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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집사의 고양이 관찰일기 - 2. 고양이 납치 작전
게시물ID : humordata_18064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방향치
추천 : 26
조회수 : 198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9/03/24 12: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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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병명2.png

 병명 – 우발적 발작성 불안, 경도 우울증. 1년간 치열한 치료 끝에 진단서 병명이 한 단계 내려갔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평생 끌고다녀야 할 것만 같던 발의 족쇄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일부로라도 무언가를 하곤 했다. 요리, 책 읽기, 게임 등등.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삶의 의미를 부여했다. 어느세 녀석도 내 삶의 의미중 하나가 되었다. 아기 고양이. 아침엔 간식을주고 저녁엔 장난감을 흔들어 주는게 내 하루의 일부가 되었다. 또 하루에도 몇 번씩 고양이를 검색해본다.

‘좀있으면 겨울인데...’

 커뮤니티 댓글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겨울이 와도 녀석은 그 자리 계속 있을까? 얼어죽거나 병에 걸리진 않을까? 건물 앞 고양이 시체가 다시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잡자. 잡아서 키우겠다는 사람에게 보내주자. 아직 어린 고양이라 키우겠다는 사람이 분명 있겠지. 팻샵에서 작은 케이지와 먹이를 사 왔다. 녀석을 먹이로 유인해 케이지 안에 가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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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진 곳 앉아 나를 경계하듯 바라보는 아기 고양이 근처에 케이지를 두었다. 그 안엔 사료와 장난감을 넣어두었다. 그리고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녀석도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잠시 쓰레기 더미 앞쪽으로 몸을 숨겼다. 버려진 가구들 사이 틈으로 케이지를 겨우겨우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오분 정도. 녀석은 살금살금 케이지 안 먹이를 향해 들어갔다. 나도 살금살금 가이지로 다가가 얼른 문을 닫았다. 녀석은 놀랐는지 이리저리 몸을 박으며 난리를 쳤다. 순간 겁부터 났다. 무서움의 크기보다 후회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뒤늦게 너무 대책 없이,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란 걸 느꼈다. 우선 병원부터 가자. 길고양이라 분명 아픈 곳이 있을 거야. 그런데 동물을 데리고 버스에 타도 괜찮은 것일까? 가끔 보긴 했던 것 같은데, 버스기사가 승차 거부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정말 아무것도 모른 체 아무 계획도 없이 저질렀구나. 버스에 타기 전 기사님에게 물어봤다. 다행히 괜찮다고 하셨다. 버스에 앉으니 이제 다음 걱정이 밀려왔다. 병원에 가서 뭐라고 말하지. 길고양이를 잡아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왔다고 해야 하나?. 동물병원은 난생처음이다. 얼마의 비용이 들고, 어떤 식으로 진료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 무작정 길고양이를 잡아왔는데 한번 어떤지 상태 좀 봐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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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월쯤 된 암컷. 간단한 건강 상태 확인 후 병원을 나왔다. 한 달 뒤쯤 예방접종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엔 택시에 탔다. 병원에 가던 버스 안에서 아기 고양이가 계속 울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팻샵에서 간단한 고양이 필수품을 사 왔다. 사료, 그릇, 화장실 용품. 고양이는 큰 통에 모래를 깔아주면 따로 배변 훈련 없이도 스스로 모래 위에서 배변을 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니 더 막막해졌다. 도대체 뭐부터 해야 할지.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풀어줘야 하나. 유기묘 센터에 보내야 하나. 걱정은 걱정을 걱정할수록 더 크고 많은 걱정을 불러왔다. 우선 청소부터 하고 구석진 곳에 화장실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사료와 물그릇도 한쪽 구석에 두었다. 그 와중에도 케이지 안에서 삐약삐약 우는 고양이. 마치 나를 욕하는 소리 같았다. ‘너 뭔데 나를 잡아왔냐‘, ’여기 어디야, 어디로 데려온거야‘ 겁이나 케이지를 열지 못하는데, 울다 지쳤는지 케이지 않에 있던 사료를 먹는다.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한동안 그대로 지켜봤다. 먹을만큼 먹었는지 다시 또 울기 시작한다. 케이지를 바닥에 살짝 내려놓았다. 케이지를 열어줘도 그 안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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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시,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져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고양이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그러면서 계속 등 뒤를 돌아봤다. 고개만 빼꼼 내밀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모습에 마음이 탁 놓였다. 눈이 마주치면 다시 케이지 안으로 도망갔다. 책상 위에 거울을 두고 등 뒤를 바라보기로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돌아보지 않으니 못 볼 것이라 생각했는지 살금 살금 나온다. 급하게 물을 먹는다. 그러더니 살금살금 화장실로 향한다. 아직까지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더니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아마 그곳이 5평 좁은 방 안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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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침대 아래서 운다. 아직까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자꾸 움직이는 내가 신경 쓰이는 것일까. 쉬지 않고 울고 있으면 혹시 무슨 일 있나 걱정을 했고, 울음소리가 멈추면 또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장난감을 흔들어주니 침대 아래서 앞발만 빼꼼 내민 채 허우적거렸다. 그러다 장난감에 정신팔려 완전히 침대 밖으로 나왔다. 순간 나를 발견하더니 다시 침대 아래로 들어갔다. 다행히 긴장을 풀어가는 것 같았다. 마음이 놓이니 피곤이 한 번에 몰려왔다. 이젠 나도 좀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출처 1편 http://todayhumor.com/?humorbest_1589068
2편 http://todayhumor.com/?humorbest_1589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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