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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기록 / 8503-K (1)
게시물ID : panic_998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떤것
추천 : 2
조회수 : 7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2/23 19:36:21
<녹음시작 / 현재시간 10:30분>

- 오, 아직 작동하네. 벌써 나온지 몇백년은 된 모양을 하고는?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1분간 끊김. 의도적으로 녹음시간에 여유를 둔 듯함.)

- 생각해보니까 나 말 해보는거 너무 오랜만인데? 소설에 보면 뭐 혼자가 되면 혼잣말이 는다더니. 그거 다 거짓말인가봐. 한 몇개월 한마디도 안한거 같아. 에, 그러니까 지금 시간이... 2111년 5월 16일, 다섯시 오십분. 일 끝마치고 분쇄기 넣을거 정리하다가 녹음기를 발견함. 아마도 20세기 중반 쯤? 그때 쯤 전쟁통에 쓰이던 물건으로 추정. 푸하하하!

(*약 3분간 웃음소리)

- 이야 생각해보니까 이거, 사람 보는 앞에서 험담한 셈이네. 미안하다, 야. 내가 좀 뭐랄까, 말하는 연습을 그동안 못해서 그래. (*둔탁한 소리, 아마도 녹음기를 두드리는 듯 한.) 그래도 그렇게 무뚝뚝하게 생긴 덕분에 지금껏 멀쩡하니 얼마나 다행이냐. 세상에 이백년을 작동하는 기계라니, 그것도 그런 구시대 물건이. 감동적인데! (다시 웃음소리.)

- 누가 널 이 여기에 태웠는지는 몰라도, 아마 엄청나게 유머러스 한 사람인가봐. 22세기의 우주선에 20세기의 녹음기를 싣는 낭만이란. 200년짜리 농담이라! 내 전임자가 타치구니였나, 뒤마였나? 에이, 그 둘 중엔 없겠구만. 둘다 개그라고는 모르는 깡통머리거든. 어쩌면 로제타 일까? 그래도 그 여자 쪽이 저 둘보단 나은데. (얇고 높은 비프음.) 으아... 식사시간인가? 그러고보니 넌 뭘 먹냐? 이 초 하이테크 우주선에 AAA건전지 같은건 없을텐데?

(약 3분 정도 녹음기능이 켜진 채로 노이즈만 기록되어 있음. 곧이어 철퍽, 하는 축축한 소리.)

- 내게 만일 묻는다면 이 모든 일을 거짓말로라도 뿌듯하다고 말할 순 있겠지만, 식량 담당자는 한대 패주고 싶어. 벌써 2주째 이 죽같은 것만 먹고 있다고. 식량은 유한하니 너무 맛있어도 곤란하다던가? 옘병.

(점성이 있는 액체를 마시는 소리.)

- ...너무 맛 없어도 곤란하지 않나? 야, 깡통! 다른 사람들은 이거 괜찮대냐?

- (아주 낮고 잡음이 섞인 목소리)현재 적재중인 인원 중, 식사에 대한 불만건의는 없었습니다.

- 대단들 하다 정말. 아 맞다, 인사해 친구. 저기있는 파란 공이 내 또다른 친구 깡통이란다.

- 해당 기기에는 녹화/촬영 기능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 알어, 새끼야. 그냥 시늉도 못하나? 솔직히 쟨 너무 유머감각이 없어. 존재 자체가 유머 덩어리인 너와는 천지차이지. 안그래? 만든 사람 머리에 문제가 있어요, 문제가...(*걸음을 옮기는 소리. 약 5분간.)

- 아... B구역에선 사람 볼 일이 없으니 너무 심심하다... 앞으로 3주를 뭘 하면서 버티냐... 이봐 친구, 내가 왜 이 우주선에 있는지 알아? 이 우주선의 이름은 헤르메스03. 자원고갈, 자연파괴의 영향으로 멸망해가는 인류를 구원할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지.(*라이터를 켜는 소리. 아마도 지포 라이터 계통. 깊은 숨소리.)

- 최대한 과거의 지구와 비슷한 곳을 찾아내서, 우주선 내에 장비된 테라포밍 장치로 환경을 조성하고, 쌍둥이 우주선이지만 훠~얼씬 더 큰 헤르메스04에 남아있는 본행성 인들을 태워 여기로 오는거지. 위성이 있으면 더 좋다대? 하여튼, 그럼 이 비루한 내가 왜 이 위대한 임무에 차출 되었느냐! (*깊은 숨소리.) 바로 내가 아주 흉악한! 범죄자 이기 때문이지! 사실 우주 항해가 얼마나 걸릴 줄 알고 막중한 임무를 가진 인재들을 그냥 태워보내겠어? 그리하여 그 이름도 찬란한 뇌내기억전송장치로 흉악 범죄자 들에게 우주선을 관리하는 지식을 꽂아넣어 준거지. 자살 및 살해, 각종 범죄발생 금지 코드를 머릿속에 쑤셔박고는 강제로 콜드슬립시켜서 순번대로 깨우는거야. 태워놓은 인재님들도 콜드슬립 상태긴 하지만 그 양반들이야 우주선의 자동수색장치로 유사지구행성을 발견할 때 까지는 깰 일 없고. (*깊은 숨소리.)

- 여기에 적재된 죄수들은 총 500명. 한달씩 로테이션으로 깨어나서 우주선을 관리하고, 또 관리하고... 그렇게하면 적어도 죄수들이 전부 늙어 죽기 전까지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되지 않겠냐는 계산이지. 하여튼, 사고방식이 변태스러워요. 형량을 감면해준대서 신청했더니만 이건 차라리 종신형보다 못하잖아?(*웃는 소리, 3분간. 깊은 숨소리) 죄짓고는 못산다더니 그 말 참 맞는 말같어. 내가 진 죄명이 뭐냐면 말야, 영유아 35명 특수 납치, 성폭행, 유인살인 이거든? 사실 난 아무 죄도 안지었어. 그냥 돈이 없었던 것 뿐이지.

- 죄수번호 8503-K. 작업능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능동적인 점검활동을 요구합니다.

- 하이고, 알았다 알았어. 미안해 친구? 우리 나머지 얘기는 좀 있다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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