안 내고 불도 안 켜고 숨죽여 있었다. 바깥풍경 하나 제대로 못 보고 불안에 떨며 커튼을 닫고 그 틈 사이로 훔쳐보듯이 했다. 20일이 넘는 시간동안 먹을 것 못 먹고 나가지 못하고 바이러스가 집안으로 침투할까봐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람들과 단절되고 고립되어 끝없는 고독 속에 파묻혀 있었다. 이 모든 것들에게 시달려 누적된 답답함과 짜증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아아악!!!”

 

이 소리를 듣고 누가 지금 자기 집에 침입해 온다고 해도 악에 받쳐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주는 소리를 다 지르고 나서 가만히 숨을 골랐다.

‘나가자. 까짓 거 나가주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감염되어 죽는 거고, 나를 해하거나 겁탈하려는 놈이 있으면 목덜미를 식칼로 그어주자.’

 

그런데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딘가 거처를 정해야 했다. 회사 사무실로 갈까. 그런데 거기도 통제구역과 가까웠다. 이미 붕괴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붕괴되지 않았더라도 얼마 안 가 붕괴되리라.

‘역시 밖엔 안전한 곳이 없어...’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투지가 사그라들려는 찰나 문득 현민이 떠올랐다. 현민을 떠올리자 뭔가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이 상황에서 현민과 함께라면 왠지 더 안전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그런데 현민도 과연 자신을 그렇게 생각할까? 어렵게 현민의 집에 찾아간다고 해도 현민이 자신을 받아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밖에서 바이러스를 잔뜩 묻혀오는 성가신 존재로 보는 건 아닐까, 아니면 그저 식량을 축낼 존재로 보는 건 아닐까. 평소 현민의 성격으로 봐선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이미 현민이 감염되어 죽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현주는 피를 토하고 죽어 있을 현민을 생각하자 너무 허탈해졌다. 생각보다 허탈한 감정이 커서 현주는 조금 놀랐다. 왜 감정이 이렇게 허탈할까, 방금 찾은 해답이 사라진다는 것 때문에? 아니다. 그럼 믿을 수 있는 동료가 죽은 거라는 실질적인 상실감 때문에? 그것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현민의 말이 떠올랐다.

“이기적으로 생각해.”

 

그래, 이기적으로 생각하자. 자신을 보고 왜 왔냐고 다그치면 이기적이 되라면서요, 라고 뻔뻔하게 따지자. 가만히 있자니 건물에 깔려 죽을 거 같아 너무 무섭고 갈 데도 없어서 찾아왔다고, 직장상사이고 평소에 많이 일 시켜먹었으면 이 정도는 책임져 줄 수 있지 않냐고, 나도 생존에 도움이 되겠다고, 얼굴에 철판을 깔자. 현주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마음이 좀 편해지고 각오가 서는 것 같았다. 현주는 노트와 펜을 꺼내 책상에 앉았다. 결론을 내렸으니 이제 계획을 세울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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