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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사람은 사람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게시물ID : lovestory_879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33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7/09 07:47:3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6HfC9D5t8TQ






1.jpg

장순금붉은 방

 

 

 

누구나 몸 속에 붉은 방 하나씩은 갖고 있다

좌심방 우심방 그 뒤가장 깊이 면도날로 숨겨놓은 방

꿈이 붉어붉어서 죽지 않는

열망으로 짓물러 서러운 반점처럼 찍힌 방

꽃술까지 붉은 물감 쏟은 피 같은 방

헛구역질 헉헉대면서도 끌어안고 있던 방

뜨건 하혈 무섭게 쏟아내도 제 방이라 우기던

꽃잎그 피의 향기

 

얼음 껴안은 영하 10도의 체감으로도

불 꺼지지 않는 방

 

그 붉은 방을 지탱한 독한 심지의 기운이

 

지옥 불길 속을 지나

불 꺼진 나를 살렸다







2.jpg

임영조, 6

 

 

 

언제쯤 철이 들까

언제쯤 눈에 찰까

하는 짓이 내내 여리고 순한

열댓 살 적 철부지 아들만 같던

계절은 어느새 저렇게 자라

검푸른 어깨를 으스대는가

제법 무성해진 체모를 일렁거리며

더러는 과격한 몸짓으로

지상을 푸르게 제압하는

6월의 들녘에 서면

나는 그저 반갑고 고마울 따름

가슴 속 기우(杞憂)를 이제 지운다

뜨거운 생성의 피가 들끓어

목소리도 싱그러운 변성기

저 당당한 6월 하늘 아래 서면

나도 문득 퍼렇게 질려

살아서 숨 쉬는 것조차

자꾸만 면구스런 생각이 든다

죄지은 일도 없이

무조건 용서를 빌고 싶은

6월엔







3.jpg

이상국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는

한겨울에 뿌리를 얼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위에 틈을 낸다고 한다

바위도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몸을 내주었던 것이다

치열한 삶이다

아름다운 생이다

나는 지난겨울 한 무리의 철거민들이

용산에 언 뿌리를 내리려다가

불에 타 죽는 걸 보았다

바위도 나무에게 틈을 내주는데

사람은 사람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4.jpg

오탁번사랑 사랑 내 사랑

 

 

 

논배미마다 익어가는 벼이삭이

암놈 등에 업힌

숫메뚜기의

겹눈 속에 아롱진다

 

배추밭 찾아가던 배추흰나비가

박넝쿨에 살포시 앉아

저녁답에 피어날

박꽃을 흉내낸다

 

눈썰미 좋은 사랑이여

나도

메뚜기가 되어

그대 등에 업히고 싶다







5.jpg

김수정미역국을 끓이며

 

 

 

방문 잠그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는 갯바위처럼 웅크려있고

미역귀만큼 오글쪼글 접힌 말들이

문턱 앞에 툭 툭 던져져있다

 

문지방이 갈라놓은 저편에서너는

무슨 꿈을 꾸느냐

시원의 바다를 헤매고 있느냐

 

너를 낳고 가끔씩앨버트로스처럼

날고 싶어 퍼덕일 때 있었다 그때마다

신열로 축축 늘어져 내 발목을 휘감던

너의 열일곱 번째 생일상을 차린다

 

나를 키워준 바다를 향해

바락바락 대들던 내 열일곱에도

뜨끈한 미역국은 놓여있었다

 

무겁게 드리운 커튼을 열자

이마로 쏟아지는 햇살

오랫동안 말라있던 기억을 불려

돌미역 같은 아침을 주물러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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