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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함브라 작가가 부럽다.
게시물ID : drama_570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메갓
추천 : 13
조회수 : 157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9/01/21 11:38:56
1.

역시 성공하려면 그만한 배짱이 있어야 하나보다.

나같은 쫄보는 시도조차 하지 못 할 위대한 도전을 그는 해냈다.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작가처럼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는 때가 많다.


그 중 몇 개는 잘만 다듬으면

제법 괜찮은 소설의 소재가 될 수도 있을 만한 것도 있었다.


가령 현실에 지친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무의식과 역할을 바꾼 얘기나,

혹은 미래에서 온 자신의 아들과 함께 그 엄마를 찾는 모쏠 얘기.


2.

그런데 이런 얘기를 쓰려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무의식이 주제라면 적어도 심리학적으로 개소리를 지껄이지 않을 정도로는 공부를 해야하며,

타임슬립이라면 설정충돌이나 시간상 오류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도록 짜임새 있게 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작가는 이런 나의 쫄보 같은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그 작가의 작품을 보면 나는 마치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냥 써라! 니가 '오 이거 개쩔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3.

알함브라에 등장하는 스마트렌즈는 모종의 최첨단 과학기술로,


눈에만 착용하면 뇌를 완전히 장악해버림은 물론 당신을 모든 우주법칙에서 해방시켜준다.


실제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물건끼리 서로 부딪혀


성인 남성이 힘껏 팔을 휘둘러 만든 운동에너지를 0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멀쩡히 서있던 사람이 무언가에 걷어차인 것처럼 수 미터를 뒤로 날아가게도 해준다.


이쯤되면 판토마임의 대가를 넘어 매지션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놀라운 스마트렌즈조차


알함브라에서는 그저 '조금 신기한' 게임 접속장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4.

알함브라의 장세주는 재야의 컴퓨터 고수다.


영화에서 재야의 컴퓨터 고수는 햄버거 하나 비용만 받으면


백악관, CIA, FBI 서버를 털어줄 정도로 능력자인데,


장세주는 그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 할 정도로 천재다.


2013년 발매된 GTA5에는 개발비가 약 2000억이 들어갔고, 투입된 인원은 약 1000명이며


개발기간은 4-5년이 걸렸다고 한다.


GTA5의 진보된 그래픽을 보고 혹자는 '실사같다'고 얘기하며 극찬했지만,


장세주는 '실사'를 만들었다.


그것도 혼자서.


벌써부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용량은 몇일까가 궁금해지지만


그 정도 천재라면 1만 TB짜리 USB를 만들었다해도 더는 놀랍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안경 쓴 재야의 컴퓨터 고수니까.



5.

어떤 이유에서인지 게임에서 죽으면 실제로 죽는다.


왜? 아무도 모른다. 버그니까.


그리고 그 죽은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NPC가 되어 플레이어를 죽이려 한다.


왜? 모른다. 그냥 버그니까.


다행히 여주인공과 똑같이 생긴 엠마에게 황금열쇠를 주면 이 버그를 해결할 수 있다.


마침내 주인공이 황금열쇠를 얻어 엠마에게 건넨다.


그러자 엠마는 뜬금없이 주인공을 칼로 찌른다.


왜? 나도 모르겠다. 그냥 뭔가 반전을 줘야 할 것 같으니까 그랬나보다.


이쯤되면 알함브라에서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질문인지 알 수 있다.



6.


위의 얘기들은 그냥 개소리를 해본 것 뿐이고, 실제 내 감상평은 아래와 같다.


그야말로 '전혀 어우러지지 않은 주제들'의 대향연이다.


①게임


처음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봤을 때는, 게임판타지소설, 현실판타지의 영상화를 기대했었다.


가령 게임에서 특수능력을 쓰는 주인공이 현실에서도 그 능력을 쓸 수 있다든가


혹은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현빈이 게이머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든가.


그러나 아니었다.


현빈이 게임을 할 때만큼은 다친 다리를 절지 않지만 실제로는 절고 있고(병원 CCTV)


게임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컨텐츠 중 하나인 레벨업은,


'광렙 노가다 장면'을 통해 단기간에 고렙이 되는 걸로 스킵해버린다.


여기에는 아무런 스토리도 없다. 그냥 칼 멋있게 휘두르고 총 CG 좀 넣어주면 완성된다.


즉 우리가 게이머이고, 이 드라마에 게임이 등장한다고 해도 즐길 거리는 별로 없다.


② 로맨스


박신혜하면 가난하지만 착하고, 억세지만 눈물 많은 여주인공 이미지가 있는데,


이번엔 좀 다르다.


여주인공이 아니다.


조연이다.


남동생 없어져서 기다리다 울고,


현빈 찾아다니다 힘들어서 울고,


끝이다.


심지어는 그와 똑같이 생긴 게임 속 캐릭터 엠마도


무언가 엄청난 비밀을 지닌 줄 알았더니


개연성 없는 반전만 주고 끝이다.


현빈 아플 때 몇 번 옆에서 수발 들어주고,


드라마에서 멋진 장면 몇 개 넣어주니


어느새 둘은 사랑에 빠진다.


왜? 현빈은 잘생겼고 박신혜는 예쁘니까.


B급 아이돌 연애설보다 감흥 없는 드라마 속 로맨스.


③ 스릴러


게임에서 PK로 죽인 친구가, 실제로도 죽었다.


심지어 그 친구가 죽을 당시의 모습으로 찾아와 칼을 휘둘러댄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실감나는 현빈의 공포에 질린 연기에


나도 슬슬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빈이 총을 든 순간부터, 스릴러는 끝이 난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얘기를 잘 풀어낸다면


충분히 좋은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왜? 라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④ 명품조연


드라마에는 주인공을 도와주거나 방해하는 조연들이 있다.


조연이 빛날 수록 완성도 있는 드라마일 확률이 높다.


박이사, 조력자 역할을 잘해주었지만, 딱히 활약은 없다.


최팀장, 그냥 게임이 개쩐다는 걸 말로 설명해주는 캐릭터 역할이다.


차대표, 현빈의 라이벌이 되나 싶었는데, 그대로 사망아웃되었다.


이후 다시 등장해, 게임 속에서 존재하는 복수귀가 되나 싶었는데


총 한 방에 사라지는 쪼렙 NPC였다.


차교수, 뭔가 어둠의 흑막인 줄 알았는데, 그냥 겁많은 찌질이였다.


장세주, 개쩌는 게임의 개발자이자 마스터인 줄 알았는데 그냥 찐따였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회차만 다르고 내용이 전부 똑같다.


현빈 다치는 장면, 차대표 등장 장면, 칼(총) 들고 싸우는 장면, 회사 임원들과 다투는 장면,


연애하는 장면, 박신혜 우는 장면, 미래형 CG, 사운드 나오는 장면, 레벨업하는 장면,


박신혜 짝사랑남이 현빈 질투하는 장면, 장세주 과거 회상 장면, 레벨업하는 장면,


이거 적절히 배합해서 50분 만들고


마지막즈음에 게임에서 떡밥 나오는 장면(매, 열쇠, 퀘스트 등) 하나 넣어주면


한 회가 완성된다.



이걸 16번 해주면 드라마 하나가 완성되는 것이다.


W 때부터 느꼈다.


이 작가는 문득 '와 이거 개쩔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쓴다.


그리고 그걸 드라마로 만들어 낸다.



그 과감한 도전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이 아닐까.


나는 알함브라 작가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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