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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글리젠이 없어서 추천이 많은 거같으니 올리는 추리스릴러 9~12
게시물ID : animation_4346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홍염의포르테
추천 : 6
조회수 : 36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8/19 16:51:11

여기선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있는 것 같기도..?


그나저나 오버로드는 왜 8권을 5화나 내고 6화 보니 7권 스킵은 많이하는거 같네요.... 9권은 제대로 나올려나..



9.


그때 하연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답장을 보낸지 얼마 안 되어서 바로였다. 지금 시간은 학원에 있을 시간일텐데.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남석? 일어났어? 몸은? 괜찮아?”


“어. 뭐. 조금 긁힌 거 빼곤 괜찮아.”


“정말? 진짜 괜찮은 거지?”


하연이가 호들갑을 떨며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나는 아직 이래저래 아픈 곳이 있었지만, 하연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괜찮다니까. 그냥 좀 긁히고 한 게 다야. 입원도 안 해.”


“미안. 나 때문에 정말.... 미안. 정말 괜찮은 거지?”


하연이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계속 물어보는 탓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하며 하연이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넌 괜찮아?”


“응...”


“다행이다.”


“...”


말이 끊겼다. 무슨 말을 해야 될 지 몰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전화 너머에서도 아무런 말이 들리지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볼까 고민하는데 으음 거리며 뜸 들이는 듯한 소리만이 들렸다. 하연이는 그렇게 뜸을 들이다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그 여자애.... 아는 애야?”


“여자애?”


“횡단보도에서 니가 잡았던 애.”


“아.”


그 개념 없던....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지?


“아니. 왜?”


“걔한테 뭐했어?”


“아. 그거 그냥 차가 미친듯이 달려오는데 앞으로 가길래 위험해 보여서...”


생각해보니 그 여자애를 잡을 때 나를 째려보던 하연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 그래서 잡은 거야. 그냥 위험해보여서. 아마 미리 내가 안 잡았으면 아마 치일 것 같았거든.”


“....”


“하연아? 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


“아. 응. 아니 아무것도. 그랬구나. 몰랐어. 미안.”


“응? 뭐가?”


난 갑작스레 다시금 사과하는 하연이를 이해할 수 없어 반문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하연이의 감정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하연이는 내 물음에 답해줄 생각은 없는 듯 뒤이어 말했다.


“고마워. 구해줘서.”


하연이의 말을 듣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 그래.”


고맙다고 말하는 하연이의 목소리를 듣자 약간 쑥스러운 감정과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온몸의 고통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상처가 다 나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뿌듯함은 뿌듯함이었고 해야 할 말은 해야 했다.


“저번에...”


그러나 말을 꺼내려는 순간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더니, 하연이가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 나 수업 들어가야 되네. 끊을게.”


“아. 그래. 열심히 하고.”


삑. 전화가 끊어졌다. 이번에 말을 못한 것은 아쉬웠다. 하지만 내일 만나서 하면 되니까. 문제는 없었다. 다행히 하연이가 화가 풀려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문자로 말하기에는 좀 그렇고, 내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야지. 화가 풀려있어도 사과는 직접 만나 해야한다.



다음날 새벽.


어제 오후 하루 종일 기절해있었던 탓인지 퇴원을 하고도 별다른 것 없이 누워 잔 탓인지,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에서 깼다.


더 누워서 잘까도 생각했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잠깐 나가 산책할 생각에 간편하게 옷을 입는다. 반팔티에 팔을 집어넣는데, 뻐근한 꼴이 어제 일을 상기시켰다.


스마트폰을 들고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여름이긴 하지만 아침 이슬에 젖어있는 새벽공기는 조금 쌀쌀한 느낌이다. 촉촉하고 싸늘한 공기가 정신을 또렷하게 만든다.


스마트폰을 들어 괜히 Rewinder를 켜본다.


흠....


이것을 활용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것이 왜 내게 생겼는지 모른다. 내가 이걸 어디에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있다면 써봐야지.


정보가 제한적이니 활용하려면 미리 규칙을 정해야 한다.


아주 중요한 사항,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3번까지만 되돌리고, 그 이외는 포기한다. 그 되돌린 횟수에 따라서 되돌린 일에 대한 중요도를 결정한다.


그 이상이라면 되돌리지 않으면 안되는 일. 그것들을 구분한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나 싶지만은...


그리고 다음은 시간. 되돌린 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3일이라는 시간이 되돌아가지만, 미리 계획을 세워둔 거라면 맞춰둔 시간에 되돌리는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계획에 없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에 따라 상황대처를 다르게 할 수 있었다.


돌발 상황에 따른 대처라고 하더라도, 가능한 한 어느 정도 정해둘 수 있지 않을까.


계획의 시간은 매시 정각에 계획에 없지만, 여유가 있다면 매시 30분, 그 이외이거나 중요하다면 그 이외의 시간으로 해놓기만 해도 어느정도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 이정도만 정해두면 되지 않을까? 막상 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아파트 앞 계단에 앉았다. 시원하다.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돌발상황이라는 것은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일도 끝났고 추가적으로 발생한 리와인드도 없었다. 만약 돌발상황이 없다면?


.......


.......


.......


솔직히 고생도 했고, 이미 내 손에 들어온 것,


어디에 쓰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어디에 써서 안 된다거나 할 리도 없다. 없어질 것이라면 진작에 없어졌을 것이다. 이미 처음 시작은 복권번호 예측이었다. 쓰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이번에 하연이에게 고백하는 데에 사용...... 그래. 비겁한 짓이다.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욕심이라는 것이 있었고 두려움이 있었다.


하연이와 사귀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거절당할지도 모를 두려움이 있었다.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다만 그 결과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다는 비겁함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가 찌질하게 보이기도... 아니 전부 자기합리화, 변명일 뿐이다.


아니 그래도 알고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그 고백의 결과에서 도망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다. 어찌 보면 기만일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나밖에 모른다.


“하.”


그래. 이미 하려는 것에 벌써부터 회의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해보지도 않고 후회부터 가질 필요야 없지. 이런 걱정보단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가 중요하다. 어차피 안 할 것도 아니니 말이다.


오늘 하연이와 만나서 먼저 사과를 하고 난 뒤, 고백은... 내일이 나으려나. 목요일의 그 일을 반복하는 짓은 절대 사절이었다. 이미 해낸 일이었고, 하기 싫은 것은 아니다. 사람을 구한 일이다. 그만큼 보람과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다시 하라고 했을 때 그것을 다시 해낼 자신이 없었다. 이만큼이나 잘 해낼 자신이 없었고, 만약 실수를 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단지 되돌렸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꼬인 것이 많았기에, 다시 한 번 되돌려서 그 시간을 반복할 때 내가 똑같이 혹은 더 이상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그 시간을 반복하게 되었을 때 혹시나 하연이가 사고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니 시간을 되돌린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시간 이후로 되돌리는 것은 계획 자체를 내가 모르기 때문에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월요일 아침 그 이전은 안된다.


오늘은 일단 하연이에게 사과하고 고백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늘은 학교고 학원이고 이래저래 바쁠 테니까 내일 시간을 내서 그때 하도록 하자.


조금이라도 미루는 이유는 사실 만약이라도 차인다면 그 시간을 최대한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해보지도 못한 일이지만 차인 뒤의 일을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한지석에게 이전에 말했던 것을 철회하고 제대로 다시 말해야 한다. 기본적인 예의라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벽이라 그런지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윽고 아침, 깁스 같은 것은 하지 않았지만 아픈 몸으로 자전거를 타기엔 무리가 있었다 때문에 걸어서 등교를 할 예정이었지만, 엄마의 걱정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차를 타고 등교를 하게 되었다.


등교 시간에 딱 맞춰 온 탓에 하연이의 얼굴도 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야 엄마가 조금이라도 안심하실테니 편안히 등교한 것으로 위안으로 삼았다.


내가 교실에 도착했을 때, 나를 바라보는 애들의 시선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어제의 일이 있던 탓인지,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머쓱한 느낌이 들어 서둘러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애들이 수근거렸지만, 곧 선생이 들어오며 시끄러운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담임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어제의 일을 모르는지 평소처럼 간단히 조례를 하며 마치는 듯 보였다. 출석부와 빈자리가 없는지 확인하고는 출석부를 챙기며 수업을 잘 들으라는 말과 함께 몸을 돌렸다.


“아. 그리고 등하교길에 차 조심해라.”


탁.


그 말을 뒤로 문을 닫고 나갔다. 딱히 누군가를 지칭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내 얼굴을 슬쩍 스치듯이 본 것은 모르지는 않지만, 큰 관심도 없는 것이 느껴졌다. 결석만 아니면 문제 없다는 것처럼 무심한 태도였다.


10.



“야야. 어제 어떻게 된 거야?”


담임이 나가자마자 앞자리에 앉은 애가 몸을 돌려 물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건 한지석이었지만, 이렇게 시선이 끌려있는 상태에서, 여럿이 있을 때 꺼낼 이야기는 아니었다. 눈으로만 한지석을 쫓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한지석은 애들과 달리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 자기 할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멀리 던져놓았던 시선을 다시 끌어 당겼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하지? 하연이를 구했다고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엔 뻘쭘해서 얼버무리듯 말을 이었다.


“그냥. 사고가 날 것 같아서 몸이 저절로 뛰어들었어.”


앞자리에 앉은 남자애는 내 말을 듣고는 머리에 물음표가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응? 나는 네가 한눈 팔다가 치였다고 들었는데?”


“무슨 소리야?”


나는 순간 이해하지 못해 반문했다.


“아냐?”


“아니, 그게...”


나는 왜 소문이 그렇게 퍼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직업 경험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모를 수도 있었다. 같은 상황이었다고 해도 시점이 다르다면 다르게 보았을 수도 있었다. 사실 여기서 그 장면을 직접 본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리고 소문은 와전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급하게 뛰쳐나가 다른 사람을 구한 일을 착각할 수 있는...


“응?”


“... 다른 사람이 치일 뻔해서 도와주다가 대신 치인거야.”


“....”


내 대답을 들은 남자애의 얼굴은 불신으로 가득했다. 마치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나는 뭐라 더 항변하고 싶었지만, 1교시의 선생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이후로도 출처는 알 수 없었지만, 물론 알아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비슷비슷하게 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하연이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남이 어떻게 알고있던 상관없었기에 굳이 정정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누가 그렇게 이야기를 퍼트렸는지는 궁금했지만 단순히 궁금증에서 끝일 뿐이다. 신경을 쏟을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피차 서로에게 관심도 없었으니까.


신경을 쏟을 부분은 한지석에게 어제의 이야기를 어떻게 철회할 것인지, 그리고 하연이에게 어떻게 사과를 하면 좋을지 고민할 뿐이었다. 미리 고민해봤자 소용없을지도 모르지만.


점심시간,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한지석을 따로 불러냈다. 한지석은 불려나온 것에 조금 언짢은 듯한 태도를 보였다.


“왜?”


“저번 이야기 말인데.”


“저번? 어떤 이야기?”


한지석은 약간은 의외라는 느낌인지, 짐짓 모른척하는 것인지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열며 말했다.


“... 니가 하연이랑 사귀어도 되냐고 물었던 거 말야.”


“... 그게 뭐.”


한지석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입을 열기가 한층 망설여졌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도 의문이었다.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 생각이 다물어진 입술을 더 꽉 옥죄었다.


그러나 이것은 최소한의 예의였다. 개인적인 범위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배려의 영역이라고.


“음... 그러니까 그 때 했던 내 말 취소다.”


“어.”


그러나 내 각오와 달리 한지석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오히려 내가 그 대답에 당황할 정도로 냉담하게 느껴졌다.


“뭐? 그러니까 나도 하연이에게 관심 있다고. 제대로 들은 거야?”


“그래. 알았다고. 끝이야?”


“....그래.”


“간다.”


뭐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 때, 나에게 지나가듯이 말했었지만, 진심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내가 불안해 했었고, 그러나 며칠새 변한 태도가 이렇게 바뀌다니 이해가지 않았다. 단순히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냥 터무니 없다고 생각한 걸까. 굳이 왜 나한테 이런 걸 말하냐라는 느낌.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라 그런 걸까. 신경쓰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진행에 얼떨떨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도 일단은 예의는 지켰다. 단순한 자기만족이지만.


떨떠름한 기분이었지만, 아직 해결해야하는 것이 하나 남았다. 하연이에게 사과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점심시간에 둘 다 끝내는 것이 목표였으나. 역시 생각대로는 안 되는지 애매한 시간만이 남아있었다. 방과 후, 남아서 이야기하는 게 최선이겠지.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하연이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학교가 끝난 후, 할 말이 있으니 잠시 남아달라고.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읽었는지 순식간에 읽음표시가 떴다. 그래도 무시하지는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어제 연락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 찾아가는 것에는 살짝 망설임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 주변의 시선도 있었으니까.


교실에 들어가기 전, 휴대폰이 울렸다. 리와인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움찔했지만, 하연이로부터의 답장이었다.


‘응 알았어’


간단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집이나 학원, 피시방 등등 학교에서 빠져나갔다. 놀러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에 신경쓴 적은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애들이 하나 둘 나가고 난 뒤, 눈치를 보며 빠져나왔다.


강당 뒷편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리니, 하연이가 오는 것이 보였다. 막상 불러내기는 했지만, 머릿속은 아직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간단하게 사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하연이를 보니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내 심정을 알고있는지, 내 쪽으로 다가오는 하연이의 모습도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새 내 앞에 서있는 것을 보면 착각이겠지.


내가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입술을 가만히 냅두지 못하는 사이 내 앞에 멈춰선 하연이가 내 눈을 마주보고 꼭 다물었던 입술을 떼었다.


“... 몸은 괜찮아?”


하연이가 오른손으로 왼쪽 팔꿈치를 감싼채 조심스럽게 나와 눈을 맞추며 말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몸을 움츠렸다.


“어. 하연이 넌 괜찮아? 다친데 없지?”


“괜찮다고 했잖아. 다행이다. 겉보기에도 괜찮아보이네. 근데 왜 불렀어?”


“아. 그게...”


나는 코잔등을 긁으며 말을 끌었다.


“.......”


하연이는 평소와 달리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히려 그 모습이 평소보다 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하연이의 시선이 내 입술을 비집고 여는 느낌이었다.


“며칠 전에 내가 화 냈던 거. 미안해. 너 나름대로 걱정해준 거였는데, 내가 음......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그랬던 것 같아.”


“아? 응. 괜찮아. 그 때는 나도 잘못했고...”


하연이는 왼팔을 쓸어내리며 말 끝을 흐렸다. 뒷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거린다. 나라도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야지.


“아냐. 내 잘못이지. 그렇게까지 정색할 게 아니었는데.”


“.......”


하연이가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리고 무언가 기다리를 나를 바라본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하연이의 눈빛이 바뀌었다. 아까는 약간 기대감이 차있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실망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눈동자에 가득해지자, 하연이가 입을 열었다.


“할말은.. 그게 다야?”


“...”


하연이가 뭘 바랐던 것인지 알지못한 나는 그 기대에 대답할 수 없었다. 열심히 고민해보긴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여기서 헤어져 버리면 분명 후회할 거라는 생각만 들었다.


“하아......”


하연이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붙잡지? 뭐라도 이야기를 해야... 아니,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지? 머릿속을 열심히 굴려보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한지석에게 철회을 하고, 하연이에게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


...


...


...


그리고나서 고백이었다. 고백을 하는 것. 고백. 고백.



11.

...

....

.....


고백은 주말에 하려고 했었다. 그러려면 약속을 잡아야 하지 않나? 그 이야기라도 할까. 사실 그 이야기 말고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도 내가 미리 생각했던 것이라 떠오른 것이지, 임기응변이 약한 나로서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 이후,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하연이가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하연아!”


“... 왜?”


이미 그 눈엔 기대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돌아봤다는 건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이었다.


“내일 시간 돼?”


“내일? 음... 왜?”


“아. 그러니까... 사과의 의미로 내일 밥이라도 살까해서. 할 얘기도 있고.”


“할 얘기? 으음. 주말 언제?”


나는 망설이는 하연이의 얼굴에서 다시 한 번 기대감을 엿보았다.


“일요일? 토요일? 편한대로 해. 내가 맞출게.”


“그러면... 일요일. 일요일로.”


그렇게 요일을 정하며 하연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뒤로 묶은 머리가 몸짓을 따라 흔들렸다. 내 눈동자도 그 몸짓을 따라 움직인다.


“그럼 일요일 점심에?”


“응. 아. 학원 늦겠다. 먼저 갈게!”


“어. 어...”


하연이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몸을 돌렸다.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눈은 여전히 그 궤적을 쫓았다. 긴장감은 순식간에 몸을 빠져나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평상시 대화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하연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감이 들며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안도감은 얼마가지도 못하고, 일요일의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막상 일요일에 만난다해도 말을 잘 꺼낼 수 있을지, 또 얼버무려 넘어가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다. 사실 리와인더가 있지 않았다면 주말에 만나자는 말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나도 돌아갈까. 어느새 하연이는 시야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나도 가방끈을 고쳐매고는 걸음을 옮겼다.


강당 뒤편의 그늘에서 나오자 아직은 높이 떠있는 햇빛이 나를 강하게 내리쬐었다. 정면에서 비치는 햇빛에 절로 눈을 찌푸리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앞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고 걷는다. 그래도 하늘 끝에서 구름 떼가 해를 집어 삼키려는 듯 달려오는 것을 보니 내일은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는 것은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반대로 좋아하는 편이라고 해야 하나. 쏟아지는 빗소리와 몸을 시원하게 식혀버리는 그 느낌이 좋았다. 비를 맞고 난 다음의 후처리는 문제이긴 하지만.


습관적으로 자전거를 묶어두는 곳으로 걸어갔지만, 거기에 가서야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다시 몸을 돌렸다. 학교가 끝난 지 좀 지난 탓에 애들이 몇 없었다. 신호를 놓쳐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는데, 멀리 횡단보도 끝을 건너고 있는 한지석의 모습이 보였다. 알은체할까도 생각했지만, 오늘을 돌이켜보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봤다. 의외로 시간이 꽤 지나 벌써 5시를 넘어갔다. 조금 서두른다면 학원에 늦지는 않겠지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시간이었다.


물리치료를 받기를 권장받았기에 물리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으나 그러면 확실히 학원에는 늦어버리는 시간이었다. 저녁도 굶어야 했다.


딱히 쉰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이제 막 학기가 끝나가고 있어서. 방학의 시작까진 학원도 좀 널널했다.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신호가 바뀌어 횡단보도 너머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맞은편에 도달해 인도의 연석에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뻔했다. 허벅지에서 느껴진 진동 소리 때문일지도 몰랐다. 우웅하며 울린 소리에 저도 모르게 힘이 풀린 것일지도.


나는 자세를 곧추세우며 인도에 서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하연이로부터의 문자이려나. 스팸일 수도 있었지만 좀 전에 하연이와 약속을 잡았으니 하연이로부터 문자가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연이로부터 문자라고 생각하니 막연히 불안한 생각이 들면서도 반대로 무슨 이야기일지 기대감과 궁금증이 그것을 억눌렀다. 바지의 주머니로부터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잠금을 풀었다.


그러나 잠금화면을 풀면서 느낀 것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막연한 불안감을 억누르는 궁금증과 기대감이 아닌 그것을 넘어선 거부감과 불쾌함, 그리고 역겨움이 내 속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스마트폰을 확인하려던 나는 바로 옆에 서 있던 가로수를 짚은 채 헛구역질 했다.


“우읍. 우에엑.”


위액이 역류한 듯 목 안쪽이 타는 듯이 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해 머릿속은 의문부호로 가득했다. 상황을 깨닫기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지만, 아무것도 떠오는 것이 없었다.


“켁켁. 크흡.”


겨우 정신을 차리고 불빛이 들어온 스마트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화면을 확인한 내 두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절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리와인더의 알람이 떠 있었으니까.



정신없이 집안으로 되돌아왔다.


왜 그렇게 구역질을 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면서 생기는 현기증 같은 것일까. 아니면 미래에 있었던 일에 대한 반작용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반작용이라기엔 기억나는 것이 전혀 없었다. 나의 기억까지 모조리 지워지는 상황에서 그것에 대한 일 때문이라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전자... 리와인더로 인한 후유증이나 부작용으로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이미 교통사고 때와 그 이전에 복권을 통해 실험할 때는 이런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면 단순히 몸이 좋지 않은 탓일까.


그래. 리와인더의 알람이 겹친 일은 단순히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급체라던가 순간적인, 그저 단순한 현기증일 수도 있었다. 의학적으로 배운 것이 없으니 뭐라고 단순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냉수를 한잔 받아 단숨에 넘겼다. 정신이 좀 드는 느낌이었다. 속이 쓰린 것도 조금은 가셨다. 조금 전의 그것은 우연이라고 치더라도. 리와인더의 알람은...


스마트폰을 다시 한번 열어 리와인더를 확인했다. 리와인더가 울린 시간은 5시 2분. 조금. 애매한 시간이었다. 계획대로면 정확히 매시 정각해 보내기로 생각했었는데 그것과는 오차가 조금 있었다.


시간이 조금 차이 났다거나 돌발상황이라는 뜻인데... 2분 정도는 오차범위 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마 고백은 어떤 형태였든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하아.”


이래저래 갑갑한 기분이었다. 고백이 거절당한 게 아닌 고백을 제대로 시도를 한 건지 아닌지도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나는 한가지를 깨달았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은 고백이 성공했을 때였다. 고백에 성공해서 하연이와 사귀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 거지. 오한이 들었다.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내가 죽을 뻔하기라도 하는 건가.


... 어차피 수많은 가정 중 하나일 뿐이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리 예상하고 추측하더라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 그것이 들어맞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근거를 만들어 과거의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계획을 만들고 그 계획에 따라 행동하여 나에게 추측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 기반과 근거로 쌓아 올린 추측으로 무슨 사건이 있었다면 그것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면 다행이다. 단순히 고백 실패라고 친다면 다시 시도하면 될 테고 아니면 포기해도 괜찮다. 조금 속이 쓰겠지만...


그래.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어야 할 텐데. 씁쓸하긴 해도 무슨 일이 생기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고백이 잘 되었는데 되돌렸다면 그만큼 심각한 일이라는 이야기일 테니.


떠오르는 방법은 역시 시간을 통해 추측하는 것이다. 딱히 그것말곤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12.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설정해야 했다. 내가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나서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지 않게. 학원에 가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무리겠지. 그렇다고 집 안에만 박혀있는 것도 조금 꺼림칙했다. 병원 때문에 못 갔다고 이유라도 만들어두는 게 좋겠지.


속도 어느 정도 진정된 참이었다.


나는 교복을 갈아입지도 않고 바로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물리치료실의 침대에 누워 다친 왼팔의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물리치료사가 치료를 위한 기기를 설정하고 나가자 나는 바로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 시간은 5시 50분. 아직 6시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 시간을 돌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부터 명확히 밝혀야 했고 계획은 최대한 빨리 수립하여야 했다. 그래야 다시 시간을 돌렸을 때 재빠른 대응을 할 수 있었다.


체크포인트로써는 내가 계획을 세운 직후가 가장 바람직하다. 시간을 되돌린 영향으로 계획 자체에도 영향이 갈 수 있으니까. 사실 이번처럼 아무런 계획 없이 되돌린 시간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자신은 없었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을 뿐이다.


만약 고백 실패로 시간을 되돌렸다면 그것이 제일 다행이었다. 원래에도 생각했었던 계획이었고, 그 계획에 따른 결과였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기엔 2분이라는 애매한 시간이 있었다. 이것부터 확실하게 분리시켜야 했다.


시간을 되돌린 것이 5시. 그 사유가 고백이라면 마음이 좀 쓰라리긴 하겠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게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8시까지여도 문제없겠지. 오차 범위는 5분을 마지노선으로.


차라리 이쪽인 것이 나았다. 그렇기에 먼저 설정했고 그렇게 되길 바랐다.


그리고 고백이 아닌 무언가 때문에 내가 시간을 되돌렸을 경우다.


무슨 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고백이 아닌 다른 것이라면. 그것도 준비도 없이 이렇게 시간을 되돌리게 된다면 그것을 긴급상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구분지을 필요성이 있었다.


만약 상황에 여유가 있다면? 6시에서 8시 사이. 그리고 그 안에서 정보를 세분화하면 되었다. 지금의 계획을 세우는 내가 알 수 있게 계획을 마친 시간 이후로 말이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상황은 따로 있다.


5시 2분이라는 시각이 그때가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 또는 내가 위험해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거라면 결국 나는 또 그 시각에 시간을 되돌릴 것이다.


그것도 여유를 좀 둔다면... 6시 이전에 되돌린 상황은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한다.


어느새 시간은 6시가 되어갔다.


6시를 기점으로 계획을 세워야 했다. 적어도 몇 분 단위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지금의 나에게 주기 위해서.


....


카톡!


계획을 한창 세분화하려 할 때 카톡이 울렸다.


-------



“흐응...”


학원 수업이 이제 곧 시작할 텐데 전남석의 모습이 아직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 주까지는 쉴 모양인 것 같았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으면서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인사만 하려 한 것뿐이지만...


입구 근처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오지 않나 싶어서 교실로 들어갔다. 친한 애들의 인사를 적당히 받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선생이 들어오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았다.


카톡이나 보내볼까.


‘오늘 학원 안 와?’


‘응. 지금 병원이야. 물리치료 받고 있어.”


‘많이 아파??ㅜㅜ.’


‘아냐 아냐 이럴 때라도 조금 쉬려고. ㅋㅋ’


“...  하아.”


누구는 아프다고 해서 걱정해줬더니 한다는 말이...... 사람 속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아까도 분명 고백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 타이밍에 고백이 아닐 수가 있나? 어떻게 사과만 할 수가 있지? 사내자식이 말야. 그나마 데이트 약속이라도 잡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화 내려했다. 아니 화를 내진 못하겠지. 그래도 그렇게 몸을 던져 구해줬었는데.


일요일엔 제대로 하려나 걱정이다. 제발 그때는 고백해야 할 텐데. 뻔히 좋아하는 거 알고 있고, 나도 싫은 티를 안내는데 왜 고백을 안 하는 거야. 일요일까지 고백하지 않으면 어쩌지. 차라리 답답한 내가 나서 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저 답장도 설마 나 안심하라고 한 건 아니겠지? 괜히 열이 올랐다. 안 그래도 더운데.


그저께 한지석이 했던 말이 틀린 것이 없었다. 왜 저런 눈치없는 놈을 좋아해서 고생인지. 정말 답답해서 정말 어제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바로 손절인지 뭔지를 했을 것이다.


그래. 어제.... 나를 구하려고 몸을 던지던 모습이 떠올랐다. 남을 위해서 그렇게 몸을 던지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내가 저번에 싸우고 나서 일부러 무시하고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나를 위해 몸을 던지던 모습. 그래. 평소엔 좀 맹한 것 같으면서도 그럴 때는 정말 멋있었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


그래도 이렇게나 둔하면 짜증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일부러 단답으로 대답했다.


‘그래. 쉬어.’


그리고 핸드폰의 화면을 끄고 넣으려는 찰나, 답장이 오면서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ㅇㅇ 공부 열심히 해’


나는 화면에 뜬 말을 보고는 구태여 메세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냥 덮었다. 속으로 한숨만 뱉으며 수업을 준비했다. 어쩌다가 내가...



///////


잠깐 카톡한다고 한 게 벌써 6시 5분을 넘어갔다. 하연이가 카톡을 안 읽는게 신경 쓰이긴 하지만... 지금은 이쪽이 더 중요했다.


갑자기 돌린 이유가 긴급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나 본인이나 누군가 위험해지는 걸까 어제 교통사고처럼? 주변의 사람, 가족이 다칠 수도 있었고, 어제의 사건처럼 모르는 누군가를 구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하연이를 구한 것이 되었지만 원래는 싸가지 없던 그 여자애가 다칠 것이었다. 그것과 같이 모르는 누군가가 다치는 일일 수도 있었다.


처음으로 알아낼 것은 그것이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시간을 되돌렸는가.


시간에 따라 그것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6시 8분을 지나고 있는 무렵. 6시 10분부터 20분 사이를 15분까지를 가족 그리고 20분까지를 친구... 친구라고 해봐야 하연이와 한지석 정도뿐이지만, 그리고 이외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애들을 25분까지. 그리고 아는 사람을 30분까지. 이 정도면 괜찮을까.


사실은 더 세세하게 짜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뒤의 시간을 더 효율 높게 활용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정보가 있으면 그 정보를 통해서 다시 한번 더 되돌렸을 때, 더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굳이 한 번에 해결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미래의 나를 믿었다. 분명 내가 그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되돌리지 않았을까. 아니라면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되돌려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회는 한번이 아니다. 차곡차곡 정보를 쌓을 필요가 있었다.


어느새 물리치료는 끝내고 집에 돌아와 빈둥거리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한지석에게 이야기를 부정하고, 하연이에게 사과, 그리고 데이트 신청. 어제는 그 사건이 있었다.  리와인더의 진가를 확인하게 되었다. 모르는 누군가가 교통사고에 당할 것을 막았다. 그것까진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불안한 점이 남아있었다. 시간을 되돌리므로 어긋난 일들.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했지만, 시간을 되돌린 후 그것을 의식한 행동 때문에 하연이와 다투고, 하연이가 사고에 말려들었다. 결국 구해내긴 했지만, 대신 내가 다쳐버렸다.


만약 다음에도 리와인더를 통해 누군가를 구하는 결과가 되었을 때 그 대가가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지 두려웠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세상엔 공짜 같은 건 없었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운명같은 걸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큰 대가에는 언제나 큰 위험이 따른다.


게다가 리와인더로 되돌려진 지금 나의 행동이 이전의 나와 어떻게 다를지 몰랐다. 무의식적으로 리와인더에 의해 조금씩 바뀐 행동이 상황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저번 리와인드처럼. 내 의지로 제어 가능한 부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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