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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된 마을의 전설 - 2
게시물ID : panic_992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r.사쿠라
추천 : 2
조회수 : 8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9/02 22: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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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산신 굿사건이 있은 지 얼마 안 지나서였다. 두꺼비는 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아랫마을 무당의 말이 귀에 거슬려 떠나지를 않았다.
 
두꺼비가 물러가면, 산신께서 막고 계시던 악마가 깨어난다. 지금 도망가는 게 좋아! 지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름지기 시골 땅이란 것들은 대부분 그린벨트가 걸린 농지였고 고령인구가 많아서 누가 땅을 안 파느냐고 물으면
 
조상 대대로 물리받은 땅인디 우예 파노? 구시이고 산시이고 시이라 카는기는 다 그짓부렁이다. 무당이고 믁사고 다 사기꾼인기라.”
 
하며 역정을 내는 노인들이 태반이었다.
 
다만 무당을 불러오자는 의견을 발의한 젊은 그룹의 주민들은 도회지로 나간 자식들의 오피스텔까지도 눌러앉았다.
 
마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으나 흉흉함과 막막함의 그늘이 어느새 민흥리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씨가 닭장에서 돌이 되어 발견됐다. 박 씨 뿐이 아니었다. 양계장 안의 씨암탉, 수평아리 할 것 없이 그곳에 있던 것들은 모두 생동감 있고 싸늘한 석회암이 되어 움직이질 않았다.
 
박 씨는 전날 아침, 기묘한 광경을 하나 봤더란다. 담 넘어 길에서 징글징글한 그놈의 두꺼비가 어디서 났는지 탁구공만한 알, 아무래도 계란으로 보이는 그것을 품고있었던 광경을.
 
박 씨는 두꺼비를 쫓아내고 그 알을 냉큼 집어와 새로 증축한 닭장의 한 둥지에 넣었다. 저녁때 모이를 주러 닭장에 들어가 보니 씨암탉부터 햇병아리까지 닭이란 닭들은 왠지 그 알을 두려워했고, 결국 박 씨는 내일 저녁에 안주로 후라이나 해 먹자고 생각하며 그대로 돌아갔단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닭장에 모이를 주러 가봤더니 닭장의 걸쇠가 활짝 열려있었다. 박 씨는 의아해 하며 닭장 안으로 들어갔고 나오지 못했다. 닭서리를 해 갈까 준비한 CCTV를 판독한 결과, 그날 밤 닭장 안으로 웬 다리와 부리가 길쭉한 새가 그 견고한 닭장의 걸쇠를 걷어 올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 알을 품다 박 씨가 깨기 전에 도망간 것이었다.
 
이 오리무중의 마을이라는 무대의 멸망이라는 이 희곡은 이것으로 막이 올랐다.
 
그들은 찾아왔다. 마을 꼭대기, 최근 심근경색으로 남편이 숨지고 전부 합하면 70평정도 되는 넓은 집에 사는 김천댁. 그리고 그 김천댁의 외손자 김성일과 미스터리 동아리 펜토미노의 부장 정은주, 차장 김홍택, 그리고 다음 차장 장동혁. 서울시 만월동에 위치한 사립 세진고등학교의 겨우 4명뿐인 이 자율동아리는 밭일도 도울 겸, ‘무당 사건을 주워듣고 81, 이 마을로 찾아왔다.
 
그들이 찾아온 다음날 아침이었다.
 
승일아(성일아), 니 덕구 산책이나 시키주고 온나.”
 
김천댁이 김성일에게 말했다. ‘덕구는 시골마을에서 으레 볼 수 있는 도사견 피가 조금 섞인, 진돗개와 삽살개가 섞인 몸길이 30cm가량의 자그마한 잡종견이었다. 김천댁이 이전에 키우던 포메라니안 메리가 죽은 뒤, 적적한 차에 이웃집에서 데려온 개였다. 다만 김천댁이 요즘 허리가 안 좋아 산책을 못 시켜주어 손자에게 부탁해 산책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어디어디... 갔다 오면 될까요...?”
 
고냥 저 우에 뒷산이나 한바꾸 댕기 와라.”
 
김성일은 하고는 녹슨 쇠사슬 목줄에 묶인 덕구를 이끌고 뒷산으로 향했다.
 
후아... 시골 산 공기가 좋긴 좋구나... 이게... 피톤... 뭐랬지?”
 
피톤치드. 김성일은 성실하고 예의바른 성격이긴 하지만 어딘가 어리숙하고 상식이 모자란 부분이 있는, 나사 빠진 인물이었다.
 
! !”
 
덕구가 갑자기 수풀을 향해 짖어댔다.
 
으르르... ! !”
 
덕구야... 갑자기 왜...”
 
분명 순하고 사람 잘 따르는 덕구가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어대며 짖어댄 것은, 김성일도 애매하게 눈치 채고 있었던 수풀 속의 기척때문이었다. ‘기척은 김성일과 덕구를 향해 바스락거리는 수풀 헤치는 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덕구의 짖는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고, ‘기척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김성일은 잠깐 보았다. ‘기척의 주인은 붉은 얼굴과 높고 뾰족한 벼슬을 하고, 강을 메우는 녹조를 연상시키는 식욕 떨어지는 푸르른 초록색 깃털을 촘촘히 달고 있었다. 아니, ‘박혀있었다. 깃털이 아니라 비늘에 더 가까웠다. 꽁무니에 살랑거리던 것은 분명 꼬리 깃이 아니라 뱀의 꼬리였다. 날개 또한 몸뚱이에 걸맞게 뼈대에 가죽이 걸쳐진 우산 같은 모양새였다. 녀석은 끼르륵하는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김성일을 지긋이 쏘아보았다.
 
순간, 김성일은 느낄 수 있었다. 녹슨 쇠사슬 목줄로부터 전해져 오던, 작은 짐승의 가련한 떨림이 차가운 석회암의 싸늘한 숨결로 바뀌었다는 것을. ‘기척은 뒷산의 수풀에서 서서히 김성일을 향해 한걸음한걸음 다가왔다. 김성일의 맥박은 요동쳤고 기척은 그렇게 겁에 질린 먹이를 향해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기척은 끝없이 기어와 김성일의 바짓단을 움켜잡곤 그 몸뚱이로 서서히 김성일의 머리 위로 기어올라왔다.
 
기척의 날카로운 발과 발톱이 김성일의 얼굴을 향할 때, 산길 아래쪽부터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그리고 또 저벅. 야산의 흙바닥에서 구둣발 소리는 확연히 눈에 띄는 법이었다. ‘발소리의 주인은 김성일로부터 열 몇 걸음정도 되는 곳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그 붉은 눈으로 기척의 형광빛으로 빛나는 눈빛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기척의 주인이 자신이 올라탄 소년과 같이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결국 강한 진동에 버티지 못했는지 기척의 주인은 바닥으로 가볍게 폴싹 떨어지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수풀 안으로, 산 너머로 잽싸게 도망갔다. 김성일이 눈을 뜬 건 기척의 주인이 수풀 안으로 몸을 숨기며 그 추악한 꼬리를 흔들어 감출 때였다.
 
꼬맹아.”
 
발소리의 주인이 말을 건넸다.
 
... ...?”
 
다친 덴 없냐?”
 
... ...”
 
김성일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발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180은 가볍게 넘기는 건장한 체격. 탈색이라기엔 매우 고와보이는 곱슬곱슬한 흰 머릿결. 그리고 퀭하니 풀린 빨간 눈.
 
그럼 됐다... 일은 없겠군...”
 
이 남자는 이 상황에도 자기 본업을 생각하는 것인가? 김성일 인생 최초, 최고, 최후의 기인이었다.
 
저기... ‘그건뭐였나요...?”
 
권재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해주었다.
 
바실리스크.”
 
?”
 
바실리스크. 혹은 코카트리스.”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었다. 펜토미노의 가입시험 중, “눈을 보면 돌이 되는 새 모양의 괴물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 정답. 김성일은 메두사라고 답했지만 인원부족으로 인해 결국 김성일은 펜토미노에 가입됐던 일이 있다.
 
... 그럼... 그걸 어떻게...”
 
권재호는 무덤덤하게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이것 때문이야.”
 
?”
 
마안魔眼, 또는 사시邪視.”
 
사시斜視...?”
 
김성일은 어리둥절해 했다. 사내의 눈은 정상이었고, 새빨갛고 반 쯤 감겨 완전 썩은 동태눈이었지만 사팔뜨기로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사시. 눈으로 본 대상에게 이상한 일을 일으킬 수 있는 초능력이야.”
 
이해가 잘...”
 
왜 있잖아? 만화에 보면 나오는, 사륜안 같은 거, 그거.”
 
...”
 
사내는 호흡을 한 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이것 때문에 사고가 있어서 알게 된 거야. 내 눈은 초점이 맞춰지면 홍채며 각막이 괴상한 문양을 이루게 돼. 이 문양은 생물의 무의식 속 공포회로를 자극해 실금, 실신, 나아가 죽음에 이르게 하지.”
 
김성일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마찬가지로, 녀석도 같은 걸 갖고 있다. 녀석의 빛나는 눈과 눈이 마주치면, 그걸 본 녀석은 돌이 되지. 내 가설이 맞다면 녀석의 눈을 보면 내 것과 같은 원리로 뇌가 특수한 호르몬을 분비해 인체의 탄소배열이 뒤틀려 마치 처럼 변하기 때문이야. 내 눈의 마력이 녀석의 눈의 마력을 방어하고, 이겨서야. 다시 말해, 녀석이 먼저 거지.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이렇게 풀린 눈을 하고 기습당하면 얼마든지 돌이 된다.”
 
김성일은 방금 일어난 기묘한 사건에 대해 아직도 정신이 없었다.
 
그보다, 네 강아지. 조금 더 일찍 왔으면 살았을 텐데, 유감이군.”
 
순간 김성일은 딱딱한 돌이 된 덕구를 보며 놀랐다.
 
... 덕구야...!”
 
이제 보니까, 산 꼭대기 사는 할머니 손자구나? 미스터리 동아리라고 했지? 이따가 일 끝나고 그놈을 잡으러 갈 건데, 올 테면 와라.”
 
사내는 아무래도 김성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신의 말만 술술 늘어놓았다.
 
보건소는 오늘 3시에 문 닫는다. 일이 없다면.”
 
라고 말하고는 사내는 떠나갔다. 김성일은 그제서야 사내의 붉은 와이셔츠 위에 입은 하얀 가운과 권재호라고 쓰인 신분증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김성일은 덕구(였던 돌덩이)를 낑낑대며 안아들고 뒷산에서 내려와 김천댁의 집으로 향했다. 아침을 준비하던 김천댁은 돌이 돼버린 덕구를 보며 허둥댔다. 그러나 방금 일어난 동아리의 3명은 사건 발생이다!”라던가 무서워...”라던가, 정은주는 김성일의 얘기를 듣고 그 남자 잘생겼니?”하고 천연덕스럽게 물어보았다. 김성일은 냅다 인터뷰 영상을 찍었고, 덕구를 잃은 슬픔에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잠시 후, 아침이 다 되자 5명은 커다란 상에 앉아 각자 밥공기에 재탕한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계란 후라이를 얹어서 아침을 먹었다.
 
정말 맛있어요, 할머니!”
 
, 어떻게 하신 거예요?”
 
김천댁은 그들의 질문에도 허허 웃으며 넘어갔다. 그러다가 울상이 되어있는 김성일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따 밥 다 묵고 덕구... -기 감나무 아래다가 묻어놓고 온나.”
 
외할머니 김천댁도 결국 그들과 똑같아졌다. 단지 김성일의 눈물이 한 방울 뺨을 타고 흐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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