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악마의 연금술사 [2/3] Verfluchtes Leichendopfer
게시물ID : panic_991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r.사쿠라
추천 : 2
조회수 : 57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8/28 22:57:02
옵션
  • 창작글
~저주받은 시체의 마을
 
피닉스. 요즘 도시에서 돌아다니는 유명한 괴도. 14번가에 사는 비어있는 부잣집 별채에서 고급 가구며 미술품, 현금이 주 타겟.
 

나는 사교장에서 입었던 붉은 와이셔츠와 하얀 정장을 벗고 옷장 안에 걸었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내 몸, 백골의 사이사이 구멍으로 강에서부터 소용돌이치는 바람이 작은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왔다. 나는 작업복인 적갈색 니트 와 검은 재킷을 꺼내 입고 위 칸에 올려뒀던 볼러를 머리 위에 살포시 얹어 썼다.
 

그러고는 문을 열어 구둣발을 밖으로 내딛었다. 그 순간이었다.
 

떽떼구르르!”
 

휘익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경쾌한 소리를 내는 무언가가 내 발에 걸려 넘어졌다. 그것은 딱딱딱 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스켈레톤!”
 

스켈레톤. 이 하수구와 연결된 지하묘지에 묻힌 뼈에 여러 영혼이 뭉쳐져 새로운 의식이 생겨난 괴물들, 시대의 잔당들이다. 녀석은 뼈가 비교적 희고 윤이 나는 걸로 보아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임이 분명했다. 또한 축축하게 젖은 녀석의 몸은 방금 물에서 헤엄쳐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러진 정강이뼈는 심하게 말하면 좀 흉측했지만 어찌됐건 내 뇌 속에 잠재된 징그러움의 회로를 자극했다. 녀석은 매우 겁먹은 듯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썩어 없어진 지 오래인 살을 달달 떨었다. 그리고 흔들거리는 앙상한 손가락으로 (아마도) 자신이 걸어온 방향을 가리켰다.
 

난 단순한 제비족이나 도둑이 아니다. 물론 이쪽으로 먹고살고 있긴 하지만 내 진정한 모습은 명계의 자식, 이 수로의 어딘가에 위치한 지하묘지는 망령들의 휴식처인 명계를 이루고 있고 나는 그곳에서 태어난 존재이다. 나는 스켈레톤이다.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비록 나는 수십, 수백 개의 백이 합쳐져 한 명 분의 혼을 이뤄 이 몸에 빙의한 존재지만 이 몸을 본 기억은 뚜렷하다.
 

이 몸의 옛 주인은, 파비앙은 아무래도 참수당한 사형수였을 것이다. 머리와 몸통이 분리돼서 지하묘지로 들어온 것으로 간단히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몸뚱이는 여느 시체와 다름없이 몇 주 만에 썩어 문드러져 누리끼리한 해골이 된 반면 머리통만큼은 새빨간 머리에 어울리는 억울하고도 증오스러운 표정으로 썩어가는 자기 몸을 응시하고 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모이고 모여 하나가 된 나는 이 몸뚱이와 합쳐졌고, 유례없는 스켈레톤이 탄생했다. 혓바닥이 없어 말을 못하던 다른 스켈레톤들과는 달리 말도 이렇게 잘 할 수 있었다. 손은 단두대가 덤으로 자른 싱싱한 손을 얻어 장갑을 꼭 끼지 않아도 됐다. 물어물어 이 몸의 옛 주인의 이름인 파비앙을 알아냈고 죽지 않는 내 특성에 따라 피닉스라는 성을 붙였다. 그렇게 난 인간사회에 숨어들어 이 13번가에 대해 괴소문을 퍼트리는 한편 인간들을 쫓아내 이 안식처를, 명계를 지키게 되었다.
 

그런데 명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을 스켈레톤이 이렇게 밖으로 나와 덜덜 떨며 나를 붙잡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 일어났음을 의미했다. 나는 스켈레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시야의 모서리에서 희미하게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하다 차츰차츰 한 자리에 고정돼 김이 서린 유리창이 닦이듯이 선명해졌다. 그것은 분명 로드Rod라고 불리는 괴생명체였다. 갈고리처럼 둥그스름하게 말린 로드의 다리는 마치 먹이를 걸려들게 하려고 이를 딱딱 부딪치는 괴물의 입 같았다. 나는 안주머니의 단검을 꺼내들어 녀석을 위협했지만 그것은 아랑곳 않고 내 뒤에서 벌벌 떠는 스켈레톤의 두개골 안으로 들어갔다. 겁쟁이라고 생각했던 녀석은 로드가 들어가더니 별안간 사납게 돌변해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와 팔을 뻗었다. 그 팔이 내 목으로 갑작스레 덮쳐드는 순간, 나는 녀석의 목을 번개같이 잘라냈다. 두개골과의 연결이 떨어진 녀석은 장난감 블록으로 지은 성 같이 와르르 무너졌다. 경추가 잘린 두개골은 통통 튀어 굴러가더니 턱뼈가 받침대 역할을 해서 정좌세로 일어섰다. 녀석은, 아니 녀석의 머리는 나를 노려보더니 별안간 턱뼈를 움직임으로써 생기는 반동으로 통통 튀어 수로로 뛰어들었다.
 

잡아야 해, 뭔가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해골을 따라 수로를 헤엄쳐 지하 2층으로 향했다. 해골은 턱뼈를 딱딱거리며 추진력을 얻어 헤엄을 쳤다. 나는 전신이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물이란 물은 전부 몸 사이사이에 난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터라 녀석과의 속도차이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유속이 느려지는 구간에 도달했다. 수로는 정수를 위해 설치된 거대한 마수정에 의해 특이한 흐름이 생겨났고 그 영향으로 수로에 흘러들어와 서식하던 물고기와 이끼는 독자적인 양식으로 괴상하게 진화했다. 어인이 그 예이다. 지능이 웬만한 원숭이 정도는 되며 거대한 우두머리가 존재하는 왕정 체제를 가진 어인은 분명 이 수로에 가장 처음 들어온 물고기일 것이다. 특히나 유속이 느려지는 이런 곳은 먹이가 풍부해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난 녀석이 의도적으로 날 이곳으로 유인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끈적거리는 녹조가 내 몸을 붙잡았지만 다행히 속도를 늦추는 단점이라 생각한 내 몸의 구멍 덕분에 문제없이 흘려보낼 수 있었다. 이대로 쭉 직진하면 녀석을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내가 간 방향에선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돌연변이 물고기였다. 간신히 칼을 물고기의 코에 꽂아 멈출 수 있었다. 수초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동태를 살폈다.
 

전후좌우. 왼쪽 방향으로 눈에 띄는 다른 물결이 일어났다. 해골에 붙은 작은 물고기들 때문에 일어나는 물결이었다. 예상대로, 저 방향은 분명 지하 2층으로 향하는 길... 나는 다시 해골을 쫓아 지하 2층의 명계, 지하묘지에 도달했다.
 

해골은 턱뼈를 기괴하게 움직이며 딸칵 딸칵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수로가 그렇듯, 명계 또한 나름대로 복잡한 세상이다. 하지만 길은 이미 눈에 훤하다. 나는 해골을 쫓아 명계의 중심, ‘지옥문의 제단을 향해 들어갔다.
 

해골은 지옥문 앞의 한 여자에게로 딸깍거리는 소리를 계속 내며 다가갔다. 치렁치렁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여자는 해골을 줍더니 두 번 두들겨 안에 든 로드를 밖으로 빼냈다. 로드의 다리에는 붉게 타오르는 구슬이 있었다. 나는 이를 벽 너머에서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여자가 등을 돌리자 나는 고개를 다시 내밀어 여자와 제단의 상태를 확인했다.
 

여자는 그 붉은 구슬을 청자 항아리에 담고 제단 위로 뼈들을 쌓았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모자라... 머리 하나... 혼도 하나...”
 

흑마술사’. 불현 듯 뇌리의 번뜩임이 스치며 생각난 단어이다. 아마 수백 수천의 잔류사념 중 하나가 오래간 알고 있던 단어였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무더기로 쌓여있는 해골들의 수가 얼추 백 구에 들어맞지만 약간 모자란 것도 생각해냈다.
 

누구냐!”
 

이런, 눈치 챘다. 여자, 아니 마녀의 말과 함께 어디선가 1m남짓한 거대한 사이즈의 로드 두 마리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나이프를 하나 더 꺼내 로드를 단숨에 썰었고 마녀를 향해 돌격했다.
 

치렁치렁한 옷이었다고 생각한 건 바닥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금발 머리에 덧씌워진 기분 나쁜 붉은색 가발이었다. 가발은 마녀의 본체를 잡아먹는 듯이 씌워진 소뼈를 닮은 하얀 가면에 붙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마녀를 단칼에 베려고 했지만 안타깝게 한 발 물러서는 바람에 오히려 마녀의 가면만이 베이고 부서졌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마녀는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로드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해골로 뭉쳐진 덩어리는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검은 나무로 만든 관이 있었고 그 안에는 백골로 썩어가는 불쾌한 성인 여자의 시체가 꼿꼿이 서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녀가 가지고 있던 마도서와 병을 들고 묘지를 나서려고 했다.
 

그러다가, 쓰러진 마녀의 얼굴이 보였다.
 

기괴한 가면과 징그러운 옷장식과는 상반되는, 깨끗한 금발의 영락없이 가녀리고 아름다운 홍안의 소녀. 소녀는 미약한 신음소리를 내어 자신의 숨이 붙어있음을 말했다. 나는 결국 병과 마도서를 버려두고 소녀를 안고 묘지 어딘가의 지하수로와 통하는 계단을 걸어올라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
 

으음...”
 

어여쁜 금발과 상아 같이 흰 피부, 호수처럼 깊고 푸른 눈동자의 그녀가 눈을 떴다.
 

나는... 메리...”
 

나는... 파비앙이야... 파비앙...”
 

장미꽃이 피듯, 불꽃이 일 듯 찾아온 나의 사랑, 나의 태양.
 

순수한 그녀와 저주받은 나의, 사상 최고의 7일이 지나갔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