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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기록 / 8503-K (2)
게시물ID : panic_998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떤것
추천 : 4
조회수 : 6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2/24 13:47:39

(*잠시 퓨즈)

- 하여튼 저 기계놈은 인정머리가 없어. 당연한 거긴 한데, 뭐라하진 않을거지? 그래야 내 친구지! 역시 넌 매력적이야. 그래, 아까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 아 맞네. 나 돈 없단 얘기였지? 사실 진범은 나 살던 옆동네 부촌 도련님이었거든. 세상에 뒷수습도 집사가 해주더라고. 난 집사라는 직종 자체를 그때 처음봤어. 와서 보자마자 그러더라고. "남아있는 빚 전부에 어머니 병원비, 거주구역 이전, 생활보장." 캬~ 오죽이나 급했던거냐고. 우리처럼 딱 돈만 없던 사람들이 그 슬럼에서도 드물었거든. 나머지는 마약에 알콜에 도주중인 현상범에... 쿵짝을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었어. 그래서 그런가 협상이고 뭐고 여지도 없이 처음부터 최대치를 제안하대? 당연하지~ 14대 독자에 가업후계자에 더 낳을 수도 없다는데, 그런놈이 종신형 들어간대봐. 끝장이지 끝장. 그래서 그냥 어영부영 그러마고 했지. 별 수 있나? 저만한 조건을 제시하는 놈들이 거절했을 땐 또 어떤 짓을 할 줄 알고? 뭐 조건 자체도 더 바랄게 없었지만... 

- 여튼 그쪽에서 준비해준 옷에 알리바이에 도주경로를 타고 튀다보니 잡혔어. 날 담당하던 형사도 알아채더군. 진범치곤 재연이 어설프더래. 그래도 뭐 어쩌겠어, 얼른 수사종결하고 집어넣으라고 어마어마하게 압박이 들어오는데 이제와서 진범 아니라고 재수사해? 말같지도 않은 소리지. 그래서 그랬나 그 형사가 여길 추천하더군. 운이 좋으면 이주선단 특사로 풀려날 수도 있고, 우주선에서 평생 썩더라도 깜빵보단 낫지 않겠냐고.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사람이야. 말이야 바른말로 평생 살던 슬럼에 비하면 암만 머리에 칩을 박아넣더래도 여기가 낫지. 여가시설에 돈도 안들고, 밥도... 물론 맛은 X같이 없긴 한데, 얼마든지 제공해주고. 하루 여덟시간 잔다? 일도 널널해. 천국이야 천국.

(*라이터를 켜는 소리. 깊은 숨소리.)

- 아, 그러고보니 우리 통성명도 안했나? 난 8503-K. 본명은 김석도. 친구는 이름이 뭐니? (*웃음소리, 20초간. 녹음기를 들어 살펴보는 듯 태핑소리.) 에이 모델번호도 없네. 진짜 오래되긴 했나보다. 아! 그럼 윌슨 어때 윌슨! 생각해보니 그보다 더 잘 어울릴 이름이 없겠다! (*웃음소리, 2분간.) 내가 핏자국이라도 내주고 싶은데, 어쩌나 난 자학방지 코드 때문에 몸에 상처를 못낸다구. 들고다니다가 다칠 일 있으면 다치자마자 도장을 찍어줄테니 기다려, 친구.

- 죄수번호 8503-K. 휴식시간입니다.

- 야, 깡통! 이 녹음기 무슨 배터리 쓰냐?

- 해당 기종의 등록정보가 없습니다. 내장하고있는 배터리를 충전하여 사용하는 기종으로 추정됩니다. 본체 옆 쪽에 충전기 단자 접합부가 보입니다.

- 그래? 충전기도 어디 떨어져있으려나... 내일 작업하면서 찾아봐야겠네. 내일 작업은 어디서 하냐?

- 명일 작업은 본체 좌익 제 4엔진 점검입니다. 엔진 별 각개휴무 로테이션에 따라 결정된 사안입니다.

- 와악! 왜 그걸 내 때하는거야! 지난번에도 내가 했는데.

- 각 로테이션은 명확한 계획과 순번에 따라 결정됩니다. 여러분의 시간감각에는...

- 아유 됐다 됐어! 알았다고!

(*1초간 퓨즈.)

- 아까 그 로봇이 말야, 우리한테 그랬잖냐. 여러분의 시간감각 어쩌고. 사실 저 깡통이 다른건 다 알려줘도 하나 안 알려주는게 있어. 그게 뭐냐면... 바로 날짜야. 사실 내가 느끼기로는 난 아직 지구를 떠나온지 겨우 한달 조금 넘었어. 과학자 놈들이 어찌나 기술을 잘 개발해놨는지 범법행위 방지 전자칩을 머리에 넣고 냉동인간이 될 때까지 채 한시간도 안걸리더라구. 그래서 그런가, 중간에 교대할 때 콜드슬립에 들어갈 때도 별 감흥이 없어. 그냥 지금껏 그랬던 것 처럼 평범하게 잠이 들고 다음에 깨어날 때도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은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겠지.

(*10여초간 침묵. 녹음은 진행중.)

- 솔직히 말하면 좀 무서워... 어쩌면 벌써 이삼십년 정도는 지났을지도 모르잖아. 식량의 양을 따져보자니 저건 건조압축식품이라 창고에 있는 양 만으로는 따지고 뭐고 구분도 안간다구. 그러니ㄲ... 으앗 뜨거! 아 담배!! 불붙여 놓고 제대로 피지도 못했는데! 으... 정말 난 진지한 얘기랑은 안맞나봐. 폼잡을라 치니 이런식으로 훼방을 놓네. 아 씨... 바닥에 자국났다. 이거 얼른 치워야지, 안그러면 또 그 깡통이 나한테 뭔 소릴 할지 모르겠어. 그러고보니 청결유지용 코팅제가 어디있더라... 제 2창고였나 제 3창고였나...

- 죄수번호 8503-K. 무슨 문제가 발생했나요?

- 으아아! 아니야! 아무일도 없어! 그럼! 내 친구랑 대화중이었어!

- 당신의 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 여, 여기 있잖아, 녹음기. 아까 소개해주지 않았어?

- ...당신의 사고회로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시 2생활구역 내부의 검진기기를 통해 브레인 칩의 상태를 점검하십시오.

- 아이... 농담이지. 그냥 좀 심심해서...

- 지금. 즉시. 이동하십시오. 정신검진은 권유가 아니라 지시입니다. 하지만 지루함이 원인입니까? 실내 오락시설의 설비는 충분할텐데요.

- (*작은 목소리)진짜 저거 설계한 놈은 액티브 엑스의 개발자가 환생한 걸지도 몰라. 으으윽... (*다시 본래의 목소리) 그래 알았어. 지금 바로 이동해서, 검진 받고, 결과보고서 제출. 그러면 되는거지?

- 당신의 루틴은 정확합니다. 그러나 본 기기는 향후 8시간 동안 전력충전 및 본 함의 시스템 제어 명령체계의 오류 추산계획이 잡혀있습니다. 보고서는 그 이후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래, 그래. 그럼 난 간다~ (*작은 목소리) 재수없어 정말. 농담도 못한다니까. (*발자국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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