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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연재] 오늘의 날씨
게시물ID : readers_322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밤의작가들
추천 : 2
조회수 : 20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9/06 21: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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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같은 일상, 오늘도 어김없이 사무실은 분주했다. 다들 자신의 업무를 정리하느라 모니터 속에 빠져있었다. 고개를 들 틈도 없이 키보드 소리가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왔다. 풍경엔 변함이 없었다. 누구도 듣지 않는 불평을 혼자 툴툴거렸다. 적당하게 올라와 자리를 잡은 파티션이 자신의 일은 당신을 감시하는 것입니다라라고 말하듯이 마주 앉은 직원의 얼굴을, 행동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참 변함없다…” 
그 속에 눈에 들어온 인물이 하나 있었다. 배 대리. 자꾸 사무실 파티션 너머를 무심하게 바라볼 때가 종종 있다. 그것도 목덜미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정도로 목을 빼고 혼자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몇 년째인데 아직 적응을 못하고 저렇게 눈치를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한 모습인데도 오늘은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회사의 낙이었던 하지만 이젠 낙인지 무언지도 모를 점심시간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대리가 책상을 물끄러미 내려보더니 주섬주섬 서랍에 넣으려 하길래 물었다. 
“그거 뭐야? 흰 봉투? 가져와봐.”
그 말에 배 대리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절대로 보여주면 안 되는 것을 내가 본 것처럼 계속 손사례를 치는 중에 다른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더 이상 요구하지 못하고 내 자리로 왔다.
“뭘까?”
오전 근무 땐 결재가 올라오는 보고서 몇 개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보고서 몇 개, 그리고 사내 정보 몇 개가 전부였다. 결재야 다들 알아서 잘 하니 그냥, 훑어보며 철자 몇 개 수정하라고 하고, 전망에 대한 보고서는 모자란 데이터를 보강해 다시 제출하라고 던져준 게 전부였다. 점심때 먹은 순댓국이 계속 속에서 부대꼈다. 

“역시, 힘들겠지...”

며칠 전 상부에서 과장급 이상에서 명예퇴직자를 모집한다는 알림이 도착했다. 명예퇴직자 모집 소문은 아직 아래 직원들은 모르는 눈치다. 사실 말이 명예퇴직이지 퇴직자를 모집한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지원서는 구실일 뿐이고 사직서를 제출받는 게 목적인 알림이 자꾸 거슬렸다. 핸드폰 메시지가 또 하나 들어왔다. 건강검진 결과 확인 예약 문자였다.


“여기, 여기 보이시죠.”
의사는 그렇게 말하며 검은색 부분을 집어주는데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고개만 끄덕였다.
“이게 말입니다. 조금 힘들 수도 있어요.”
나는 멀뚱멀뚱 의사만 바라봤다.
“무슨?”
“아니, 뭐 심한 건 아니고요. 1기 이긴 한데 수술하기가 애매한 부위기도 하고, 그냥 치료를 할려니 시간이 꽤 걸리고, 한번 치료시간도 꽤 길거든도... 지금 일하고 있으시죠?”
“네. 아니, 그렇게 심각합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1기이긴 한데...”
의사는 잘꾸 말을 아꼈다.
“시원하게 말해 주시죠. 뭡니까?”
“암이요.” 덤덤했다. 병중의 하나 일 뿐이라는 표정이었다.
“무슨 말을… 암이라니요?”
나는 웃으면서 대꾸했지만 의사는 다시 검은 사진을 가리키며 여기, 여기 보이시죠를 다시 말했다. 까만 부분은 까맣기만 했고, 흰색 부분은 이쁘게 구불구불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의사는 다시 볼펜 끝으로 여기, 여기라고 탁탁 화면을 쳤다.
나는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검은 화면만 머릿속에 떠다녔다.


흰 봉투가 자꾸 맘에 걸렸다. 퇴근시간 즈음 다시 배 대리를 불렀다. 며칠 전 떠다니던 까만 화면이 떠올랐다. 흰 부분이 일렁거렸다. 물컹거리는 것처럼. 배 대리가 앞에 와서야 화면이 사라졌다. 
“아까 그거 뭐야? 자꾸 신경이 쓰여서 말이지. 그냥 흰 봉투면 가져와 봐 내가 쓸데가 생겨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 별거 아닌 봉투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가져와 보라니까. 나 참.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어렵게 하나!”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 별거 아닌 봉투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때 신입사원이 가방을 둘러매더니 퇴근 인사를 건넸다.
“요즘 것들은 사회를 몰라. 어떻게 저렇게 갈 수가 있는 거야? 안 그래?”
“네 그렇습니다. 저도 이만.”
“그래, 가봐…”
나도 모르게 계획이 틀어졌다. 어떻게든 가져오게 만들어서 내 불편한 심정을 해결해 보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더 앉아 있어봐야 속 사나울 것 같아서 자리에 일어섰다. 순댓국이 여전히 부대꼈다. 


배 대리 옆을 지나가는데 흰 봉투가 툭하고 발 앞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배 대리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뭔가 답답하던 것이 풀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표지엔 ‘사직서’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다시 웃었다. 
“알았어. 수리하지.”
“네? 뭘요?”
“이거 말이야, 이거”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돌려주시죠!”
“아니야 내가 꼭 수리하겠네. 결과는 내일 출근하면 알려주지. 내일 보자고.”
점점 심각해져 가는 배 대리의 표정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한편으로 재미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가슴팍에 꽂혀 있는 흰 봉투가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 검은색을 점점 지워갔다. 마치 자신의 자리인 마냥. 검은색은 점점 작아지더니 ‘사직서’라는 글자로 변해갔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그래 이거였구나. 내 마음에 있던 게 이거였구나.”


아내와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이제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들었던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아내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고, 아이들은 조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큰 놈이 ‘그래서? 죽어?’라고 묻는데 또 웃음이 났다. “1기, 죽진 않아.”, “그럼 됐네”그러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막내는 찔찔거리더니 “아빠 죽어?” 묻는다. 나는 그냥 웃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뭔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우두커니 서있다. 파티션은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있는 듯했지만 지금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이 조금 밝은 색으로 보였다. 아마 오늘 날씨가 아주, 아주 맑은 날씨라 그럴지도 모른다.
“그동안 다들 고생했어.”
“수고하셨습니다.”
감정 없는 냉랭한 소리였다.
“배 대리 이리와 봐.”
책상을 정리하면서 어제의 흰 봉투를 건넸다.
“과장님…”
“이런 건 마음에 잘 담아둬야지 그렇게 떨어뜨리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그 죽을상은 진짜 죽을 때나 해.”
“과장님…”
“가봐.”
깔끔해진 책상을 손으로 쓰윽 훔쳐내고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상쾌했다. 날이 좋아서 그래서 일 것이다. 내 마음의 날이 좋아서 일 것이다. 뒷굽이 닳은 슬리퍼를 로비 쓰레기통에 버리고 정문을 나왔다. 전광판에서 날씨가 흘러나왔다.


날씨를 알려드립니다. 비를 뿌릴 것 같은 검은 구름은 고기압의 영향으로 점점 사라질 것입니다. 기온은 예년 가을의 날씨와 비슷한 24도가 예상됩니다. 이번 주는 맑은 날씨가 계속될 것입니다...

Written by 마모 / 밤의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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