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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시설의 지하 [강력추천]
게시물ID : panic_998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ng
추천 : 26
조회수 : 572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9/01/21 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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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17년 전,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이야기입니다.



기억의 상당 부분을 잊어버렸기에, 약간 남은 기억에 그간 남겨뒀던 메모를 읽으며 최대한 과장 없이 기억을 복원해 봤습니다.



나의 고향은 꽤 시골이었습니다.







기억 나기로는 논과 산에 둘러싸여서, 놀 곳이라 해봐야 오토바이를 타고 1시간은 걸려야 나오는 노래방 정도 뿐이었습니다.



그런 벽촌에 1991년, 어느 신흥 종교단체의 시설이 건립되었습니다.



건설 예정 단계부터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우리 부모님도 종종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시장과 현지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고, 지역 언론에 호소해가며 투쟁을 이어갔지만, 종교 단체 측에서 '어떤 조건'을 내세우면서 계획은 강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조건에 관해서는 현지에서도 온갖 소문과 억측이 나돌았는데, 아마 인구 감소로 인해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현에 거액을 기부했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추측이었습니다.



지자체가 돈에 눈이 멀어 주민들의 반대를 무시했다는 것이었죠.







종교 시설은 우리가 사는 지역 가장자리에 지어졌습니다만, 그 부지 면적은 도쿄돔 2, 3개는 족히 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었습니다.



사는 사람도 없이 척박하게 버려진 땅이라 값이 쌌던 거겠죠.



그 시설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쯤 완공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이미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은 [저기 가까이 가지 마라.] 던가, [그 쪽 신자들이랑 말 섞지 마.] 라고 주의를 주고 있었습니다.



시설이 완성된 후, 나는 반 친구들과 함께 슬쩍 거기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주변은 모두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면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 양쪽 위에는 마치 한냐 같은 모습의 무서운 얼굴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친구놈들은 [우와, 저게 뭐야! 악마교가 틀림없어, 악마교!] 라고 신나서 떠들어댔구요.



그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학교에서는 그 종교를 "악마교" 라던가, "한냐 단체" 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가끔 한가할 때면 호기심도 있고, 심심풀이도 할 겸 그 주변을 자전거로 돌아보는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럴 때마다 신자가 되었건 시설 관계자가 되었건, 사람의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전혀 인기척도 없는데다, 딱히 문제가 일어나지도 않다보니, 건설 단계에는 시위까지 하며 반대했던 마을 사람들도 점차 그 시설에 대해 관심을 잃어갔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후, 다들 그 시설에 관해 까먹어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어느날 같은 반 A가 [야, 저기 담력 시험하러 가 볼까?] 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A가 말하길, [우리 부모님이 그러던데, 악마교 건물에 예쁜 여자가 드나든다더라. 매일 가게에 물건 사러 온다던데?] 라는 것이었습니다.







A네 집은 지역에서 그나마 가장 큰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A의 말에 따르면, 그 "악마교" 사람들이 매달 2, 3만엔어치씩 쇼핑을 해 가서 부모님이 무척 신나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아빠 말로는 거기 사람들 착하고 좋은 사람만 있대. 별로 무섭지도 않을 거 같은데 한 번 가볼래?]







나는 물론이고 다른 녀석들도, 딱히 놀 곳도 없는 동네에서 하루하루 지루하게 시간만 때우고 있었으니 그 제안은 무척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다들 신이 나서 [그럼 한 번 가보자!] 는 분위기가 되어, 담력 시험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멤버는 나랑 같은 반이던 A, B, C, D 4명과, 후배였던 E와 F까지, 남자만 7명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쯤 되면 몸도 다 크고, 세상에 무서울 게 없습니다.



게다가 7명씩이나 있으니 별로 무섭지도 않더라구요.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집합 장소는 시설 근처에 있는 문 닫은 우체국.



내가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A, B, C와 E는 도착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분이 지나도록 D와 F가 오지를 않아, 결국 우리는 5명이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시설 근처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서 문 앞으로 갑니다.



[우와, 역시 한밤중에는 무섭네.]



[랜턴 하나 더 갖고 오길 잘했다.]







잡담을 나누며 문 앞에 섭니다.



거대한 문 앞에 서자, 문에서 한참 떨어진 시설 안 건물 한 곳에 불이 켜진 게 보였습니다.



[우와, 신자들은 아직도 안 자나봐.]







[악마 소환하고 있는거 아니냐?]



다들 낄낄거리며 농담을 건네고 있는 와중에, C가 [이거 이래서는 안에 못 들어가잖아.]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A가 [내가 다 알아놨지. 옆으로 돌아가면 작은 문이 있어서 거기로 들어갈 수 있어.] 라고 말합니다.







[그런 건 빨리 좀 말해라.]



우리는 벽을 따라 코너를 돌아 걸어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벽에 작은 문이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A가 손으로 문을 밀자, 안으로 문이 열렸습니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정도 크기의 문으로, 5명이 차례로 걸어들어갔습니다.



그 후엔 랜턴을 켰다 껐다하면서 건물 앞 공터를 빙빙 돌았습니다.







[야, 아무 것도 없잖아.]



[건물 가까이 가면 위험할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다가, 아무 것도 없어서 너무 시시한 나머지 시설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부지 안은 정문에서 시설까지 100m 정도, 아무 것도 없는 공터였습니다.



그 앞으로는 큰 건물이 3개 늘어서 있었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괴상야릇한 디자인의 외관이었습니다.







시설 주변을 살금살금 걷고 있자니, 건물과 건물 사이에 불이 켜진 깨끗한 공중 화장실 건물이 보였습니다.



덩그러니 지어진 화장실 주변은 하얗고 깨끗한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고, 벤치까지 놓여 있었습니다.



난데없이 A는 [야, 좀 쉬자.] 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뭐? 들키면 위험하잖아.] 라던가 [들키면 위험하니까 빨리 한 바퀴 돌고 가자.] 라고 말합니다.



나 역시 [들키면 경찰 부를지도 몰라. 좀 있으면 졸업인데 괜히 사고치지 말고 빨리 돌아가자.]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A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한 대만 피우고 갈까...]



다들 그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러자 A가 [나 화장실 좀 갔다올게.] 라고 말하더니 그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B랑 C는 [저새끼 몰래 들어온 주제에 화장실 쓸 생각도 하냐.] 라던가, [똥 싸면 악마한테 저주 받는 거 아냐?] 라며 낄낄대며 담배를 피웁니다.



잠시 뒤, A가 화장실 안에서 [야, 좀 와 봐. 여기 재밌는 거 있어.]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몰래 안으로 들어가보니, A는 [이거 봐. 이게 뭐 같아 보이냐?] 라며 화장실 개인실을 가리켰습니다.







B가 [화장실이잖아.] 라고 대답하자, [문을 열어봐.] 라고 말했습니다.



B는 [뭐야...] 라고 투덜대며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열자 어째서인지 안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A는 [이상하지, 이거? 다른 칸은 다 변기인데 여기만 계단이야.]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제야 이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애시당초 A의 언동이 계속 수상했습니다.







갑자기 담력시험을 제안한 것도 그렇고, 옆에 있는 문을 알고 있었던 것, 화장실 문을 일부러 연 것까지...



나는 A에게 [너 설마 여기서 똥 싸려고 그랬냐?] 라고 물었습니다.



A는 [아니, 뭐, 그런거지.] 라며 대충 말을 돌린 후, [밑에 내려가 보지 않을래?] 라며 묻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너 임마, 이상한 소리 하지마. 빨리 가자고. 여기서 꾸물거리면 무조건 들킨다.]



그러자 A는 [하하, 너 무서워서 그러지? 잠깐 내려가 보는 것 뿐인데 뭐가 그리 무섭다고 그러냐?] 라고 놀리듯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A가 나를 도발하려는 것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래로 어떻게든 끌어들이려구요.



B 역시 [나도 안 갈래. 돌아가자.]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은 [왠지 재미있을 거 같은데, 잠깐 내려갔다 올까.] 라며 A에게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A는 [너희들은 용기 있네.] 라면서 계속 나와 B를 도발했지만, B는 [난 안 갈거야. 너희는 마음대로 갔다오든 말든 해라.] 라고 내뱉듯 말했습니다.



A는 [그럼 우선 셋이서 내려가볼게.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계단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나와 B는 화장실 안에서 기다렸습니다.



화장실 주변은 건물로 둘러싸여 있고, 건물에는 창문도 잔뜩 있었기에 밖에 나갔다가는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B는 [야, 오늘 A 좀 이상하지 않냐?] 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러게, 오늘 좀 이상해. 왠지 일부러 우리를 여기에 데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라고 대답했습니다.



B 역시 같은 생각인 듯 했습니다.







그 후 나는 B와 함께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만약에 들키면 어쩔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5분 가량 지날 무렵, [얘네 너무 늦는 거 아니야?] 라며 슬슬 나도, B도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B는 [그냥 우리끼리 돌아갈래?] 라고 말을 꺼냈지만, 2개 있던 랜턴을 다 계단 밑으로 간 녀석들이 가져가 버린 터였습니다.







이 어둠 속에서, 그 작은 문을 찾는 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우리는 마지못해 계속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벅저벅하고,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습니다.







나도 B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잔뜩 긴장했습니다.



우리는 작은 소리로, [큰일 났다... 사람이 왔어. 위험한데...] 라고 속삭였습니다.



한순간에 주변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찼습니다.







발소리는 멀리서 들렸기에 어느 방향에서 들리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지금 밖으로 뛰쳐나가면 주변 구조도 모르는 우리는 길을 잃을 위험이 컸습니다.



B는 [큰일이다... 이리로 오고 있어... 어쩌지?] 라며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나 역시 속으로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이리로 오는 게 아닐 수도 있을거야. 오면 안으로 숨자.]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발소리는 확실히 우리가 있는 화장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B가 갑자기 계단이 아닌, 다른 칸의 문을 밀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칸도, 그 옆칸도 문이 열리지를 않습니다.







B는 [젠장! 문이 닫혀있어!] 라며 작게 소리쳤습니다.



발소리는 대략 15m 부근까지 다가왔습니다.



직감적으로, 나는 그 사람들이 분명히 화장실까지 올 것이라 느꼈습니다.







B 역시 나와 같은 예감을 한 듯 했습니다.



나도, B도, 그 자리에 딱 굳은 채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B는 [...어쩔 수 없네. 내려가자.]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진심이냐...?] 라고 반문했습니다.



저 정체 모를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만은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화장실 안에는 숨을 곳도 없고, 뛰쳐나간다 하더라도 어둠 속에서는 길을 잃은 채 그대로 잡힐 것만 같았습니다.







심야의 종교시설에 숨어들어왔다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판단력이 떨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발소리가 화장실 근처에 다가오자, 나와 B는 발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콘크리트로 된 계단은 의외로 짧아서, 10단 정도 내려가자 바닥이 나왔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보다 앞에서 걷던 B가 앞을 더듬더니 문을 찾아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방이 있었습니다.



천장에는 오렌지색 꼬마전구가 몇 개 달려있어서, 방 전체가 옅은 오렌지빛에 잠겨있었습니다.







나와 B는 방 안에 들어가 문을 조용히 닫았습니다.



방 안을 둘러보니 다다미 15장 정도 크기의, 아무 것도 없는 콘크리트 방이었습니다.



다만 방 가운데에 커다란 원형의 물체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거대한 철제 훌라후프 같은 게 세로로 매달려 있는 듯한 모양새였습니다.



그 훌라후프는 무척 거대해서, 방 양 쪽 벽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A랑 다른 애들은 어디 갔지? 여기 없잖아...] 하고 내가 작은 목소리로 묻자, B는 [모르겠어, 모르겠어...] 하고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우리를 쫓던 발소리는 예상대로 화장실에 들어온 듯 했습니다.



위쪽에서 발소리가 콘크리트를 타고 들려옵니다.







3, 4명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계속 움직이지 않고,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곧이어 뭐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언가를 논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마다 무슨 말을 중얼대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B는 아래로 고개를 떨군 채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나는 뭔가 즐거운 생각을 하려고, 당시 유행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의 내용을 필사적으로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화장실에서 들리는 중얼중얼대는 목소리는 서너명에서 10명 가량으로 늘어나있었습니다.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여기 숨어있는 걸 알아차린 게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서워서 다리가 벌벌 떨려왔습니다.



중얼중얼중얼중얼하고 들려오는 기분 나쁜 말소리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목소리가 뚝 그치더니, 끼익하고 문이 2개 연속해서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곧이어 다시금 끼익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가 화장실 칸을 열어보는 소리라는 걸 알아차리자, 온 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애초에 다른 칸들에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들어있던 건 아닐까.]







B도 그 가능성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는 분명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니 밖에서 연 게 아니라, 안에서 누군가 나온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곧이어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공포와 인내심의 한계였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데는 15초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나는 B의 팔을 꽉 잡았습니다.







발소리가 계단을 중간쯤 내려왔을 무렵, B가 [으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내 손을 뿌리치고 방 안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B가 그 둥근 고리 안을 향해 점프한 순간, B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나는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눈 앞에서 B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는 공포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문과 훌라후프 사이에서 나는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차라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죄송합니다. 함부로 들어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곧이어 뒤에서 문이 천천히 열렸습니다.



열린 문 틈에서, 일부러 그러는 듯 얼굴만이 슬쩍 나타납니다.



왕관 같은 걸 쓰고 있는 노인이 얼굴만 내민 채 나를 보고 있습니다.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로.



할아버지인지, 할머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긴 백발에 왕관을 눌러쓴 주름투성이의 노인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악의에 가득 찬 미소였습니다.







한눈에 나는 '아, 이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코 내가 사과를 해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노인의 그 소름끼치는 얼굴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나는 [흐아아악!] 하고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B처럼 훌라후프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눈을 뜨자, 나는 병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머리는 멍해서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팔에는 주사바늘이 박혀 있고, 나는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누워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겨우 상반신을 일으키는데만도 3분은 족히 걸렸던 것 같습니다.



창 밖을 보자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방에는 나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않고,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잠시 후 철컥하고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나타났습니다.







간호사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그대로 방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곧 의사 몇 명이 방으로 들어와 내게 말을 건넸지만, 나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의식이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아까 ○○ 네 가족분들에게 연락을 드렸어. ○○ 너는 오랫동안 잠을 자고 있었단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제 괜찮을거야.] 라며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놨습니다.



일어난 후에도 시간의 감각은 영 돌아오질 않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곧 어머니인 듯한 사람과 젊은 여자가 울면서 병실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은 ○○도 아닙니다.



어머니를 자처하는 여자는 [다행이야... 다행이야...] 라며 울면서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여자아이는 나를 보며 [오빠... 잘 돌아왔어...] 라며 쓰러져 울었습니다.



하지만 내게 여동생은 없습니다.



3살 많은 대학생 형은 있지만, 여동생 같은 건 없었습니다.







저는 [누구세요? 누구세요?] 하고 몇 번이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후유증인 것 같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라는 소리를 어머니인 듯한 여자와 여동생인 듯한 여자에게 격려하듯 말했습니다.



어머니인 듯한 사람은 내게 [오늘은 엄마가 계속 같이 있을게.]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사이 의사에게 [나는 ○○이라는 사람도 아니고, 저 분은 우리 어머니가 아니에요. 나는 여동생도 없다구요.]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음... 기억에 좀 이상이...] 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습니다.







[○○ 너는 2년 가까이 혼수 상태에 빠져있었어. 그러니 아직 기억이 완전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조차 없어, 충격마저 느껴지지 않았던 겁니다.







의사는 그럴듯한 말을 하면서, 나를 필사적으로 격려하려 했습니다.



어머니인 듯한 사람은 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며, 충격에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화장실에 갈래요.] 라고 말하고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일어나자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무겁게 느껴져 도췌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의사와 간호사, 여동생 같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겨우 화장실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나는 바로 아까 전 같이 느껴지는 그날 밤 일을 떠올렸습니다.







기묘하게도 정신을 차리고 몇시간 동안 한 번도 그 일에 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터였습니다.



화장실 자체가 두렵기도 했지만, 부축해준 의사와 여동생 때문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용변을 본 후, 손을 씻으려던 나는 거울을 보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거기에 비친 얼굴은 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완전히 딴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때 나는 심각한 혼란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 후 나는 그대로 한 달 가량 입원해 있었습니다.



나는 부모라고 말하는 이들과, 여동생이라는 여자, 병문안을 온 친구라는 이들에게 [나는 ○○가 아니고, 당신을 모릅니다.] 라고 계속 말했습니다.



A와 B에 관해,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에 관해 계속 이야기를 했지만, 모두가 기억 장애라고 받아들일 뿐이었습니다.







A나 B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득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다만 모두들 내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줬습니다.



의사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나는 하굣길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다 쓰러졌고, 그 후 입원했다는 것 같았습니다.







내게 있어 이 세상의 모든 정보는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는 카나가와 현이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카나가와라는 현 이름을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통화 단위도 엔이 아니었고, 도쿄나 일본이라는 이름도 완전히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의사에게 [그럼 원래 네가 있던 세계에서는 뭐라고 불렀지?] 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떠올리려해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A의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아 같은 반 친구라고 몇번이고 설명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아이는 없다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습니다.







그 시설에 들어가 훌라후프 안으로 뛰어든 이야기를 의사에게 몇 번 더 필사적으로 설명했지만, [그건 네가 자고 있을 때 꾼 꿈일 뿐이야.] 라며 부정당했습니다.



하지만 무섭게도, 나 자신 역시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고, 이전에 살던 삶과 세계는 다 꿈이었다고 진지하게 믿어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나에게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는 선택지 밖에는 없었으니까요.







퇴원 후 가족과 함께 나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시 기억나지 않니?] 라고 부모님은 내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집에, 처음 보는 거리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상담을 받아가며 필사적으로 이 새로운 인생에 순응해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내게 들려오는 단어와 정보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과 아닌 것으로 나뉘었습니다.



지명이나 나라 이름은 전부 처음 듣는 것이었고, 역사에 관한 것들도 금시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 쓰이는 단어는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적응하지 못해 존댓말을 쓰고, 바지나 속옷 같은 것도 보여지기 싫어 직접 세탁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진짜 가족이라고 마음을 먹자, 이전의 인생이 마치 전생이나 꿈 같은 걸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서서히 이전까지 살아왔던 기억들이 사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던 부모님과 형의 얼굴도, 옛 시골거리도 떠올리려면 한참을 생각해야만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밤, 종교시설에서의 기억만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던 노인의 얼굴을요.



새로운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상담 횟수도 줄어간 끝에 반년만에 나는 고등학교로 돌아갔습니다.



20살에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애매모호한 위치였지만, 새로 만난 친구들과 지내며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TV도 본 적 없는 방송투성이라 무척 재미있었으니까요.



이전에 살던 곳과는 달리, 카나가와현은 도시였기에 하루하루가 새로운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돌아오고 4달 정도 지나고 나서, 뜻밖의 형태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통점이 나타났습니다.







여름방학이 다가올 즈음, 나는 숙제 때문에 서점에서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들 중에 "○○○○" 이라는 글자가 적힌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종교 관련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라는 그 이름은, 내가 마지막 밤 들어갔던 그 시설을 지은 신흥 종교의 이름과 똑같았습니다.



나는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손에 들고 필사적으로 읽어나갔습니다.







아무래도 "○○○○"은 이 세계에서는 꽤 거대한 종교 단체인 듯 했습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던 무명 신흥 종교 단체였는데...



여기서는 세계적인 종교 단체인 것입니다.







나는 그 종교 관련 책을 몇권씩 사서 읽었지만, 아무 의미 없는 짓을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책을 읽는다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내 과거를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변에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건 무의식 중에 "○○○○"이 꿈에 나온 것 뿐이야.] 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거기에 기껏 친절하게 대해주는 새 가족과 친구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겨우 고등학교에 복학하고, 사고의 그늘을 떨쳐낸 것처럼 보이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걸고 있는 기대를 깨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는 과거를 잊고, 못 본 척하기로 결심하고 평범하게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 때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나는 도쿄에서 일하고 있는 극히 평범한 샐러리맨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인지, 의아하시겠지요.







지난달, 우리 집에 편지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익명으로 쓰여진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갑작스레 편지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당신은 아마 나를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당신을 찾는데 무척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어요.



당신은 ○○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나중에 다시 한 번 편지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의 내용은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약혼자에게도요.



부탁드립니다.







거기 써진 이름을 보고도 내게는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 과거에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편지를 보내온 사람에게, 이상하게 나는 공포도, 기대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남의 일처럼만 생각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난주 두번째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내 이름은 ○○입니다.



혹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아무래도 여기에는 나와 당신만이 있는 듯 합니다.



이번달 25일, 저녁 7시에 ○○역 앞 ○○로 꼭 와주셨으면 합니다.



당신에게 급히 전할 것이 있습니다.



꼭 혼자 와주시길.







내겐 ○○라는 이름을 봐도, 그것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나러 갈 생각입니다.



어쩐지 만나야만 할 것 같습니다.







누가 거기에 서 있든,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그날 밤의 일을 말하다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겠지요.



기왕이면 B였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만난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이렇게라도 모든 사실을 적어 남겨두려 합니다...



출처: https://vkepitaph.tistory.com/806?category=348476 [괴담의 중심 -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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