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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고 병 든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의 이야기.
게시물ID : animal_1955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양이♥
추천 : 14
조회수 : 1229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8/10/01 17:43:23
내 새끼는 2001년 겨울생 노란색 한국참고양이.
청소년쯤 되어 오빠 손에 든 박카스 박스에 담겨 우리집에 왔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시간이 흘러 내 새끼는 만 16세, 한국나이 18세가 되어버렸고
어느새 7-8키로가 나가던 평생 다치기는 해도 아픈 줄은 몰랐던 내 새끼가,
2-3키로밖에 나가지 않아 잘못 만지면 부서지기라고 할까 안쓰러운 모습으로 변화했다.
 
2년 전에 목욕을 하고 나서 기운이 너무 딸리는지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여
병원에 데리고 가니 갑상선항진증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도 우리 고양이를 진료해진단을 받는데 항상 다니던 병원이 고양이를 잘 보는 병원이라서
아주 많은 검사를 받지는 않고 첫 진료비와 약값으로 50여만원 정도만 지불할 수 있었다.
 
약 덕분인지 평생 우리 고양이에게 평생 가득할 줄 착각하고 있었던 식욕이 돌아왔고,
약 먹기 싫어서 눈과 입으로 욕 하는 나이 든 우리 고양이와 오빠는 매 끼니 약을 먹이기 위해 다툼을 했다.
 
캔에다가 약을 섞어주니 먹더라, 로 시작된 몇 끼니 쉽게 약 먹이기는
어느샌가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주면 캔이 아니라고 훽 돌아서버리는 버르장머리를 키웠고
오빠는 혹시나 사료를 안 먹어 영양부족으로 병이라도 올까봐 버릇을 들이겠다고 사료에 알약 먹이기를 고집했고
내 고양이의 밥을 굶어버리는 대응으로 인해 오히려 쓰러져버릴까 겁이나서
우리는 주식캔을 종류별로  사모아 어떤걸 먹고 어떤걸 먹지 않는지 확인을 하고
먹겠다는 캔을 한 번에 100캔씩 주문하여 매끼 약과 함께 먹이게 되었다.
 
다행히도 밥과 약을 잘 먹어주어서 한 달 후 수치 검사를 해 보니 수치가 조금은 떨어져있었다.
호르몬을 유지시켜야 하는 병이라서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 몸무게를 재고 피를 뽑고 키트 검사를 하고 한 달 치 약을 받았다.
매 달 비용은 35-45정도 들었다.
이 돈이 내 새끼 입으로 들어가면 아깝지도 않고 좋을텐데 내 새끼는 쥐똥만큼 먹고 돈은 모두 피검사 하는데 들어갔다.
이 비용이 매달.. 그러니까 2년째 계속 들어가고 있다.
아이가 아픈데 돈을 아까워하는 마음이 들면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경제적 압박감에 대해서 조차 죄책감이 들어서 마음이 힘들었다.
하지만 정말 큰 돈이었다. 나를 위해서는 매달 이만한 돈을 쓸 수가 없었다.
 
목욕하고 아이가 쓰러졌던 트라우마로 또 고양이가 몸져 누울까 겁이 나서 목욕을 못 시켰다.
빗질도 해줬지만 아이가 더이상 그루밍을 하지 못 했다.
털이 모두 엉기고 가죽에 붙어버렸다. 병원에 가서 털을 밀고 왔다.
겁만 많아서 가족 말고는 사람을 물지 않는 아이인데(물론 가족은 문다.) 미용사 누나를 물었다고 했다.
아이 등에 어쩔 수 없이 난 상처를 보고 평생 털 같은 거 밀어보지 않은 우리 고양이가 아프고 무서웠을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갑자기 아이가 자기 털을 뭉탱이로 뽑아버리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는데 말도 못 하고 털을 뽑아대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잘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은 고추를 물어뜯어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나이 든 남자가 그렇듯이 남아인 내 고양이도 전립선에 문제가 생겼는지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 해서 답답했던 것 같다.
말을 못 하는 고양이다보니 승질 더러운 녀석이 분명 아플텐데도 그냥 고추를 물어뜯었다.
두 배가 되도록 부었고 피가 뭉쳐버렸다.
화장실은 가고 싶은데 상처가 나니 더 아파서 화장실에서 끙끙대며 울었다.
이뇨제, 항생제까지 먹어야 할 약이 늘었다.
깔떼기를 씌우니 점프로 제대로 하지 못 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보는 우리도 너무 괴로웠다.
 
오빠가 아무래도 목욕을 안 해서 그런것 같다고 상처가 나서 아픈 고양이를 잡고 탕목욕을 시켰다.
순둥이가 그래도 물 속에 있으라고 했다고 있어줬다.
평소에 목욕 할 때도 입으로만 울고 협조를 잘 하는 편이었다.
우리가 겁이 나서 목욕을 못 시킨게 문제였던 것 같다. 탕목욕을 하고 나서 점차 나아졌다.
 
몇 달이 지나 엄마한테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화장실에 들어가다가 쓰러졌다고 했다. 오늘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시집 가 한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나는 일을 하다말고 뛰어갔다.
내 고양이는 링거를 맞고 있었고 의사는 상태가 좋지 않아 살아봐야 이삼일 일거라고 했다.
하루는 병원에서 링거를 맞아야 하는데, 혹시나 우리가 버렸다고 생각할까봐
한시간에 한번씩 조용히 병원에 들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나오고를 반복했다.
하루 종일 링거를 맞았는데 3분의 1 팩도 맞지 못 했다.
몸무게가 2.4키로였다. 아주 천천히 수액을 넣어야 했다.
곧 죽을 것처럼 가만히 누워있던 녀석을 집에서 계속 수액을 맞추려고 데리고 왔는데
이동가방에서 나오자마자 집에 왔다고 벌떡 일어나서는 화장실 간다고 큰 소리로 울어댔다.
밥도 얼른 달라고 쫑알쫑알 거렸다.
기운이 났다. 의사샘 말과 달리 몇달을 또 잘 살아줬다.
몸무게도 금방 1키로가 다시 쪄서 한 달 후 의사샘과 간호사샘 모두 기특해해줬다.
 
그리고 또 점점 식욕이 사라졌다.
이제는 주식캔도 질리고 사료는 원래 맛이 없다고 했고.
오빠가 삼겹살 먹는 걸 보고 달라고 해 주니 정말 잘 먹어서
앞다리살과 삼겹살을 사다가 매 끼니 구워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살 찌라고 닭다리만 사다가 고아서 잘게 잘라 먹였다. 잘 먹어줘서 정말 기뻤다.
 
우리 고양이는 어느샌가 자꾸만 누워있었다. 원래 안기는 걸 정말 좋아하는 고양이였는데.
안으면 살이 닿는 곳마다 몸살처럼 아픈 것 같았다. 끄응끄응하며 내려간다고 했다.
한달에 한번 겨우 찾아가 보는 나는 매번 오늘이 마지막일까봐 애잔해서 안아주고 싶었다.
 
이삼주 전 아이가 경련을 일으키며 토를 했다. 오빠가 놀라서 나에게 전화했다.
얼른 병원에 가달라고 하고 손을 덜덜 떨면서 운전을 해서 고양이를 보러 갔다.
한달 전 원래 가던 병원에 스케줄이 자꾸 맞지 않아 다른 병원에 가 검사를 하고 약을 받았던 게 문제였다.
처음부터 새로 검사를 하다보니 신부전증을 발견해 투석약을 먹이게 돼서 다행이긴 했는데,
갑상선 약이 수치 조절이 잘 안 됐던 것 같다.
새로운 병원에서 검사하느라 병원비가 70만원이나 나와버려서 지갑을 탈탈 털어내느라 속이 문드러지기도 했는데
아이 약도 맞지 않았다니 속이 터졌다. 그래도 그때 수액을 맞고 수액빨로 한달은 잘 버텨내긴 했다.
 
우리 고양이는 또 살아주었다.
새로운 캔도 찾았고 또 새로운 사료도 찾았다.
그리고 씹는게 불편할 듯 하여 캣밀크도 먹였더니 기특하게도 탈이 나지 않고 잘 먹었다.
 
추석. 집에 가니 아흔살 노인네가 자손들이 인사오면 겨우 인사하고 손 한 번 잡고 방에 누워계시는 것처럼
집에 온 나를 보고 야옹 한 번 해 주고 고양이 방석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이미 몇 년 되었지만 입에서도 몸에서도 냄새가 났다. 털은 윤기를 잃고 푸석푸석했다.
털이 뭉쳐서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달라붙어있었다.
가벼운 내 고양이를 들어 안아주는데 그래도 너무 예쁘고 작고 소중하고 부서질까봐 애잔했다.
오빠 대신에 약을 먹이려고 하니 짜증을 내며 앞발로 내 손을 밀어냈다. 손에 기운이 있었다. 너무 기뻤다.
오빠가 먹이니 서로 익숙해졌는지 그냥 입 벌리고 약을 잘 받아 먹었다. 기특했다.
 
사랑하는 내 고양이. 나이 들고 병 든 작고 소중한 내 어린 고양이.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병원비 때문에 괴롭고 간혹 쓰러지는 고양이 때문에 혹여나 인사도 하지 못 하고 헤어질까봐 마음 졸이고
그 와중에 야옹 소리 한 번, 따라다니기 한 번, 일이년만에 내주는 골골송에 정말 행복해하며.
그리고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일일 준비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날을 준비하며, 만날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며,
혹여나 우리가 헤어지고도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너와 있었던 소중한 하루들을 기록한 글을 읽어보기 위해
시간을 내 이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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