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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액(땅에 깃든 악령)
게시물ID : panic_998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ng
추천 : 29
조회수 : 380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9/01/21 21: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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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의 이야기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C라는 이름의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 해, T라는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전학을 왔다.







무척 밝고 건강한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T는 영감이 강하다 못해, 신비롭게까지 느껴질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당시 주변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대충 이 정도 이야기만 들어도 누군지 알만큼 당시 지역에서는 유명한 아이였다.







나는 T와 같은 반이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쯤 되면 나름 머리가 굵었다고 그런 이야기는 잘 믿지 않게되는 법이다.



나 뿐 아니라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다 거짓말 취급하자, T는 [그럼 보여줄게.] 라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나는 왠지 무서워서 따라가지 않았지만...







다음날 우리 반은 대소동이었다.



전날 T는 집에 가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온 후, 3장의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그리고 3장 모두, 누가 봐도 알 정도로 확실하게 귀신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선명히 그 사진들이 떠오른다.



한 장에는 나무 옆에 서서 고개를 푹 수그린 중년 남자가, 다른 한 장에는 얼굴이 흐물흐물해진 갑옷 차림의 사람이,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뭔가 소리치고 있는 듯한 얼굴이 사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무리 의심하려 한다해도, 이렇게까지 확실한 물증을 보고서도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이 사건으로 T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인기인이 되었지만,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꺼림칙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물론 남자아이들 중에서도 무섭다고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하는 녀석들도 꽤 있었지만...



하지만 T는 그런 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정말로 건강하고 잘 웃는 밝은 아이였다.







솔직히 나도 그 무렵에는 T를 좋아하고 있었다.



T는 마을 변두리의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괴상하게도 그 집 반경 100m에는 다른 집은 한 채도 없었다.







어느날 T와 친하던 남자아이 한 명이 [왜 그런 곳에 사는거야?] 라고 물었다.



T는 [엄마가 여기 안 살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그랬어.] 라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T네 엄마도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무렵, 우리 집은 월셋집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열심히 돈을 모은 덕에, 집을 지을 계획이 잡혀 땅을 찾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초등학생답게 그저 T네 집 근처에 살고 싶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마을 변두리에 공터가 있어!] 라고 슬쩍 말해 T네 집 근처에 집을 짓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그 땅에 관해 알아보게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T네 집 근처는 죄다 현에서 땅을 사들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에 문의해봐도 그 땅은 팔 생각이 없다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현에서 보유한 땅에, T네 집 한 채만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 무렵에는 안 된다는 말에 그저 낙심하고 말 뿐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척 기묘한 일이다.



이 일을 다음날 T에게 이야기했더니, T는 웃으며 [그거야 그렇겠지. 그러면 안 돼! 그런 곳에 살겠다는 생각 같은 거 하면...] 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뭔가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게 나중에 그렇게 큰 사건으로 번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말을 꺼낸 걸 계기로, T를 좋아하던 남자아이들이 다들 몰려 T네 집에 놀러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T는 평상시와는 다른 냉정한 얼굴로, [위험하니까 절대 안 돼!] 라고 거절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어떻게든 T네 집에 가보고 싶다는 남자아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마음대로 T네 집에 찾아가기로 하고 방과후에 다같이 T네 집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T네 집을 중심으로 크게 철조망이 둘러쳐져 T네 집으로 통하는 길 외에는 모든 길이 막혀 있다는 것이었다.



몰래 T네 집에 가는 게 목적이었기에, 우리는 길로 가지 않고 철조망을 넘어타고, T네 집 뒤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땅바닥은 흙에 자갈들이 잔뜩 섞인 것 같아, 풀 한 포기 나지 않았던 것이 아직도 기억 난다.







대략 철조망과 T네 집 중간 정도까지 갔을 때, 같이 왔던 남자아이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 끌려가듯, 나를 포함해 다른 아이들도 겁에 질려 도망쳤다.



다들 혼신의 힘을 다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철조망을 넘어, 학교까지 도망쳤다.







겨우 숨을 고른 후, 가장 먼저 도망쳤던 녀석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 녀석의 말에 따르면 새까만 안개 같은 것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안개 같은 걸 본 건 그 녀석 한 명 뿐이었지만, 그 놈은 우리 중 가장 공부도 잘 하고, 이유 없이 거짓말을 할 녀석도 아니었다.







애시당초 T가 위험하다고, 절대 안 된다고 말했으니 뭔가 위험할 것이라는 인식은 다들 하고 있었고...



다음날, 우리는 학교에서 T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T가 잔뜩 화가 나서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무슨 짓을 한거야!]







처음으로 본, T의 화난 얼굴이었다.



그 후, T의 말에 의해 우리는 수업을 받지 않고 T네 집을 향해 끌려갔다.



철조망에서 대략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춘 후, T는 우리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한 뒤 집으로 향했다.







1시간 반 정도 기다렸을까.



여자 한 명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T네 엄마였다.









우리를 보자마자 [정말 미안해. 괜찮을거야.] 라며 왠지 불안해지는 말을 했다.



그대로 우리는 T의 엄마와 함께 T네 집으로 향했다.



집 벽에는 부적 같은 타원형 종이가 잔뜩 붙어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흰 옷을 입은 T가 정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T네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온 힘을 다해 T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는 [너,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고 있니!] 하고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







T는 코피를 흘리면서도, 엄마에게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라고 울면서 사과했다.



[내가 아니라 이 아이들한테 사과해!] 라고 T의 엄마가 말하고, T는 우리들에게 몇번이고 [미안해, 미안해.] 라고 사과했다.



우리는 어린 나이인데다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깜짝 놀라있었다.







잘못은 우리가 했는데, 정말 좋아하는 T가 우리 대신 혼이 나고 코피까지 흘리면서 사과를 하다니...



우리는 그만 참지 못하고, 다들 큰 소리를 내며 엉엉 울고 말았다.



T네 엄마는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곧이어, 그 자리에 모인 아이들의 집이랑 학교에 전화를 했다.



전원의 어머니와, 형제가 있는 집은 형제자매까지 모두.







1시간 정도 걸려 모든 이들이 모였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현청에까지 연락이 닿았었다고 한다.



그 후 1시간 정도가 더 지난 후, T와 같은 옷을 입은 20세 남짓 되어 보이는 여자가 도착했다.







그 여자는 우리를 보자마자 [꽤 많이 빼앗겨버렸네요... 서두릅시다.] 라고 말했다.



이미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우리는 그저 엉엉 울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엄마도 울고 있었기에, 그 상황이 더욱더 무서웠다.







아마 불제였으리라 싶지만, TV로 봐 왔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여자는 말 한마디 않고 정좌한 채,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점점 의식이 몽롱해지더니, 귀 안쪽이랄까, 머릿속에서 신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신음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간으로는 10분 정도였을까.



T네 엄마는 [우선 이걸로 괜찮겠지만, 어머님들은 남아주세요.] 라고 말했다.







우리는 학교로 돌아가 오후 수업을 듣게 되었고, T 역시 같이 학교로 왔다.



선생님에게도 연락이 갔었던지, [큰일이었겠구나.] 라며 위로를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 다음날부터, T는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말을 잃고 어두워졌다.







우리가 아무리 말을 건네도 그저 무시할 뿐이고, 웃는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 후, 우리는 선생님에게 T가 전학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잘못으로 T가 떠나가버렸다는 생각에 후회로 점철된 나날을 보낼 따름이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25년만에 T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에 의해 이전에 T가 살던 집을 찾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우리를 보내고 어머니들만 남았을 때, T네 어머니가 25년 후 다시금 찾아와야 한다는 말을 전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수수께끼가 풀려나갔다.



일의 시작은 작년 가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와서는, 4월 4일에 꼭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자세한 설명도 없이, 4월 5일까지는 있어야 하니 휴가를 쓰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4월 4일, 일을 마친 후 나는 2시간 반이 걸려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저녁밥을 차려주셨지만, 왜 돌아오라고 했는지는 말해주지 않으셨다.







4월 5일.



아침 4시 반에 어머니가 나를 깨웠다.



나가야하니 어서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전날 집에 돌아오던 도중, 역에서 어릴 적 친구를 만났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역시나 T네 집이었다.



하지만 근처에 이르러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철조망이 쳐져있던 곳에는, 3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콘크리트 담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는 가시철조망이 쳐져있었다.



마치 감옥 외벽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철조망을 만지면 감전된다는 간판까지 세워져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 사건 이후 이 근처로 오는 건 금지되어 있었기에, 나 역시 그 때 이후로 처음 와보는 것이었다.



길을 따라 걸어가자, 철로 만든 문이 나오고, 입구에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어머니가 이름을 말하자, 신분증을 요구했다.







겨우 본인 확인이 끝나고서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라고 안내를 받았다.



나는 이 안 한가운데에 T네 집이 있으리라는 예상을 했지만,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어릴 적 보았던 자갈 섞인 흙바닥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3명의 여자가, 어릴 적 보았던 기억이 있는 흰 옷을 입고 서 있었다.



[A군이야?]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첫눈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T였다.



나는 어떻게든 사과하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T에게 달려가 울면서 땅에 무릎을 꿇었다.







그 후, 10분도 지나지 않아 그 때 그 남자아이들이 죄다 모였다.



다들 생각은 똑같았던지, T를 보자마자 사과를 했다.



무릎까지 꿇은 건 나 뿐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기뻤던 건, T가 옛날처럼 다시 밝은 모습이었던 점이었다.



곧이어 설명이 시작되었다.



나머지 두 여자는 T네 어머니와 25년전 불제를 해줬던 그 여자였다.







T를 포함해 3명 모두 평범한 속세의 이름이 아니라, 무언가 굉장히 긴 계명 같은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를 부른 이유는 이 토지의 해방과, 우리들의 수호영혼에게 공양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담으로 둘러싸인 이 땅에는 '지액(地厄, 진야쿠)' 라 불리는 땅에 깃든 악령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박령보다 더 강한 영혼이라고 할까...



그 땅에 발을 들인 이에게 온갖 불행과 저주를 퍼부어, 급사하거나 실종되게 만드는 흉악한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런 지액을 없애기 위해서는, 반년 정도의 시간 동안 지액만 전문으로 담당하는 불제를 드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불제는, 현에서 의뢰를 받아 T네 어머니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지액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그리고 도중에 희생자가 나오면, 그로부터 또 25년의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사람들도 이런 땅에는 육감적으로 다가가려 하지 않기 마련이지만, 의식적으로 거기에 들어가려는 마음을 먹은 경우에는 그마저 소용이 없다고 한다.



우리들의 경우에는 다들 T를 좋아하고 있었기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도 애써 무시했던 것이리라.



다만 검은 안개 같은 것은 아마 환각이었을 것이라 했다.







지액은 그저 슬쩍 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육감이나 수호령에 의한 경고와 공포심으로나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 땅은 기복이 심한 삼림지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토지 개발이 시작되며 주택가를 조성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공사 도중 인부 2명이 행방불명되면서 흉흉한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실제 공사 도중 고분 같은 것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어, 오랫동안 재직했던 공무원이 지액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현에서 이 땅을 사서 불제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제야 알게 된 것이었지만, 25년 전 우리가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따로 있었다.



우리는 그간 불제를 받았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만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달랐다.



우리의 수호령이 우리 대신 지액에게 소멸당했던 것이었다.







25년전의 불제는 원래대로라면 지액에 의해 해꼬지 당했어야 할 우리 대신, 수호령을 바치기 위한 의식이었던 것이다.



모든 설명이 끝난 후, 토지를 지액에게서 해방시키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흰 옷을 입은 세 사람이 바닥에 앉아, 다리를 펼치고 묵념한다.







뭐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공기가 변한다고 할까, 지액이 소멸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느껴졌다.



곧이어 수호령에 대한 공양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우리도 정좌를 한 채 묵념을 했다.







공양이 끝나면 자연스레 새로운 수호령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것이었다.



새삼 25년간 수호령도 없이 잘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우리는 간만에 신나게 떠들어대며 그간 밀린 추억을 되돌아보았다.







그제야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T의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가 T를 좋아한다는 걸 T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교류를 끊었던 것이라 했다.







새삼 그 시절이 떠올라 부끄러우면서도, T가 이전처럼 건강해보인다는 게,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출처: https://vkepitaph.tistory.com/803?category=348476 [괴담의 중심 -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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