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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연재] 참 잘했어요
게시물ID : readers_323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밤의작가들
추천 : 3
조회수 : 21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9/17 01: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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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 말이야, 지하철 타고 출근하다가 갑자기 몸이 줄어들어버렸대.”
  친구는 생맥 몇 잔을 마신 뒤에 살짝 흐릿해진 눈빛으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금요일 밤이었다. 동네의 자그마한 치킨집은 통구이 치킨에 소주를 마시는 아저씨들과 양념치킨에 콜라를 마시는 젊은 커플, 그리고 내 또래로 보이는 얼굴이 불콰한 직장인무리의 말소리가 기름 냄새와 뒤엉켜 공기가 눅진하고, 또 소란스러웠다. 나는 미지근해진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고 대꾸했다. “뭔 소리야. 무슨 명탐정 코난이야?” 그리고는 하얀 무 피클 하나를 입에 넣어 와작, 하고 씹었다.
  “무슨 역을 지날 때 그랬다던데. 그게 4호선이랬나, 7호선이랬나.”
  아, 쟤가 또 헛소리를 하는구나 싶었지만 끊임없이 카톡 알림이 울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보단 차라리 코난 이야기를 듣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나는 친구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라? 무슨 일이 생긴 거지?’ 하고 생각할 새도 없었대. 그냥 갑자기 꼬마의 몸이 되어버렸는데, 혼잡한 열차 안이라 아무도 눈치 챈 사람이 없었다나 봐. 그때 마침 어느 역에 정차를 했고, 문이 열리자마자 남자는 역사를 계속 달렸대.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그런데, 거기에 있었던 거야.”
  “뭐가?”
  “유치원이.”
  “유치원? 지하철 안에?”
  “, 지하철 안에 유치원이 있어서, 홀린 듯이 거기로 들어갔대.”
  미아보호소 같은 거였을까. 나는 카운터에 앉아계신 치킨집 사장님에게 손짓으로 생맥 두 잔을 주문했다. 아무래도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근데 막상 들어갔더니, 선생님이 엄청 반겨주셨다는 거야. 여기까지 혼자 오다니 너무너무 대견하다고 칭찬을 하면서 수첩에 출석 도장을 찍어주더래. 몸이 작아진 남자는 그렇게 유치원에서 시간을 보냈대. 스케치북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선생님이 큰 소리로 읽어주시는 동화를 가만히 듣고, 간식으로 초코파이와 요구르트를 먹으면서. 그리곤 치카치카도 하고, 친구들이랑 손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율동도 하고, 뭐 그랬겠지. 유치원에서의 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대. 사실은 오히려, 꽤 맘에 들었었다나 봐. 화장실을 다녀와도, 바닥에 떨어진 블록 하나를 주워도, 선생님은 참 잘했어요~’ 하고 박수를 치면서 수첩에 칭찬스티커를 붙여주더래. 별거 아닌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말이야. 심지어 점심시간에 나온 김치를 남기지 않고 다 먹어도 칭찬스티커를 줄 정도였다니까 뭐. 그러다보니, 7일이 후딱 지나버리더래.”
  “7?”
  “. 자기가 어떻게 해서 몸이 작아진 줄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지도 몰랐지만, 그쯤 되니 남자는 슬슬 돌아가기가 싫어지더래. 놀이터에서 뛰어놀다가 쿵, 하고 넘어지면 몸집이 비슷한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와 걱정해주고, 선생님이 상처를 호호 불면서 연고도 발라주고 반창고도 붙여주잖아. 남자는 그러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진짜 어린 아이가 된 것 마냥 신나게 몸을 흔들면서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는 거야. 나는야 주스될 거야, 나는야 케첩될 거야, 하는 노래를.”
  나는야, 춤을 출 거야 헤이, 뽐내는 토마토. 토마토! 나는 갑자기 기분이 들떠서는 고개를 까딱이며 속으로 조용히 노래를 흥얼거렸다. 하지만 친구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런데,”
  “?”
  “그런데, 그날 저녁, 몸이 갑자기 원래대로 돌아와 버렸대. 유치원에 있던 모두가 그 모습을 보았고, 박수를 쳐 주었대. 그리고 처음 그곳에 갔던 날 반갑게 맞아주셨던 선생님은, 그때와 변함없는 얼굴로 환하게 웃으면서 남자를 배웅해주었대. 그곳을 나서면서야, 남자는 비로소 깨달은 거야. 그곳이 어른이 유치원이었다는 걸.”
  “어른이 유치원?”
  “, 남자는 일주일동안 어른이 유치원에서 머무른 거야. 일주일 전, 지독한 월요병에 시달리고 있던 남자는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회사가기 싫다, 회사가기 싫다, 속으로 계속 외치고 있었대. 그러다 지하철 안에서 뻥!하고 변해버린 거고, 그의 눈에 마법처럼 어른이 유치원이 짠!하고 나타난 거지. 그리고 일요일 저녁이 되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거고.”
  “흐음. 그치만 해피엔딩은 아니네. 다시 어른이 몸이 되었으니, 월요일이 되면 남자는 또 출근을 해야 하잖아.”
  나는 포크 두 개를 양손에 쥐고, 먹지도 않을 닭가슴살을 갈기갈기 찢으면서 투덜거렸다. 테이블에 놓인 스마트폰에선 여전히 카톡 알림이 울리고 있었다.
  “아니, 나름 해피엔딩이었던 것 같아. 다시 어른의 몸이 되어 맞는 첫 월요일 아침에 남자는 활기차게 스트레칭을 하고,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먹고, 정장을 입고 넥타이을 반듯하게 매고는 회사로 향했다니까. 아마 당분간은, 어쩌면 한 달쯤, 적어도 열흘쯤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거면 충분해.”
  “? 뭐가 충분해?”
  아, 쟤가 또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나는 이미 친구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른이 유치원이 필요한 거야. 금요일 밤인데도 벌써부터 다가올 월요일이 걱정되어 한숨이 절로 나오는 너나 나 같은 사람들 말이야. 회사에선 칭찬스티커를 모을 수 없잖아. 혼자서 회사까지 잘 찾아왔으니까 참 잘했어요도장을 찍어달랄 수도,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울지 않고 씩씩하게 하루를 보냈으니까 박수 좀 쳐달라고 할 수도 없어. 아무리 열심히 애를 써 봐도 혼나고 깨지는 게 일상이지. 그러니까, 정말 별거 아닌 거에도 칭찬을 해주는 어른이 유치원에서 한 일주일만 머무른다면, 우리의 마음에서 다시 긍정의 에너지가 솟아나지 않을까. 난 그럼 멋쟁이 토마토도 될 수 있을 것 같아.”
  “자신이 주스도 될 수 있고, 케첩도 될 수 있고, 정말 뭐든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그런 토마토 말이지.”
  나는 새콤한 무 피클 하나를 집어서 와작와작 씹어 먹고는, 잔에 남아 있던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카톡 채팅 목록에는 아직 읽지 않은 부장님과 과장님의 메시지가 열 몇 개씩 쌓여있었다. 그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고개를 들고 눈에 힘을 주며 친구에게 물었다.
  “그래서, 거기가 지하철 무슨 역이라고?”
 
 
 
 
- written by 설탕연필 / 밤의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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