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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는
게시물ID : panic_1004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ng
추천 : 7
조회수 : 97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6/30 23: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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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40분.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잠옷을 벗는다. 그리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 차고로 향한다.

작업대 다리 중 하나에 창고 열쇠가 있다.

열쇠를 꺼낸다.

냉장고에서 맥주 6개들이 팩을 꺼낸 뒤, 뒷좌석에 싣는다.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고 드라이브를 시작한다.

시커모어 방향으로 가는 17번가에서 그녀를 본다.

스무 살 정도 됐을까. 공부하다가, 혹은 놀다가 귀가하는 거겠지. 대학가인 데다가 엄청나게 늦은 시간도 아니다. 아마 안전하다고 생각하겠지.

잠시 차를 대고 창문을 내린다. 혹시 탈 것이 필요한지 묻는다. 분명 내 제의를 거절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보조석을 열더니 차에 탔다.

그녀를 태우고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중인데요?" 내가 묻는다.

"주니퍼가에 있는 애버리 아파트요."

"알았어요."

"당신은요?" 그녀가 내게 묻는다.

"나 뭐요?"

"그쪽은 어디 가시는데요?"

주사기는 이미 준비됐다. 운전석 문 서랍에 넣어둔 상태다.

방범 카메라를 피해서 창고로 향하는 길이 이미 머릿속에 떠오른다.

작업대, 사슬, 도구, 약품... 창고에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나만 가면 된다.

뒷좌석에 있는 맥주를 가리킨다.

"잠깐 맥주 마시려고 나온 거예요. 형이랑 마시려고 집에 들러서 맥주 가지고 오는 길이죠."

주니퍼가가 보인다. 마지막 신호에서 빨간불에 걸린다.

차가 멈춘다. 나는 주사기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는다. 지금 아니면 기회는 없다.

"밤 늦게 빨간불 걸리면 짜증 나더라고요," 소녀가 말한다.

잠시 멈칫한다. 이유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결심을 흔들기에는 충분하다.

갑자기 3주 전, 금발 머리와 공원에 있던 때로 돌아간다. 8개월 전, 혼혈 여성과 술집에 있던 때로 돌아간다. 2년 전, 강가에서 만나던 때로 돌아간다. 3년 전, 모텔로 돌아간다. 대학생 시절, 철로로 돌아간다. 아슬아슬했던 그때로... 그 순간, 번개가 번쩍이듯 갑작스럽게 내 뇌가 반응하면서 심장이 요동치고, 손바닥에 땀이 나고, 숨이 차온다.

초록불이다.

다시 출발한다.

"태워다 줘서 고마워요!"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우자 소녀가 내리면서 말했다.

"물론이죠," 내가 대답한다.

"맥주 맛있게 드세요!"

"당연하죠."

문이 닫힌다. 나는 막힌 도로 끝까지 간다. 그리고 왔던 길 그대로 집으로 향한다.

차고에 차를 댄다. 냉장고에 맥주를 넣고, 창고 열쇠도 있던 자리에 둔다.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침대에 눕는다. 아내는 기척도 없다.

형광등이 비추는 아름다운 창고를 떠올린다. 내 도구와 작업대를 떠올린다. 내 사슬과 내 약품도. 나만 가면 된다. 실망했겠지. 하지만 기회가 올 거다.

언젠가 그것들을 제대로 써줄 거다. 나 자신과 약속한다. 한 번도 안 하고 살 순 없다. 언젠가는 하고 말 거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그냥 잘 거야.

출처 https://m.blog.naver.com/iamsuekim/221503887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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