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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감옥
게시물ID : panic_999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냥이박사
추천 : 4
조회수 : 157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3/02 17: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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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햇살이 눈꺼풀을 따갑게 때린다. 나는 닭이 울진 않았어도 아침임을 자각한다. 69년을 살아온 나는 아침이 싫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어질러진 이불만 봐도 속이 메스껍다. 좁디좁은 방에 홀로 남아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 그게 나다.
 나는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집어 들어 연락 온 데가 있나 살펴본다. 역시나 없다. 아들 무진과 연락이 끊긴지 어언 20년. 서로 연락처와 사는 곳은 알지만 한 번도 왕래한 적은 없다. 장가를 가고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나와는 무관했다.
 벽에 세워진 거울 앞에 선다. 거울에는 쪼그라든 종이처럼 볼품없는 노인이 서있다. ‘이제 곧 칠순이라니.’ 나는 세월이 빨리 흘러갔다고 탄식한다. 나는 브라운 정장을 위아래로 차려입고 광을 낸 구두를 신는다. 혼자 사는 노인네라도 초라해 보이긴 싫었다. 중절모로 한껏 멋을 부린 뒤 현관문을 열고 나선다.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 들어간 나는 음식을 주문하고 화장실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알 수 없는 영어와 그림 표기일 뿐. 난 한참 생각을 하다가 한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한다.
  “에헤이, 눈은 뒀다 뭐하노? 거긴 여자 화장실입니대이.”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50대쯤 됐을까? 중년의 사내가 나를 비웃으며 쳐다보고 있다. 난 차오르는 화를 누르고 애써 미소 짓는다. 그리고 반대쪽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할 때 녀석은 미사일 버튼을 눌러버렸다.
  “할배요, 이런데 오지 마시고 국밥이나 드시러 가이소.”
 난 몸을 돌려 녀석을 응시한다. 보통의 노인이라면 이 상황을 넘기거나 훈계를 할 테지만 난 조금 달랐다. 난 녀석에게 다가가 뺨을 갈기곤 멱살을 거머쥔다.
  “이런 핏덩이 같은 새끼가 말하는 본새 봐라?”
 의자가 나뒹굴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식당 가득 퍼져간다. 이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눈들은 나의 감정을 더 달아오르게 만든다. 마침내 거구의 식당 매니저가 찾아와 나와 녀석을 떼놓기 전까지 나의 입은 쉴 새 없이 욕을 퍼부었다.
 주문한 음식을 손에 쥐고 식당을 나왔다. 아니 강제로 쫓겨났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그리고 이 식당은 두 번 다시 가지 못할 것이다.
 
 
 언덕으로 다닥다닥 붙은 동네. 달동네는 아니지만 벽마다 그려진 벽화는 동네를 오를 때마다 마음을 안정시켜주곤 한다. 이 동네에서 산 지도 어언 20년째. 아들이 집을 나간 이후 이곳에 들어와 정착했다. 그래, 나는 경로당에서 지내야 하는 나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불같은 성질은 같은 노인들에게조차 외면받고 말았다. 또한 그 흔한 국밥집, 고깃집 사장과도 다툼이 있고 나선 동네 어디든 갈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유일하게 받아주는 곳은 동네 중턱에 위치한 슈퍼마켓이다. 슈퍼의 주인은 뚱보다. 나는 문자 그대로 그가 뚱뚱해서 뚱보라 부르고 있다. 넉살 좋은 그는 내 성질을 다 받아주며 유일하게 내게 술을 판다.
슈퍼 마루에 걸터앉아 초록색 뚜껑을 돌려 딴다. 종이컵에 졸졸 따라지는 투명한 알코올 액체는 내 기억 어딘가 행복했던 추억을 끄집어내준다.
  “아재요, 이제 고마 아들한테 연락해 보이소. 언제까지 이래 살겁니꺼?”
 나는 또 잔소리 시작이라 생각하며 종이컵에 든 소주를 들이켠다. 그러자 뚱보는 손에 쥐고 있던 육포를 뜯어서 내 앞에 가져다 놓는다.
  “아재, 그 얘기 들었습니까? 그 윤 씨 아재 말입니더.”
  “내 알 바가? 흠... 그 뭐냐, 도벽이 심해서 자식들이 내놓은 아재 말이지?”
  “결국 잡혀갔다 캅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감방이 밥도 잘 나오고 사람도 많다고 좋다 하대요?”
  “참 구차하네. 그럼 뭐 하나? 어쨌든 감옥이구먼."
  “열심히 살아온 양반인데... 자식들이 커가면서 자기한테 무관심 해지니까네... 외로워서 그랬다고... 그 뭐시냐. 심리 파일러인가 뭔가? 그 작자들이 그래 얘기해주대요?"
 난 윤 씨 아재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노인이 되면 외로워지는 게 당연한 걸까? 젊을 땐 사소하게 보였던 꽃과 풍경이 좋아지는 것은 외로워서 그런 것일까? 난 윤 씨의 이야기를 통해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무환 씨, 또 나 빼놓고 술 먹기입니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이용수가 보인다. 나와 1살 차이가 나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비슷한 노인네다. 더불어 나의 성질을 받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알아서 잽싸게 왔어야지? 허허... 사실 지금 연락을 하려고 했소.”
 난 멋쩍게 핸드폰을 들어 올리며 웃어 보인다. 난 사실 용수에게 빚을 진 사람이다. 내가 홀로 뇌 수막염으로 끙끙 앓을 때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준 사람이다. 사실 혼자 갈 수 있는 문제였지만 난 미련하게도 그대로 죽고 싶었다. 그런 나를 설득하고 다그치며 이끌어준 그는 내게 아침 햇살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성가시지만 결국 그 빛으로 인해 눈을 뜨고 살아가지 않는가?
 우린 노을이 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뚱보가 슈퍼에서 편의점으로 변경해야 될지 하소연하는 것부터 자식, 태극기 부대 비난 같은 것을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나는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용수가 계속 진땀을 흘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몸에 이상이 있을지 모르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그는 감기 기운이라며 괜찮다고 말했다.
 
 파란 대문을 열고 좁은 방으로 몸을 구겨 넣는다. 정장을 벗고 중절모를 벗자 초라해진 노인이 거울에 비친다. 난 핸드폰을 꺼내들어 아들 이무진이 등록된 번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잘 보이진 않지만 아들의 이름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2
 며칠이 지났다. 그날은 햇살이 비치지 않은 우중충한 아침이었다. 난 며칠간 용수 아재가 보이지 않는 것이 신경 쓰였다. 혹시 자식들을 다시 만난 것일까?
 난 거울을 보며 정장을 입는다. 중절모를 쓰려고 할 때 전화가 울린다. 난 혹시 아들 무진일까? 하는 설렘으로 전화기를 들어본다.
 
 슈퍼로 나가보니 뚱보가 입구 밖으로 나와 서성이는 것이 보인다. 그는 멀리서 나를 알아보곤 손을 흔든다. 난 뚱보의 연락을 받았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용수 아재가 보이지 않는다며 함께 용수 집에 가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나도 용수의 안부가 궁금하던 차에 뚱보의 제안에 응했었다.
  “아재들처럼 혼자 사는 노인네들은 안 보인다 싶으면 찾아가 봐야지 예.”
  “용수 아재는 노인 돌봄이 인지 뭔지 그거 대상자 아니던가?”
  “아유, 자기를 그런 초라한 노인으로 보지 말라면서 어찌나 화를 내던지... 기껏 찾아온 사람들을 문전박대 했다지 뭡니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뚱보와 달리 용수가 이해됐다. 비록 홀로 남고 늙었지만 끊임없이 다가오는 시간에 저항하는 마음. 나도 용수와 같았다.
  “근데, 무환 아재는 뭣 땜에 자식을 안 보는 겁니꺼?”
  “그 빌어먹을 자식은 자식도 아니다.”
 사실 뚱보의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하나 갈등했었다. 난 표현에 어색하다. 사람들은 내가 성질이 고약한 노인네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그것은 억울했다. 표현이 다소 직설적일 뿐이지 악의는 없었다. 한때 이런 것들을 고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의 이러한 표현 방식은 아들 무진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그를 떠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용수의 현관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나는 뚱보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간다. 홀로 사는 노인의 집답지 않게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가 보인다. 좌식 책상에는 수없이 필사했을 성경 책과 노트, 빛바랜 가족사진이 놓여있었다.
어디선가 썩은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난 불길한 예감을 하며 냄새의 진원지를 찾는다. 뚱보가 우엑- 하며 구역질을 해버린다. 나는 화장실에서 고꾸라진 채로 죽은 용수의 시신을 내려다본다. 그는 차가운 바닥에서 홀로 죽음과 맞섰던 것이다.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 가장 가까웠던 벗이 죽자 외로움은 더 커져갔다. 이걸 핑계 삼아 아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20년간 연락을 안 했다는 것은 아주 잘 살고 있다는 것일 테니까. 난 아들이 누릴 평화에 균열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나도 용수 아재처럼 초라한 노인이 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용수의 죽음을 마주하니 나의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그때 뚱보가 전해줬던 윤 씨 아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감옥에 들어가 외롭지 않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 그래, 적어도 홀로 죽진 않겠지.
 
 나는 홀린 듯 범행을 구상한다. 69년 만에 저지르는 첫 범죄가 될 것이다. 물론 살아오면서 자잘한 범죄들은 저질러왔지만 감옥에 갈 만큼의 죄는 지은 적이 없었다. 나는 동네에서 절도할 만한 곳이 있는지 탐방을 시작한다.
 뚱보네 슈퍼는 분명 선처를 하려 들 것이다. 이곳을 제외하고 국밥집, 고깃집을 목록에 넣어보지만 이들도 나를 감옥에 넣진 않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동네 아래 새롭게 문을 연 편의점이 보인다. 나는 이곳에 들어간 순간 직감한다. 이곳이라면 나를 감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점주는 얼마 전, 식당에서 한바탕 싸운 50대 중년의 그 녀석이었다.
 
 나는 녀석의 눈을 피해 비싸 보이는 물건들을 품에 담아 넣는다. 그리고 잽싸게 편의점 문밖으로 빠져나온다. 녀석은 분명, 편의점에 들어선 나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봤으니 의심해볼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뚱보를 불러낸다.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육포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들이켠다. 감옥에 가게 되면 아쉬운 것은 이 술일 것이다. 나는 그곳에선 술을 마시지 못할 테니 오늘 이 술을 많이 마셔둘 작정이다. 뚱보는 말없이 내 잔에 술을 따른다.
  “아재요. 밑에 편의점도 들어섰고... 나도 이제 떠날랍니다. 구멍가게가 편의점을 우에 이기겠노. 내가 다른데 가도... 생각나거든 찾아와주이소.”
 나는 뚱보마저 떠나겠다는 말에 술이 더 쓰다고 느낀다. 그래서인지 오늘 벌인 범죄가 좋은 선택이었다고 안심한다.
  “뚱보야. 그동안 고마웠다. 네 덕분에 이 좋은 풍경 보면서 술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슈퍼 아래로 펼쳐진 마을과 산 아래로 꺼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이런 풍경과 함께 매일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은 작은 위안이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외로웠다. 풍경만으로는 결코 내 마음의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3
 나는 집밖에 나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외출은 하지 않았지만 정장 차림에 중절모를 준비해두고 경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면 이 집도 끝이라 생각하니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외롭긴 했어도 20년간 머물던 보금자리였다.
 곱게 접은 이불 위에 베개를 올려다 놓자 구두가 지면에 닿는 또각-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소리가 점점 커져갈수록 나의 심장 박동도 커져간다. 이러다 심장마비로 사망하면 참 우습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내 차분해졌다. 발자국 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나는 밖에 선 경찰의 호출을 기다린다.
 마침내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 때가 됐다 직감하고 중절모를 쓰며 일어선다. 문 앞에 서자 용수 아재와 뚱보와의 평범했던 일상들이 짧게 요약되어 스쳐 지나간다. 난 기억의 재생 버튼을 종료한 뒤 문을 벌컥 연다.
 
 눈보라가 날리는 설원 위에 늙은 늑대가 기어가고 있다.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는 녀석이 한동안 굶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장성한 새끼들은 늑대를 지켜만 본다. 마치 죽기를 기다리듯이...
 
 티브이에서 늑대를 다룬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난 티브이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내 앞에 앉은 이에게 신경이 곤두서있다.
 아들이 찾아왔다. 무려 20년 만이었다. 난 젊었던 아들이 40대가 됐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내겐 어린 아들이었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무언가 말을 꺼내고 싶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건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밥은 먹고 왔냐?”
  “아직이요. 아버지는?”
 난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밥솥을 열어보자 흰쌀밥이 남아있는 것에 안도한다. 난 말없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먹다 남은 미역국을 데운다. 더불어 작은 냉장고를 열어 아껴 먹으려던 장조림을 꺼내든다.
 소박한 한상이 차려진다. 난 아들과 말없이 수저를 든다. 난 나의 언어 표현 방식 때문에 또다시 아들을 보내기 싫었다. 그래서 이처럼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쉴 새 없이 수저를 드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
 나는 창문 밖에서 지저귀는 새들이 시끄럽다고 느껴진다. 아들과의 대화에 집중하고 싶어서 창가로 향한다. 창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골목을 걷고 있는 경찰관이 보인다. 난 차분하게 창문을 닫는다. 그렇지만 경찰을 봐서 그런지 컨트롤 중인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난 아버지란 자가 경찰에게 연행되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왜 이제 찾아왔냐?”
  “그거야...”
  “얼마 전에 한 노인이 고독하게 죽어갔다. 아비도 그렇게 되길 바라냐?”
  “아버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아니면, 아비한테 남은 콩고물이라도 있을까 봐 이제라도 찾아온 거냐?”
  “아버지!”
 나도 모르게 직설적인 말이 나와 버렸다. 다른 방식도 있었지만 이 고질적인 병은 고쳐지질 않았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말은 거침없었다.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거짓이었다.
  “밥 다 쳐 먹었으면 썩 꺼져라.”
 아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문을 쾅- 하고 닫으며 밖으로 나가버린다.
 
 아들이 돌아간 지 1시간 뒤. 경찰이 찾아와 나를 경찰서로 연행해갔다. 그곳에는 편의점 점주인 녀석이 화를 씩씩 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저 아재, 감방에 처넣으소.”
  “자자. 사장님, 진정하시고요. 어르신, 어르신은 거기서 왜 그러셨습니까?”
 경찰이 녀석을 진정시키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예정 대로였다면 난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적반하장의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찾아왔었다. 난 어떡해서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아이고, 내가 미쳤나 봅니다. 노인네가 노망나서 미친 짓 좀 했다고 여겨주십시오.”
 나는 녀석에게 무릎을 꿇고 빌고 또 빌었다. 빨리 이 상황을 종결시킨 후 아들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마침내 녀석은 마지못해 합의를 해줬다. 아무래도 70 먹은 노인네가 무릎을 꿇고 비는데 계속 고집부리는 것이 민망했으리라.
 경찰은 돌아가려는 내게 따끈하게 데워진 홍삼 차를 건넨다. 그는 나와 같이 외로움에 감옥으로 가려는 노인들이 많다며 언제든 자신들을 찾아와도 좋다고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언덕을 올라야 했다. 나는 뚱보를 만나려 슈퍼에 들렀지만 문은 굳게 닫혔고, ‘점포 정리’라 적힌 종이만 큼직하게 붙어있었다. 이젠 완벽하게 혼자가 됐다. 하지만 괜찮았다. 아들이 찾아왔고, 그는 또다시 나를 찾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4
  며칠이 지났다. 그러다 몇 주, 아니 한 달이 지났다. 아들이 찾아오지 않자 불안해졌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아들에게 전화도 걸어봤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는 책상에 있는 서랍을 열어 노트를 꺼내든다. 펼쳐든 노트에 적힌 아들의 주소지를 확인한 나는 곧장 정장을 갖춰 입는다. 중절모를 쓰려 했지만 쓰지 않고 도로 내려놓는다. 처음으로 흰머리를 드러내고 집 밖으로 나서는 하루였다.
 
 아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가까이 살면서 20년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스럽게 느껴졌다. 아들은 한 아파트에 살았다. 평수가 넓진 않았지만 가족들과 살기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의 현관문 앞에 선다. 심호흡을 한 뒤 초인종을 누른다. 반응이 없다. 초조해진 나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며 문을 두드린다. 그러자 졸린 눈을 한 중년의 여성이 “누구세요?” 하며 문을 연다.
  “여기 혹시 저희 아들... 아, 이무진이 집 아닙니까?”
  “잘 못 찾아오셨는데... 저희 여기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아마 전에 살던 집주인일 거예요.”
 난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는다. 아들이 어디로 이사 갔는지 묻지만 명확한 답을 얻기 어려웠다. 관리 사무실에 찾아가도 결과는 똑같았다. 난 그때 차라리 사실을 얘기하고 따뜻하게 말해줄 걸 하지만 늦어버렸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나는 그저 기계처럼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숨을 쉬며 잠을 잔다. 하루에 말을 10마디 이상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생존에 필요한 의사소통만 할 뿐이다.
 매일 아침마다 비치는 햇살을 보며 용수 아재를 떠올린다. 차라리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아들을 원망하진 않는다. 그저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만 날이 갈수록 커져간다.
 
 나는 동네에 가끔씩 들리는 만물상 트럭에 들려 날이 잘 드는 칼과 밧줄을 산다. 만물상 주인이 조합이 어색한 칼과 밧줄을 사자 의아해한다.
  “아재요, 내가 이 일하면서 칼이랑 밧줄을 동시에 사는 사람은 못 봤는데... 이걸로 뭐 하려고 합니까요?”
  “허허, 네까짓 게 그건 알아서 뭐 하려고?"
 말을 뱉으면서도 내가 또 이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에 얼마나 많은 이가 떠나갔던가? 나를 조금만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들은 나를 이해해주길 바랐지만 떠나버렸다. 유일하게 이해해주던 사람도 떠나버렸다. 난 외톨이다.
 
 난 1년 전, 절도를 벌였던 편의점 근처를 서성인다. 칼을 품에 넣은 채 편의점 점주인 녀석을 기다린다. 이러기는 싫었지만 이것만이 확실한 방법이었다.
 잠시 후, 편의점 문이 열린다. 난 녀석에게 다가가려다 황급히 몸을 감춘다. 녀석의 아들로 보이는 아이가 나타난 것이다. 아이는 녀석 앞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재롱을 피운다. 난 그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훔쳐본다.
 난 처음부터 나쁜 아버지는 아니었다. 고된 업무로 가정에 충실하진 못했지만 쉬는 날에는 놀이공원에 데려가는 등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내와 사별한 뒤, 어디서도 기대지 못했던 나는 점차 날카로워져갔다. 그것이 비록 아들에게 향하게 됐지만.
 
 집으로 돌아온 나는 텅 빈 방에 앉아 바닥을 내려다본다. 바닥에는 칼과 밧줄이 놓여있다. 난 밧줄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아주 오랫동안 시간이 멈춘 듯이.
티 브이를 켜자 늑대를 다룬 프로그램이 재방송된다. 나는 그것을 멍하게 응시한다.
 
 눈보라가 날리는 설원 위에 늙은 늑대가 기어가고 있다.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는 녀석이 한동안 굶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장성한 새끼들은 늑대를 지켜만 본다. 마치 죽기를 기다리듯이...
...하지만 장성한 새끼들은 저마다 물어온 고기를 늙은 늑대 앞에다 뱉어낸다. 그리고 군데군데 난 상처를 핥기 시작한다...
 
 한 달이 지났다. 무환의 아들 무진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무진은 섬으로 이사를 갔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벗어나려 한 듯이.
 무진은 자신을 유품 정리사라 소개한 자로부터 유골함과 유품을 받는다. 무진은 덤덤하게 물건을 받고는 거실에 놓인 투명 수납장을 연다. 그는 유골함에 적힌 ‘김무환’이라는 이름이 앞으로 향하게 놓은 뒤 문을 닫는다. 그리고 열쇠로 잠가 버리고는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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