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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862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9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9/14 17:58:3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bgmstore.net/view/ST9TV





1.jpg

신달자파도

 

 

 

누가 저렇게 푸른 종이를 마구잡이로 구겨 놓았는가

구겨져도 가락이 있구나

나날이 구겨지기만 했던

생의 한 페이지를

거칠게 구겨 쓰레기통에 확 던지는

그 팔의 가락으로

푸르게 심줄이 떨리는

그 힘 한 줄기로

다시

일어서고야 마는

궁극의 힘







2.jpg

고정희망월리 비명(碑銘)

 

 

 

한 세대 긋고 지난 업보가 어디

망월리에 잠든 넋뿐이랴만

한 시대가 쌓아올린 어둠의 낟가리에

불쏘시개 되어 하늘 툭 틔우고

황산벌 슻가마로 묻힌 저들이

오늘은 가는 달 붙잡고 묻는구나

내 죄값을 달에게 둗는구나

한 세대 긁고 지난 칼 자국이

어디 내 죄값뿐이랴만

매가 달과 마주서니 속물일 뿐이어서

국화 한 다발도 속될 뿐이어서

달로 떠오르는 네 외짝눈과 만나니

부끄럽구나

한 평 땅 덮지 못할 내 빛

무력한 근심이나 보태는 오늘







3.jpg

오세영구름

 

 

 

구름은

하늘 유리창을 닦는 걸레

쥐어짜면 주르르

물이 흐른다

 

입김으로 훅 불어

지우고 보고지우고

다시 들여다보는 늙은 신의

호기심어린 눈빛







4.jpg

배한봉복숭아를 솎으며

 

 

 

열매를 솎아보면 알지

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 처음엔

열매 많이 다는 것이 그저 좋은 것인 줄 알고

아니그 주렁주렁 열린 열매 아까워

제대로 솎지 못했다네

한 해 실농(失農)하고서야 솎는 일이

버리는 일이 아니라 과정이란 걸 알았네

삶도사랑도 첫 마음 잘 솎아야

좋은 열매 얻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네

나무는 제 살점 떼어내는 일이니 아파하겠지만

굵게 잘 자라라고

부모님 같은 손길로 열매를 솎는 5월 아침

세상살이 내 마음 솎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알았네







5.jpg

서안나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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