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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집사의 고양이 관찰일기 - 5. 고양이 관찰일기
게시물ID : humordata_18098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방향치
추천 : 13
조회수 : 1129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9/04/13 12: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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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색. 검은색과 노란색에 밀려난 흰색은 몸통 아랬부분을 차지하는데 만족했나보다. 검은색과 노란색은 겨우 차지한 몸의 반을 놔두고 싸우는 듯 어지럽게 섞여있다.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규칙이라도 있는 듯, 없는 듯 어우러져있다. 다리 곳곳에 살짝 자리잡은 검고 노란 털은 흰색에게 아직 들키지 않은 모양이다. 눈부터 시작된 자리싸움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꼬리까지 끝내지 못한 것 같다.

 끝이 둥굴게 말린 꼬리. 그 짧은 꼬리를 흔들기 위해 열심히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누구한테 배운건지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하루 종일 살랑, 살랑. 꼬리를 살짝 움켜쥐면 손 안에서 꼬물거리는 느낌. 움찔, 움찍, 고작 고만큼 힘을 줘서 그만큼 흔드는게 대견스럽다.

 머리크기에 비해 조금 큰 듯한 귀와 다른곳에 비해 털이 조금 더 긴 목덜미 아랫 부분. 마치 나는 사실 고양이가 아니에요 하고 장난치는 것 같다. 세가지 색이 서로 사이좋게 나눠가진 얼굴에는 수염이 정말 아무렇게나 나 있다. 입과 코 양옆부터 미간 위쪽, 턱선을 따라 귀 아래까지 듬성듬성 난 수염은 서로 사이가 안좋은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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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릴 땐 귀를 쫑긋 쫑긋 움직인다. 그 순간은 짧은 꼬리를 씰룩거리는 것 마저 잊어버린다. 서로 섞이길 거부했던 수염들도 한마음 한 뜻으로 귀가 소리를 다 들을 때 까지 기다린다. 소리를 다 들으면 천천히 소리가 난 곳으로 몸을 돌린다. 그 순간만큼은 몸 구석구석 서로 자리싸움을 하던 털과 수염도 잠시 마음을 모은다. 몸을 납작 엎드린다. 혹시나 들킬까 조심조심. 떡을 바닥에 던져 붙이면 그 모양일까.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나 잘 숨었구나! 아니면, 저기 저 납작한건 뭐지? 하고 생각하려나. 뒷다리를 몇 번 구르며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그러나 휙 하고 날아가 소리를 내던 사냥감을 잡는다.

 장난감을 열심히 흔들어 주다 녀석이 꽉 하고 잡아채면 잠시 장난감을 가만히 놔둔다. 녀석은 장난감의 움직임이 죽으면 앞발로 툭툭 건드리곤 한다. 살았나 죽었나 확인하는가 보다. 죽었다고 생각이 들 때쯤 자랑스러운 듯 나를 쳐다본다. 잘했다고 몇 번 쓰다듬어주면 멈췄던 꼬리를 씰룩거린다. 순간 다시 장난감을 흔들어주면 빠르게 달려간다. 가끔 몸과 마음이 정한 달려나가야 할 거리가 다르면 앞으로 고꾸라지며 구르기도 하지만 창피하진 않은가보다.
 
 사냥놀이는 언제나 내가 먼저 끝내야 한다. 녀석은 헉헉거리고 크게 숨을 후우~ 하고 쉬는일이 있어도 끝까지 장난감을 쫓아다닌다. 장난감을 상자에 넣으면 아쉬운 듯 상자를 물고 긁기를 반복한다. 한참을 상자에 화풀이 한 다음에야 녀석도 사냥놀이가 끝났다는걸 인정하고 움직인만큼 배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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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녀석은 겁이 많다. 문 밖에서 사람 지나가는 소리만들려도 모든 것을 멈추고 도망갈 준비를 한다. 그러다 배달이나 택배가 와서 문이 열리거나 택배내려놓는 쿵! 소리만 들려도 쪼르르 도망간다. 그럴때마다 구석에 숨은 녀석을 찾아 괜찮다고 달래줘야 간신히 나온다. 하지만 지에서만큼은 무서운게 없다. 나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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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 밖을 바라보는 순간은 잘 때 빼고 가장 얌전한 시간이다. 그냥 구경하는 것 만으로 그렇게 재밌는지. 가끔 다가가 뭐가 그렇게 재밌냐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알려주지 않는다. 아마 내가 하루종일 모니터를 바라볼 때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있었을까. 창밖에 사람들이 대화하면서 지나가거나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다시 쪼르르 도망가 숨는다. 내가 모니터를 보는것과 완전 같지는 않은가보다.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떻게 길고양이 생활을 했었는지. 아니, 길고양이 생활을 했기 때문에 겁이 많은걸까. 세상 모든 것이 다 천적이었을테니... 문득 알려주고 싶었다. 창에 변색되지 않은 하늘이 얼마나 파란지, 새벽 공기의 촉감이 얼마나 순수한지, 사람들이 얼마나 너를 귀여워 할지. 전부 내 욕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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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지는 물건들은 자기도 한번씩 만져야 하고, 내가 먹는 것 들은 냄새라도 한번 맡아봐야 하는녀석이다. 내가 내려놓은 물건은 꼭 툭툭 쳐 떨어뜨린다. 내가 만질땐 움직이는것처럼 보이던게 가만히 있으니 이상했나보다. 매일 같은 5평 좁은 방, 같은 장소에 같은 물건들인데도 녀석은 항상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 녀석이 바라보는 것을 나도 가만히 바라보곤 한다. 덕분에 나도 어릴 때 잃어버렸던 호기심 가득한 눈을 되찾은 것 같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구나.
출처 1편 http://todayhumor.com/?humorbest_1589068
2편 http://todayhumor.com/?humorbest_1589074
3편 http://todayhumor.com/?humordata_1806406
4편 http://todayhumor.com/?humorbest_1589697
5편 http://todayhumor.com/?humordata_1807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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