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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48).
게시물ID : love_439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가입:2011-09-21 방문:2587)
추천 : 16
조회수 : 2692회
댓글수 : 30개
등록시간 : 2018/08/25 23:19:05
"이거. 카레 해놨어. 오빠 그래도 카레는 덮힐 줄 알잖아. 냉동실에도 있으니까 전자렌지에 해서 먹어. 
반찬들 다 큰 통에 넣어놨는데, 또 다 꺼내서 먹지말고, 조금씩 꺼내먹어. 알았지? 통째로 먹음 상한단 말야. 조금씩. 먹을만큼만?
양말이랑 속옷도 서랍에 보면 있어. 세탁소에 오빠 겨울옷 다 맡겨놨으니까, 찾아가 알았지?
술 너무 많이 먹지 말구..."
"...울지 말고 말해. 하나도 못 알아먹겄어-_-"

그냥 저렇게 썻다만, D는 출국 전 날 밤. 저 말들을 엉엉 울면서 했다. 



일본여행다녀오고, 1주 뒤.
나는 D를 혼자 중국으로 보내보았다. 
재단에서 장학증서 수여식 뭐 그런게 있어서 행사에 참여해야해서.

오빠는 왜 안가?
내가 유학가냐?

내심 보내놓고 엄청 불안하긴 했지만, 22년 살며 거의 혼자 인생을 헤쳐온 애답게 이번엔 여유롭게 다녀왔다.
회사사람들 나눠주게 면세점에서 사오라고 한 담배까지 제대로 사온거 보면, 일본에서 선보인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음이리라...



전에는 길막힐까봐 일찍 나가고, 야근하느라 늦는 일이 잦았는데, 
일본에서 돌아오고 3주. 나는 매일 칼퇴근을 했다.
아니면 D가 회사 근처로 나오던가.

일단 D는 나랑 떨어지려고 들지를 않았고, 
참으로 희한한 인연으로 만났고, 불쌍해서 한 1주일 데리고 있으려던 그 아이는 어느새 여자가 되어 애써 태연한 척 하려던 나를 자꾸 뒤흔들어댔다.

진짜...진지하게...너 지금이라도 유학 포기할래?라는 말이 몇번씩 나왔지만, 꾹꾹 참아넘겼다.

D는 나만 보면 눈물을 주르륵 흘렸고,
나는 야야. 너 유럽입국심사 장난아녀. 그렇게 울다가 눈 팅팅 부어서 다른 사람처럼 보이면 입국거부될수도 있어. 라고 나름 웃기려 들었는데, 씨알도 안 먹혔다.



내 예전 노트북을 회수하고, 새걸로 하나 사줬다. 
당연히 질색을 하고 안받으려고 들었지만, 
누가 거저 준대? 쓰고 반납해. 그리고 내 노트북 카메라 고장나서 스카이프 안된단 말이다.
스카이프?
아이고오...그리고 반납할 일을 만들어야 다시 만나고 그럴거 아녀.
아...아!!!! 그렇네?
...헛똑똑이야. 헛똑똑...



"...또 휴가?"
"네. 연차라고. 노동법에도 나와있는겁니다. 거부할 시, 팀장님 철컹철컹. 회사는 과징금 철렁철렁."
"나도 아는데, 요즘 바빠..."
"이 날은 무조건 쉬어야 됩니다."
"-_-+ 여자때문이면 인정. 아니면 불인정."
"오. 제대로 무셨네요."
"...어?"
"자세한건 다음에 말씀드릴께요."



그렇게 퇴근하고 들어온 나를 보고 저녁 내내 우는 D를 어르고 달래, 침대에 눕혔다.

"어디 전쟁터 나가는것도 아니고, 항상 씩씩하기 그지없던 우리 D양이 오늘 왜 이래. 스카이프 하는거 알려줬잖아. 보고싶음 미리 까똟남겨. 스탠바이할께...가서 밥 꼭 챙겨먹어. 생활비 나오는거 아끼지말고 쓰고, 부족하면 나한테 말해. 많이는 못 줘도 보태줄께. 거기 주인아줌마 예전 직업이 간호사인데, 같이 일한 사람 중에 한국에서 온 간호사들 많아서 김치냄새 이런거 신경 안쓴대. 팍팍 먹어. 자기도 좋아한다고 그랬다드라...
좀 급하게 되긴했지만, 드디어 너 하고 싶은 공부. 돈걱정없이 할 수 있게 됐잖아. 열심히 해."
"..."
"...뭐야. 그 불만 가득 섞인 눈빛은???"
"왜 바람피지말란 말 안하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까불지마.라고 D의 그 작은 코에 딱콩을 콩.하고 때려주었다.
D는 아퍼.라며 내 가슴팍에 얼굴을 뭍는다. 
어어어어엌ㅋㅋㅋㅋㅋ 악력 봐ㅋㅋㅋㅋㅋㅋㅋ...
내 가슴 팍이 축축해지고 척추가 먼저냐 늑골이 먼저 부러지냐 할 정도로 D의 악력은 점점 더 조여오더니...갑자기 힘이 쭈욱 풀리면서 D는 이번엔 엉엉이 아니라, 끄윽끄윽 하면서 울었다.

"...침대시트도 다 빨아놓고 간다더니 나 내일 시트 빨아놓으라고?"
"...고마워....나 오빠 만나고...나서...이렇게 좋은데서 살고...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여기저기 많이 다녀보고...맛있는것도 많이 먹고...근데 난 오빠한테 하나도 해준게 없어..."
"집에 총각냄새 빼주고, 밥해줘 청소해줘 빨래해줘 식욕다음에 그것도...엌ㅋㅋㅋㅋㅋ"
"응큼하긴!!!!"
"언니가 가끔 깜빡하는데, 먼저 들이댄건 그 쪽 이세요ㅋㅋㅋㅋㅋ"
"얼른 공부마치고 돌아올께."
"독일 대학 졸업하기 힘들다더라. 너 너무 빨리하려다가 또 건강 한방에 훅가니까 느긋하게 해."
"응..."
"그랴그랴."
"나 가서 한눈 안팔테니까. 오빠도 바람피고 그러지마."
"...너는 애가 내 직장생활도 지근거리에서 본 애가 그래. 내가 어디 여자있을 팔자야?"
"난 아냐?"
"...어째 요즘 로또를 사면 5천원도 안되더라. 내 복을 여기다가 다 써버렸어ㅋㅋㅋㅋ"

그리고 우리는 그렇고 그런거...없이, 맞춰놓은 알람이 울릴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녕하십니까. 김과장님."
"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어, 인천공항에 가서 짐을 내려놓고 시간이 넘나 남네. 갈땐 가더라고 커피 한잔 정도는 괜찮잖아?하고 커피집에 가려는데, 나도 아는 얼굴. 
그 중국 회장네 회사 한국법인 여직원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냐면...

사정이 생겨서 장학금과 유학이 취소가 되었다. 그래서 그 말씀 전하려고 회장님이 저를 급히 한국에 보내셨다.
아이고오~저런~ 문자로 알려주셔도 되는데, 회장님 성격에 또 여기까지 사람을 보내시고...가자!!! D!!!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나 김치찌개에 참치 넣는걸 더 좋아해!!!라고 할뻔했다.

"회장님께서 D양을 독일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저를 오늘 급히 보내셨습니다. 좌석도 비지니스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잡고있던 D손을 꽉 잡았다. D의 입에서 아!!! 소리 나올 정도로.
그냥 중국본사 지시나와서 뜬금없이 출장나온 사람인데, 나한테서 D를 뺏아가려고 온 악마같이 보여서, 냉큼 손잡고 도망갈뻔했다.

"...티켓팅하고 아직 시간있으니까...우리 둘이 잠시 있을께요. 여기 이거 제 명함..."



"아이스카페라떼 샷 두개 추가해서...뭐? 너도? 아서라. 너 독일가서 시차적응하려면 처음 기내식 먹고 바로 자야돼. 까불지마. 이거 핫쵸코나 먹어."

대개 공항 까페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기대와 흥분이 떠도는 그런 분위기인데,
우리는 나온 커피와 핫쵸코를 말없이 마시기만 했다.

"...가자. 시간됐다."



D는 그렇게 독일로 떠났다. 
마지막엔 손만 잡고 있다가 헤여졌다.
안아준다거나 뽀뽀한다거나 그런거 없었다.
부끄러워서 그런게 아니고, 또 볼건데 뭐하러 그런거 해ㅋㅋㅋㅋㅋ 그치? 쫌만 참으면 또 볼건데ㅋㅋㅋㅋㅋ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애써 서로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D는 그렇게 출국장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유비가 서서 떠나보낼때(사실 서서가 아니라, 유비가 하북에 있을때 전해를 떠나보낼때 이야기였다 한다.) 둘 사이를 가로막은 저 갈대들을 모조리 베어버리라고 했던 심정이 이해가 됐다. 
물론 지금 그랬다간 최소 시설물파괴, 생긴 와꾸로 견주어보아 공항테러범으로 몰릴게 뻔하지만...




뭔 비행기인지도 모르면서 주차장에 가서 뜨고내리는 비행기들 하염없이 보고있다가 차에 탔다.

"...어? 어? 어?"
눈 앞이 흐릿해지면서 앞이 잘 안보여 그 큼지막한 시동버튼을 얼른 누르지를 못했다.
군대에서 마지막 화생방 할때 이후로 처음으로. 10년 사귄 예전 여자친구랑 헤어졌을때도 그런 적 없었는데,
눈 앞이 시큰해지나 싶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십수년만에 흘리는 눈물이라 그런지 엄청 짜고 눈이 너무 아팠다.

평소에는 구간단속구간 빼고 우와와왕~하며 가던 그 길을...
가다가 눈물때문에 세우고 하다가 거의 서울에서 부산가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겨우 영종도가 아니라 인천을 빠져나올수 있었다.



"...오빠 왔다. 아. 너 지금 비행기에 있지 참ㅋㅋㅋㅋㅋㅋ"
미친X마냥 그러고 집에 들어온건 밤 늦은 시간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하고도 한참을 차 안에 있었다.
D없는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나 망설여졌다.



이 집이 이렇게 휑했나. 싶었다. 
아침에 나올때 그렇게 챙겨놨어도 또 깜빡한게 생각나서 한바탕 집을 헤집었는데도, 집은 말끔히 정리가 되어있었다.

D가 쓰던 수저 젓가락 밥그릇 국그릇은 모두 찬장에 들어가있고,
먹지말랬지만, 일단 먹어야겠어. 라고 술을 꺼내려고 연 냉장고에는 반찬뚜껑마다 이건 무슨 반찬. 언제 만들었으니까 언제까지는 꼭 먹고 남으면 버리라고 쓰여있었다. 
아침에는 몰랐는데, 맥주캔 위에...
- 우리 오빠 나랑 약속 했지만, 결국 마실거죠? 과일칸에 과일 잘라놓은거랑 육포있으니까 그것만 먹고 얼른 주무세요.
라고 적힌 쪽지가 붙어있었다.

"...아닌데? 나 소주마실건데?"

눈물 뚝뚝 흘리면서 잘라놓은 수박, 씻어놓은 포도 딸기에 육포를 차마 먹지 못하고, 깡소주를 글라스에 따라마셨더니, 기분이 얹짢아지면서 구역질이 올라와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다 토해버렸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에 저장된 D사진을 보다가 또 그렇게 밤을 새버렸다.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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