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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스압] Rewinder 3~4
게시물ID : panic_990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홍염의포르테
추천 : 4
조회수 : 56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8/10 17:40:45
 3화와 4화입니다. 다음 연재는 내일 올리도록 할게요.

(추천과 관심 댓글은 언제나 힘이 됩니다!)

3.
 ////

다음 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나와 하연이가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평소라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기에 이것보다 10분에서 15분 정도 더 늦은 시각에 나오지만, 리와인더를 보고 난 뒤 감출 수 없는 찝찝함으로 인해 조금 더 일찍 집에서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안감일 것이다. 계획도 없이 시간을 되돌렸다는 것은 내가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거나, 다급한 상황에 당황해서 아니면, 꼭 되돌려서 막아야만 할 사건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었으니까.

 꼭 막아야할 사건이라고 하면 나라던가 주변의 소중한 가족 또는 친구에 관한 것일테고, 가족이라면 부모님은 사실상 내가 주의하라고 말할 것밖엔 없었다. 맞벌이를 하고 계시기에 그 시간엔 만날 수 있지 않았기에 이미 어젯밤, 조심하라며 당부는 드렸다. 그럼 떠오르는 건 하연이밖에 없었기에 계속되는 걱정과 불안감에 선잠을 자고는 아예 일찍 나와버린 것이었다.

 물론 사건이 발생하는 건 이틀 뒤의 그 날이기에 과민반응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찝찝함이 가시지 않을 것 같았다.
 
 평소보다 이르긴 했지만, 낮이 긴 여름이라서 밖은 이미 환했고, 저멀리 떠있는 해는 구름에 가려진 것이 보였다. 그 덕에 덥지는 않아서 그늘로 숨을 필요는 없었지만, 하연이에게 내가 기다린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조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기다려서 만난 적은 없었도, 가는 길에 만난 경우는 있어도. 멋쩍달까,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파트의 현관 안쪽으로 들어와 밖을 살짝 내다봤다. 건너편 아파트의 현관 입구가 초록빛으로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들여다 보였다.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나올 때가 되었는데... 설마 벌써 갔나? 조금 더 여유롭게 나온 것 같았는데.

 어차피 자전거를 타고가면 좀 더 늦더라도 여유는 있으니까 상관 없었다. 다시 한 번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고 고개를 들었을 때 건너편 아파트의 현관문이 열리며 하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마치 보지 못한 듯이 현관을 나와 바로 자전거 쪽으로 향했다. 아마 하연이 쪽에서 날 보고 먼저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자전거에 다가가 자물쇠를 풀고 있자 내 뒤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짝!

 "야!"

 등에서 살짝 따끔한 감각이 들며, 하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처럼 그렇게 세게 친것은 아니고, 살살 소리만 나도록 친 것이었기에 별로 아프진 않았다. 자물쇠를 풀고 고개를 돌려 돌리니, 밝은 얼굴의 하연이가 보였다. 난 이제 하연이를 처음 본 것처럼 인사했다.

 "어. 안녕."
 
 "왠일로 니가 일찍 가냐?"

 "어쩌다 보니, 일찍 나왔네."

 내 대답을 들은 하연이는 자전거의 뒷부분을 잡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태워줘~."

 "힘들고 더우니까 싫어."

 "힘들면 얼마나 힘들다고 남자가 말야."

 하연이는 불만스러운듯 눈쌀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나 거기서 굽힐 내가 아니었다. 안그래도 더운날 뒤에 누구를 태우고 갔다가는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땀에 젖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타고 싶으면 니가 날 태워. 덥단 말야."

 내 말을 들은 하연이는 한숨을 내뱉었다.

 "에휴.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니. 여튼 일찍 가야되는 건 아니지?"

 "어."

 "같이 가자."

 "이과는 수업 때 뭐해?"

 "거의 자습이나 애들 영화 받아서 보거나 그러지. 시험도 끝나고 방학 얼마 안 남았다고 수업 하는 선생 별로 없잖아?"

 "문과랑 똑같구나. 이과는 뭔가 좀 더 빡세게 시킬 줄 알았는데."

 결국 자전거를 끌면서 하연이와 나란히 걸어갔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돌아올 때에도 같이 올테니 거의 자전거는 짐에 가까울 뿐이었다. 그냥 놓고 올걸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이미 학교 앞이고 가져와버린걸 다시 가져갈 수도 없었다.

 "잠깐 자전거 좀 묶어놓고 올게."

 "응."

 나는 자전거를 끌고 교문 앞에 자전거를 주차장에 가져가 자전거를 묶었다. 전에는 비밀번호로 된 자물쇠를 썼었는데 그걸 깨서 훔쳐갔던 이후로는 아예 쇠로 된 자물쇠를 쓰고 있었다. 이것도 쇠톱으로 자를려고 하면 자를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도둑들은 보지 못했다.

 자전거를 묶고 오다보니 하연이가 책가방 말고도 손에 가방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체육복가방인데. 그러고 보니 화요일, 나랑 오늘 체육시간이 겹칠 것이다.

 "맞다. 너도 오늘 3교시 체육이지?"
 
 "응. 근데 너 체육복 안 챙겼어?"

 "사물함에."

 "좀 빨아."

 "당연히 ..."
 
 빠아아앙!

 우리의 뒤쪽에서 자동차 견적 소리가 갑작스럽게 울렸다. 나는 하연이에게 대답하다가 화들짝 놀라 도로쪽에서 서너걸음 물러서면서 뒤를 돌아봤다. 돌아본 곳에는 벌써 저 멀리 쌩하니 사라지는 SUV 한 대와 늦어서 바뀌려는 신호를 보고 미리 건너려다가 경적에 놀라 넘어진 놈이 보였다. 매일 다니다보니 신호 바뀌는 패턴을 보고 미리 건너는 저런 놈들이 항상 한 둘 있었다.

 “후우.”

 경적에 깜짝 놀란 탓인지 소름이 돋았다.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기분이었고, 식은땀이 몸을 타고 흐르고 옷을 적셨다. 이마를 살짝 닦아내려는 왼손이 무언가를 꽉 잡고있었다. 나도 내가 무엇을 붙잡았는지 몰라, 시선을 내리자 하연이의 팔이 잡혀있었다.

 경적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팔을 잡고 뒤로 끌었던 것이다. 하연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이 의문으로 가득차있다가 풉하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풉. 푸하하하. 뭐야. 뭐야. 왜 그렇게 놀란거야. 하하핫. 경적이 왜? 내가 더 놀랐잖아. 하핫."

 나는 나도 내 행동에 당황했다. 하연이의 웃음소리 때문인지 주변의 시선이 모였다.하연이는 너무 웃었는지, 눈물까지 닦고 있었다. 나는 당황함 뒤에 밀려오는 민망함에 일단 꽉잡았던 손을 놓았다.

 "뭐야. 아침부터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있어?"

 어느새 다가왔는지 뒤에서 지석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하연이가 대신 대답했다.

 "아니, 그냥 흐흥."

 하연이는 설명하기엔 조금 애매한지, 그럴 생각이 애초에 없었는지 가볍게 얼버무렸다. 나는 민망함에 시선을 여기저기 돌리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보고는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빨리 가자. 늦겠다."

 "응. 그러네. 풋. 가자."

 하연이가 살짝 미소짓고는, 먼저 앞서갔고, 그 뒤를 나랑 지석이 따라갔다. 앞쪽의 교문에서 선생 한 명이 애들에게 손짓하며 빨리 들어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건물에 들어갔다. 이과는 3층 문과는 2층이었기 때문에 지석과 나는 한층 더 올라가려는데, 하연이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찌르고는 속삭였다.

 "아까. 쪼오~끔 박력있긴 했다?"

 하연이는 엄지와 검지를 살짝 벌리고는 웃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뛰어서 교실로 들어가버렸다. 지석이는 눈치 못챘는지 먼저 계단을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그 뒤를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 왜인지 얼굴이 조금 화끈한 느낌이었다.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곧바로 담임이 오면서, 시끌시끌하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조금 느긋하게 학교에 온 탓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담임은 간단하게 출석체크를 하고, 이제 곧 방학이니 어쩌니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는 조례를 마치며 나갔다. 어차피 10분남짓한 조례시간에 뭘 이야기하기도 힘들긴 했다. 담임도 1교시 수업을 준비할테니, 아니 기말 시험이 끝나서 하지 않을려나.

 나는 가방에서 학원 교재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지석이한테 노트도 빌려야할텐데. 일단은 오늘 과제가 먼저였다. 어차피 수업도 자습일테니 숙제를 해도 딱히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4.

////

 1교시부터 쉬는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숙제를 하고 있으니 어느새 2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렸다. 1교시부터 2교시까지 선생들도 들어와 자습을 시키고 자기 할 것을 했기에 따로 지적하지도 않았고, 애들도 서로 떠들거나 각자 할 일을 했기에 방해해오지는 않았다.

 3교시인 체육도 1, 2교시처럼 자습이면 좋겠지만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체육을 밖에서 수업을 하는 것 같았다. 시험 기간 직전을 제외하면 실내 수업은 하지 않았으니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 뭐. 거의 공을 주면서 자유 시간을 주겠지만 이 더운 날에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공놀이를 좋아하는 애들은 상관없이 잘 놀 것이고 나도 공놀이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이 날씨에 땀까지 흘리고 싶지는 않았다.

 스탠드의 그늘에 앉아서 시간이나 때워야지. 어차피 숙제도 거의 끝내서 4교시에만 조금 하면 되기에 문제집을 챙길 필요는 없었다. 나는 체육복만 입고 스마트폰을 챙겼다.

 다른 애들도 비슷했다. 체육복을 입고는 축구화로 갈아 신는 애들이나 단어집 같은 공부할 것을 챙기는 애들도 보였다. 지석이도 운동장에서 한바탕 할 예정인지 교실에서부터 몸을 푸는 동작을 보였다.

 슬슬 쉬는 시간이 끝나가기에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계단과 복도에서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시끄러워 재빨리 밖으로 나오니 햇빛이 눈을 찔러대는 통에 눈을 찌푸렸다. 모래로 가득한 백사장 같은 운동장이 햇빛을 반사하기까지 해서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아침엔 구름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으…….”

 신음소리가 저절로 배어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스탠드의 그늘로 숨었다. 건물의 반대쪽 끝 계단에서도 여자반 애들이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고, 그중에서는 하연이의 모습도 보였다. 긴 팔의 체육복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긴 팔을 입으면 덥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햇빛 때문에 저렇게 입는 건가? 어차피 운동은 안 할 테니 더운 건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멍하니 하연이 쪽을 보다가 너무 오래 보고 있었나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얼마 되지 않아 체육선생이 나왔는지, 스탠드에 앉아있던 애들이 일어났다.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우리 반 체육선생은 나와서 우리에게 간단히 체조만 시킨 뒤 다시 교무실로 들어갔다. 이따가 끝나기 5분 전쯤 다시 나와서 반장이 빌려온 공을 가지러 오겠지. 어떻게 보면 날로 먹는다고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자습을 시키는 다른 수업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나이 지긋한 선생이 열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을 테고, 우리한테도 편한 방향이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선생이 들어가고 나는 자연스레 다시 스탠드 그늘로 와서 앉았다. 다른 애들도 일부는 축구공이나 농구공을 들고 사라졌고, 일부는 나처럼 스탠드 그늘로 들어왔다. 멀리 하연이가 있는 쪽은 선생이 아직 무언가를 시키는지 아직도 모여 있었다.

 스탠드에 앉아있으니 밤에 잠을 설친 것 때문인지 아니면 오전 내내 숙제를 해버린 것 때문인지 졸음이 눈꺼풀을 짓눌렀다. 어느새 운동장에 반사되는 햇빛은 이미 눈에 익숙해져 눈부시지 않았고 은은하게 느껴졌다. 눈꺼풀은 조금씩 감기고 고개가 꾸벅이며 졸고 있을 때쯤, 뒤쪽에서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는 짐작이 갔다. 아마 하연이겠지.

 탁.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살짝 돌려 등 뒤로 날아오는 손을 잡아채었다. 하연이의 손목은 내 손에 잡혔고, 하연이는 손을 잡힐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놀란 소리를 냈다.

 “앗.”

 비단 놀란 것은 하연이뿐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움직인 몸에 놀랐다. 하연이가 뒤로 온다는 것은 발소리로 알았지만 몸의 반응은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설마 이것도 시간을 되돌린 것에 대한 데자뷰인가 싶어서 실소가 나왔다.

 “뭐야. 오는 거 봤어?”

 “아니, 발소리가 들리잖아.”

 “그래?”

 하연이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별로 납득한 표정이 아니었다. 사실 발소리를 들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연이는 내 옆에 나란히 앉아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애들을 보면서 물끄러미 살피며 말했다.

 “넌 축구 안 해?”

 “안 해.”

 “왜? 할 때도 있었잖아.”

 “지금은 덥잖아. 땀 흘리기 싫어.”

 “흐으응.”

 하연이가 고개를 돌려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눈빛을 직접 마주하지는 않았지만 부담스럽게 느껴졌기에 시선을 피하고자 시비를 거는듯한 대답으로 말을 돌렸다.

 “너도 안 하면서 뭘 그래.”

 “난 여자잖아.”

 “그거 상당히 성차별적인 발언 아니냐.”

 “알 게 뭐야. 그런 거.”

 하연이의 대답에 한숨을 내쉰 나는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학교라서 소리는 꺼놨기에 소리는 안 울렸다. 근데 나는 마치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만지다 걸린 것처럼 몸이 굳었다.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했다. 다행히 문자였다. 망할 스팸 광고 문자. 그래도 혹시 몰라 하연이에게 보이지 않게 REWINDER 어플을 켜서 확인했다. 혹시 몰라서 확인한 어플에는 시간을 되돌린 흔적은 없었다. 푸시알림이 떠 있지 않았으니 시간을 되돌리지 않았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확인하지 않고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 하연이가 내 휴대폰을 들여다보려고 하길래 화면을 숨기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하연이가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뭐야. 뭐야. 숨기는 거라도 있어?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확인을 해?”

 “아니, 아무것도 아냐.”

 “여자친구라도 생겼어?”

 “내가 여자친구가 생겼으면 니가 모를 리가 있냐.”

 “그렇겠지. 흐흥. 하긴 니가 생길 리도 없고 말야.”

 “무슨 의미냐.”

 하연이의 말에 발끈한 나는 하연이를 째려보았다. 하연이는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 뭐 거의 항상 공부만 하고, 여자애들한테 관심도 없어 보이고, 공부 때문에라도 여자친구 안 사귈 것 같은 이미지잖아? 그냥 그렇다고.”

 “....”

 이해 가지 않는 말은 아니었다. 겉보기엔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공부에 집중하고 있기도 했고. 그러나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엉뚱한 곳을 보고 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숨기고 있긴 했지만... 눈치채지 못할 건 아니었다.

 “진하연! 여기서 뭐 해?”

 “반장? 그냥 이야기 좀. 선생한테 갔다 왔어? 뭐래?”

 하연이를 부른 것은 하연이네 반 반장이었다. 이름이 지혜였나? 지혜는 하연이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별건 아냐. 근데 말야 체육 진짜 기분 나쁘지 않아? 말투도 그렇고~.”

 “맞아. 맞아. 약간 훑는 듯이 쳐다보는 것도 그렇고 진짜 싫지.”

 지혜는 하연이의 말에 소름 돋는다는 듯이 오른손으로 왼팔의 팔뚝을 문질렀다.

 하연이 반의 체육선생이면 30대의 그 사람인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 선생은 남자애들을 거의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기에 우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여자애들한테는 또 다른 모양이었다. 그 선생이 여자애들을 대하는 언행도, 그 선생에 대한 여자애들의 태도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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