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초단편 연재] 내가 적으려던 문장은 무엇이었을까
게시물ID : readers_324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밤의작가들
추천 : 2
조회수 : 21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0/05 00:13:48
옵션
  • 창작글
  • 외부펌금지
 
 
 
 우우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는 종이 한 장을 뱉어낸다.
 오전 8시 25분, 아직은 밤이다. 텅 빈 사무실에 누군가 들어와 불을 켤 때, 그제야 비로소 나의 아침은 시작된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진, 몸 이곳저곳에 바늘을 꽂고 수액에 의지한 채 텅 빈 눈으로 하루를 이어가듯, 거대한 몸체 옆구리에 하얀 케이블을 두 가닥 꽂은 채로 맥없이 어둠을 견디며 이따금씩 전송되어 오는 팩스를 토해 낼 뿐이다.
 
 8시 59분, 그녀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형광등 불빛이 내게로 쏟아진다. 아침이다. 그녀는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내게로 다가온다.
 두 개의 알파벳과 네 자리 숫자가 조합된 모델명, 그것이 나의 이름이지만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네주지는 않는다.
 그녀는 내 앞에 서서 밤사이 쌓인 팩스들을 확인한다.
 양도‧양수 전문 업체에서 보낸 광고 메시지가 두 장, 차단기의 용량별 단가가 기재된 광고 카달로그가 한 장, 입찰 대행업체에서 보낸 광고 메시지가 또 한 장…
 밤사이 내가 뱉어낸 1,287개의 글자 중에 유용한 것은 없다. 그녀는 다섯 장의 토사물을 가지런히 챙겨서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그녀가 앉은 저 책상은 한때 나의 자리였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를 관찰한다. 한 때 내가 담당했던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그녀의 굽은 어깨를, 그녀의 뒤통수를, 그녀의 시선이 닿은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마치 나의 뒷모습을 감상하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그녀의 손동작은 늘 분주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유독 크게 울리는 클릭, 소리와 함께 그녀의 허리가 펴질 때, 비로소 나에게도 임무가 주어진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우우웅, 몸을 떨며 종이를 뱉어낸다.
 세금계산서라던가 원천징수영수증이라던가 거래처별 미수 현황 같은, 이 공간에 유용한, 그런 제목의 문서들이 내 입에서 쏟아진다.
 한 장, 또 한 장.
 그러다 가끔은 목구멍에 종이가 걸린다. 나는 켁켁, 소리를 내는 대신에 자그마한 빨간 불을 깜빡이는 것으로 그녀를 호출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내 몸 이곳저곳을 열어보고, 목구멍에 낀 종이를 잡아당긴다.
 
 처음, 그녀가 내게 다가와 종이를 끄집어내어준 날을 기억한다. 그녀는 나에게 짜증을 내지 않았다. 나의 위장과 목구멍에서 꺼낸 처참한 잔해를, 한 귀퉁이가 구겨지고 검은 얼룩이 묻은 세 장의 A4용지를, 쓰레기통에 처박는 대신 탁탁 털어서 자신의 자리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녀는 종이의 깨끗한 면 위에, 연필로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요한 사무실 안에 사각, 사각, 소리가 울려 퍼지던 바로 그 순간, 질투와 동경의 감정이 동시에 내 몸을 휘감았다.
 
 오후 5시쯤이 되면 그녀의 동작엔 여유가 생긴다. 그녀는 가방에서 소설책을 꺼내어 읽거나, 종이에 적어놓은 글자들을 들여다본다.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버리기 전의 내가 그랬듯이.
 바쁜 업무시간을 피해 틈틈이 김미월, 김애란, 김연수의 책을 들여다보며 페이지 한 귀퉁이를 접어두던 나날들이 떠오른다. 한글프로그램을 켜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나의 중요한 일과였던 나날들이.
 나는 늘 작가가 된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최저임금 수준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월급을 받으면서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창고 겸 사무실에 홀로 앉아 사무 일을 하는 경리. 그건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믿었다. 멋진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사업자등록증을 복사하는 일이라던가 거래처에 발주서를 보내고 지출결의서에 영수증을 붙이는 일 따위는 너무나 하찮게 여겨졌다.
 글감이 떠오를 때면, 내게 주어진 하찮은 일들은 미뤄둔 채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문장을 써내려갔다.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삶이 힘겨워 죽음을 택하려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는 소설을 완성하는 것만이 ‘진짜’ 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라 믿었다.
 
 오후 6시,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게 다가온다. 하루 동안 어김없이 생산된 이면지 더미를 차곡차곡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 그녀는 사무실을 나선다.
 그녀는 매일같이 이면지에 무언가를 적어오고, 한가해진 시간마다 다시 그 이면지를 들여다보고, 한숨을 쉬고, 글자 위에 연필로 줄을 긋고, 그 자리에 또 다른 글자들을 채워 넣는다.
 그리곤, 또 다시 줄을 긋고,
 한숨을 쉬고,
 가만히 가만히 이면지를 들여다본다.
 
 나는 그녀의 글이 궁금하다. 그녀가 A4용지 뭉치를 들고 내게로 걸어올 때, 나는 드디어 그녀의 문장을 스캔할 순간이 왔다고 설레어했지만 그녀는 3년치 재무제표를 복사했을 뿐이었다.
 부가세대급금, 감가상각누계액, 미처분이익잉여금 따위의 글자와 숫자들이 아파트처럼 층층이 쌓아올려진 문서를 반복해서 토해내면서, 나는 차라리 김미월이나 김애란, 김연수의 문장을 토해낼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문장도, 단 한 단어조차도 떠올릴 수 없었다.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던 나날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또 켁켁, 목구멍에 종이가 걸렸다.
 
 *
 
 오늘은 그녀의 모습은 조금 달라 보인다. 그녀는 저녁 여섯 시가 지나도 퇴근을 하지 않고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그녀는 이면지 뭉치에 휘갈겨 진 자신의 글자들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한글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그리고 키보드에 두 손을 올려, 타닥,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에 맞춰 내 맥박이 빨라졌다가, 느려진다. 하얀 모니터에는 검은 열매 같은 글자들이 한 알씩 한 알씩 맺힌다.
 그녀는 그렇게 단 한 줄의 문장을 적어놓고, 모니터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지금 그녀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지만, 어쩐지 그녀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는 지금, 눈을 반짝이며 슬며시 미소 짓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녀의 문장만은, 상상할 수 없다. 내게 보이지 않는다. 긴 시간과 긴 고민 끝에 비로소 무르익은 그녀의 문장을 내 입 밖으로 건져 올릴 수 있길 바라지만, 그녀는 내게 아무런 데이터도 전송하지 않은 채 한글프로그램을 닫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내게로 다가와 낮 동안 쌓인 이면지 뭉치를 치우고는 사무실을 나선다.
 또다시, 긴 어둠이 시작된다.
 
 오래전의 밤이 생각난다. 퇴근시간을 넘긴 시간까지 창작에 골몰하던 그 밤이.
 그때의 나는, 영혼 없는 타자기처럼 글자들을 찍어내면서도 내가 쓴 문장에 한껏 도취되어 있었다. 그 글들을 출력해서 집으로 가져가 쌓아두는 것이 나의 유희였다.
 그 날도 어김없이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고, 사무실 한 구석에선 광고 팩스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무실 복합기는 걸핏하면 용지를 씹고 오류를 내는 고물이었다. 삐빅, 하는 경고음이 울릴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걸린 용지를 빼내는 것도 내게 주어진 하찮은 일과 중 하나였다.
 그 날 저녁 6시 27분, 협회에서 일괄 전송되는 부고 소식이 팩스로 넘어왔다. 2~3일에 한 번 정도는 꼭 오는, 흔하디흔한 문서였다.
 「 K전력 대표 모친께서 별세하였기에…… / 별세일자 : 00월 00일 / 발인일자 : 00월 00일 …… 」
 복합기는 그 팩스를 뽑아내다가 또 삐빅, 하고 소리를 내며 멈춰버렸다.
 
 그리고 저녁 6시 58분까지, 나는 복합기와 씨름을 했다. 용지를 빼내면 또 걸리고 빼내면 또 걸리고, 도무지 팩스 한 장이 온전히 나오질 않았다. 용지를 빼내느라 손끝에 검은 가루가 묻었고, 바닥에선 구겨지고 찢어진 종이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그 종이 뭉치들을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으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으이그 씨발, 이 그지같은 복합기! 같은 사람 죽은 얘기를 지금 쓰잘데기 없이 몇 번이나 하는 거야!”
 그 쓰레기 같은 문장이 내 입술 밖으로 쏟아져 나온 바로 그 순간,
 어둠이 나를 집어 삼켰다.
 6시 59분 59초, 나의 몸체는 거대한 복합기로 변해버렸다. 
 나는 텅 빈 책상을 바라보았다. 모니터에서는 쓰다 만 문장 끝에 커서 하나가 매달려 깜빡 깜빡,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내가 적으려던 문장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떠나간 뒤 나는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어떤 문장이든, 단 한 개의 단어라도 떠올려보려 애쓴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전송된 데이터만을 몇 십장씩 토해낼 수 있을 뿐이다. 내 안은 텅 비어있다.
 앞으로 켁켁, 하고 몇 번의 기침을 더 한다면 나는 고철신세가 되어 버려질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길을 택해야하는 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렇게, 매일 아가리를 벌린 채 종이를 뱉어나는 삶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하지만 나는 열다섯 시간의 어둠을 홀로 견디며, 내게 보내지는 데이터 신호를 기다리기로 한다. 수십 장의 광고 사이에 섞여 도착하는 부고소식.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간결한 몇 글자. 그것만이 내가 뱉어낼 수 있는 유일한 진실, 내게 허락된 미완의 문장이기에.
 
 우우웅. 열다섯 시간의 밤과 아홉 시간의 낮, 그 사이의 경계 어디쯤에서, 나는 적막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푸른 눈을 깜빡이며, 또 한 장의 A4용지를 목구멍 밖으로 밀어낸다.
 
 
 
 
 
- written by 설탕연필 / 밤의 작가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