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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했지
게시물ID : lovestory_869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44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2/07 22:30:5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2Vlvsl92CjY





1.jpg

고광헌어머니가 쓴 시

 

 

 

어머니

머리에 보자기 두르고

학교 오시던 날

 

누런 보리밭 옆 운동장으로

5월 하늘 새까맣게

무너지던 오후

 

더 이상 나는

집으로 돌려보내지지 않았다

 

쪽 풀린 어머니의 검은 머리칼

서울 와서

가발공장 여성노동자

데모에서 보았다

 

평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수업료

 

그때

어머니 전 생애를 잘라

조용히 머리에 두른 것이다







2.jpg

김사인아카시아

 

 

 

먼 별에서 향기는 오나

그 별에서 두 마리 순한 짐승으로

우리 뒹굴던 날이 있기는 했나

나는 기억 안 나네

아카시아

허기진 이마여

정맥이 파르랗던 손등

두고 온 고향의 막내누이여







3.jpg

이재무간절

 

 

 

삶에서 '간절'이 빠져나간 뒤

사내는 갑자기 늙기 시작하였다

 

활어가 품은 알같이 우글거리던

그 많던 '간절'을 누가 다 먹어치웠나

 

'간절'이 빠져나간 뒤

몸 쉬 달아오르지 않는다

 

달아오르지 않으므로 절실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으므로 지성을 다할 수 없다

 

여생을 나무토막처럼 살 수는 없는 일

사내는 '간절'을 찾아 나선다

 

공같이 튀는 탄력을 다시 살아야 한다







4.jpg

나희덕식물적인 죽음

 

 

 

창으로 빛이 들면

눈동자는 굴광성 식물처럼 감응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빛이 희미해져 갈 때마다

숨소리는 견딜 수 없이 가빠졌다

삶의 수면 위로 뻐끔거리는 입

병실에는 그녀가 광합성으로 토해놓은 산소들이

투명한 공기방울이 되어 떠다녔다

식물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공기방울에서는 수레국화 비슷한 냄새가 났다

천천히 시들어가던 그녀가

침대 시트의 문양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빛을 향해 열렸던 눈과 귀가 닫힌 문처럼 고요해졌을 때

이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도 사물도 아닌그 누구도 아닌오로지

한 떨기 죽음으로 완성된 그녀

죽음이 투명해질 때까지

죽음을 길들이느라 남은 힘을 다 써버린 사람

모든 발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수레국화 한 송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5.jpg

이윤학푸른 자전거

 

 

 

어둠이 내릴 때 나는

저 커브 길을 펼수도

구부릴 수도 있었지

저 커브 길 끝에

당신을 담을 수도 있었지

커브 길을 들어 올릴 수도

낭떠러지로 떨어뜨릴 수도 있었지

당신이 내게 오는 길이

저 커브 길밖에 없었을 때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했지

커브 길 밖에서는 언제나

푸른 자전거 벨이 울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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