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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연못
게시물ID : humordata_17845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흙향기
추천 : 1
조회수 : 194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12/02 0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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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송정마을을 출발한 연모와 태자가 이삼십 리를 지나 우금치에 가까운 오곡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야산엔 밤꽃이 절정에 이르러 상긋한 향기를 풍기며 주변을 환히 비추고 있고 이름 모를 새들도 밤나무 사이사이 피어난 진분홍 꽃 자귀나무 가지에 앉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갑자기 마을 앞 커다란 연못에서 개구리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그 사이로 간간이 두꺼비의 둔탁하고 느끼한 울음소리도 뒤섞여 들려온다.
 

그러자 태자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짜증을 냈다. “그것들 정말로 소란하군. 여기가 어디이기에 개구리와 두꺼비가 많이 설치지?” 그 말에 연모가 조용히 대답했다. “저 큰 연못은 송장배미라 합니다.” 그러자 태자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송장배미? 송장이 많다는 것이오?” 그 말에 연모가 눈가에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소신도 잘 모릅니다. 전부터 내려오는 이름이고 앞으로 이곳에 이름대로 송장이 많이 묻힐지도 모르죠.”
 

두 사람이 조금 더 말을 타고 가면서 살펴보니 연못 앞 공터에는 신비하게도 오색찬란한 수정들이 수북하게 놓여 있었다. 오랫동안 말을 타고 오느라고 몹시 목말랐던 태자가 연모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쉬었다 가면 좋겠소. 조금 물을 마시고 말에도 물을 먹입시다.” “. 마마.” 말에서 내려 물을 한 움큼 움켜쥐고 마신 연모가 연못 안에 새까맣게 떼를 지어 누비는 개구리와 두꺼비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이것 좀 보시옵소서. 개구리와 두꺼비가 떼를 지어 물어뜯으며 싸우고 있사옵니다.” 그 말에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던 태자가 고개를 돌려 연못 속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 정말 기괴한 일이오. 힘이 세고 독도 있는 두꺼비에 개구리가 필사적으로 대들어 물어뜯고 싸우는 것은 난생 처음 보겠소.”
 

연못 속에는 밝은 초록색을 띤 수만 마리의 개구리가 어두운 색깔을 지닌 수천 마리의 두꺼비와 맞붙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물속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연모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태자에게 말했다. “소신이 이 싸움을 말려도 되겠습니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군요.”하니 태자가 마음대로 하시오.”한다. 연모가 푸른 수정을 하나 들어 연못에 던졌다. “풍덩!” 그러자 갑자기 천둥번개가 울리면서 연못 위에 자욱한 안개가 피어오르고 영롱한 무지개가 산 너머로 걸쳤다. “번쩍! 우르릉 쾅!” 두 사람이 그것을 보고 신기하여 무지개 가까이에 가니 찬란한 무지개가 아주 빠르게 반짝거리면서 커다란 빛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아악! 으악!” 태자와 연모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그 속에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의 귀엔 수많은 사람들의 거센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탐관오리를 쫓아내자.” “왜놈들을 물리치자.” 수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손에 주로 죽창과 칼, 쇠스랑과 곡괭이 등을 들고 붉은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인 산 위를 향하여 맹렬히 돌진하고 있었다. 산 위에는 ()자가 새겨진 조선군 대장의 깃발과 불타오르는 듯한 일본의 욱일승천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태자가 곱게 물든 단풍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보게. 분명 밤꽃 핀 초여름에 우리가 오곡마을에 도착한 것인데 갑자기 단풍이 물든 늦가을로 계절이 바뀌지 않았나.” 그 말에 연모가 무엇에 단단히 홀린 듯 몽롱한 눈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나보군요. 아무래도 이상한 곳에 떠밀려온 것 같습니다.”
 

우금치로 돌격하는 농민군들 중 뒤에 선 무리들이 척왜양이와 제폭구민이라고 적힌 커다란 동학군 깃발을 들고 나타났다. 그 깃발 옆에 녹두장군 이라고 쓰인 큼직한 대장 깃발도 보였다. 눈매가 이글이글 불타는 작달막한 장군은 이마에 붉은 피로 필승이라고 적힌 띠를 두르고 자신의 깃발 아래에 서서 칼을 힘차게 휘두르며 목이 쉬도록 외쳤다. “물러서지 마라. 이 우금치 고개만 넘어서면 우리는 썩어빠진 조선을 무너뜨리고 모두가 행복한 동학의 새 나라를 세울 수 있다. 용감히 싸우라.”
 

태자가 녹두장군의 깃발을 보고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깃발에 적혀 있는 글자를 보니 저 장군이 녹두 나물을 무척이나 좋아하나 보군.” 그러자 연모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헌데 녹두 나물만 먹고도 저렇게 작은 몸집에서 우렁찬 호령소리가 나올 수 있으니 정말 대단합니다. 킥킥킥!”
둘이 킥킥대며 구경을 하고 있자 하얀 무명옷을 입은 농민군 수백 명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죽창을 꼬나 쥐고 덤벼들었다. “이놈들! 꼼짝 마라.” 놀란 두 사람이 동시에 칼을 뽑자 그들은 그 주변을 겹겹이 에워쌌다.
 

일촉즉발의 순간. “잠깐!” 장군이 큰 소리로 농민군들을 제지했다. 두 사람과 농민군들이 고개를 돌려 장군을 바라보자 장군이 터벅터벅 이쪽으로 걸어왔다. 가까이 다가온 장군이 농민군들을 둘러보며 위엄 있게 물었다. “지금 싸움이 급한데 여기서 무엇하고 있소?”
그러자 농민군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지금 이자들이 너무나 수상합니다. 요새 옷차림과는 너무 달라 양반은 아닌 것 같지만 비단옷으로 화려하게 차려입었으니 분명 우리 농민들은 아닐 것이고 아마도 적의 첩자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자 장군이 연모와 태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대들도 지금 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잘 알 것이오. 우리가 봉기한 것은 첫째 왜놈들을 몰아내기 위해서고 둘째로는 탐관오리들을 없애기 위해서요. 그대들도 우리와 힘을 합칠 수 있겠소?”
 

그러자 태자가 녹두장군을 똑바로 쳐다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나라를 다스리는 우리가 관리를 처단하는 역적들과 함께 한다? 더구나 왜국은 우리와 오랜 동맹국이라 그 말에 절대 따를 수 없소.” 그러자 농민군들이 크게 웅성거렸다. “장군님. 보십시오. 이자가 탐관오리들을 옹호하고 왜놈들더러 친구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서 처단하심이 마땅합니다.”
그러자 묵묵히 있던 연모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우선 나도 관리로서 한마디 하지만 부정부패하였으면 당연히 그만두도록 하여야 합니다. 또한 자기 나라의 문제는 웬만하면 민족 스스로가 해결해야 합니다. 아무리 동맹이라도 외세를 깊숙이 끌어들여야 좋을 것 없어요.” 그 말에 태자가 화를 내며 연모를 쏘아보았다. “연모. 그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오. 어찌 역적들을 옹호하고 동맹을 배신하자는 말이오?”
그 말에 전봉준장군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우리가 역적이라고?” 그러자 태자가 태연하게 되물었다. “그러면 임금과 나라를 뒤엎자고 하는 것이 역적이 아니란 말이오?” 그러자 장군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역적이라도 좋소. 이미 조선의 거의 모든 백성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어. 그러니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러자 연모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전봉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군. 하필이면 이 험한 우금치를 넘어 웅진으로 밀고 들어올 생각을 하셨소?” 그러자 전봉준이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펴고 말했다. “지성은 감천이고 민심은 천심이오. 이미 온 나라의 민심은 믿음이 신실한 우리에게 완전히 기울었는데 여기를 못 넘을 이유가 어디 있겠소?”
 

전봉준이 그렇게 자신할 만한 충분한 사연이 있었다.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할 때 덕진 벌판에 진을 치고 있는 일본군과 맞부딪친 적이 있었다. 일본군은 신식대포 10개를 가지고 와서 인근 야산에 주둔하고 있던 동학군을 겨냥하였다. 동학군의 수효가 아무리 많아도 대포의 위력에 당해낼 재간은 없게 되었다. 전봉준이 동학군 진지를 돌면서 보초상황을 점검하고 있을 때 어둠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전봉준이 순간 암호!”라고 외치자 그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손을 높이 들고 다가왔다.
 

가까이 온 사람을 전봉준이 자세히 살펴보니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두른 여인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전봉준이 커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여인네의 몸으로서 이 위험한 전쟁터에 무슨 일이오?” 그러자 여인이 당당한 태도로 전봉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전봉준장군을 뵈러 왔습니다.” 그 말에 전봉준은 아무리 연약한 여인이라 하더라도 혹시 자객일지도 몰라 일부러 자신을 속이며 말했다. “내가 장군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니 나에게 찾아온 까닭을 말해주면 꼭 전해드리겠소.”
 

그러자 여인이 잠시 망설이더니 찾아온 속내를 털어놓았다. “저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강제로 동원되어 일본군이 덕진벌판에 가져온 대포의 진지를 만드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봉준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래서?”
진지를 거의 구축하고 날이 어두워지자 일본군들과 함께 대포를 지키고 있었답니다.” 여인의 말에 짜증이 난 전봉준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여기에 왜 왔다는 말인가? 우리도 저들이 성능이 우수한 대포를 가져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설마 그걸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장군. 저희도 조선 사람입니다. 어찌 왜적의 편을 들겠습니까?” 그 말에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전봉준이 여인의 말을 재촉했다. “여기에 찾아온 이유를 어서 말해보게.”
일본군들이 졸려서 저만치 떨어져 자고 있는 사이에 저희들이 찰흙을 긁어모아 대포의 구멍 안에 가득 채워 넣었습니다. 내일 저들이 대포를 발사하면 물과 흙만 잔뜩 튕겨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돌격하십시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봉준은 머릿속이 상당히 복잡해졌다. 그대로 믿자니 동학군을 유인하려는 적의 계략 같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자니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생각이 갈팡질팡하였으나 마침내 그는 결단을 내렸다. ‘내일 우리가 돌격하면 어차피 저들의 대포 때문에 커다란 희생을 치를 것이다. 승리는 당연 장담할 수 없으니 한 번 믿어보자. 우리 백성을 못 믿으면 어떻게 동학의 나라를 세운단 말인가.’ 마음을 정한 그가 여인에게 부드럽게 말을 했다. “잘 알았소. 반드시 전봉준 장군께 말씀드려 일러준 대로 대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돌격하여 승리를 쟁취하겠소.”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뜻을 이루시기를.” 말을 마친 여인이 다시 어둠속에 몸을 숨기려 하자 전봉준이 급히 외쳤다. “잠깐!”
여인이 힐끗 돌아보자 전봉준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당신이 여기 남아 당신이 한 말을 보증해 주어야 하오.”
그 말에 여인이 다소 실망스런 눈빛으로, 하지만 흔쾌히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저를 진심으로 믿지는 못하셨군요. 좋아요. 얼마든지 여기에 머물겠어요.”
전봉준은 머쓱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그럼 나를 따라 오시오.”
어둠 속을 앞서 걸어간 전봉준은 뒤 따라오던 그녀를 동학군 진지에 감금시키고 보초병들을 불러 단단히 지키게 하였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식사를 마친 전봉준이 농민군들을 모아놓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저기 덕진 벌판에 있는 관군과 일본군들을 쳐부술 것이다. 두려워말고 돌격해 용감히 싸우라.”
그러자 한 농민군이 무서워하는 표정을 보내면서 말했다. “거기에 일본군들이 커다란 대포를 가지고 우리를 쏠 것입니다.”
하하하! 걱정마라. 내가 도술을 부려놔서 대포에서 포탄은 안 나오고 물과 흙만 튀어나올 거야.”
정말 믿어도 되겠습니까, 장군?”
나는 지금까지 헛소리를 한 적이 없다. 이제 마음 푹 놓고 돌격하라.”
와아!” 신이 난 동학군이 맹렬히 돌격하자 저쪽에서 대포를 요란하게 쏘아댔다. “! ! !” 하지만 대포에서는 흙탕물과 찰흙덩어리만 무수히 튀어나왔다. 이에 용기를 얻은 동학군들이 창칼과 죽창을 들고 가까이 다가오자 오금이 저린 일본군과 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그 뒤 동학군은 전주를 점령하고 당당하게 조선조정과 협상을 맺어 자진해산하였다가 일본군이 쳐들어와 조선을 넘보자 그들을 물리치려고 들고 일어선 것이다.
 

우금치 고개를 눈앞에 둔 농민군들이 한참동안 태자와 연모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태자를 예리한 죽창으로 가리키면서 장군에게 물었다. “장군님. 그러면 요 거만한 자만 손보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연모가 소스라치게 놀라 태자의 앞을 가로막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우린 항상 같이 다니는 운명공동체입니다.” 그러자 사납게 노려보던 동학군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 운명공동체?” 그 말에 연모가 떨리는 입술을 열어 간신히 말했다. “, 쉬운 말로 단짝친구랍니다.”하면서 장군의 눈치를 살짝 살핀다.
 

그것을 바라보던 전봉준장군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면서도 너무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한 놈만 제거하자니 다른 놈이 같이 덤벼들겠고. 그렇다고 봐 주자니 우리 동학농민군의 질서와 기강을 세우기가 어려울 것 같고.’ 마찬가지로 태자의 머릿속도 몹시 어지러워졌다. ‘장군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여기서 큰 싸움이 벌어져 생사를 알 수 없겠고. 따르자니 내가 바보가 되겠고.’ 두 사람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망설이고 있자 농민군들이 날카로운 죽창을 겨누면서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온다.
 

바로 그때 산 위에서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천둥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 ! !” “드르륵! 드르륵!”하고 요란한 굉음과 함께 산위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러자 산 위로 돌격하던 사람들이 정말 거짓말처럼 픽픽 쓰러졌다. 상황이 다급하게 되자 포위망을 좁혀오던 동학군들이 이쪽은 내버려두고 방향을 바꿔 냅다 산 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 ! !” “드르륵! 드르륵!” 작렬하는 소총과 기관총 소리와 함께 숱한 농민군들이 검붉은 단풍잎을 역시 검붉은 피로 적시며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동학군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냇물을 이루어 제민천으로 시뻘겋게 흘러 내렸다.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후퇴하라.”하는 장군의 명령과 함께 동학군들은 앞을 다투어 산 아래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산 위에 있던 일본군과 관군들이 총칼을 거머쥐고 아래로 추격한다. “도쓰게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미처 피하지 못한 동학군들은 죽창을 휘두르며 싸우다가 적의 총칼에 무참히 죽어가기도 하였고 한참을 도망가다가 커다란 연못이 앞을 가로막자 그대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였다.
 

! ! !”하고 새까만 막대기가 요란한 천둥소리를 낼 때마다 동학군들이 낙엽처럼 맥없이 쓰러져가자 겁에 질린 연모가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저 사람들은 하늘이 내려준 천둥을 하나씩 가지고 있나봅니다. 그래서 천둥이 치면 그때마다 농민군들이 벼락을 맞아 죽어가는 것 아닙니까?” 그 말에 두려운 듯 평소 용감한 태자도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군. 하늘을 등에 업고 있으니.”
 

꼬요우따(꼼짝 마라)!” 바로 그때 일본군과 관군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칼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그들은 증오가 서린 눈빛을 쏘아가며 이 조센징들!” “이 역적들!”하고 동시에 외치면서 제각기 칼을 올려쳤다. 태자가 말위에서 잽싸게 몸을 틀어 벙거지를 쓴 관군이 올려치는 칼날을 피하고 힘껏 칼을 휘둘러 그의 목을 쳤다. “!” 옆에선 몸에 착 달라붙은 검은 군복을 입은 일본군이 일본도로 연모를 올려쳤다. 하지만 연모가 간발의 차이로 몸을 비켜 칼날을 비킨 후 그 빈틈에 재빨리 일본군의 가슴을 칼로 푹 찔렀다. “!”
 

도쓰게키!(돌격)!” 자기네 편 둘이 연모와 태자의 칼에 쓰러지자 이것을 발견한 일본군 수십 명이 총을 난사하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 ! !” 새까만 막대기에서 솟아나는 무서운 천둥벼락의 위력을 절실히 알게 된 두 사람은 얼른 이 자리를 모면하여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태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피합시다.” “.” 두 사람이 말머리를 돌리고 채찍을 휘둘렀다. “이랴!” “히히힝!”
 

그러자 쫓아오던 일본군들이 땅에 엎드리더니 새까만 막대기를 겨누며 일제히 사격을 가하였다. “! ! !” 총알이 두 사람의 곁을 씽씽 스쳐지나갔다. 갑자기 연모가 !”하는 소리와 함께 다리를 움켜쥐고 비틀거렸다. 놀란 태자가 다가와 연모의 말고삐를 잡아채고 연모를 말 등에 눕히며 황급히 소리쳤다.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내버려두고 말목을 껴안고 말갈기를 꼭 쥐고 있어야 하오.”
 

태자는 말 두필을 몰고 일본군들을 피해 한참을 달렸다. 갑자기 아까 보았던 넓은 연못이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연못 앞에는 역시 오색영롱한 수정들이 아름다운 빛을 뿜으며 잔뜩 널려 있었다. 태자가 뒤를 돌아다보니 일본군들이 쓴웃음을 지으며 여유 있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 빠가야로(바보)! 하하하!” 일본군들이 크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태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가까이 다가온 일본군들이 다시 엎드려 이번에는 말들을 겨냥하였다.
잠시 후 ! ! !”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벌집이 된 말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앞발을 쳐들고 크게 울부짖었다. “히히힝!”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말의 발굽에 붉은 수정 하나가 차여 연못으로 떨어졌다. “풍덩!” 그러자 갑자기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연못 위로 짙은 안개가 자욱해지고 찬란한 무지개가 산 너머로 황홀하게 걸쳤다. “번쩍! 우르릉 쾅!”
무지개에 휩쓸려 들어와서 별 황당한 일을 겪고 있으니 무지개로 여기를 빠져나가는 수밖에.’ 순간 그런 생각이 머리에 스친 태자가 재빨리 쓰러지려는 말들의 고삐를 억지로 끌어당겨 무지개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매우 빠르게 빛을 내뿜으면서 커다란 빛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아악! 으악!” 태자와 연모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그 속에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따가운 햇살에 먼저 깨어난 태자가 말에서 떨어져 다시 연못가에 나뒹굴고 있는 자신과 연모를 발견했다. 저편 야산엔 밤꽃이 절정에 이르러 상긋한 향기와 함께 주변을 환히 비추고 있고 아름다운 빛깔의 새들도 밤나무 사이사이 피어난 진분홍 꽃 자귀나무 가지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아름답게 지저귀고 있다.
그는 급히 일어나서 연모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연모! 연모! 어서 일어나시오.” 그러자 의식을 잃었던 연모가 가늘게 눈을 뜨고 태자를 바라다보며 물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그러자 태자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까 그 연못가. 분명히 이곳인데 이 근처에서 무서운 막대기를 들고 우리를 쫓아오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우리만 남았소.”
 

그러자 연모가 안심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비규환의 싸움도 끝났나 봅니다.” 그 말에 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가 보오. 헌데 다쳤던 다리는 괜찮소?” 그러자 연모가 편안한 얼굴로 대답했다. “.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자 태자가 정말? 아까는 바지도 찢기고 허벅다리 살이 움푹 패여 피가 많이 흘렀는데.”하면서 연모에게 다가와 총에 맞은 다리를 살펴본다. 멀쩡한 연모의 다리를 보자 태자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군. 분명 크게 다쳤었는데.” 그러자 연모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저도 너무 놀랐습니다.”
태자가 역시 멀쩡한 말들의 몸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여튼 다행이오. 심한 상처를 입은 말들도 멀쩡하고.” 태자는 말과 연모를 번갈아 둘러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연못을 내려다보고 소리쳤다. “이것 좀 보시오. 여전히 개구리와 두꺼비가 떼를 지어 물어뜯으며 싸우고 있소.”
 

그 말에 연모가 벌떡 일어나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태자 말대로 그것들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배를 위로 내놓고 죽어 물에 떠있는 개구리와 두꺼비가 꽤나 많았다. 연약해 보이는 개구리는 수만 마리나 죽어 몸이 뒤집혀 물 위를 가득 덮고 있었고 강력해 보이는 두꺼비는 수백 마리가 죽어 개구리들 사이에 드문드문 끼어 누워있었다.
!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이렇게 개구리와 두꺼비가 서로 격렬히 물어뜯고 다투는 것을 보니 아까 보았던 농민군과 일본군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 같습니다. 개구리는 푸르른 빛이 감도는 죽창을 들은 농민군처럼 푸른색이고, 두꺼비는 어두운 빛깔이 뚜렷한 복장과 막대기를 쥐고 있는 일본군 및 관군과 색이 같아 보입니다.”
 

그 말에 태자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아까 우리가 보았던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물속에서 약한 개구리가 죽음을 무릅쓰고 힘센 두꺼비와 용감히 싸우는 것을 보니, 무기를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농민군이 백성을 사랑하여 잘 무장한 관군과 일본군에 격렬히 대항하는 것과 똑같소.”
 

그 말에 연모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지금개구리가 두꺼비보다 거의 백배나 많이 죽어가는 것도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농민군이 관군이나 일본군보다 백배에 가까운 무수한 희생을 치른 것과 같습니다.” 그러자 태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이곳을 송장배미라 하는 것 같소.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무수한 개구리들의 무덤, 아니 환상 속의 수많은 동학군들의 시신이 널린 곳. 어떻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자 태자가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연모를 바라보면서 웃었다. “하하하! 연모. 혹시 하늘이 우리가 모험하는데 심심할까봐 신비한 구경꺼리를 내려주신 것 아니오?” 그러자 연모가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 그 모험 두 번만 하면 놀라서 다 죽겠습니다.” 그 말에 태자가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일어나 말을 타고 길을 떠나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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