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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는 그때 절망을 선택한 것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864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1/12 13:09:37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C565DyFNuaM





1.jpg

이문재화전

 

 

 

잡목 우거진 고랭지

이 여름깊은 가뭄으로 흠뻑 말라 있으니

와서와서들 화전하여라

나의 후회들 화력 좋을 터

내 부끄러움들 오래 불에 탈 터

나의 그 많던 그 희망들 기름진 재가 될 터

와서장구 북 꽹과리 징 치며

불 질러라불질러 한 몇 년 살아라

 

한때 나의 모든 사랑화전이었으니

그대와 만난 자리 늘 까맣게 타버렸으니

서툴고 성급해 거두지 못하고나누지 못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다른 숲을 찾았으니

이제 나잡목 우거진 고랭지

와서 불 질러라







2.jpg

이경림모래들

 

 

 

그 밤나는 바닷가 모래 위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별들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모래들은 가만히 있었다

조개껍질 깨진 병조각 말라비틀어진 해초들도 가만히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그것이 일 년 전의 바람인지 천 년 전의 바람인지 알지 못했다







3.jpg

김경호

 

 

 

살아갈수록

상처에 손이 간다

 

손톱이 자라는 동안

왜 손금이 가려운지

새벽녘에 들어보는

늙은 레코드처럼

내 몸은 지지직거리는

유한반복의 날들

 

어제를 견디어 온

저 벽면의

수직 빗물자국

길게 흘러내리는

새벽

 

살아갈수록

상처가 가렵다

 

낫지 않는 깨진 상처 위에

푸른 별이 돋는다







4.jpg

김사인

 

 

 

모진 비바람에

마침내 꽃이 누웠다

 

밤새 신열에 떠 있다가

나도 푸석한 얼굴로

들창을 미느니

 

살아야지

 

일어나거라꽃아

새끼들 밥 해멕여

학교 보내야지







5.jpg

김해화길 위에서

 

 

 

당신이 떠난 뒤로 오래 걸어왔다

길 끝이 없다

나는 그때 절망을 선택한 것이다

 

저기 환한 언덕 넘어가지 않겠다

길 아래 흐르는 물에 발 담그고 쉬지 않겠다

산모퉁이 돌아가는 당신 이름 부르지 않겠다

 

나는 그냥

길 위에 누워 길이 되어야 겠다

그러라고 달이 밝으네

나는 지금 절망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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