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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맹인 - 11 (END)
게시물ID : readers_322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knk1
추천 : 1
조회수 : 14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8/31 1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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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는 날은 앞으로 2일 뒤로 정하기로 했다.

나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거 같아, 2일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적은 시간으로 문제를 빠르게 처리했으니, 이번에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 이유이다.

1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예상외로 빠르게 흘러갔다.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하루하루가 달력 넘기듯 빠르게 지나가버려 어느새 1주일은 금방 지나있었다.

1주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나를 보고 부모님은 무슨 일이 있었냐며 걱정했지만, 당시에는 말조차 할 수 없었기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 없이 대답하자 부모님은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으셨다.

산책조차 하지 않고 의식주도 잘 해결하지 않으면서 현재까지 지내온 결과, 몸은 많이 초췌해져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도 상태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다크 서클은 생기지 않았지만, 내려갈대로 내려간 눈길과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피부 등.

생각도 안하며 지내왔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1주일 만이기에 기분이 많이 새로운 편이다.

전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새롭다고 느껴질 만큼 많이 다르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익숙하다는 듯이 엄청 많이 했던 생각일텐데, 지금은 처음 해본다는 느낌만이 너무 강하게 났다.

1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

그 짧은 기간만으로도 위 아래를 뒤집는 것 정도는 아주 쉬웠다.

옷을 정돈해서 입고, 전체적인 외모를 정돈했다.

심하게 흐트러져서 고르지 못한 머리카락을 빗으로 빗고, 현재 날씨에 맞춰 적당히 옷을 입었다.

다 정리한 후, 산책을 준비했다.

일단은 산책 하나만이라도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상태가 좋아질지도 모른다.

“잠시 나갔다 올게요.”

부모님한테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꺼내고 집에서 나왔다.


나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2일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르지만, 예상외로 시간이 더 길어지거나 짧아지거나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여행 날짜를 조금 연기한다거나 하는 조치를 취할 생각이 있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여행을 떠나는 것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떠나고자 하면 반드시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시간은 매우 많으니 2일보다 더 길어져도 특별히 문제가 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만하면 짧은 기간 내에 끝마치고 싶다는 것 또한 있다.

빨리 출발할 수록 더욱 좋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아침과 정오 사이에 있기에, 햇빛이 강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주로 산책을 할 때에는, 자주 갔던 곳으로 가지만 이번에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기로 했다.

지금 상태에서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이 더욱 좋을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 내가 살아왔던 도시에 끝도 없이 많다.

현재 살고 있는 외곽 지역에도, 처음 보는 곳으로 걸어가면 한 번도 보지 못한 길들이 끝없이 보인다.

그 길들을 계속 걸어가면 중심부와 비슷한 풍경이 보이지 않을까?

근처에 대해 아는 것이 아예 없으니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외곽 지역이라 시설이 중심부에 비해 많이 떨어지기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예상을 깨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납득했다.

자주 다니는 길에서 빠져 나와, 처음 보는 거리를 향해 걸어가면 하나같이 낯선 것들이 가득했다.

주로 다니던 길에 비해 매우 좁은 길, 건물보다는 식물과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거리 풍경.

사람들이 아예 다니지 않는 길은 아닌 것 같은데, 건물이 많은 거리에 비하면 인기척이 드물어 보였다.

거리로 그렇게 큰 차이는 나지 않을 텐데, 건물이 지어진 길 이외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다.

계속 걸어가면, 길은 점차 좁아지고 인기척이 줄어들어 어느새 주위에는 나무와 식물만이 가득했다.

이 길은 외진 곳으로 빠지는 길일지도 모른다.

더 가면 너무 외진 곳으로 갈 수 있기에, 방향을 돌려 이쪽 방향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걸을 때마다 새로 생각나는 것과 느껴지는 것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산책을 하면 할 수록 침체되어있던 정신이나 몸이 점차 활력을 되찾아간다는 것이었다.

최악일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보통 수준을 달리고 있다.

산책만으로는 나에게 생긴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겠지만, 이것만으로도 문제를 점차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몸과 정신 쪽은 많이 좋아졌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까 갔던 외진 곳에서 벗어나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찾아서 걸어나가면, 이번에는 내가 주로 다녔던 길처럼 꽤 넓은 길과 오래 전에 지어진 듯한 건물이 양옆에 있었다.

이곳도 처음 보는 곳이지만,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거리가 좀 긴 것인지, 언덕으로 오르는 길도 있고 좀 걷다가 길의 끝을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쪽도 아까와 같이 인기척이 드문 곳이었다. 식물과 나무가 있었던 전의 길과 다르게 길도 넓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오래된 건물이 줄지어 있었다.

저곳에 진짜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버려진 지 꽤 오래되어 보였다.

옛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을 보아, 지어진 지 20년은 넘었을지도 모른다.

책에서 봤던 옛날의 집처럼 금이 심하게 가거나 색이 바래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집으로써 기능하기에는 너무 오래되었고 방치된 것으로 보였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을 건너면 평평한 길이 계속 끝도 없이 이어지고, 계속 걷다보면 아래로 내려가는 길도 나타났다.

얼마나 걸었을지 궁금했지만, 가볍게 산책하자고만 생각했기에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의 도구들을 전혀 가져오지 않았다. 다른 도시라면 길 가다가 큰 시계가 걸려있거나 하겠지만, 이쪽 길은 매우 오래된 곳이라 시계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집에서 나왔을 때보다 햇볕이 강해지는 것이 보였다. 아까보다 더 강해졌으니 이제 정오에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걸어갔지만,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길이 있는 이유가 뭘까?

내려가는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내려가는 길 끝 쪽을 봐도 그저 다른 길로 향하는 길만 보일 뿐이지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끝도 없이 길이 이어지니 내가 어디로 가는지,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도 모르게 되었다.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산책을 하러 갔지만 어느새 탐방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침이라 그런다고 쳐도, 한 사람도 다니지 않는다는 건 역시 이상한데…..”

생각보다 엄청 많이 걸었을 텐데도 길이 끝나기는 커녕 끝도 없이 이어진다.

지금은 단갈래 길만 있었지만, 더 많이 걸으면 여러 갈래로 길이 나뉠지도 모른다.

길이도 엄청나고, 여러 갈래 길이면 어느 순간 집으로 향하는 방향조차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이 이상 걷는 것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멀리 나왔지만 다행히 길은 한 갈래로 연결되어있어, 단순히 역으로 걸어가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중에 이어폰 같은 기기와 휴대전화를 가지고 이 길을 계속 걸으면 어디로 향하는지, 얼마나 긴 길인지 탐방해보자.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 나는 길에서 역으로 걸어 집으로 왔을 때, 눈 앞에 바로 보이는 시계는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예상외로 더 오래 걸었지만 상태는 이전보다 좋아졌으니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까 계셨던 부모님이 보이지 않았다.

특별히 말을 남기고 간 것은 없지만, 나간 것이라면 무엇을 사러 가거나 해야 한다거나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무엇보다 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가볍게 넘기고 내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편하게 누웠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잠깐 읽었던 책에서는, “나에게 생긴 문제는 오로지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남에게 문제를 떠넘길 수 없고, 반드시 스스로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나한테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라. 그리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많이 시도하라.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당신의 문제까지 해결해 줄 수 없다. 해결은 오로지 당신의 몫에 달려있다.”

이 말 이외에도 여러 명언이 많이 적혀있었던 책이었지만, 내가 기억나는 것은 이것 뿐이었다.

당시의 기억이 났다. 명언이 궁금했기에 명언이 적혀있는 책을 빠르게 넘겨봤다.

끝까지 읽어봤다면 더 많은 명언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잠깐만 읽고 덮어버렸기에 어쩔 수 없다.

다른 명언이 없다고는 하지만, 내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저것 이외에 있을까?

집에서 팔로 눈을 가리고 누워있으면,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의사와 책이 말했듯이, 현재 최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도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거기에 최근 5년 동안 맹인을 상대로 한 실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계속 치료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미래에 치료 방법이 나오지 않는 한 내 시력은 앞으로도 치료될 수 없다.

분명히 미래에 치료 방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일 텐데, 어째서인지 이 말은 절대 치료할 수 없으며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문제로만 보였다.

생각이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쳐 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겪으면 그렇게 안 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어렸을 적,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으니 실명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지 주어져있다.

“하지만 그 확률은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확률은 알 수 없다. 그 확률이 높을지 낮을지조차 모른다.

일단 터무니없이 낮은 확률은 아닐 것이다. 현재 계산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만 터무니없이 낮다면 이상하기도 하고, 현재 내 상태를 보면 이게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암울한 이야기만 나온다,’

잠시 눈을 감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은 없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있었던 일을, 논리학에서 말하는 대로 A와 B는 참이다.

따라서 C다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낮에 했던 산책을 통해 피폐해진 정신과 몸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키는 것 자체는 충분히 성공했지만,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

시력을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및 사실, 그로 인해 발생한 충격 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노력해봤지만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지금이 아닌 미래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가 아닌 미래라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갑작스럽게 나올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치료 방법이 새로 시도되고 있다던가,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거나.

낙관적인 이야기지만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말한 것들이 확실히 있을 수도 있고, 절대 없을 수도 있다.

2일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얻은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 뿐이었다.

방에서 나와, 잠시 물을 마시러 나왔을 때 부모님이 나를 불렀다.

“잠시 이야기 할 게 있는데, 괜찮을까?”

“네. 괜찮아요.”

자주 앉는 테이블에 앉아 부모님과 내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 아빠가 먼저 말을 꺼냈다.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안 좋은 일이에요.”

“....그게 무슨 일인지는 말할 생각이 없는 거고?”

“네. 다른 사람한테 말하기는 싫어요.”

“......그래.”

걱정되는 듯 더 물어보려고 했던 것 같지만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 아빠를 대신해, 엄마가 말을 이어갔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말하기 싫다면 굳이 말하라고는 안해.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엄마랑 아빠한테도 도움을 청해도 되니까, 생각이 있으면 말해도 돼.”

“네. 필요하면 그 때 말할게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해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부모님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내 방으로 왔다.

해야 할 일은 끝났고, 이제 여행에 대해 정해야만 한다.

여행가는 날은 본래 2일 뒤였지만, 내일로 바꾸면 어떨까?

여행을 빨리 가는 것이 지금 상태에 매우 좋을지도 모른다.

상태는 이전보다 더 안 좋아졌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생각하던 것은 바뀌지 않았다.

여행을 하면 전에도 말했던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면 무언가가 확실히 바뀌는 걸까라고 자문자답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 상태에서는 여행 이외의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 경험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이 변화하기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루종일 책을 읽거나 하는 등의 방법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생각을 계속 해도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은 여행에 달려있다는 것만 얻을 수 있었다.

“생각이 잘 안 나네…."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은 이전에는 아예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지만, 어느새 이런 것도 갑자기 생겨버렸다.

이런 것 또한 변화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갑자기 막혀버리거나 하면 갑자기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그렇지만 이것이 문제점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가 뭔지는 불명확하지만 문제점은 아니라고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부모님이 사주신 넓은 팻말을 들고 보면서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 팻말에 적고 들고 다니면, 써진 내용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옛 시대의 문화.

그것이 진짜 효과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만일 그런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면.

어두운 방 안인데도 일부러 불을 키지 않았다. 어두운 방이면 노이즈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도 일부러 이렇게 고집했다.

팻말에도 쓸 수 있는 펜을 집어 팻말에 이렇게 써 내려갔다.

“만약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기적의 순간을 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기를.”

쓰고 보니 애매모호하고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문장이 되어버렸지만, 이 문장이야 말로 내가 바라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적을 수 있는 문장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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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흐르고 새벽이 끝나가고 아침이 되기 직전으로 되어있었다.

잠을 그렇게 많이 자고 싶지 않았기에 조금만 자고도 이렇게 빠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었다.

준비해야 할 물품들은 의외로 많이 없어서, 옷만 들고 가면 되었다.

1년 정도의 여행이면 옷을 10벌 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어제 부모님이 말해주신 것에 따랐다.

담기 위한 배낭은 생각했던 것보다 컸기에, 10벌이 넘는 옷을 모두 담아도 충분히 공간이 남아있었다.

원래는 책도 같이 가져가려고 했으나, 여행 시기를 더욱 앞당긴 것이 있기 때문에 책은 가져가지 못하고 여행하던 도중 책을 새로 사기로 했다.

이 남는 공간에는 책이 몇 권 들어가도 많이 남을 것 같다.

아침 일찍 나가겠다는 내 말을 들은 부모님은 나처럼 일찍 일어나 여러가지를 도와주셨다.

아빠는 여행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계산할 수 있는 카드를 주셨고, 엄마는 내가 일어나기 전에 하루치 먹을 것을 만들어주셨다.

“쓸 수 있는 비용은 매우 많으니까, 여행 가면서 잘 쓰도록 해.”

“네. 정말 감사합니다.”

“1년 동안 여행하는 거면, 1년 후에 집에 오는 거야?”

“네. 1년이니까 내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될 거에요.”

“병원은 어떻게 할거야?”

“병원은 분기별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여행을 가니 못 갈 거 같고, 1년 뒤에 다시 다니게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병원 측에 그렇게 연락해두마.

1년동안 못 보니 많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여행 도중에 자주 연락하고.”

“네.”

“하루치 먹을 것이 가방에 있으니 갈 때 챙겨 먹도록 해.”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필요한 짐을 모두 챙기고 부모님을 향해 잘 다녀오겠습니다 라며 인사를 했고, 부모님도 잘 다녀오라며 대답해주셨다.

부모님에게는 많은 것들을 받았다. 모든 여행 비용들을 충당할 수 있는 카드라던지.

갑작스럽게 말한 여행이었지만, 이를 모두 잘 받아주신 부모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느낌을 느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이미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 부모님한테는 들리지 않았을 텐데도,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지만 전철은 첫 열차가 올 시간대가 되어있었다.

첫 열차가 오는 시간대라서, 전철역 주위에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렇게 큰 곳에 처음 있어보는 건 살아오면서 처음 겪어보던 일이었다.

조금 쌀쌀한 날씨를 맞아가며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도착했다.

언제나 보는 열차지만, 이번 열차는 전보다 더욱 조용하고 불필요한 소리를 내지 않는 것만 같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도 전보다 더욱 절제되어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으로만 느껴졌다.

혼자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소리가 없는 수준으로 발전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둘 다 맞지 않을까?

잡다한 생각을 하며 좌석에 앉아 창문을 보며 생각했다.

팻말은 나올 때 일부러 주머니에 넣었는데, 어젯밤 부모님이 말하기를, 가까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팻말에 써진 내용이 더욱 잘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은 그저 풍속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말을 듣고 실천하면 왠지 모르게 더욱 잘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소소한 것을 믿는 것이 옛 사람들의 문화가 아니였을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여행의 목적지를 떠올렸다.

전에 들었던 물의 도시, 재단 같은 것이 인상적인 곳, 매우 넓은 면적에 모두 계단길이 만들어져 있고 기하학적인 건물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

제일 처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첫 목적지는 어디가 좋을까?

여러 여행지를 생각하다가, 첫 번째로 가기에 제일 좋은 곳을 떠올렸다.

‘첫 목적지는 계단길이 제일 좋을지도.’

처음 걸었던 계단길을 떠올리고, 이 여행에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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