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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연재] 404호
게시물ID : readers_322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밤의작가들
추천 : 1
조회수 : 19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8/25 21: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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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의 병원 안.

시간은 자정을 조금 넘겼으며, 

유리에는 낮에 내린 빗방울이 덜 말랐는지 창밖 불빛들이 불꽃처럼 빛나 보인다.

복도도  어둠으로 인해 꼭 무언가 튀어나올 거 같은 무서움이 느껴지지만, 
 
유일하게 불 켜진 복도 중앙 카운터에는 쪽잠을 자는 사람도 보인다.

이런 적막과 어두움이 있기에 밤은 고요한 시간을 보낼 줄 알았지만, 
 
복도 끝 404호에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짧은 단답형의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전화를 하려면 남들 다 자는 병실이 아니라 밖에 나와서 해야 할 것을 참으로 예의가 없는 젊은이이다.
부모에게 멀 배웠는지 안 봐도 예상이 간다.

그러고 보면 404호에 있는 사람들은 병원비가 없거나, 
 
큰 대학 병원을 가지 못해 오늘, 내일 하는 사람들을 모아둔 방이 아니었던가.
병원장이 밥 먹을 때 편식도 잘하더만, 
 
있는 자와 없는 자 구분도 귀신같이 해내는걸 보면 의사이기보다는 역술가에 가까워 보인 사람이었다.

404호 병실 안, 침대는 6개 있지만 사람은 4명밖에 보이질 않는다.

끝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을 모아 놓다 보니, 
 
문틈으로 안 좋은 기운도 느껴지는거 같고 방 호실 숫자도 왜 이리 무서워 보이는지. 
 
왜 간호사들이 이층에서 일을 안 하려고 하는지 알 거 같다.

잠깐, 4명이라니. 저방엔 내가 알기로 3명이 옮겨진 걸로 알고 있는데. 다시 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

문에 붙은 창문을 통해 보니 창가쪽 침대에 머리로 추정되는 둥그런 물체가 두 개가 보인다.

확인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문 손잡이에 오른손 검지를 걸고 고민하던 그때 말소리가 순간 또렷이 들린 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가는 길에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싫은 남자의 마지막 체면이었을까.

"...... 아들아, 다행이구나. 마지막 가기전에 그래도 너를 보고 갈수 있다는 것이 내가 받은 마지막 축복 같구나. 
 
너에겐 너를 버린 아버지로 기억하겠지만, 난 너를 배불리 먹이고 싶었던 아버지였단다. 

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소식이 끊긴 뒤, 난 술로 계속 한탄만 했었다. 
 
난 네 엄마가 사업이 망해도 같이 옆에 있을줄 알았단다. 
그것도 태어난 지 이제 갓 돌 지난 애를 버리고 갈 줄 상상도 못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얼마 뒤 장모님이 찾아오셨고, 
 
내 꼴을 보고는 너를 데려가 키우겠다 하시더라. 
어차피 내가 키울 힘도, 가족도, 의지도 없었기에 난 쉽게 포기했었지. 

그런데 그때 난 너를 포기했었으면 안 됐었어... 
얼마 뒤 너를 찾으러 갔을 땐 넌 이미 입양 간 뒤였고, 장모님은 찾아오지도 말라고 문전박대를 하더구나.

어차피 혼자인 걸 다시 한번 느꼈지만, 네 얼굴이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게 무서웠단다. 

그리고 너를 커서 만나면, 따뜻한 밥이라도 사주고 싶었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막노동부터 청소부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다 했었단다.

그 뒤 20년이 넘게 일을 하고 돈을 모았지만, 빚쟁이들은 어찌 알고 찾아오는지... 
 
이제 수중에 남은 건 내 병원비로 들어갈 1000만 원 밖에 남질 않았구나.

그런데 왜 수술을 하질 않았냐고?

수술 날짜가 잡히고, 병원 침대에 홀로 누워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아프다고 문병오는 이 하나 없고, 어쩌다 오는 빚쟁이들은 얼른 나아서 돈 갚으라고만 하고, 
 
네 소식은 알 길이 없으니 내가 악착같이 살아서 뭐하지란 생각이 들더구나. 

어차피 수술해서 완쾌된다 하여도 나이만 들었지 입원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해야 하고 받는 월급마다 빚쟁이들이 들고 가니, 
 
이 반복되는 일상이 싫었단다. 
 
그래서 수술비가 없다 하였고 이 병실로 오게 된 거란다.

하지만 아들아 넌 다르게 살아야 한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고 싫증 난다고 하루하루를 후회와 한탄만 하며 살지 말거라.
 
네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걸 봐도 고마워하고 감사해하며,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단 걸 기억하거라. 너의 그 한탄이 널 보고파 하는 이에겐 슬픔으로 기억될 수 있고, 
 
네가 지겨워하는 일상들로 인해 사랑했던 이와의 기억마저 지겨움으로 기억될 수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아들아, 이렇게 날 찾아와줘서 고맙구나, 하지만 내일은 안 찾아와줬으면 한다. 

이미 내 몸은 끝을 향해 달리고 있고, 내 의지도 이미 살기를 포기한지 오래니 말이다. 
 
너를 계속 봄으로써 일찍 수술하지 못한 내 결정에 후회를 하기 싫고, 
 
죽는 순간까지 너를 걱정하며 가기 싫구나. 
 
난 오늘 이 밤이 신께서 내게 주신 황홀한 꿈이라 생각하며 잠을 청하려고 한다. 
 
그러니 그만 울고 내일 눈을 떴을땐 예전처럼 보지 않았으면 하구나."
 
 

 
Written by 2585 / 밤의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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